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미국 듀크대학에서 라인 박사와 부인 루이자 박사는 다섯가지 무늬(원 십자 사각 별 물결)가 각각 새겨진 카드를 사용해 지금까지 널리 행해지고 있는 ‘카드 알아맞추기’ 실험을 시작했다. 실험에 사용된 카드는 총 25매, 같은 무늬가 5매씩 새겨졌다.
한 사람이 25매의 카드 중 하나를 뽑았을 때 맞은 편에 앉은 다른 사람이 그 무늬를 우연히 맞출 수 있는 확률은 20%다. 따라서 5매를 연속적으로 맞출 확률은 통계적으로 극히 작다(0.2×0.2×0.2×0.2×0.2 = ${0.2}^{5}$). 이런 상황에서 항상 5매 이상을 정확히 맞춘다면 우연 이외에 어떤 요소가 작용한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8명의 실험대상자들을 통해 6년간 연구한 결과,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했다. 현재까지 거의 50년이상 진행되고 있는 이 실험을 통해 텔레파시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통계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텔레파시(telepathy)란 ‘오감(五感)에 의하지 않고 오감을 뛰어넘은 그 무엇에 의해 사고(思考)나 심리(心理)를 전달하는 현상’이다. 이 용어는 초자연현상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영국 ‘심령연구협회’의 케임브리지대 마이어즈 교수가 처음 만들었다.
19세기 중엽 미국과 영국에서는 영매(靈媒)를 통해 영혼의 세계를 비쳐주는 심령현상이 갑작스럽게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분위기에서 속임수를 쓰는 사기꾼 영매들이 들끓기 시작하자 일반 지식인들은 심령현상을 좋게 보지 않았다. 그러나 몇몇 재능있는 지식인들은 심령현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노력의 결과가 1882년 창립된 ‘심령연구협회’. 이 단체의 회원들은 당시의 심령현상들에 대한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증거수집과 연구를 통해, 3년 후 ‘살아있는 사람의 환각’ 이라는 보고서를 출간했다. 이것이 초자연현상에 대한 객관적인 보고서의 시작일 것이다.
이 보고서에는 7백2개의 사례가 실려있고, 모든 사례에는 한명 이상의 증인이 제시됐다. 가장 많은 사례는 가족이나 친척이 위기에 처했을 경우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텔레파시 현상이었다.
타인의 뇌파를 변화시킨다
텔레파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이를 과학기술적으로 실용화시키는 구체적인 작업은 1960년대 옛소련에서 폭발적으로 시작됐다. 1966년 4월 19일 텔레파시 연구의 신기원을 여는 실험이 옛소련에서 행해졌다.
모스크바로부터 3천2백km 떨어진 시베리아까지 텔레파시 전송 실험이 실시됐다. 모스크바에서 생물물리학자 까민스키가 ESP(초감각지각) 카드 20매를 차례대로 펼쳐나가자 동시에 시베리아에 있는 니콜라이예프가 정확히 카드를 알아 맞춰나간 것이다.
그 다음 까민스키는 사전에 보지 못한 상자 속 물체 6가지(아령 드라이버 코일 등)를 과학자에게 받고 시베리아로 텔레파시를 전달했다. 그러자 니콜라이예프는 물체가 무엇인지를 거의 정확히 알아맞췄다.
이 역사적인 실험의 성공으로 옛소련 과학자들 전체가 들끓었고 정부의 후원 아래 ‘포포프 그룹’(Popov group, 정식명칭: 포포프 소련 무선기술과 전기통신 과학기술자회의 생명정보분과)이 결성됐다. 이를 포함해 1967년 정부지원을 받은 연구센터가 무려 20여개 이상 생겨났다.
이 연구센터들에게 부여된 첫번째 임무는 초자연현상들을 분석·계측할 수 있는 장치 개발이었다. 그 결과 1967년 3월 포포프 그룹은 또 하나의 역사적인 실험을 수행했다. 레닌그라드의 밀폐된 실험실에서 니콜라이예프에게 뇌파측정장치(EEG)를 비롯한 심장고동 호흡 근육 등 생리변화 탐지장비를 부착시킨 후 모스크바로부터 송신되는 텔레파시를 받도록 했다.
모스크바에서 메시지를 보냈다는 신호가 온 지 정확히 3초 후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니콜라이예프의 뇌파에 격렬한 변화가 나타났다. 그리고 수초 후 니콜라이예프는 자신이 텔레파시를 받기 시작했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한 사람의 마음에서 전해진 어떤 충격파가 다른 사람의 뇌파에 영향을 주면서 그 마음에 전송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적 증거가 역사상 처음으로 얻어진 순간이었다.
이 실험 이후 텔레파시에 대한 인식과 연구방법은 현대 실험과학과 본격적으로 결합하면서 전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