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1에서는 주로 혈연 사이의 이타성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중심으로 현대 진화론의 형성 과정을 살펴봤다. 시즌 2에서는 여러 가지 세부 주제들을 탐구한다. 먼저 비친족간 상호성이다. 가족도 친척도 아닌 생판 ‘남’을 우리는 왜 서로 돕고 있을까.
여러분은 오늘 혼자 목욕탕에 왔다. 열심히 때를 민다. 그런데, 등을 미는 것이 문제다. 때밀이 아저씨(혹은 아주머니)에게 등만 맡겨도 7000원을 내야 한다. 솔직히 좀 아깝다. 옆자리에 혼자 온 듯한 사람에게 서로 등을 밀어주자고 제안해볼까. 도움을 주고받으면 둘 다 개운하게 목욕을 마칠 수 있다. 이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닌가.
정말 당연한 이야기다. 유전자를 공유하는 혈연에 대한 도움은 해밀턴이 이미 깔끔하게 설명했다. 혈연이 아닌 상대에 대한 도움은 어떻게 설명할까. 그야 상호 협력이 상호 배신보다 각자에게 더 나으니까! 개인들이 숭고한 대의가 아니라 순전히 이기적인 동기에서 자기 잇속을 챙기고자 협력한다는 설명은 옛날부터 아주 흔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 제조업자들의 박애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의 돈벌이에 대한 관심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철학자 존 롤스도 ‘정의론’에서 “사회적 협력은 각자 혼자서 분투할 때보다 모든 이들에게 더 좋은 삶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이 발상은 심지어 오래 전부터 경제학자들로부터 ‘전래 정리(Folk theorem)’라고 불리는 모욕(?)까지 당했다. 이심전심 누구나 뻔히 다 아는 이야기란 뜻이다.
해밀턴도 예외는 아니었다. 포괄 적합도 이론을 정립했을 당시, 그는 근연도로 설명할 수 없는 협력 행동도 많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비친족 간의 협력이 상호 이득을 얻기 위해서라는 설명은 “맞는 말이긴 해도 지극히 상식적이어서 거기에 뭘 또 더할 수 있을지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이 평범한 발상을 혁명적이고 위대한 이론으로 생물학계에 정립시킨 과학자를 만나보자. 올해로 74세지만 아직도 강의보다는 와인과 여자를 좋아하고, 호텔 숙박비로 시비가 붙어 열흘간 유치장에 감금된 적도 있으며, 조증과 우울증이 교차하는 양극성 장애를 평생 앓아온 로버트 트리버스 말이다.

미국 하버드대의 저명한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는 트리버스를 “서구 지성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 가운데 하나”라고 평했다. 1999년에 ‘타임’지는 20세기를 대표하는 100인의 과학자와 사상가에 그의 이름을 넣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트리버스란 이름을 처음 들어본 이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하긴, 어떤 사람들은 트리버스가 1970년대에 요절했다면 20세기 과학이 낳은 가장 낭만적인 영웅 중의 하나가 되었으리라고 칭찬인지 악담인지 모를 말도 했다.
트리버스는 1943년에 미국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2살 때에 장차 과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학문 분야, 이를테면 역사, 종교, 영문학, 혹은 사회과학은 실질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처음에는 천문학에 빠져들었다. 영겁의 세월을 지낸 우주의 광활함과 아름다움이 창세기의 칠일 창조보다 훨씬 더 경탄스러웠다. 그러나 천문학자가 되기 위해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13살 때, 어느 날 트리버스는 너무나 심심한 나머지 외교관이었던 아버지의 책장에서 ‘미분학’이라고 쓰인책을 꺼냈다. 두 달 만에 다 읽었다. ‘적분학’이라고 쓰인 책도 또 두 달 만에 뗐다. 트리버스는 수학이 진정한 예측력과 분석력을 지님을 깨닫고 흥분했다. 복잡한 곡선밑의 면적을 구하는 일쯤이야 이제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버드대에 입학한 트리버스는 수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그러나 트리버스답게 곧 흥미를 잃어버렸다. 수학은 여전히 아름답고 멋있었지만 실생활에는 당장 쓸모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물리학을 듣긴 했지만, 그에겐 맞지 않는 옷으로 여겨졌다. 화학과 생물학은 고교 때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단 한 과목도 듣지 않았다. 당연히 두 분야에 대해선 일자무식이었다. 한번은 친구가 하마와 코뿔소 사진을 보여주면서 무엇이 하마인지 알아 맞춰보라고 했다. 찍어도 50% 확률인데, 그는 틀렸다.
과학자가 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트리버스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음, 진리를 추구하기 어렵다면 정의에 몸을 바쳐야겠다.” 그는 인권과 정의를 수호하는 변호사가 되기로 했다. 졸업 후에 로스쿨을 가고자 3학년부터 미국사를 전공했다. 이럴 수가! 미국사는 학문이 아니라 미국이 어떻게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는지 자신을 찬양하고 기만하는 활동으로 보였다. 그저 변호사가 되고자 억지로 미국사를 공부했다.
