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인 세포. 인체에는 약 60조 개의 세포가 있으며 그 종류는 약 220가지에 이른다. 수많은 세포는 우리 몸을 이루며 각각 특정한 기능을 수행해 생명활동을 유지시킨다. 놀라운 점은 이 모든 세포가 정자와 난자가 만나 탄생한 수정란이란 단 하나의 세포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할 점은 몇 종류를 제외한 인체의 거의 모든 세포가 끊임없이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과정의 원동력에는 ‘줄기세포’가 있다.
줄기세포는 인체의 다양한 세포로 분화가 가능한 세포이며 자가 재생산 능력이 있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고 계속 존재할 수 있다. 늙거나 상처 입은 세포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세포가 생기는 것도 우리 몸 속에 있는 줄기 세포 덕분이다.
그런데 무슨 능력 때문에 어떤 세포는 체세포가 되고, 어떤 세포는 줄기세포가 되는 것일까. 인체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체세포는 모두 같은 유전정보가 담긴 DNA를 갖고 있으며 줄기세포 또한 마찬가지다.
올해 노벨상은 체세포와 줄기세포, 수정란이 같은 유전정보를 가진다는 점에 착안해 지금껏 한 방향으로만 가능하다고 알려진 분화를 반대방향, 즉 체세포에서 줄기세포로 역분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과학자들에게 수여됐다.
존 거든 영국 케임브리지대 거든연구소 소장, 야마나카 신야 일본 교토대 iPS연구소장이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의 주인공이다. 거든 교수는 올챙이의 체세포(내장세포)를 역분화해 올챙이를 복제했고, 신야 교수는 분화된 체세포에 특정 인자를 처리함으로써 줄기세포를 만들어냈다.
체세포 복제에서 시작된 역분화의 가능성
역분화 연구 초창기, 줄기세포 개념이 도입되기 이전. 과학자들은 수정란으로부터 하나의 생명체가 발달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리고 체세포와 수정란의 차이를 만드는 비밀은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데 기능이 집중된 정자 대신 난자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난자는 수정란이 발달하는 데 필요한 거의 대부분의 요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핵이식 기술은 이런 가정을 증명한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핵이식 기술이란 핵을 제거한 난자 속에 다른 체세포에서 꺼낸 핵을 주입시켜 발생시키는 기술이다. 이전 단계에서 시도됐던 세포융합 기술(서로 다른 2개 이상의 세포를 합치는 기술)과 달리 온전한 유전체(2n)를 가진 세포를 만들 수 있었으며, 체세포의 유전정보만 이동시킬 수 있어 유리했다.
1962년 거든 교수는 개구리 난자의 핵을 제거해 무핵 상태로 만들고, 무핵 상태의 난자에 다른 개구리의 핵을 이식해 그와 똑같은 유전정보를 지닌 다수의 올챙이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성공은 분화된 체세포를 수정란 단계로 역분화시키는 연구의 시발점이 됐다.
거든 교수는 이 실험으로 이미 분화가 진행된 체세포도 온전한 개체를 탄생시킬 수 있는 유전정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론 뿐만 아니라 실험으로도 증명했다. 그리고 핵이 가진 유전정보 외에 난자의 세포질이 가진 ‘어떤 물질’이 생물의 발달에 관여하고 체세포를 역분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확인했다.
1996년 영국에서 복제 양 돌리가 태어남으로써 이 이론이 포유류에서도 성립한다는 것이 증명됐다. 이후 쥐(1997년), 염소(1999년), 젖소(1999년), 돼지(2000년), 원숭이(2000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에서 체세포 복제 동물이 태어났으며 이 결과를 토대로 인간의 체세포 복제 배아(수정란의 초기 상태) 줄기세포 연구의 막이 올랐다.
