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빛보다 빠른 입자가 발견됐을까. 한국, 일본, 이탈리아 등 11개국 국제 공동연구팀이 9월 23일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여러 언론에서 이 발견으로 물리학의 근간인 상대성이론이 깨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시간여행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감도 커졌다. 이 현장에 아인슈타인 박사가 타임머신을 타고 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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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실험의 이름은 ‘오페라(OPERA)’다. 스위스 유럽입자 물리연구소(CERN)의 양성자 가속기에서 쏜 뮤온 중성미자가 732km 떨어진 이탈리아 그란사소 국립연구소에 있는 검출기에 도달하는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었다. 중성미자는 지금도 우리 몸을 1초에 약 10조개 정도 통과하고 있으며 지구를 200개 정도 늘어놓고 쏴도 그대로 통과하는 유령 같은 입자다(83쪽 상자기사 참조).
측정한 뮤온 중성미자는 빛보다 겨우 60ns(나노초, 1ns는 1억분의 1초) 빨랐다. 이 실험의 오차는 10ns 미만이었고, 이를 거리로 환산하면 732km에서 20cm 정도의 오차다. 60ns는 눈 깜짝할 새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었지만 세계의 물리학자들이 깜짝 놀라기에는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오페라 실험은 원래 빛보다 빠른 입자를 측정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당초 목적은 뮤온 중성미자가 타우 중성미자로 바뀌는 중성미자 변환현상을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이 실험을 진행하던 중 빛의 속도를 측정하게 된 계기는 미국 시카고의 페르미연구소에서 주도한 미노스(MINOS)라는 실험 때문이었다. 미노스 실험은 오페라와 비슷한 거리에서 중성미자를 쏜 것이었는데 2006년 측정 결과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오차가 100ns 정도여서 측정 결과가 불확실하다. 측정한 중성미자의 개수도 500개 미만에 불과했다.
과학자들은 오페라 실험에서 이 결과를 검증하려고 했다. 2009년부터 3년간 총 1만 6000개 중성미자의 데이터를 얻었다. 이 실험은 빔 에너지가 높을수록 유리한데 미노스의 빔 에너지가 3GeV에 불과했던데 반해 오페라는 17GeV에 달했다. 이밖에 여러 실험 과정을 개선해 오차를 10ns까지 줄였다.
“아름다운 실험”
197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사무엘 팅 메사추세츠공대(MIT) 물리학부 교수는 이 실험 결과를 발표한 컨퍼런스에서 “실험의 과정이 매우 아름답다”고 평가했다. 결과도 충격적이지만 실험과정도 과거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향상됐기 때문이다.
먼저 이 실험은 높은 동시성을 확보했다. CERN에서 출발한 입자가 732km 떨어진 오페라 검출기까지 도착한 시간을 알기 위해서는 두 곳의 시계가 정확히 맞춰져 있어야 한다. 두 곳에서 사용한 시계는 높은 정밀도를 가진 세슘 원자시계다.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 GPS를 이용한 정밀한 기술이 동원됐다. 보통 GPS를 이용한 시간 측정에는 4~5개의 GPS 위성을 사용하지만, 절대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1개의 GPS 위성을 기준으로 시간을 맞췄다. 이를 이용해 두 시계의 오차를 2.3±0.9ns까지 줄였다.
이 실험은 중성미자의 한 개의 속력을 측정한 것이 아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1만 6000개의 중성미자를 측정해 통계적으로 알아냈다. CERN에서는 한번에 10.5μs(마이크로초, 1μs는 100만분의 1초)의 시간동안 수많은 중성미자를 쏜다. 이 중 중성미자 한두 개가 오페라의 검출기에서 검출된다. 따라서 검출된 중성미자가 언제 출발했는지 알 수 없다.
연구팀은 통계적으로 비슷한 형상을 찾는 최대우도추정법 등 여러 가지 분석법을 이용해 중성미자가 검출기에 도달하는 시간을 결정했다. 최대우도추정법은 발사한 양성자 빔의 파형과 검출된 중성미자의 분포를 비교해 중성미자의 속도를 알아내는 방법이다. 위의 왼쪽 그림(➊)에서 빨간 그래프는 양성자 빔의 파형이고 검은 막대는 중성미자가 검출된 결과다. CERN에서 발사한 양성자 빔의 파형과 1만 6000개의 중성미자가 검출된 분포를 일치시키면(➋) 중성미자의 속도를 알아낼 수 있다.
