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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말부터 전 세계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간 유행함에 따라 공포심을 한층 더 부추기는 루머들도 등장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코로나19를 유발한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가 중국 우한 바이러스연구소에서 생물학 무기로 개발되던 중 유출됐다는 내용이다.


미국 언론이 먼저 의혹을 제기한 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련 증거를 봤다고 언급하면서 루머는 더욱 확산됐다. 


하지만 국내외 전문가들은 생물학 무기 개발 중 바이러스가 유출됐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바이러스를 비롯해 세균, 곰팡이, 고등생물 등을 생물학 무기로 이용할 수 있지만, 생물학 무기의 목적을 고려하면 사스코로나바이러스- 2는 좋은 무기가 아니기 때문이다.(바이러스가 생물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전쟁이나 테러에서 세균, 곰팡이, 바이러스 등 감염병을 발생시키는 것을 생물학적 요인(biological agent) 또는 생물학 무기(biological weapon)로 통칭한다). 


사스코로나바이러스-2가 생물학 무기로 부적합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생물학 무기는 통제 가능해야 한다. 즉 무기를 사용하는 측은 원하는 대로 적군을 사살하고 아군은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미사일의 경우에는 원하는 목표 지점에 정확히 떨어져야 한다. 만약 예상하지 못한 지점, 특히 아군에게 큰 피해를 줄 지점에 떨어진다면 무기로써는 실패작이다.


생물학 무기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원하는 살포 지역에만 작동할 수 있어야 하며, 예상치 못하게 아군이 감염되더라도 아군은 영향을 받지 않도록 백신과 치료제 같은 방어책까지 마련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중국은 2019년 12월 코로나19 발생 이후 2020년 3월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국가였으며, 이에 대한 방어책 역시 전혀 마련돼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만약 사스코로나바이러스-2가 생물학 무기라면 아군 희생자를 대거 발생시킨, 완벽하게 실패한 생물학 무기인 셈이다. 


사스코로나바이러스-2가 생물학 무기로 부적합한 또 하나의 이유는 만들기도 어렵고, 살상 능력도 떨어진다는 점이다.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는 현재까지 대량 배양이 어렵고, 치사율도 약 3.4%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살상 능력까지 뛰어난 생물학 무기의 대표적인 예는 탄저균이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생물학 무기로 연구된 탄저균은 호흡기에 감염될 경우 사망률이 50~80%에 이르는 치명적인 세균이다.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만드는 비용도 저렴할 뿐만 아니라 흰색 가루 형태로 운반할 수 있어 살포도 쉽다.


실제로 미국 육군전염병연구소에서 근무하던 한 연구원이 2001년에 탄저균이 들어있는 편지를 미국 전역으로 발송했는데, 이로 인해 22명이 감염됐으며 이 중 5명이 사망했다. 흰색 가루로 돼 있어 중간에 검열을 거치지 않고 운반될 수 있음이 이 사건으로 입증됐다. 이에 비하면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는 무기로써 성능이 크게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무기로써 효용 가치가 떨어지지만, 과거 위용을 날렸던 바이러스 무기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천연두바이러스다. 천연두바이러스는 감염되면 전신에 수포를 발생시키며, 치사율은 30%에 이른다.


생물은 가장 위험성이 적은 1등급부터 인체에 감염돼 쉽게 전파되고 예방이나 치료가 어려운 4등급까지 총 4단계로 생물안전등급이 나뉘는데, 천연두바이러스는 4등급에 속해있다. 천연두바이러스는 과거에 실제 무기로 사용됐다. 영국은 1700년대 현재의 미국과 호주 대륙 원주민을 멸족하기 위해 천연두바이러스에 오염된 담요를 선물로 건네줬다는 기록이 여럿 남아 있다.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영국, 미국, 일본에서 천연두바이러스를 무기로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이뤄졌으며, 이후 옛 소련(러시아)에서는 체제가 붕괴하는 1991년까지 계속해서 천연두바이러스를 무기화하는 연구가 진행됐다.


천연두바이러스는 전 세계적인 백신 접종 덕분에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종식을 선언하며 그 위력을 잃었지만, 최근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노인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이 천연두바이러스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연두바이러스는 피부의 상처 부위에서 떨어져 나온 딱지에서도 수년 동안 살아남을 정도로 생존력이 뛰어나며, 단백질을 섞어 무기로 만들기도 쉽다. 더군다나 과거보다 훨씬 발전한 유전공학 기술로 더 높은 치사율을 행사할 여지도 있다.


2017년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행정대학원) 내 벨퍼과학국제문제연구소는 북한이 비공식적으로 여러 생물학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그중 천연두바이러스도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치사율이 80~90%에 육박하는 에볼라바이러스도 과거 옛 소련에서 무기로 연구된 적이 있다. 에볼라바이러스는 감염되면 초기에는 고열을 유발했다가 이후 저혈압으로 인한 쇼크나 다발성 장기 손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다. 1976년 처음 발견된 이후 아직 확실한 치료법이 없는 데다가 혈액, 분변, 토사물 등의 체액을 통해 쉽게 전파돼 천연두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4등급에 속해있다.


옛 소련에서 약 35년간 에볼라바이러스를 무기로 만들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으나, 통제가 어렵고 결정적으로 너무 일찍 소멸해버려 연구를 중단했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이처럼 바이러스를 이용한 생물학 무기들은 무기 중에서도 가장 적은 양으로 가장 위협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때문에 첩보영화 등에도 종종 소재로 등장하지만, 실제로 개발됐거나 사용된 확실한 사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특히 생물학 무기의 오용을 막기 위해 각국 정부는 ‘생물무기금지협약’을 맺어 생물 무기 개발을 자제하자고 독려하고 있다. 대량살상을 방지하기 위해 1975년 22개국이 참가하면서 이뤄진 생물무기금지협약은 현재 한국을 포함해 미국, 영국, 러시아, 북한 등 187개국이 가입돼 있다.


다만 러시아와 북한은 생물무기금지 협약에 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비공식적으로 생물학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따라서 핵무기 개발과 마찬가지로 여러 국가에서 비공식적으로 바이러스 무기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유전공학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치명적이고 전파율도 높은 신종 바이러스가 개발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는 셈이다.

2020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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