분화된 체세포에서 줄기세포를 유도하다
배아줄기세포는 수정란이 분열하면서 만들어지는 가장 초창기(배아 시기)의 줄기세포로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 또 배아줄기세포는 거의 무한정으로 분열할 수 있고 시험관에서 배양이 쉽기 때문에 재생의료분야의 세포치료제로써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배아줄기세포를 얻기 위해서는 수정란을 반드시 파괴해야 한다. 이 때문에 수정란을 하나의 생명의 가능성이라고 보았을 때 큰 윤리적 문제가 따른다. 또 배아줄기세포로 만든 세포치료제는 환자의 체내에서 외부 물질로 인식하기 때문에 면역거부반응 문제가 생긴다.
이번엔 성체줄기세포를 살펴보자. 성체줄기세포는 성인이 돼서도 인체 내부에 존재하는 줄기세포로, 신경줄기세포, 중간엽줄기세포, 조혈모세포 등이 있으며 여러 세포로 분열할 수 있는 세포다. 성체줄기세포로 치료를 하게 되면 환자는 본인의 세포를 쓸 수 있기 때문에 배아줄기세포를 썼을 때 일어나는 면역거부반응 문제는 물론 윤리적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성체줄기세포는 인체 내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와 비교했을 때 여러 한계점이 있다. 먼저 몇 가지 한정된 세포로만 분화가 가능하다. 시험관 내에서 배양이 어려우며 분열 능력 역시 배아줄기세포에 비하면 많이 떨어진다. 또 채취과정에서 환자에게 고통을 주는 경우가 많으며 뇌 깊숙이 존재하는 신경줄기세포는 성인에게서는 거의 채취하기 불가능하다는 점도 약점이다.
이런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의 장점만 유지하면서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줄기세포가 바로 유도만능 줄기세포(induced pluripotent stem cell. iPS)다. 2006년 신야 교수는 배아줄기세포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인자( 전사 인자)가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래서 이런 전사인자가 일반 체세포 내에서도 발현하게 만들면 배아줄기세포와 같은 유전정보가 전사돼 체세포가 배아줄기세포 같은 세포에서 변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신야 교수는 배아줄기세포가 특이적으로 발현하는 전사인자(Oct4, Sox2, Klf4, c-Myc)를 분화된 체세포에 삽입해 배아줄기세포와 유사한 능력을 가진 세포, 즉 iPS를 유도하는데 성공했다.
iPS는 배아줄기세포처럼 인체 내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으며 무한정한 분열능력을 갖고 있다. 또 배아줄기세포처럼 배양이 용이하며(같은 배양조건에서 키울 수 있다) 본인의 체세포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윤리 문제, 면역거부반응 문제도 없다. 또 피부세포 같이 채취하기 편한 세포로도 유도가 가능하기 때문에 임상적 접근성도 높다.
난치성치료 길 열린다
야마나카 신야 교수의 연구 이후 활발해진 이 연구분야를 ‘리-프로그래밍(reprogramming)’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줄기세포에서 성숙한 체세포로 바뀌는 과정을 프로그래밍이라고 하는 것에 비교한것이다.
이번 연구 업적이 더욱 의미가 큰 이유는 퇴행성 질환이나 난치성 질환에 고통 받는 환자들에게 정말 혁신적인 연구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상처 입거나 병든 조직을 건강한 조직으로 대체하는 방법은 SF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치료방법이었다. 하지만 이번 연구 업적이 발전해 실제 치료에 응용할 수 있다면 이런 상상이 더 이상 공상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또 자신의 피부에서 추출한 세포로 온갖 종류의 세포를 만들어 병든 세포를 대체할 수 있다면 모든 인간의 꿈인 불로장생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이번 노벨상 수상자인 존 거든 교수,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학창시절 모두 우수한 학생이 아니었다. 존 거든 교수는 지도 선생님께 “과학자가 되려는 생각은 터무니없다”는 혹평을 들으며 꼴찌 성적표를 받았다. 또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의대 임상시절 정형외과 수술을 하지 못해 연구자의 길을 선택했다.
실패를 딛고서야 성공이 있다는 말은 언제나 진부하지만 또한 언제나 옳은 말이기도 하다. 야마나카 신야 교수의 “나는 칭찬받는 학생이 아니었다. 하지만 뭐든 좋아서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 연구는 아홉 번 실패하지 않으면 한 번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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