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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타임머신의 탄생

1905년 아인슈타인, 시간을 뒤집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은 무엇일까.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 질문을 조금 더 생각하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 걷는 것보다 자전거가 빠르고, 자동차보다 비행기가 더 빠르니까, 결국 어떤 식으로든 더 빠른 것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그러면 질문을 바꿔 “지금까지 가장 빠른 것은 무엇일까”라고 묻는 것이 더 현명한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 빛보다 더 빠른 중성미자가 검출됐다는 소식은 물리학계는 물론이거니와 일상의 식탁에서까지 화제다. 그것은 단순히 100m 달리기 신기록이 깨졌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즉, “지금까지 가장 빠른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훨씬 더 심오한 문제가 들어 있다. 당장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빛보다 빠른 입자의 존재가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말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빛의 속도는 모든 관찰자에게 일정

물론 빛은 정말 빠르다. 지구 둘레가 4만 km이므로 빛의 속도인 초속 30만 km라는 속도로 간다면 1초에 일곱 바퀴 을 갈 수 있다. 그런데 덴마크의 천문학자 올레 뢰머가 목성의 위성을 이용해 처음 빛의 속도를 측정하기 전까지 빛의 속도가 무한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뢰머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네덜란드의 과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빛이 1초 동안 지구 지름의 16⅔배 거리를 진행한다는 계산을 처음 내놓았다. 그 뒤로 빛의 속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려는 실험물리학자들의 노력이 계속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앨버트 마이컬슨의 실험이다. 마이컬슨은 빛의 속도를 처음으로 정교하게 측정해 미국인으로는 첫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문제는 마이컬슨의 정교한 광속 측정으로 새로운 문제에 부딪혔다는 것이었다. 지구의 공전 도는 초속 30km다. 지구의 운동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발사된 빛은 정지해 있는 상태에서 발사된 빛보다 초속 30km 더 빨라야 할 것이고, 반대라면 더 느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단히 정교한 간섭계를 이용해 측정한 결과는 그 예상을 빗나갔다. 빛의 속도가 어느 경우든 똑같았기 때문이다. 당시 물리학자들에게 이 문제는 너무나 심각했다. 1900년이 밝을 무렵, 켈빈 경으로 더 알려진 영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톰슨은 새로운 세기의 물리학을 전망하면서 “물리학자의 하늘은 아주 맑은데, 다만 두 조각의 구름이 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그 물리학자의 시야를 가리는 구름 중 하나가 바로 마이컬슨의 실험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스위스 베른 특허국 3급 심사관인 26세의 알버트 아인슈타인이었다. 그가 1905년 내놓은 해결책은 너무나 명료하고 간단했다. 빛의 속도에 지구의 운동 속도가 가감되지 않는다면, 맨 처음부터 빛의 속도는 관찰자의 운동 상태와 무관하게 모두 똑같은 값이라고 가정하자는 것이다.


시간지연 효과와 쌍둥이의 역설

빛의 속도가 누구에게나 일정하다고 가정하면, 당장 확인해 볼 수 있는 논리적인 결론이 나온다. 움직이고 있는 관찰자(가령 기차나 우주선)가 정의하는 ‘동시’와 멈춰 있는 관찰자(가령 플랫폼이나 우주정거장)가 정의하는 ‘동시’가 달라진다. 어느 쪽이 옳은가 묻는다면, 둘 다 옳다고 해야 한다. 두 경우의 ‘1초’의 길이가 달라진다. 서로 상대방의 1초가 자신의 1초보다 느리다는 결론을 얻는다. 이것이 바로 시간 지연 효과’이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폴 랑주뱅은 시간 지연 효과를 바탕으로 소위 ‘쌍둥이 역설’을 제안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공격했다. 쌍둥이 중 지구 위에 남아 있는 갑돌이와 매우 빠른 우주선을 타고 떠난 을숙이의 ‘1초’가 달라진다면, 나중에 둘이 만났을 때 을숙이의 나이가 갑돌이보다 훨씬 적게 될 것이다. 랑주뱅은 운동이 상대적이므로, 지구가 동하고 우주선이 멈춰 있는 것으로 보면 반대의 상황이 될 터이고(역설), 따라서 시간 지연 효과는 엉터리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만나기 위해서는 우주선이 되돌와야 하고 실제로 지구와 우주선의 운동이 상대적인 것이 아님이 밝혀지면서, 랑주뱅의 역설은 오히려 예측으로 변해 버렸다. 1971년 미국 해군연구소의 조지프 헤이펠과 리처드 키팅은 세슘 원자시계를 비행기에 실어 하늘을 날게 한 뒤 비행기 안에 있는 시계가 정말로 더 느려진다는 점을 확인했다. 

