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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1일, 침팬지의 게놈 신분증을 만든 과학자가 대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연구원으로 달려갔다. 주인공은 박홍석 유전체자원센터 (GRC) 센터장. 연구동 건물 1층 복도에는 삽살개, 돼지부터 김치 속 미생물 사진까지 쭉 걸려있었다. 곧 박 센터장
에게 게놈 신분증을 받을 생물들이다.

‘듣던 대로 이곳이 바로 게놈 신분증 발급 센터구나.’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에 미소가 번졌다.

설레는 마음으로 실험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드넓은 연구실에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줄을 서서 실험하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예상과 달리 기자가 공부했던 학교 생물실험실과 다를 것이 없었다. 기자의 생각을 읽었는지 박 센터장은 “아직 국내에는 제대로 된 유전체연구센터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 복도에 걸려있는 저 많은 생물의 게놈은 다 어떻게 해독하고 계신 건가요?”



박 센터장은 “외국에 비해 작은 규모긴 하지만 염기서열을 해독할 수 있는 시스템은 모두 갖추고 있다”며 실험실 속 작은 방으로 기자를 이끌었다. 이곳에는 염기서열 해독 기계(시퀀서)가 잔뜩 놓여 있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차세대 해독기계인 로슈의 ‘454 시퀀서’. 이 기기를 직접 보니 대학원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기자, 마음이 동했다. “센터장님, 저도 게놈 신분증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무리한 부탁일까 걱정했지만 박 센터장은 “마침 유산균 한 종의 신분증을 만드는 중이니 같이 한번 만들어 보라”며 흔쾌히 허락했다.


step 1 세포 속 DNA 추출

어떤 종이든 게놈 신분증을 만들기 위한 첫 단계는 DNA만 순수하게 분리하는 일이다. 우선 생물의 혈액이나 조직에서 세포를 얻은 뒤 이 세포에 배양액을 주고 길러 수를 늘린다. 다 키운 세포를 모을 때는 원심분리기를 이용한다. 밀도차이로 배양액과 세포가 분리되기 때문에 쉽게 세포만 얻을 수 있다. 이제 세포를 터뜨리는 단계. 기자가 실험대에 앉자 박근향 연구원은 질소가스통의 밸브를 열었다.

“질소가스의 압력으로 세포를 깰 겁니다. 가스의 압력은 2.1bar 정도면 충분합니다.”

보통 세포를 깰 때는 계면활성제를 쓴다. 계면활성제가 세포막을 녹이기 때문이다. 식물이나 세포벽이 두꺼운 세균은 초음파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런 방법은 용매를 이용하기 때문에 사용한 용매를 없애는 과정을 더 거쳐야 한다. 그러나 질소가스로 세포를 깨면 이 과정이 필요 없다.

“세포 속에서 나온 원형질을 필터에 넣으면 DNA만 걸러집니다. 단 두 단계만으로 DNA를 얻을 수 있죠.”


step 2 DNA 양 증폭

“박사님, 그럼 전 언제 다시 오면 되나요?”

DNA의 염기서열을 읽으려면 DNA의 양을 늘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긴 DNA를 조각내 대장균 속에 넣어 증식시키고 다시 여기서 DNA를 뽑는다. 이 실험의 이름은 ‘클로닝’. 기자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클로닝을 하는 데 최소한 3일이 필요했다. 3일 만에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대장균 먹으라고 준 배양액은 웬 곰팡이가 떡하니 차지하고 있고, 손길을 거부한 채 식음을 전폐한 대장균과 아무리 자외선을 비춰도 절대 나타나지 않는 DNA 밴드…. 이런 눈물겨운 상황을 고려해 넉넉히 1주일 후를 생각하면 기사 쓸 시간이 부족하다. 내심 TV 속 요리프로그램처럼 미리 준비해 놓은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박 연구원은 “오늘 안으로 염기 서열을 확인할 수 있다”며 기자를 실험대로 다시 불렀다.

“요즘은 염기서열을 해독할 때 클로닝을 하지 않습니다. 박테리아 대신 1μm(마이크로미터, 100만분의 1미터) 크기의 자성 구슬에 DNA를 붙여 양을 늘리죠.”

