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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SF꽁트 - 전송오류

요절복통 타임머신 개발기



남 박사가 양자전송을 통해 연구실에 왔을 때 조수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박사님, 성공했습니다. 드디어 물체를 빛보다 빠른 물질로 바꾸어 전송할 수 있게 되었어요.”

남 박사는 이놈이 또 무슨 짓을 벌였나 싶어 불안해졌다. 본인은 잘 모르지만, 이놈은 진짜 천재다. 이 양자 연구소의 이름으로 나간
성과는 사실상 이 녀석이 다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

물체를 양자로 변환시켜 전송하는 기술이 개발된 뒤 교통은 일대 혁신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거리마다 설치된 전송기를 통해 원하는 곳은 어디든 빛의 속도로 이동했다. 사용료만 내면 지구 반대편까지 한 번에 갈 수도 있다. 우주개척도 활발해졌다. 간단한 자격증만 있으면 달이나 화성까지 몇 분 안에 갈 수 있다.

사람은 본래 자신의 몸을 그대로 갖고서는 빛의 속도로 이동할 수 없다. 음속만 돌파해도 숨도 쉬기 어렵다. 그 이상 빨리 움직이면 몸이 견뎌낼 수가 없다. 운동에너지는 1/2mv2, 질량에 비례하고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 속도가 올라가면 들어가는 에너지도 커진다. 에너지를 줄이려면 m, 그러니까 질량을 아주 작게 줄여야 한다. 양자형태로 변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거 잘 됐군. 화성까지 가는 데 5분이나 걸리는 게 늘 귀찮았거든. 2분 정도가 적당하다고 늘 생각했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우리가 빛보다 빠른 입자로 변환되면, 2분 뒤가 아니라 과거로 가게 될 겁니다.”

“왜?”

조수는 종이를 꺼내 끄적거리며 도표를 그렸다.

“이 도표(➊)에서 X축을 시간이라고 하고, Y축을 공간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제 자리에 가만히 있는 사람은 수직선을 따라 이동합니다. 앉아서 시간만 보내는 거죠.”

“내가 늘 하는 일이로군.”

“하지만 움직이는 사람의 세계선(➋)은 기울어지죠. 공간과 시간을 함께 이동하니까요.”

“기울어지겠지.”

“이 선의 최대 기울기는 45°입니다(➌). 빛의 속도죠. 일반적으로 이동하는 물체는 빛의 속도에 근접도 하지 못하고 수직선 근처에서 맴돕니다. 하지만 빛의 속도를 넘어서게 되면.”

“넘어서면?”



“각도가 45° 이상으로 꺾이게 됩니다(➍).”

“그래서? 그래봤자 조금 더 빨리 도착하는 것뿐이잖아?”

“이때에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나요. 물체가 빨리 움직일 때, 시공간이 왜곡되기 시작합니다. 축이 45°를 향해 닫히게 돼요.”

“응?”

“좌표계가 이렇게 바뀌어버린다는 거죠(➎).”

“광속을 넘어서서 움직이는 물질은 멀리 이동할수록 더 먼 과거로 가게 됩니다. 빛의 속도를 넘어서면 시간을 거슬
러 가게 돼요.”

남 박사는 생각에 잠겼다.

“잠깐만, 내가 이쪽 전문은 아니지만, 불가능해. 광속을 넘어설 수 있는 물질은 없어. 빛이 광속으로 이동하는 것은 질량이 0이기 때문이지. 질량이 아무리 작아도 광속에 이르게 하는 데만도 무한한 에너지가 들어. 질량이 0인 것조차 빛 밖에 없어. 빛의 속도를 넘어서려면,”

“허수의 질량을 가져야 하죠.”

조수가 답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불가능해요. 실수가 아닌 질량이 존재할까요? 게다가 광속에 이르면 시간이 정지해요. 우주가 수명을 다해 사라져
버릴 때까지 정지해 있을 겁니다. 한 순간에 우주가 멸망하는 시간까지 이동해 버린다고요. 그 상태에서 더 가속하려고 해 봤자 남은 시간이 없는데 언제 어떻게 가속하겠어요?”

조수는 어깨를 들썩였다.

“하지만 양자세계는 거시세계와 다른 규칙 하에서 움직여요. 모든 것이 확률로 존재하죠. 양자는 절대로 통과할 수 없는 벽을 통과해서 이동하기도 합니다. 광속을 넘는 것이 이론상 불가능하다지만, 통과할 수 없는 구멍을 통과하는 것도 이론상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예요. 극히 작은 확률로 상대성 이론을 무시해버리는 입자가 존재할 가능성도 미시세계에는 있다는 말이죠. 제가 그걸 찾아낸 거고요.”

“어쨌든 잘 됐군. 난 작년의 나한테 가서 할 말이 있어. 그 주식은 절대로 사지 말라고 말이지.”

“저도 과거의 나를 만나서 할 말이 있습니다. 박사님 서랍에 있는 물건을 확인하라고요.”

“내 서랍에 뭐가 있는데?”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가동시켜볼까요?”

