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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을 다년생 초본으로 개발한 주역 장권열 교수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였으나 농업생산에서 실질적인 수확을 하기까지는 아직도 난관이 있다.
 

장권열 교수


콩(Soy bean/학명 Glycin max)은 1년생초본(草本·herb's·목질을 이루지 못하는 식물)이다. 한번 씨를 심어 그 해에 열매를 따고나면 뿌리와 줄기가 죽어버리는 것이다. 이 1년생 초본인 콩이 다년생 초본으로 육종개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초기부터 재배해 온 콩은 우리민족의 식생활에 있어 중요한 단백질원이다. 가공하여 두부 된장 간장 콩가루 과자 콩기름 등으로 쓰이고 성분은 수분 8.6% 단백질 40% 지방 18% 섬유 3.5% 회분 4.6% 펜토산 4.4% 당분7%이다.
 

이 콩이 우리나라에서만 연간 약 25만t정도 생산되지만 식용과 공업용의 수요량에 훨신 못미쳐 연간 70만~80만t씩이 외국에서 수입되고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번심어 여러해동안 계속하여 열매(콩)를 딸 수 있는 다년생초본으로 육종개발 했다는 것은 우리나라 유전공학 발전과정에서 하나의 개가이면서 농업발전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라고 할 수 있겠다.
 

콩육종개발의 주역인 경상대학교 유전공학연구소 장권열교수(張權烈·59·농학박사)를 만나 개발하기 까지의 과정을 비롯한 상세한 얘기를 들어보았다.


● 10년이 걸린 육종


-콩을 다년생초본으로 육종하게된 동기부터 듣고싶습니다.
 

"연구하는 학자는 연구성과에 대하여 논문으로 말할 뿐입니다만… 동기를 얘기하라면 학생때 부터 콩에 대해 관심을 남달리 가지고 있었고 직접계기는 10년전(78년)에 미국에 갔을 때 호주원산의 야생콩을 45가지 얻어온데서 시작됩니다."
 

장교수는 서울대 농대 농학과를 나와 고려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학위논문이 '대두 육종에 있어서의 선발에 관한 실험적연구' 였다.
 

미국에 갔던것은 국제적인 육종학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세계 곳곳의 여러가지식물의 씨 50여만종을 냉장보관하고 있는 종자은행이라 할 수 있는 PI(Plant Introduction)에 가볼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계통과 종이 다른 45가지의 호주원산 야생콩을 가지고와 그것을 암컷으로 하고 우리나라의 재래종 콩을 수컷으로 하여 교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육종에 성공하기 까지의 과정을 설명해 주시지요.
 

"한마디로 어려운 과정이었읍니다. 우리나라의 울산콩과 뱀콩을 교잡하였읍니다. 이것은 시험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실험으로 교배 조합을 찾아 내는데 3년이 걸리고 인공영양으로 기르는데 또 3년이 걸리고 다시 흙에서 자랄수 있도록 하기까지 3년이 걸렸읍니다"
 

식물은 1년생끼리는 교배가 잘된다. 다년생초본끼리도 교배가 잘 된다. 1년생과 다년생은 교잡이 안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다년생에 1년생을 바로 붙이면 교잡이 안된다는 원칙을 여러 조합중 어떤것이 깨고 교잡이 되는가를 살펴보았다. 그런 것이 있었다. 그것을 키워 꽃을 피게하고 꽃에서 수술을 떼어내고 암술에 울산콩이나 뱀콩 수술을 붙여 인공영양액(培地·약30종의 정밀영양성분으로 작은 눈을 배양하는것)을 만들어 길렀다. 이 배지는 순전히 자체개발한 것이다. 육안으로는 안보이는, 현미경으로도 1백~1백50배로 해야 보이는 콩씨를 그 배지 위에서 기른 것이다. 여기서 눈과 뿌리가 나왔다. 이렇게 되기까지 몇천번이고 되풀이 했다. 그런 뒤에 줄기가 생기고 잎이 자랐다. 이러기까지도 모두 시험관 안에서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의뱀콩(왼쪽)과 야생다년초콩 (오른쪽)을 교잡하여 새로운 콩(가운데)을 만들었다.


콩을 시험관 안에서 배양했다는 것도 획기적인 일이다. 시험관 안에서 배양할 수 있는 식물은 우리나라에선 아직 벼와 담배 뿐이라는 것이다.
 

시험관 안에서 밖으로 내 흙으로 옮기면 처음엔 모두 죽는다. 흙에서 자랄수 있도록 하기까지는 적응력을 길러줘야한다. 그러는데 3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다년생초본 콩을 육종개발한 뜻이 어떤데 있다고 보십니까.
 

"근본적으로는 유전공학분야에서 우리나라도 농업부문에 이만큼 응용할수 있게되어 학문적으로 몇세대 앞당겨졌다는 것이고 그다음으로는 콩의 농업생산 면에서의 비중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오해가 있어선 곤란해집니다. 농민이 실제 수확하기 까지는 아직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한 번 심어 몇해고 계속하여 콩을 딸 수 있다하여 농민을 게으르게 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다른 작물을 밀어내고 콩만 심게 하려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우리나라의 경지면적은 논과밭을 모두 합쳐 2백14만ha 정도 뿐이다. 콩은 원래 우리나라 농민들이 논두렁이나 산비탈에 심거나 밭에 간작으로 심어왔다. 장교수는 그런 재래농법의 테두리안에서 생산량이 늘게 될것을 바랄뿐이라는 것을 굳이 강조한다.
 

6.25의 전진이 아직 자욱한 1952년에 대학을 나온후 30여년 동안을 콩연구로만 일관해온 장교수는 지금 조용히 1천편이 넘는 논문과 육종학 관계 저서를 정리하면서 후학의 앞길을 열어주는데 열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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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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