DNA를 구슬에 붙이는 과정은 간단했다. 박 연구원은 “방금 뽑은 DNA에 몇 가지 시약을 넣은 후 20분을 기다리면 화학반응을 통해 자동으로 조각난 DNA가 구슬에 붙는다”고 설명했다. 이 구슬을 통째로 PCR(DNA 대량으로 늘리기) 해 구슬에 붙은 DNA의 양을 늘린 뒤 용기에 모았다. 구슬은 크기가 작아 눈에 보이지 않지만 구슬에 붙은 수많은 DNA 때문에 용액은 흰색을 띤다. 이렇게 전체 염기서열을 읽을 수 있는 준비를 간단히 마쳤다.


step 3 DNA 염기서열 읽기

구슬에 붙은 DNA의 염기서열을 하나씩 읽는 일은 454 시퀀서가 맡는다. 454 시퀀서는 DNA를 구성하는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C(시토신) 네 가지 염기에 각각 다른 색의 형광표지를 붙여 이 색으로 염기의 종류를 구분한다(일러스트 참고). 기자가 할 일은 그저 이 기계가 염기서열을 잘 읽을 수 있게 준비한 구슬을 알맞게 넣어 주는 것뿐이었다.

박 연구원은 “기계는 8시간 동안 100Mb(1Mb는 염기 약 105만 개) 정도의 염기서열을 읽을 수 있다”며 “실험이 잘되면 400Mb까지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기계를 쉬지 않고 돌려서 하루에 300Mb씩 읽을 수 있다면 크기가 3200Mb인 사람의 게놈을 읽는 데 불과 10일 밖에 걸리지 않는다. 지난 2001년 완성된 인간게놈프로젝트가 13년이나 걸린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기술의 진보다. 그렇게 옛날 얘기를 할 필요없이, 불과 3년 전 대학에 다닐 때 40kb를 읽는데 한 달이나 걸렸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염기서열을 읽는 시간이 급격히 줄어들어서 게놈 신분증을 받는 동식물이 점점 많아지나 보다.





step 4 전체 게놈 지도 만들기

분석이 끝나자 DNA 염기서열이 들어있는 파일을 몇 개 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게놈 신분증이 아니다. 전체 DNA의 조각일 뿐이다. 다음 단계는 수많은 조각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일. 마치 퍼즐을 맞추듯 서열이 같은 부분을 찾아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줄로 계속 이어야 한다. 이런 방법으로 기다란 전체 DNA 염기 서열을 완성한다. 물론 이때도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한다(사람들은 DNA 염기서열을 해독한다고 하면 한번에 쭉 읽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수많은 DNA 조각을 읽은 뒤 이어붙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다란 DNA 염기서열은 아무 의미가 없는 암호다. 암호를 해독하는 것, 즉 긴 염기서열에서 단백질 하나를 만들 수 있는 유전자의 위치를 찾는 길고도 외로운 작업이 남았다. 김동욱 연구원은 “염기서열을 읽다보면 유전자의 시작과 끝을 나타내는 표지가 있다”며 “이 표지 사이의 염기서열을 데이터베이스에 넣어 기존 유전자와 비슷한 것을 새 유전자로 지정할 수 있다”고 연구 방법을 설명했다. 이 작업을 계속 반복해 전체 게놈에서 유전자들이 어떤 크기로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모두 알아내면 유전자 지도가 완성된다. 이 연구 분야를 ‘바이오 인포매틱스’라고 한다. 게놈 염기서열을 컴퓨터정보로 가공하고 이 정보를 처리하는 학문이다. 김 연구원도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식물모델인 애기장대만 하더라도 게놈 크기가 119Mb나 되고 유전자 수는 무려 3만 2670개에 이른다. 한 사람이 연구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동물이나 식물의 게놈을 모두 분석할 때는 여러 연구팀이 ‘컨소시움’을 구성한다. 여기 참여하는 과학자 수는 적게는 100명에서 많게는 300명 정도. 침팬지의 게놈 신분증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박 센터장을 비롯해 세계 5개국의 8개 연구팀이 ‘침팬지 게놈연구 국제컨소시엄’을 만들었다. 이렇게 많은 과학자들이 참여해 각 유전자의 위치를 정하면 더 빠른 시간 안에 전체 게놈 염기서열을 분석할 수 있다.
기술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 생물의 게놈을 모두 분석하는 일은 많은 과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밤낮으로 연구해도 몇 년씩 걸리는 대형 프로젝트다. 게놈 신분증을 받는 생물은 어김없이 최고 권위의 과학학술지인 ‘사이언스’, ‘네이처’ 표지에 얼굴을 싣는다. 이것이 바로 이 연구가 어렵다는 증거다. 이곳에서 직접 실험하며 게놈 신분증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낄 수 있었다. 게놈 클럽은 과학자들의 노고로 만들어진 것이다. 진정한 게놈 클럽 회원은 바로 게놈 연구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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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웰컴 투 게놈 클럽
Part1. 동물 1만 종 게놈 해독한다
Part 2. 게놈 클럽 신분증 직접 만들어보다
Part 3. 합성생물, 차세대 게놈 클럽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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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신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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