3학년이었던 1964년 어느 날, 그에게 첫 번째 정신착란이 찾아왔다. 하늘을 날 것만 같고, 대책없이 낙관적이 되고, 잠이 없어져 며칠을 내리 밤을 새고, 엄청나게 수다를 떠는 조증이 5주간 이어졌다. 트리버스는 그 당시에 철학 개론을 듣고 있었는데, 자신이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비트겐슈타인의 저작을 최초로 완벽히 이해한 인물이라고 믿었다! 룸메이트가 보다 못해 그를 대학교 의무실에 신고했다. 그는 의사가 묻는 기초적인 질문조차 답하지 못했다. “본인이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그는 답했다. “저요? 임신부요! 아니면, 갓태어난 아기?” 그는 정신병원에 두 달 반 동안 감금됐다. 가둬 달라고 자청했긴 하지만, 그래도 감금당하는 일은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어쨌든 복학한 뒤, 미국사 전공으로 학부 졸업장을 받았다. 목표대로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로스쿨에 지원했다. 정신 병력 탓에 다 떨어졌다. 실업자가 된 그는 초등학교 생물학 교과서에 들어갈 동물 그림을 그리는 자리에 취직했다. 회사에서는 생물학에 무지한 트리버스에게 선생님을 한 명 붙여줬다. 남의 돈으로 2년간 생물학 과외를 받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평생의 스승을 만나다
멘토인 윌리엄 드러리는 재갈매기의 행동을 연구하는 생물학자였다. 트리버스는 그를 평생의 스승으로 존경했다. 드러리는 엄격한 선생님이었다. 학생이 틀리면 그는 대충 눈 감아주지도, 지나치게 혼내지도 않았다. 그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학생에게 진실을 일깨우는 것에만 신경 썼다. 그런 선생님 아래에서 트리버스는 동물의 행동을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가, 그리고 종의 이득을 내세우는 집단 선택이 왜 잘못되었는가를 배웠다.
이를테면, 1960년대에 몇몇 인류학자들은 전쟁이 인구 폭발을 억제해 인류에게 이득을 주기 위한 수단이라고 제안했다. “만약 자연선택이 정말로 그렇게 집단 수준에서 작동한다면, 나는 생물학에 그렇게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다. (…) 어쨌든 그때부터 나는 이론생물학자였다. 13살부터 나는 과학자를 희망했다. 이제, 22살이 되어서야 나는 진화생물학이라는 전공을 발견한 것이다.”(트리버스, 『거친 인생』, 12쪽).
한편으로 드러리는 정이 많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트리버스가 두 번째로 정신착란을 일으켜 열흘간 병원 신세를 진 다음이었다. 둘은 숲길을 함께 걷고 있었다. 트리버스가 말했다. “처음 정신착란을 겪었을때는 정말 너무나 고통스러웠어요. 그래서 그런 일이 또 찾아오면 자살해서 그 고통을 피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의 작은 발작 후에 마음이 바뀌었어요. 제가 죽일 사람 열 명의 명단을 작성했어요. 큰 발작이 또 오면 어차피 저는 살기 어려울 테니, 발작이 시작되면 그들을 죽이려구요. 이런 마음가짐이 전보다 나아진 걸까요? 아니면 퇴보한 걸까요?” 드러리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을 꺼냈다. “자네 명단에 내가 세 명만 더 추가해도 되겠나?” 트리버스는 감동했다. 어찌 그런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친족간의 상호성이 중요한 진화적 문제로 부상하다
1968년에 트리버스는 하버드대 생물학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파충류학자 어니스트 윌리엄스가 지도교수였다. 트리버스는 방학 때면 자메이카로 날아가 도마뱀의 행동을 연구했다. 첫 학기 대학원 세미나에서 그는 해밀턴의 포괄 적합도 논문(1964년)을 읽었다. 말할 필요 없이, 집단 선택설을 침몰시키고 개체 선택설을 뒷받침하는 논문에 그는 홀딱 빠졌다. “나도 이처럼 중요한 발견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드러리로부터 2년간 배운 생물학 지식이 전부였던 트리버스가 그나마 잘 아는 동물은 인간뿐이었다. 인간의 경우를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사회적 행동의 진화를 이리저리 궁리했다. 해밀턴이 밝혀냈듯이, 혈연은 매우 중요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인간 사회의 협력은 혈연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인간은 피붙이가 아닌 상대도 자주 도와준다. 목욕탕에서 처음 본 사람의 등을 밀어주기도 하고, 얼굴만 알고 지내는 직장 동료에게 점심을 사기도 한다. 비친족간의 협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애덤 스미스, 롤스, 해밀턴,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짐작했듯이, 상호성(reciprocity)이 답이다. “내가 널 도와줄테니, 너는 날 도와다오.”
남들은 여기서 상황이 종료됐다고 생각했다. 트리버스는 달랐다. 매매 계약서를 작성할 때처럼, 두 사람이 동시에 이득을 주고받는다면 과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 상대에게 이득을 준 다음에, 나중에서야 상대로부터 이득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득을 받기만 하고 되갚지 않는 ‘먹튀’가 창궐하지 않을까. 이런 사기꾼을 가려내게끔 어떻게 자연선택이 작동했을까? 인간이 아닌 다른 동 물에서도 상호성의 예가 있을까. 어느 날 트리버스는 책상에 앉아서 비친족간의 상호성에 대한 논문 초고를 쓰기 시작했다. 예상 외로, 상호성에 대해 쓸 것들이 아주 많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