다시 정리해 보자. 빛의 속도가 관찰자의 운동 상태와 무관하게 일정하다고 가정하면 시간 지연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시간 지연 효과가 확인됐다. 따라서 빛의 속도는 누구에게나 일정하다는 가정이 매우 그럴 듯하다는 것이 된다. 또한 시간 지연 효과를 유도하는 과정에서 빛보다 빠른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가정으로부터 빛의 속도는 원리적으로 속도의 상한이 된다. 빛의 속도에 대한 가정은 자연스럽게 시간과 공간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1909년 독일의 수학자 헤르만 민코프스키가 “시간이나 공간은 한낱 그림자일 뿐이며, 4차원 시공간이 참된 세상”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논리에 따른 것이었다. 만일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의 발견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시간과 공간 아니 시공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심각하게 수정해야 할 것이다.


 
 

상대성이론의 출발은 열차 시간?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어떻게 시간의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하버드대의 과학사학자 피터 갤리슨은 2003년에 출판된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시간의 제국’에서 이 문제를 매우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1905년 5월 중순 무렵에 아인슈타인과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 미셸 베소는 전기와 자기에 관한 문제에 골몰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맥스웰의 전기 이론 입문’이라는 책을 아주 꼼꼼하게 공부했는데, 마지막 장 제목이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역학’이었다.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빛이 전기와 자기가 공간 속으로 퍼져 나가는 전자기파임을 밝혔다. 그 전자기파, 즉 빛의 속도가 지구의 운동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다루는 문제였다.

아인슈타인은 베소와 진지한 토론을 나눈 다음 날 베소를 만났을 때 인사도 생략한 채 말했다. “고맙네.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어.” 결국 시간 개념의 전환이 해결책이었다. 시간은 절대적으로 정의될 수 없고, 시간과 신호전달 속도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베른에 있는 여러 시계탑 중 가까이 있는 것을 가리키며 절친한 친구에게 시계의 동기화 방법을 주워섬겼다.

“우리가 시간에 대해 말하려면 시계가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시계를 똑같이 맞추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계들을 어떻게 동기화시킬 것인가? 심부름꾼을 보내 시계를 모두 맞추게 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빛을 사용하는 것이라네.”

잘 알려졌듯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기 전에 아인슈타인은 특허청 직원이었다. 아인슈타인에게 특허청 업무와 기적의 해 1905년의 논문들이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아인슈타인이 주로 심사했던 특허출원이 바로 시간 동기화였다는 사실은 아인슈타인의 특허 업무와 논문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 철도의 중심이었던 베른에서 모든 지역의 시간을 정확히 맞추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이런 고민에서 상대성이론이 출발한 것이다.



아인슈타인, 시간여행의 시작

아인슈타인이 시공간의 구조를 다르게 생각하자고 제안한 이래, 어떻게 하면 시간여행이 가능하게 될지 상상하고 상대성이론과 충돌하지 않는 논리적 개연성을 타진했다. 그 중 한 사람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다.


1985년 칼 세이건은 ‘컨택트’라는 제목으로 특이한 내용의 소설을 발표했다. 주인공은 지능 있는 외계생명체를 찾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직녀성 근처에서 실마리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보내 온 정보를 토대로 그들과 만날 수 있는 기계장치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1997년 로버트저메키스 감독의 손으로 아주 멋진 영화로 다시 태어난다.

세이건은 소설을 쓸 무렵에 외계인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그의 오랜 친구 캘리포니아공대의 이론물리학자 킵 손과 상의했다. 손의 제안은 ‘벌레구멍’ 또는 ‘웜홀’이라고 흔히 부르는 아인슈타인-로젠 다리였다. 아인슈타인은 1916년 시공간과 중력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이론인 일반상대성 이론을 발표했고, 1936년 네이썬 로젠과 아인슈타인은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시공간 풀이를 발표했다. 킵 쏜은 흥미롭게도 바로 이 웜홀에서 빛보다 빠른 속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의 문제가 단순히 실험상의 오차일지, GPS를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보정하는 게 불완전했던 것일지, 아니면 아인슈타인 이후로 이제까지 우리가 믿어왔던 시간과 공간의 구조가 잘못된 것인지 지금은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어쩌면 중성미자가 웜홀이나 여분의 차원을 통과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멋진 실마리가 하나 더 생길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일 것이다. 1895년에 출판된 웰즈의 소설 ‘타임머신’이 10년 뒤에 아인슈타인의 이론으로 재탄생한 것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상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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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재영 한국과학영재학교 과학사 교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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