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4년 6월 8일, 영국 맨체스터 인근 윔슬로우에 있는 앨런 튜링의 집을 찾아온 청소부가 튜링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 옆에는 반쯤 먹다 만 사과가 나뒹굴고 있었다. 조사 결과 튜링은 독극물인 청산가리가 묻은 사과를 먹고 자살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당시 튜링은 동성애 혐의로 호르몬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사과에 청산가리가 묻어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튜링의 어머니를 비롯한 몇몇 사람은 자살설을 극구 부인했다. 영국이 낳은 천재 수학자의 삶은 그렇게 비극적인 드라마와 수수께끼를 남기며 끝났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튜링은 어떤 사람이었으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영국 현지에서 튜링의 흔적을 찾아봤다.
단어 만들기를 좋아했던 영리한 아이
기자 안녕하세요, 튜링 박사님.
튜링 절 만나러 참 멀리서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기자 한국의 독자들에게 박사님의 삶과 업적을 소개하고자 박사님이 활동하셨던 곳을 둘러볼 생각입니다. 추천해 주실 만한 곳이 있나요?
튜링 다 정해 놓고 오셨을 거면서요, 뭘.
기자 (머쓱한 웃음)아하하. 먼저 어린 시절에 어떠셨는지부터 궁금합니다. 아주 영리하셨다고 하던데요?
튜링 누가 그러던가요? 저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기자 박사님 돌아가신 뒤 어머님께서 전기를 남기셨어요. 거기에 보면 “새로운 단어를 정말 잘 기억하는 영리한 아이”라고 쓰여 있어요.
튜링 원래 어머니들이 자식 자랑하곤 하잖아요. 기자 외삼촌도 “이 아이는 언젠가 큰일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대요. 그게 세 살 때 일이랍니다. 그리고 새로운 단어를 잘 만드셨다면서요? 갈매기가 먹이를 두고 싸우면서 내는 소리를 ‘쿼클링(quockling)’이라고 부르거나, 촛불이 바람에 흔들리는 걸 ‘그리시클(greasicle)’이라고 불렀대요.
튜링 어머니도 참, 쑥스럽게 별 걸 다….
기자 역시 어린 시절부터 수학에 재능이 있으셨던데요. 글을 배우기도 전에 숫자에 관심이 많았다고도 하시더라고요. 고등학교를 다녔을 때에는 “~의 자취는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증명 과정 없이 “자취는 ~이다”라고만 답을 쓰셔서 논란이 된 적도 있다면서요. 다른 일화로는 17~18세 때 친구의 아버지가 실내를 효율적으로 밝힐 수 있는 조명장치의 곡률을 밝히기 위해 조언을 구했던 일이 있군요. 그때 곧바로 공식을 알려주셨다면서요. 친구 아버지가 어떻게 했냐고 묻자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며칠 안에 증명을 보내주겠다”라고 대답하셨다고….
튜링 그냥 눈에 보였으니까요. 물어보니까 전 그대로 대답했던 것뿐이에요.
기자 아, 네….(좌절)

