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유수의 항공 선진국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무인전투기(UCAV, Unmanned Combat Air Vehicle)를 개발해왔다. 하지만 이들이 개발하고 있는 무인전투기는 사람이 탄 전투기를 상대로 ‘공중전(dogfight)’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고 있지는 않다. 왜 그럴까.

유인기 vs 무인기, 과연 싸울 수 있을까
사람이 탄 전투기와 무인전투기와 가장 큰 차이점은 당연히도 전투기에 탄 조종사의 유무다. 인간 조종사는 전투기에 달린 센서 이외에도 신체의 모든 감각기관을 종합적으로 활용한다. 눈으로 조종석 바깥 주변 공역, 지상표적물까지의 상황, 계기패널을 읽는다. 헤드셋으로는 소리 정보를 듣는다. 이런 복잡한 상황 변화에 과거에 학습한 정보까지 더해서 머릿속으로 신속하게 병렬 처리해 상황 판단과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하지만 사람 조종사를 완벽히 대체할 만한 컴퓨터와 자동조종 시스템은 아직까지 없다. 이런 점에선 공중전을 위한 무인전투기 설계가 비효율적이다. 더구나 현재 활동하고 있는 프레데터나 리퍼 같은 무인공격기는 매우 느려서 공중전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전쟁 초기에 적의 방공망 무력화를 시도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인전투기의 압도적인 성능으로 아예 유인전투기가 공중에 뜨지도 못할 수 있다. 무인전투기의 기본 용도는 몰래 침투해 목표물을 치고 빠져나오는 것이다. 적의 방공망을 선제공격해서 무력화시키는 작전(SEAD)이 가장 대표적인 임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적의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 기능을 갖춰야 한다. 적의 GPS 교란 시도를 무력화해야 하기 때문에 지형지물을 읽고 스스로 위치 파악을 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이런 무인전투기는 여러 대가 편대를 이루고 편대 내에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침투하다가 목표에 이르면 각자가 맡은 표적을 파괴한다. 편대 무인기 일부가 피격되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남은 무인기들이 유연하게 스스로 임무를 재구성할 수도 있다.
이런 임무는 이미 알려져 있는 지상 목표물에 대한 공격으로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개전 초기에 무인기 대신 유인전투기를 투입한다면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임무다. 바로 무인전투기가 수행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다.

공중전이 일어난다면 어느 쪽이 더 셀까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만약에, 무인전투기와 유인전투기가 공중에서 서로 맞붙는다면 어떻게 될까. 현재로선 유인전투기가 무인전투기에게 백전백승 할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아직까지 무인전투기는 공중전 상황을 설계에 반영하고 있지 않다. 공중에서 적기를 만난다면 아무런 대책이 없다. 공중전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적기를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와 공대공 무기가 필요하다. 무인전투기는 처음부터 이런 것이 없다. 설령 다른 정보망을 통해 적기의 출현을 감지했다 하더라도 조종사는 멀리 지상에 있는 벙커 속에 앉아 있고 통신 지연 효과 때문에 수백 밀리 초 수준의 엇박자로 유인기에 대적해 기동하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훈련된 두뇌와 오감을 동원해 실시간으로 유연하게 상황 판단을 하면서 공격하는 유인전투기에게 무인전투기는 멍청한 먹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항공기에 탑재된 컴퓨터의 처리속도가 충분히 빨라지고 내장된 인공지능이 판단력과 학습능력까지 갖춰 사람의 능력을 넘어선다면 어떨까. 무인전투기의 작전 운용 소프트웨어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비행기 센서의 공중전 판단력이 사람의 두뇌와 감각기관보다 더 진보한다면 어떨까.
공중에서 마주친 동급의 무인전투기는 유인전투기와는 설계 자체가 다르다. 오히려 유인전투기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불리한 점이 노출된다. 바로 조종사다. 유인전투기는 설계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 조종석과 유리창(캐노피), 사출좌석, 산소 공급 장치, 압력(여압) 조절 장치, 고기동 제한 등이다.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무인전투기는 어떤 이점이 있을까.
우선 항공기 동체의 무게를 대폭 줄일 수 있다. 훨씬 우수한 기동력, 선회 반경, 상승률을 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무기를 더 많이 실을 수 있다. 몸이 느린 일반인과 날렵한 권투선수가 링 위에서 권투 경기를 하듯 유인기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현란한 곡예기동을 할 수 있다. 혹시 유인전투기와 무인전투기가 공중전을 하는 다이내믹한 영화 장면을 떠올리는가. 그러나 영화가 아닌 실제 상황에서는 현란한 풋워크와 잽 동작도 필요 없다. 단 한 번의 기동과 정밀한 목표물 조준으로 한 주먹에 게임은 끝날 것이다.
이쯤 되면 무인전투기를 가진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 간의 전쟁은 총을 가진 나라와 칼을 가진 나라가 싸우는 격이다. 그 이전에 그나마 있는 유인전투기조차 한 번도 발진해보지도 못하고 파괴되는 비참한 상황이 되지 않을까.