조수가 전원을 넣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상하네요. 제대로 확인했다고 생각했는데.”

두리번거리던 조수가 말했다.

“코드가 빠져 있어요. 내가 이런 실수를 할 리가 없는데.”

코드를 꽂고 다시 두 사람이 흥분에 차 기계를 가동시켰지만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문제를 파악하는 데에 오래 걸렸다. 기계 안에 들어가 내부를 다 휘저어본 조수가 땀을 흘리며 나오면서 말했다.

“전선이 하나 끊어져 있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군요. 이건 자연히 끊어진 게 아니에요. 누군가… 칼로 잘라낸 겁니다.”

“누가?”

“이해할 수 없군요. 나는 조금 전에 전송기를 완성했어요. 제가 잠깐 밖에 나간 사이에 들어왔다고 해도 이 기계가 무엇에 쓰는 것인지 아는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이렇게 가장 중요한 전선만 정확히 잘라낼 리가 없어요.”



팔짱을 끼고 고민하던 조수가 말했다.

“결론은 하나뿐이에요.”

“뭔데?”

“우리는 시간여행에 성공한 거예요. 과거로 가서 원하는 일을 하고 돌아왔어요. 이 사실을 학계에 발표할 겁니다.”

“그러겠지.”

“미래에 시간여행이 보편화된 겁니다. 양자전송이 보편화된 것처럼…. 그리고 사람들은 우리처럼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어요. 주식투자나, 부하직원의 성과를 독식하는 상사를 협박할 불법 장부 같은 사소한 것이 아니라.”

“잠깐, 지금 뭔가 이상한 말이 나온 것 같은데.”

조수는 무시하고 계속했다.

“더 거대한 역사가 바뀌기 시작했겠지요. 금융사기를 계획하는 집단도 나타났을 거고, 정계와 재계에서 뛰어들고, 테러와 전쟁에 관련된 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겁니다. 역사가 뒤엉키기 시작하자 누군가 그걸 막아야겠다고 결정했겠지요. 시간여행이 시작된 그 시점으로 가서 방해해야겠다고요. 제 생각에는 여기서 그만두는 게 좋겠어요.”

“어째서?”

“온건한 쪽에서 왔으니까요. 코드만 뽑고 전선만 잘랐어요. 가볍게 경고만 한 거죠. 하지만 다음에는 더 과격한 쪽에서 올 수도 있어요. 연구소를 폭파시키거나 우리를 제거할 수도 있어요. 더 계속하는 건 위험해요.”

잠깐 조수를 바라보던 남 박사는 크게 웃었다.

“나를 바보 취급하는군.”

“무슨 말씀입니까?”

“처음부터 다 거짓말이라는 거지. 코드를 뽑고 전선을 잘라 놓고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시간여행기를 발명한 것처럼 장난을 치는 모양인데, 내가 넘어갈 줄 알….”

남 박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리면서 청소부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다. 청소부는 두 사람이 멀뚱멀뚱 보는 사이에 뚜벅뚜벅 들어와 높은 선반에 놓여 있던 물이 담긴 양동이를 들고 나갔다. 양동이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선반에 놓여 있었다.

“누가 저기에 양동이 같은 걸 갖다 놓은 거지? 그리고 저 청소부는 왜 저걸 들고 나가는 거야?”

“반대파가 있군요.”

“반대파?”

“우리를 제거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시간여행기가 존재하기를 바라는 쪽도 있는 겁니다. 전원을 켜는 순간 물이 기계 위로 쏟아지게 해 놓았을 겁니다. 기계도 망가지고 우리도 감전되어 죽거나 크게 다쳤을 겁니다. 누군가 그걸 막아서 우리를 보호했어요.”

남 박사는 껄껄 웃었다.

“이젠 사람까지 고용한 건가?”

“이 자리를 피하는 게 좋겠어요.”

“어째서?”

“다음 번에 오는 사람들은 확실하게 이 역사를 제거하려고 할 겁니다. 아마 나와 이 기계를 동시에 없애려 할 거예요.”

잠시 생각해보던 조수가 말했다.

“아니, 생각해보니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시간여행기를 만들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계속 위협을 받을 거예요. 이 시간과 장소는 미래에 유명해졌을 겁니다. 내 이름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미래에서 나를 방해하려는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 모일 겁니다. 도망쳐야겠습니다. 신분과 이름도 감추겠어요.”

남 박사는 코웃음을 쳤다. 조수는 상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박사님, 아마 유명해진 건 제 이름뿐일 겁니다. 미래에서 온 사람들이 노리는 것도 나지만 반대파가 살리려는 사람도 나뿐일 겁니다. 어서 이 자리를 피하세요.”

남 박사는 다시 비웃었다. 그리고 조수가 전송기를 통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휴가 내겠다고 벌인 농담치고는 너무 과하잖아. 어디서 바쁜 사람 데려다놓고 장난질이람. 처음부터 전원 따위 들어오지도 않는 물건일 걸…. 남 박사는 아무 생각 없이 전원 스위치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다음 순간 연구소는 폭파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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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보영 SF작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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