[블레츨리 파크에 전시돼 있는 튜링 석상.]
무엇이든 계산하는 만능 기계를 꿈꾸다
기자 장소를 옮겼습니다. 박사님께서 대학 시절을 보내신 케임브리지대의 킹스칼리지입니다.
튜링 아아~, 오랜만에 오니 감회가 새롭군요.
기자 이제 슬슬 박사님께서 이야기를 들려주실 차례입니다. 킹스칼리지에 계실 때 컴퓨터의 기원이 된 아이디어를 떠올리셨는데, 어떻게 그 생각을 하신 건가요?
튜링 다비드 힐베르트라는 독일 수학자가 제시한 ‘결정 문제’라는 게 있습니다. ‘예’나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있을 때, 이 문제를 푸는 알고리듬이 있으면 이 문제는 결정 가능하다고 합니다. 힐베르트는 수학의 형식체계 안에서 모든 문제는 결정 가능하다고 주장했지요. 저는 대학 졸업 직후인 1936년에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기자 저…, 그런데 저는 컴퓨터에 대해서 여쭤봤는데요….
튜링 성급하시긴. 기다려 봐요. 먼저 ‘정지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요. X가 0일 때 실행을 멈추는 알고리듬을 생각해 봅시다. 0이 아니면 X의 값을 1씩 빼고요. 만약 X의 처음 값이 자연수라면 언젠가 X는 0이 되고 거기서 정지하겠지요. 자연수가 아니라 0이나 음수라면 영원히 X가 1씩 줄면서 돌아가고요. 이 경우에는 X의 처음 값에 따라 정지할지 안 할지 알 수 있어요. 이처럼 언젠가 멈출지 영원히 계속될지 알아내는 게 정지 문제입니다.
기자 저기, 그런데 컴퓨터 얘기는….
튜링 이제 나옵니다. 저는 그 논문에서 ‘자동 기계’라는 개념을 도입했어요.
기자 끼어들어서 죄송한데, 그게 ‘튜링 기계’인가요?
튜링 그건 나중에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에요. 그게 익숙하면 이제부터 그렇게 부르죠. 튜링 기계는 알고리듬으로 나타낼 수 있는 모든 계산을 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튜링 기계로 정지 문제를 풀 수 있는 일반적인 알고리듬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어요. 어떤 경우에는 튜링 기계가 영원히 돌아갈지 아닐지 알 수 없다는 거지요. 정지 문제는 결정 문제이므로 결국 결정 가능하지 않은 문제도 있다는 소리예요. 따라서 힐베르트의 주장도 틀렸다는….
기자 그러니까 현대 컴퓨터의 기본 원리가 된 튜링 기계는 수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해 내신 거군요.
튜링 맞아요. 게다가 모든 튜링 기계를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보편 튜링 기계’라는 개념도 생각했죠. 당시에는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비유적인 표현으로 만들어 낸 개념이었지만, 제가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건 이 개념 덕분입니다.

[블레츨리파크에 재현해 놓은 튜링의 사무실 모습.]
암호 해독으로 세계 대전의 끝을 앞당기다
기자 많은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컴퓨터가 발달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 이야기도 좀 해 주세요.
튜링 그러면 제가 전쟁 때 일했던 블레츨리 파크로 가 보지요.
기자 지금 블레츨리 파크는 전체가 박물관이 돼 있습니다.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게 꾸며 놓았네요. 박사님은 여기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튜링 저는 헛(Hut)-8이라는 건물에서 일했습니다. 독일 해군의 암호를 담당했지요. 저희가 암호를 해독해서 헛-4에 넘기면 그곳에서 영어로 번역해서 작전에 활용했어요.
기자 지금 지하에 있는 전시관에 내려와 있는데 대단하네요. 박사님이 개발하셨던 암호해독기 ‘봄(BOMBE)’이 복원돼 있어요. 박사님이 쓰신 논
문과 개인 용품까지 전시돼 있군요. 테디 베어도 있어요. 어릴 때 갖고 노시던 건가 봐요?
튜링 (얼굴을 붉히며)어흠, 그…, 그건…. 그러니까 암호 해독기가 궁금하신 거죠?
기자 왜 그렇게 당황하시…. 혹시 어릴 때가 아니라….
튜링 당시 독일군은 에니그마라는 암호기계를 썼습니다. 3~4개의 바퀴와 전선배열을 이용해 알파벳을 다른 알파벳으로 암호화해주는 기계지요. 바퀴의 조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암호가 달라집니다. 알파벳이 26개니까 바퀴 3개만 쳐도 26×26×26=17,576가지의 조합이 나오지요.
기자 휴우, 대단하네요.
튜링 저는 기계로 만든 암호는 기계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봄을 보세요. 세로로 3개씩 연결돼 있는 원반이 가로 12줄, 세로 3줄, 총 36세트가 있습니다. 이 원반은 에니그마의 바퀴 역할을 합니다. 봄을 작동시키면 원반이 돌아가면서 알파벳 조합을 시험합니다.
기자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튜링 저희는 특정 암호문의 뜻을 추측해서 그걸 바탕으로 암호화 방법을 알아냈어요. 암호문 맨 앞에는 인사가 나온다든지 하는 것이죠. 가령 기밀문서 맨 앞에 ‘ABC DEFGHI’라는 암호문이 있을 때 이를 ‘TOP SECRET'이라고 추측하고 나머지 알파벳 쌍을 알아 내는 거지요. 이런 문장을 ‘크립(crib)’이라고 불렀어요. 봄은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원문의 알파벳과 암호문의 알파벳조합을 일일이 검사해서 1대 1쌍이 되는 조합을 찾았습니다.
기자 그렇군요. 그런데 여기 오니 박사님의 기행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리네요. 방독면을 쓰고 자전거를 타셨다거나, 머그컵을 쇠사슬로 묶어두셨다거나….
튜링 내 머그컵을 다른 사람이 쓰는 게 싫었으니까요! 방독면이야 알레르기 때문에 그런 거고요. 흠흠. 그냥 개성으로 생각해 주시죠.
기자 죄송합니다. 아, 하나만 더요. 운동을 잘 하셨다고 하던데요.
튜링 달리기를 잘 했어요. 가끔씩 수십 km씩 달리곤 했으니까요. 마라톤은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수준이었고요.


