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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상 - 응급실에서 들은 ‘세포의 대화’




올해 노벨화학상은 로버트 레프코위츠 미국 듀크대 의대 교수와 브라이언 코빌카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둘 다 의대 교수인데다 연구 주제도 얼핏 생명과학과 더 가까워 보여서 발표 직후 잠시 술렁임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연구한 ‘구아닌(G)-단백질 결합 수용체(G-protein coupled receptors·GPCR, 줄여서 구아닌 수용체)’는 생화학과 약학 분야에서 수많은 파생 연구를 내놓은 대단히 중요한 생체물질로, 화학상 주제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GPCR(구아닌 수용체)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60조 개의 세포를 조율하는 ‘센서’

우리는 ‘센서’인 눈, 코, 귀, 혀를 통해서 빛, 냄새, 소리, 맛을 느낀다. 세포에도 이런 센서가 존재한다. 이들은 아드레날린, 세로토닌, 도파민, 히스타민 등 다양한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의 신호에 반응하며, 인체를 이루는 60조 개 이상의 세포가 놀랄 만큼 정교하고 조화롭게 움직이도록 도와준다. 이렇게 세포들이 센서로 ‘대화’를 나누는 덕에 우리는 하나의 개체로서 온전히 활동할 수 있다.

세포에서 이런 센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구아닌 수용체다. 이 수용체는 세포 바깥의 환경과 자극을 감지해 세포 안으로 신호를 전달한다. 원래 세포에는 지질 이중막으로 구성된 세포막이 있어서 외부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다. 세포막은 물과 잘 결합하는 친수성 층과 물과 분리되는 소수성 층이 겹겹으로 쌓여 있어 외부자극 화학 물질이 통과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구아닌 수용체는 이런 세포막을 통과할 수 있는 특이한 분자구조를 갖고 있다. 마치 세포막에 열쇠구멍이 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 열쇠구멍에 열쇠, 즉 환경 신호나 자극에 해당하는 분자가 결합하면 세포 내에 생화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이 변화가 정보로 해석돼 세포 안으로 전달된다. 빛, 맛, 냄새 등 감각뿐 아니라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까지, 몸 전체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신호 반응 모두가 대상이다. 우리 인체에는 거의 1000종에 가까운 다양한 종류의 구아닌 수용체가 있으며, 각각 다양한 외부 신호를 감지하는 센서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래서 이번에 상을 받은 레프코위츠 교수는 “구아닌 수용체는 세포로 통하는 문이며 인체의 모든 생리 작용을 통제하는 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요한 역할 때문에 구아닌 수용체 연구는 그동안 많은 과학자의 관심을 받았다. 1994년 마틴 로드벨 박사와 알프레드 길먼 박사가 받은 노벨 생리·의학상 주제도 GPCR과 결합하는 구아닌 단백질(G-단백질이라고도 한다)이었으며,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린다 벅 박사와 리처드 액셀 박사도 GPCR의 하나인 냄새 인식 후각수용체를 연구했다. 197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얼 서더랜드 주니어 박사의 연구주제도 GPCR의 세포 내 신호를 전달하는 고리형아데노신일인산(cAMP)이었다.




응급실에서 시작된 의문의 GPCR 구조

사실 구아닌 수용체의 존재는 1960년 이후부터 예견됐으며, 인체의 생존에 꼭 필요한 센서 역할을 하리라는 사실까지도 막연하나마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세포가 어떤 방식으로 외부 자극을 감지하는지 메커니즘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예를 들어 에피네프린 호르몬이 심장박동을 강화하고 호흡을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사실은 경험적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런 호르몬에 반응하는 수용체가 세포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수용체가 무엇이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는 밝히지 못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아낸 사람이 레프코위츠 교수와 코빌카 교수다.

레프코위츠 교수는 1960년대 말부터 에피네프린과 결합하는 아드레날린성 수용체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성과는 1980년 대에 당시 젊은 의사였던 코빌카 박사가 박사후 연구원으로 합류하면서 비로소 나오기 시작했다. 코빌카 박사는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 에피네프린이라는 호르몬이 환자들에게 대단히 큰 효과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보통 의사들은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코빌카 박사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도대체 어떤 수용체가 있기에 그런 효과가 나타나는가 연구하기로 결심하고 레프코위츠 연구실을 찾았다.

코빌카 박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유전자가 에피네프린이 결합하는 수용체(‘베타-아드레날린성 수용체’)를 만드는지 밝히는 연구에 착수했다. 그 결과 이런 역할을 하는 구아닌 수용체가 7개의 긴 나선 구조를 갖는 소수성(물을 싫어하는) 단백질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런 구조는 세포막의 지질이중막에 존재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대단히 특이한 구조다. 이 구조가 이미 알려져 있던, 망막에서 빛을 감지하는 로돕신 수용체와 유사한 구조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런 발견을 바탕으로 두 사람은 유사한 구조를 지닌 구아닌 수용체는 비록 각각 다른 역할을 하는 센서지만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사실도 찾아냈다. 또 작동 방식이 같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우리 몸에 있는 구아닌 수용체의 공통 메커니즘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연구팀은 계속해서 아드레날린성 수용체와 로돕신 수용체가 공통적으로 세포내에 존재하는 G-단백질과 결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 수용체와 결합하는 G-단백질은 알파, 베타, 감마의 3가지 구조로 이뤄져 있는데, 이들이 수용체와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수용체의 활성이 결정되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어서 구아닌 수용체가 어떻게 세포 안에서 신호를 전달하고 조절되는지도 연구했다. 마지막으로 아드레날린성 수용체와 로돕신 수용체 말고도 비슷하게 생긴 구아닌 수용체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그 구조를 밝혔다. 레프코위츠와 코빌카 박사는 이처럼 구아닌 수용체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업적이어서, 생화학계에서는 일찍부터 두 사람이 언젠가는 노벨상을 받으리라고 예상했다.





질병 극복의 길 열리나

코빌카 교수는 2011년 베타-아드레날린성 수용체가 에피네프린 호르몬에 의해 활성화될 때, 세포 내부로 신호를 보내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노벨상 수상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이는 계기였다. 이를 통해 그는 신약 개발에 응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길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왜 신약 개발에 중요할까. 구아닌 수용체는 우리 몸의 생리작용을 매개하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수용체 각각의 기능을 규명하고 이를 어떻게 조절하고 제어하는지를 밝히는 작업이 현대 신약 개발의 중요한 과제가 됐다. 약학자들도 구아닌 수용체를 활발하게 연구하는 이유다.

현재 많은 질병이 구아닌 수용체가 망가졌을 때 일어난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우울증, 알레르기 같은 질환이 그 예다. 시판되고 있는 치료용 약물의 약 절반은 구아닌 수용체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항히스타민제, 베타 차단제 등 다양한 치료용 약물이 포함돼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관련된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필자의 연구실에서도 BLT2라 불리는 새로운 구아닌 수용체의 역할을 밝히는 연구를 하고 있으며, 이 수용체가 천식 등 기도 염증 질환과 여러 종류의 암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냈다. 이를 통해 BLT2 수용체와 결합하는 ‘류코트리엔’ 이라는 물질의 기능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필자의 연구실은 현재 구아닌 수용체와 관련된 여러 질환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코빌카 교수가 속한 스탠퍼드대는 이번에 28번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하니 젊은 코빌카 박사가 응급실에서 겪은 일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급박하고 바쁜 와중에 가졌던 작은 호기심이 집요한 연구로 이어졌고, 결국은 노벨상까지 이어졌다. 지금 당신의 ‘응급실’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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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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