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 없는 야구 경기, 스토브리그
정규 시즌이 끝난 야구 경기장은 방망이의 타격음도 장내 아나운서의 쩌렁쩌렁한 응원도 고막을 울리는 관중들의 큰 함성도 없어 적막하다. 승리를 향한 선수들의 치열한 전쟁이 끝나고 한숨 돌리는 이때 단장과 구단주를 비롯한 야구팀 운영진의 전쟁이 시작된다. 다음 시즌을 대비해 전력을 강화해 줄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고, 성적이 낮은 선수는 방출하며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는 유망주를 선발하는 기간인 ‘스토브리그’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스토브리그는 정규 시즌이 끝난 추운 겨울에 선수들의 이적과 연봉 협상이 이뤄지기 때문에, 팬들이 스토브(난로)를 켜고 다음 시즌에 관해 예측하거나 이야기를 나눈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
이때 가장 바쁜 팀은 직전 시즌의 성적이 좋지 않았던 팀이다. 성적이 좋았던 팀은 현 상황을 유지하면 되지만, 그렇지 못한 팀은 팀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선수단을 개편하고, 필요하다면 감독이나 단장을 새로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선수들의 성장과 극적인 승부에 주목하는 일반 스포츠 드라마와 달리, 야구 선수들이 최고의 경기를 펼칠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주는 ‘운영진’의 이야기를 그렸다. 보통 팬들은 인터넷에서 야구팀의 행보에 관한 온갖 추측이 담긴 뉴스를 보다가 야구팀의 발표가 예상과 다르면 놀라는데,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는 팀의 에이스 타자를 방출하고 과거 팀을 떠났던 투수를 영입하는 에피소드, 외국인 용병 선수 후보를 보러 해외에 갔다가 현지 코디네이터를 용병으로 영입하는 이야기 등 팬들은 모르는 야구팀의 뒷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 팬들로부터 좋은 평을 듣고 있다.
꼴찌 팀에 ‘야·알·못’ 단장 뿌리기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드림즈의 운영 팀장 이세영(박은빈 분)이 조용한 카페에서 전임 단장이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말을 듣는 것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장의 권유로 새 단장을 뽑는 면접에 참석한 이세영은 드림즈를 잘 이끌 수 있다고 말하는 경영학 전공자와 선수 출신 감독 등의 후보자 사이에서 야구도 잘 모르면서 드림즈의 문제점만 날카롭게 지적하는 백승수(남궁민 분)와 마주한다. 무뚝뚝하며 거만한 태도에 이세영은 백승수만은 절대 뽑힐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매번 적자를 기록하는 야구팀을 잡음 없이 해체하고 싶은 구단주 대행에 의해 백승수가 선임되고 만다.
이세영뿐 아니라 홍보팀, 스카우트팀 팀장 모두 새로운 단장을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백승수는 첫 회의부터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다.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은 감독에게 3년 계약 연장을 제안하는가 하면, 차기 감독 자리를 노리며 파벌 싸움을 하던 두 코치에게 ‘성적으로 싸우라’며 오히려 파벌 싸움을 권유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방출할 선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백승수는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 4번 타자이자 유니폼 판매율 1위면서 골든글러브 상을 받은 임동규(조한선 분)를 방출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방출해야 할 이유는커녕 방출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100개도 댈 수 있을 것 같은 결정에 드림즈 직원들은 동요한다.
심지어 소문을 들은 임동규가 야구공을 쳐서 위협하거나 차 유리를 부수고 폭력배에 사주해 구타해도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백승수는 나름의 방법으로 열심히 야구 공부를 하며 내린 결정이기 때문이다.
백승수의 무기는 세이버메트릭스
백승수는 사무실이나 집에서 야구 관련 기록을 적은 차트와 경기 영상을 보며 분석하거나 회식 자리에 미리 도착해 ‘야구 데이터의 분석과 활용’이라는 책을 읽으며 나름대로 야구를 익히기 시작한다.
야구 관련 일을 하던 사람이 단장을 맡으면 유리하겠지만, 야구라곤 규칙 정도만 아는 백승수도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 바로 통계, 게임 이론 같은 수학적 방법을 이용해 야구 관련 정보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세이버메트릭스’ 덕분이다. 현재는 대부분의 야구팀에서 세이버메트릭스를 사용하지만,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돈이 부족한 팀이 통계적인 기법을 이용해 몸값은 싸고 잠재력 있는 선수를 뽑으려는 목적으로 썼다.
세이버메트릭스는 야구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으로, 타율, 출루율, 수비력 등의 지표를 측정한 뒤 지표 사이의 인과 관계를 찾아 팀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한다. 그래서 필요한 지표를 골라 합리적으로 분석하는 게 중요하다. 원칙과 소신에 따라 팀을 바꾸는 백승수가 임동규를 방출하려고 결정한 근거도 세이버메트릭스에 있다. 같은 지표로도 여러 해석을 할 수 있지만, 백승수의 발표가 끝나고 직원들이 침묵을 지킨걸 보면 백승수의 분석이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었다는 뜻이다.
옥에 티, 냉철한 백승수도 몰랐다!
백승수는 결승타가 적다는 걸 임동규의 방출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그런데 실제로 결승타를 타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 지표로 보긴 어렵다.
현실에서는 실력이 좋은 타자도 1년 동안 친 결승타가 10개 안팎으로, 출전한 경기 수에 비하면 무척 작은 값이라 이것을 근거로 타자를 판단하긴 어렵다. 선수마다 경기에 나서는 기회가 다르기 때문에 공평한 지표라고 보기도 힘들다.
7~8월에 득점이 낮은 선수기 때문이라는 것도 방출 이유로 꼽기에는 무리가 있다. 임동규 선수의 경우 승리기여도가 약 6인데, 7~8월에 득점이 낮은데도 이 수치를 유지한다는 건 다른 시기에 훨씬 많은 득점을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드림즈의 운명은 우승과 해체?
다른 프로 야구팀인 ‘바이킹스’에 임동규를 양보하는 대신 과거 드림즈 선수였던 국가대표 투수 강두기와 나름 성적 좋은 투수 김관식을 영입한 백승수는 철두철미한 운영으로 스카웃팀의 비리를 잡아내며 이세영을 비롯해 직원들의 신뢰를 얻기 시작한다. 전체 연봉의 30%를 줄이라는 구단주 대행의 지침이 떨어지자 자신의 연봉을 깎겠다고 말하며 휴머니스트의 모습도 보여준다.
백승수가 단장으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동시에 점차 그의 과거가 드러난다. 백승수는 휠체어를 탄 동생 백영수가 야구에 관한 데이터를 못 보게 하는데, 야구 유망주였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백영수가 통계학을 배워 드림즈의 전략분석팀에 지원하면서 백승수의 아픈 과거사가 밝혀진다.
백승수가 휴머니스트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궁금해지는 점이 있다. 바로 드라마 초반 구단주 대행이 우승 후 팀을 해체하자는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과거 맡았던 팀이 우승 후 해체되는 아픔을 겪은 백승수가 정말 팀을 해체하는 데 동의한 걸까? 혹시 다른 작전을 세우고 있진 않을까?
키는 백승수가 쥐고 있다. 냉철하지만 따듯한 마음을 가진 백승수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그의 행보를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