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자가속기로 납(Pb)의 원자핵을 초고속으로 충돌시키는 실험을 통해 ‘빅뱅’(대폭발) 직후의 초고온·고밀도의 상태를 재현하는데 성공했다고 유럽핵물리연구소(CERN)가 발표했다. 빅뱅이란 우주가 1백수십억년 전 생성될 때의 대폭발을 가리키는 말로, 현대 우주론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빅뱅의 존재가 확실시됐지만, 실제로 확인되기는 이번 실험이 처음이다.
빅뱅 이론에 따르면, 대폭발 직후 우주에는 전기를 띤 소립자 쿼크와 글루온이 플라스마 상태로 존재했다. 플라스마는 고체, 액체, 기체가 아닌 물질의 제4상태이며, 우주의 99% 이상을 구성한다. 이후 우주가 급팽창하고 온도가 내려가면서 소립자들이 원자로 만들어졌고, 은하가 탄생했으며, 별들과 태양계가 형성됐다.
CERN 연구팀은 이 우주 형성의 흐름을 추적하기 위해 1994년부터 약 7km 길이의 원형입자가속장치 안에서 납의 원자핵을 거의 빛의 속도로 납판에 충돌시켰다. 또 초고온(태양 중심부의 10만배인 1-2조K)과 초에너지밀도(전기에너지 3-4GeV/10-15m3)의 환경을 만들어 냈다.
실험 결과 핵 안에 묶여있는 쿼크와 글루온이 분리돼 플라스마 상태로 유도됐다. 현재 우주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론상으로 빅뱅 직후 약 10만분의 1초 동안에 발생했다고 예측되던 상태가 처음으로 지상에서 재현된 것이다. CERN의 르치아노 소장은 “이 실험결과는 물질의 새로운 존재 방법을 명확하게 나타냈고, 우주 진화를 해명하는데 중요한 일보를 내딛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