[독일군의 암호기계인 에니그마.]

[영국이 만든 암호해독기 봄. 당시 봄은 200여 개가 만들어져 영국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사진 속의 봄은 작동 가능하게 복원한 것으로 블레츨리파크에 가면 작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튜링은 이렇게 머그컵을 난방기에 쇠사슬로 묶어 놓는 습관이 있었다.]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세계적인 물결
기자 이번에는 박사님이 마지막 나날을 보내신 맨체스터에 왔습니다. 아, 그 전에 ‘ACE’ 이야기를 빼먹을 뻔 했네요.
튜링 전쟁이 끝나고 1947년까지 런던의 국립물리학연구소(NPL)에서 일하면서 ACE(Automatic Computing Engine)라는 컴퓨터를 설계했습니다. 튜링 기계에 가깝게 만들어 보고 싶었죠. 에니악 같은 기존 컴퓨터는 다른 일을 하고 싶으면 하드웨어 전체를 바꿔야 했어요. 하지만 제가 설계한 ACE는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에요. 하드웨어에 손대지 않고도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ACE에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초기 형태도 있었고요.
기자 요즘 컴퓨터 같네요.
튜링 맞아요. 하지만 제가 속도보다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데 중점을 둬서인지 ACE를 만들 수 있을 만한 지원을 정부로부터 받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시험판인 파일럿ACE를 만들었지만, 전 이미 그곳을 떠난 뒤였죠.
기자 그 뒤 오신 곳이 이곳 맨체스터대로군요.
튜링 맨체스터대에는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인 ‘베이비’와 거기서 발전한 상업용 컴퓨터인 ‘마크I’도 있었지요.
기자 그 컴퓨터로 생물학을 연구하셨나요? 생물학에 관심이 많으셨다면서요?
튜링 그랬지요. 동식물의 형태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방정식으로 나타냈어요. 이 식을 푸는 데 컴퓨터를 썼어요. 생물학만 한 건 아니고 수학과 컴퓨터도 계속 연구했지요. 그러다가 아시는 것처럼 동성애 혐의로 재판을 받았어요. 저는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호르몬 요법을 받았지요.
기자 요즘 같으면 별 일 아니었을 텐데…. 2009년에는 영국 정부가 정식으로 사과 성명을 냈습니다.
튜링 네, 알고 있습니다. 기자 스티브 잡스의 애플 로고가 박사님이 자살하실 때의 사과에서 따온 거라는 얘기도 꽤 돌았습니다. 이에 대해 잡스는 “그랬다면 참 좋았겠지만, 사실은 아니다”라고 답했죠.
튜링 그런 일도 있었군요. 그랬다면 저도 영광이겠네요. 아니, 그런데 지금 여긴 어디죠?
기자 지금 저희는 에딘버러대에서 열리고 있는 심포지움에 와 있습니다. 바로 어제 이곳에서 박사님에 대한 대중 강연이 열렸는데, 수많은 사람이 와서 자리를 꽉 채웠답니다. 또한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세계 곳곳에서 강연회, 학술대회, 시민참여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수학과 컴퓨터과학, 인공지능, 생물학, 물리학 등 박사님이 영감을 준 여러 분야에서 100주년을 기리고 있습니다.
튜링 제가 한 일이 세상이 큰 도움이 됐다니 정말 기쁩니다.
기자 박사님 형님의 손자인 제임스 튜링 씨는 튜링 기금을 만들어 아프리카에 박사님 덕분에 시작된 IT문명을 보급하고 있습니다. 박사님이 남기신 말 중 제임스튜링 씨가 가장 좋아한다는 말로 만남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는 눈앞의 아주 가까운 곳까지밖에 보지 못한다.”
튜링 “그러나 그 안에서도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풍성하게 찾을 수 있다.” 감사합니다.

[지난 5월 10일 스코틀랜드에딘버러대에서 열린 앨런 튜링 탄생100주년 강연회. 고약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청중이 가득 들어찼다.]

[세계 최초의 프로그램 내장식 컴퓨터로, 이후 상업용 컴퓨터인 마크I로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