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5일, 어미 수리부엉이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알 세 개를 둥지에서 꺼냈다. 어미 수리부엉이가 어딘가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가슴 아파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미는 겨우내 비어 있던 공사장을 둥지로 삼았다. 절벽의 바위틈이나 산림절개면의 평평한 곳에 둥지를 짓는데, 안타깝게도 잠시 중단된 공사장의 모습이 이와 닮아 있었다. 봄이 다가오며 공사가 재개됐고, 어미와 알 모두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알을 꺼내 오는 것이 어미와 새끼 모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6개월 간의 수리부엉이 육아는 이렇게 시작됐다.
박제 수리부엉이의 품에 파고든 새끼들
구조센터에 도착한 즉시 수리부엉이 알을 부화기에 넣었다. 나흘이 지나자 한 마리가 알을 깨고 나왔고 남은 두 마리도 하루 간격으로 부화했다. 체중은 50g 정도로 건강한 축에 속했지만, 가장 먼저 태어난 새끼 수리부엉이는 유달리 기운이 없어 보이더니 알 수 없는 이유로 눈을 감았다.
다행히 남은 두 마리는 건강했다. 하루 일과의 시작과 끝을 새끼 수리부엉이와 함께 했다. 하루에 5번, 2시간 간격으로 체중을 재고 변을 확인하고 다진 고기를 소량씩 급여했다. 초반에는 하루에 20g 정도를 급여했는데 개체의 성장 상태에 따라 먹이의 종류와 양을 바꿨다. 눈도 못 뜬 새끼들은 움직이는 것도 벅차 보였지만 먹이를 주면 꿀꺽꿀꺽 잘도 삼켰다.
평소에는 몸에 비해 유난히 큰 머리를 가눌 힘이 없어 온종일 엎드린 채 잠만 잤다. 새끼들은 작은 몸집에 보송보송한 깃털로 더없이 연약한 존재를 연상케 했지만 몸에 비해 두껍고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보아 맹수 수리부엉이가 분명했다.
부화한 지 사흘이 지나자 새끼 수리부엉이가 눈을 떴다. 열흘쯤 지났을 땐 각각 체중이 190g, 134g으로 부화했을 때보다 3배가량 늘어났다. 머리를 가누고, 다리에 힘을 줘 똑바로 서고, 소리도 듣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에게 각인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야생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키워야 한다. 박제된 수리부엉이를 어미 대신 새끼 계류장에 넣어줬다. 잔인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각인을 방지하고 어미를 잃은 새끼들을 심리적으로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새끼들은 박제된 수리부엉이의 품에 파고 들었다. 심리적 안정을 얻고 있다는 증거였지만 마냥 기뻐할 순 없는 모습이었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먹이를 줄 때도 수리부엉이 박제를 활용했다. 사람은 우비와 마스크로 모습을 숨기고 어미가 부리로 먹이를 넘겨주듯 박제의 부리로 먹이를 받아먹게 했다. 사람에게 각인되지 않도록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박제 수리부엉이는 어미만이 가르쳐줄 수 있는 행동과 습성까지 가르쳐주진 못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료 수리부엉이에게 습성을 배우다
때마침 또 다른 새끼 수리부엉이 두 마리가 같은 이유로 구조됐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들은 구조되기 전 어미에게 사람을 경계하는 법을 배웠다. 사람이 나타나면 부리를 딱딱 부딪치며 소리를 내고 날개를 들어 몸집을 크게 부풀렸다. 구조센터에서 태어난 새끼들과 합사를 시켰더니 자연스레 경계하는 행동을 따라했다.
부화한지 한 달째가 됐을 때 체중이 1594g, 1580g으로 훌쩍 성장했다. 성체 수리부엉이보다 약간 작은 수준이었다. 하루에 20g씩 먹던 다진 고기를 이제는 250g이나 먹어야 만족했다. 날개깃과 꽁지깃이 자라고 있었지만 여전히 보송보송한 털 때문에 어린 티가 났다.
새끼였던 두 수리부엉이는 두 달이 조금 지나자 성체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자랐다. 겉모습만 성체일 뿐 이들은 여전히 먹이를 사람에게 얻어먹어야 했다. 구조센터에서는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라면 살아있는 먹이를 제공하지 않는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다른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리부엉이 같은 맹금류를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선 살아있는 생물을 사냥할 수 있는지 필수적으로 알아봐야 한다. 최대한 적은 수의 생명을 희생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행히 이들은 짧은 시간 안에 먹잇감에 반응하고 사냥에 성공했다.
넓은 대형조류 재활비행장으로 옮겨 비행 훈련도 시켰다. 수리부엉이는 야행성 맹금류이기 때문에 비행 시 소리가 나지 않아야 야생으로 방생시킬 수 있다.
야생 수리부엉이는 부화 후 두 달이면 둥지를 떠난다. 이후 3달 정도는 둥지 주변에 따로 머물며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두 달 더 지나면 완전히 독립을 한다. 구조센터에서 자란 새끼들이 완전히 독립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 조금 더 일찍 내보낼 수 있었지만, 낙엽이 떨어져 사냥감의 소리를 듣기 쉬운 9월 중순에 자연으로 돌아갔다.
일 년 간 자연을 잊어야 하는 수리부엉이
지난 10년간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구조된 수리부엉이는 약 500마리로 다른 종에 비해 많은 편이다. 로드킬, 유리창과의 충돌, 납치, 기아, 덫, 농약, 낚시 쓰레기, 끈끈이 등 구조된 원인도 10가지가 넘는다. 지난 4월 30일에는 밭그물에 얽힌 수리부엉이가 구조됐다. 양다리와 날개, 몸통 전체가 그물에 엉켜 군데군데 심한 상처가 났다. 게다가 날씨가 더워져 상처 부위에서 구더기까지 파고들어 있었다.
결국 좌측 비행깃 3개와 우측 비행깃 1개를 제거했다. 골절이나 탈구 등이 없었고 상처도 거의 다 아물었지만 이 수리부엉이는 올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다. 비행깃이 없으면 제대로 날 수 없기 때문이다. 작은 새는 1년에 1회 이상 깃갈이를 하지만 수리부엉이와 같은 중대형 조류는 1년이 지나도 날개깃의 일부만 새로 자라난다. 운이 좋아 금세 자라날 수도 있지만 깃이 언제 돋아날 지 기약할 수 없다. 수리부엉이는 꼼짝없이 깃이 돋아나길 기다리며 구조센터에 머물게 됐다. 인위적인 공간에서 깃을 기다리다 야생성을 잃어버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