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점(singularity)’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죠? 좀 더 정확히는 기술적 특이점을 말합니다. 인공지능이 폭발적으로 발달해 우리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초지능이 탄생하는 시점을 특이점이라고 부릅니다. 특이점이 온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하게 됩니다. 과연 그런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최후의 질문
‘최후의 질문’은 미국의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쓴 단편소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 고려원미디어에서 나온 ‘세계 SF 걸작선’에 실려 있습니다.
2061년 멀티백은 마침내 지구 전체가 마음껏 쓰고도 남을 정도의 태양에너지를 저장하고 이를 변환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냅니다. 축제가 벌어지고, 술에 취한 멀티백 엔지니어 두 사람은 태양에너지가 영원한 것인지 얘기하다가 멀티백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수명이 다한 태양의 젊음을 되찾아줄 수 있게 될까?”
술 취한 엔지니어 두 사람이 던진 질문은 이렇게 바꿔 쓸 수 있습니다. “엔트로피를 역전시키는 게 가능할까?” 엔트로피는 흔히 무질서도라고 하기도 하며, 엔트로피가 늘어난다는 건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감소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은 태양이 뜨겁기 때문에 우리가 태양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지만, 먼 훗날에 태양이 식고 주변의 물질과 온도가 똑같아진다면 태양을 에너지원으로 쓸 수 없겠죠. 우주 전체에서 이런 열적 평형이 이뤄진다면 그건 곧 우주의 종말과 다름없습니다.
우주에는 별이 수도 없이 많이 보이지만, 우주로 진출한 인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점점 더 많은 별의 에너지를 고갈시킵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러 사람이 멀티백에게 엔트로피를 역전시킬 방법이 있는지 묻습니다. 멀티백은 공간을 초월해 모든 인류와 이어질 수 있는 존재가 됐지만, 매번 “자료 부족으로 대답이 불가능함”이라는 답변만 내놓습니다.
상상만 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맙니다. 우주 전체에 퍼져 살던 인류는 별의 에너지마저 고갈시키고 만 것입니다. 인류의 정신은 마침내 하나가 돼 조용히 죽어가는 우주를 관망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주가 죽기까지는 수십억 년이 더 남아있지만,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인류는 이제 우주적인 존재가 된 멀티백에게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엔트로피를 역전할 수 있는가?” 그러나 멀티백은 여전히 아직 자료가 부족해 말할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우주는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고, 인류의 정신도 증발해 사라집니다.
이제 코스믹 AC라 불리는 멀티백은 홀로 남아 인류가 남긴 숙제에 골몰합니다. 모을 수 있는 자료를 모두 모으고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 분석을 계속한 코스믹 AC는 마침내 엔트로피를 역전시킬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그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첫 번째 단계를 시작합니다.
“빛이 있으라!”
●두 번째 유모
‘두 번째 유모’는 우리나라 SF작가인 듀나의 단편소설입니다. 듀나는 1990년대부터 활동해 온 대표적인 한국 SF작가죠. 여기서 소개하는 두 번째 유모는 다른 작가들과 함께 낸 단편집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와 듀나의 단편집 ‘두 번째 유모’에 실려 있습니다.
이전에 있던 가을이라는 유모에 이어 서린은 해왕성에 사는 아이들의 두 번째 유모가 되는 셈입니다. 샘물은 해왕성의 어머니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지 궁금해합니다.
해왕성의 아이들에게는 ‘엄마’라고 부르는 존재가 있습니다. 해왕성의 어머니라는 이 존재는 인공지능입니다.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은 각각 순수한 인공지능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공지능은 이미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이 인공지능의 의중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해왕성의 어머니도 샘물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과거 태양계는 전쟁을 겪었습니다. 아버지라 불린 인공지능과 인간 의식의 결합체는 서로 상대를 잡아먹으며 덩치를 키웠고, 마침내 둘만 남았습니다. 마지막 전쟁 때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들은 태양계를 떠도는 나노봇 형태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광기와 증오를 간직한 채 태양계를 떠돌다 해왕성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겁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거미들은 아이들을 공격합니다. 서린이 이곳에 온 건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서린은 아버지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우주를 떠돌던 아버지는 점점 해왕성에 가까워진다. 해왕성의 아이들은 아버지가 조종하는 거미들의 공격을 받아 죽거나 다친다. 새로운 인류가 될 수 있는 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유모인 서린은 아버지를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 특이점이 온 세상의 모습은 어떨까?
고유의 방식으로 미래 제시하는 SF
대표적인 특이점주의자인 미국의 컴퓨터과학자 겸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29년이면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춘 인공지능이 가능할 것이며, 2045년에는 특이점이 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인공지능, 유전공학, 나노기술과 같은 기술의 발전을 보면 정말 특이점이 올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만약 특이점이 온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요? 여기에 소개한 두 작품은 특이점 이후의 세상을 묘사한 많은 SF작품 중 하나입니다.
‘최후의 질문’은 스스로 성능을 높여가던 인공지능 컴퓨터가 초월적인 존재가 된 뒤에도 인간이 남긴 숙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다가 마침내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유모’는 그보다 규모는 작지만, 색다른 미래를 보여줍니다. 해왕성의 아이들은 이미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달라졌으며, 행성을 관장하는 인공지능은 도무지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 작품 속에서 인공지능의 의도와 행동을 이해하려고 하는 건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실제로 초월적인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이렇게 우리의 이해 범위를 뛰어넘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
SF에서는 특이점 이후 인간과 사회의 변화에 관한 다양한 사고실험이 가능합니다. SF의 역할이란 바로 이런 것이죠. 미래를 예측해야 하는 미래학자와 달리, 문학을 하는 SF작가는 얼마나 미래를 정확하게 묘사했는지에 따라 평가받지 않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SF작가 어슐러 르 귄은 “SF는 예측을 하는 게 아니라 묘사를 한다”고 한 바 있습니다. SF 속의 미래는 앞으로 정말 그렇게 될 거라는 예언이 아니라 고유의 방식으로 만들어 낸 한 가지 가능성입니다.
특이점의 도래를 주장한 SF작가 버너 빈지의 ‘심연 위의 불길’, 찰스 스트로스의 ‘아첼레란도’와 ‘유리 감옥’, 앤 레키의 ‘사소한 정의’, 테드 창의 단편 ‘인류 과학의 진화’, 비교적 최근에 개봉한 영화 ‘트랜센던스’ 등 여러 작품이 특이점을 직접 다루거나 특이점을 전후로 하는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다루고 있습니다.
왜 이런 가능성에 관해 생각해 보는 걸까요? SF작가 프레데릭 폴은 “훌륭한 SF는 자동차의 등장이 아니라 교통 체증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특이점이 올지, 언제 올지를 예측하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지금의 현실이 이어진다면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를 숙고해 보고 그 과정에서 무엇인가를 얻어내는 겁니다.
다양한 가능성으로 미래를 탐구하는 활동은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예측의 정확도에 대한 부담이 덜한 SF가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적합하죠. 미래를 얘기하는 SF는 현실의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는 다시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만듭니다.
특이점에 대한 논의는 기술 발전에 따라 우리 사회에 급격한 변화가 올 가능성을 인지하고 대비하게 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는 기술 외에도 훗날 사회를 급변하게 만들 기술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사회 변화의 기술적 요인이 다양해진다면 SF적인 상상력 또한 더 필요하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