무인기 인공지능 어디까지 갈까
항공기가 처음 등장한 후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 초기 공중전을 잠깐 그려 보자. 당시에는 공중에서 만난 조종사끼리 서로 눈을 흘기거나 권총을 쏘는 정도였다. 지금의 무인전투기도 공중에서 만난다면 싸울 준비가 안 된 상대를 서로 지나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인전투기들이 창과 방패처럼 서로 물고 물리며 개발되면 무인전투기 간의 공중전에 대비한 무장 체계나 방호 체계가 개발되는 날이 온다.
그래도 무인전투기끼리의 공중전은 2차 대전이나 현재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전개된다. 멀리 떨어진 지상에 앉아서 모니터와 계기판만 보고 있는 무인기 조종사는 컴퓨터와 무선통신장비로 무인기와 소통한다. 여러 정보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고 암호화와 복호화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신호의 지연시간이 적어도 수백 밀리 초는 생긴다.
순간적인 상황판단과 공격 및 방어 타이밍이 필요한 상황에서 완벽한 실시간 조작이 어려운 화면만 보고 전투할 수는 없다. 프로그래밍한 대로 지상 목표물을 정밀 타격할 경우에는 시간지연이 문제되지 않지만 일촉즉발의 공중전은 이야기가 다르다. 결국 무인전투기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기술, 인공지능이 해답이다.
무인전투기에 인공지능을 적용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항공기 스스로 전장 상황을 종합 판단한다는 의미다.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적의 피해를 최대화하는 조치를 스스로 할 수 있는 임무수행 소프트웨어를 탑재한다는 것이다. 무인기 조종사는 실시간 기동보다는 전장 상황에 대해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작전을 지시하거나 전투 상황을 관리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지 않을까. 이를 테면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플레이어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의 뇌를 닮은 인공지능 기술이 무인전투기에 줄 수 있는 혜택(?)은 생각보다 많다. 여러 대의 전투기가 협업을 해야 하는 경우 각 전투기에 탑재된 컴퓨터끼리 무선통신으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컴퓨터 자원을 공유하고 연산 시 생기는 과부하를 분산한다. 조종사들이 있는 후방의 중앙통제소 컴퓨터는 상황을 종합 판단해 무인전투기 편대에 더욱 효율적인 작전명령을 내리게 된다.
만약 민간 항공기에 인공지능이 탑재된다면 항공기 이륙이 지연되는 상황이 더욱 줄어든다. 항공교통 관제센터 컴퓨터와 항공기에 탑재된 컴퓨터간 통신을 통해 항공기들의 이륙시간과 교통 관리를 정밀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람이 조종하지 않아도 출발지와 목적지만 입력하면 항공기 특성에 맞춰 가장 안전하고 최적화된 경로로 자동 운항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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