실험 오류일 가능성 높아
팅 교수의 말처럼 굉장히 아름다운 실험이지만 많은 물리학자들은 이번 결과가 실험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한다. 오랫동안 효과적으로 물리현상을 설명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어떤 입자가 광속으로 달린다면 질량이 무한대가 된다. 더구나 광속보다 빠르다면 그 질량이 허수가 되기 때문에 특수상대성 이론에서는 빛보다 빠른 입자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은 실험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찾고 있다. 특히 계통오차일 가능성이 높다. 계통오차는 시계를 맞추는 것, 속도를 측정하는 것 등 측정계기의 한계로 나오는 오차를 말한다. 계통오차를 크게 줄였지만 생각하지 못한 오차를 보정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윤천실 박사는 “연구진도 결과에 매우 놀라 온갖 방법으로 오류를 찾으려고 노력했다”며 “다른 실험에 의해서 검증될 때까지 기다리는 한편 측정방법을 더욱 개선해서 다시 중성미자의 속도를 측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는 “아주 짧은 시간 차이기 때문에 도선을 흐르는 찰나의 시간조차도 중요하다”며 “이런 오차를 보정하는 과정에서 60ns정도의 차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결과를 새로운 이론으로 설명하려 하는 사람도 많다. 물리학 논문초고사이트(www.arxiv.org)에는 오페라 실험에 대한 리뷰 논문이 100여건 올라왔고 이번 결과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려는 논문도 적지 않다. 존 엘리스 영국 킹스칼리지 이론물리학 교수는 “중성미자가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해 지름길을 통과했다”며 “이 경우 특수상대성이론을 깨지 않고도 결과를 설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많은 의견들이 실험결과를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 윤천실 박사는 “만일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는 사실이 후속실험에서 입증이 된다면 기존의 물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우주론과 소립자 이론이 탄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연구로 시간여행을 얘기하긴 이르다. 김성원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교수는 “물체의 속도만 빛보다 빠르다고 해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며 “웜홀과 같은 시공간이 구부러진 공간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형도 교수는 “현실적으로 웜홀을 이용한다고 해도 조석력에 의해 모든 구조가 부서질 것이므로 사람이나 우주선이 시간여행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1 진공 체렌코프 복사 현상과 맞지 않아
먼저 중성미자의 ‘진공 체렌코프 복사’에 따른 현상과 오페라의 실험결과가 모순된다. 앤드류 코헨 보스턴대 교수와 표준모형을 완성해 노벨상을 수상한 쉘든 글라쇼 하버드대 교수는 중성미자의 진공 체렌코프 복사 현상이 오페라의 실험결과와 모순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체렌코프 복사’는 입자물리학에서 매우 작은 기본입자를 발견하는데 요긴한 현상이다. 빛의 속도는 진공에서 초속 30만km로 일정하지만 굴절률이 1보다 큰 매질에서는 속도가 느려진다. 한편 전하를 지닌 입자는 굴절률과 상관없이 움직여 매질 속에서는 빛이 더 느리게 갈 수 있다. 이때 전하를 띤 입자 주변의 전기장 및 자기장이 입자를 따라가지 못해 입자는 스스로 전기장과 자기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급격하게 에너지를 잃어버린다. 이를 체렌코프 복사라고 부른다.
진공에서 빛보다 빠른 입자가 있다면 같은 현상이 일어나게 되고 이를 진공 체렌코프 복사라고 한다. 중성미자는 전하를 띠고 있지 않지만 약한 상호작용에 의해 에너지를 잃게 되며 잃어버린 에너지는 대부분 전자와 양전자를 방출하는데 쓰인다. 결과적으로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는 초기 에너지와 무관하게 급격하게 에너지를 잃어버리고 낮은 에너지를 가진 중성미자가 된다.
중성미자가 빛보다 빨리 움직인다면 에너지를 잃어버려 검출기에서는 12.5GeV 이상의 에너지를 가진 중성미자가 관측되기 어렵다. 그런데 실제로 평균 40GeV의 에너지를 가진것으로 추정되는 중성미자가 여럿 관측됐다. 따라서 중성미자의 속도에 비해 에너지분포가 변하지 않아 기존 이론과 직접적인 모순이 일어났다.
2 우주 중성미자 관측 결과와 달라
우주에서 날아온 중성미자의 관측 결과도 실험 결과에 의문을 갖게 한다. 남극에서는 우주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관측하는 실험 ‘아이스큐브’를 하고 있다. 현재 1만 6000GeV의 에너지를 가진 중성미자 우주선까지 관측했다. 이 관측 결과에 따라 중성미자의 속도를 계산한 결과 빛보다 10억분의 1만큼 빠를 수 없었다.
이번 실험의 중성미자는 1987년 초신성 폭발 때 관측한 중성미자에 비해 너무 빨랐다. 초신성 1987A의 폭발을 관측한 결과 중성미자가 빛보다 3시간 일찍 도달했다. 오페라 실험의 관측대로라면 중성미자가 빛보다 10만분의 1만큼 빨리 움직이므로 1년 이상 일찍 지구에 도착했어야 한다. 물론 초신성과 우주선에서 관측한 빛보다는 빠른 중성미자는 에너지가 너무 높은 예외적인 경우라서 상대성 이론과 직접적인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3 상대성 이론이 붕괴할까
오페라 실험 하나로 지금 당장 상대성이론이 붕괴되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상대성이론을 따르지 않는 관측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열려있다. 모든 시공간에서 상대성이론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지난 100여 년간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고전물리학을 혁명적으로 대체한 뒤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중력을 고려하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양립할 수 없다.
상대성이론은 극미시세계에서는 다른 이론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여전이 존재한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연속적이라고 느끼지만 아주 작은 시공간에서는 불연속적인 격자로 이루어져 있을 수 있다. 격자의 크기가 너무 작아 일상에서 모든 것을 연속이라고 인식하면 실제와 달리 상대성이론이 성립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때 어느 입자가 매우 높은 에너지를 가져 격자의 크기를 인지하면 상대성이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현대물리학은 아직 시공간의 근원적인 의미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 궁극적인 이론이 무엇이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위와 같은 아주 큰 에너지 영역을 제외하면 상대성이론은 우리가 느끼는 영역을 포함한 대부분의 에너지 영역에서 성립하는 유효한 이론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