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붕붕, 일벌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합니다. 한 마리, 또 한 마리. 벌집 속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던 하얀 애벌레를 일벌 세 마리가 끌어내고 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애벌레를 안고 날아보려 애쓰지만 쉽지 않아요. 겨우 30cm 떨어진 곳까지 끌고 간 뒤 결국 풀숲에 버려 두고 지친 듯 벌통으로 돌아옵니다. 붕붕붕, 임무를 마치고 오는 일벌의 날개짓 소리는 슬퍼요. 바로 어제까지 꿀과 로열젤리를 먹이며 애지중지하던 애벌레를 제 손으로 버리는 심정을 차마 말로 표현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알을 직접 낳은 제 슬픔에 비할 수 있을까요. 말하는 사이에 또 한 마리의 애벌레를 벌통 밖으로 끌어내고 있네요. 고이 키우던 애벌레를 이렇게 버리는 이유는 병이 들어서랍니다.
‘낭충봉아부패병’이라는 바이러스성 감염병이에요. 치사율이 100%인 무서운 병이지요. 이미 작년에 한 차례 전국을 휩쓸어서 우리 동양 꿀벌의 상당수가 죽었습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나 농촌진흥청은 75~77%(31만 7000군)가 폐사했다고 보고 있고, 한국토봉(토종 꿀벌. 기사에서는 동양 꿀벌)협회는 98%가 죽어서 멸종 직전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전국에 동양 꿀벌 농가는 3만 가구인데 대부분 올해 양봉을 포기한 상태지요. 제가 살고 있는 경남 함양에도 작년에 벌통이 1만 2500통 있었는데, 한 통도 남지 않고 다 죽고 말았답니다.
제 주인도 30년 동안 한 해에 많게는 500통이나 되는 벌통을 키웠어요. 하지만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애벌레를 데리고 나가고 있었어요. 그 후 보름째 일터에 나가지 않고 애벌레만 내다 버리고 있습니다. 3만 마리가 있던 우리 벌통에는 지금 1만 마리가 채 남아 있지 않아요.
우리 바로 옆에 있는 벌통의 소식을 들었어요. 5일 먼저 병에 걸린 곳이에요. 왁스로 된 벌집은 꿀이 차지 않아 푸석푸석하게 말랐고 미처 내다 버리지 못한 애벌레들이 집 안에서 부패해서 솜뭉치처럼 변했어요. 벌집엔 하얗게 곰팡이가 슬었더군요. 남아 있는 벌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어요. 그나마 대부분 나이가 많이 든 벌들이지요. 힘이 없어 잘 날지도 못하지만, 병에 걸린 애벌레를 끄집어 내려고 애쓰고 있어요. 우리 벌통도 5일 뒤면 저런 상황이 되겠지요.
붕붕붕, 하는 소리가 들려요. 다시 일벌 둘이 애벌레 한 마리를 벌통 바닥으로 끄집어냈군요. 또 한 마리가 이렇게 사라졌어요. 벌통 안은 울음소리로 가득해요. 꿀주머니에 아카시아 꽃꿀을 가득 넣고 춤을 추며 내던 기쁨의 소리는 이제 들을 수 없어요. 저는 조용히 귀를 막습니다. 하지만 이 울음 소리도 일주일 뒤면 영영 그칠 테지요. 빈 벌통만이 우리가 살았다는 사실을 알려 줄 거예요.
동양 꿀벌 여왕의 슬픈 독백을 들으니 저까지 슬픈 기분이 드네요. 우리 서양 꿀벌도 지난 몇 년 동안 대단히 큰 재난을 겪었답니다. 우리가
겪은 현상은 좀 특이해요. 벌이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현상이지요.
‘봉군붕괴증상(CCD)’이라고 부르는데, 벌이 죽는 게 아니고 텅 빈 벌집만 남겨놓고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는 현상이에요. 벌은 벌집을 만들어 그 안에 꿀과 꽃가루를 채우고 애벌레를 키우며 살아요. 벌집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지요. 그런데 벌집이 비었다니 이상할 수밖에요. 2010년 1월 미국 국회보고서와 같은 해 6월 미국 농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이 현상은 2006년 11월 처음 시작됐는데(주로 겨울에 벌이 많이 사라져요) 이듬해인 2007년 6월까지 35개 주까지 퍼졌고, 사라진 벌은 32~36%나 됐어요. 이런 경향은 작년까지도 계속돼 2009년에는 29%, 2010년에는 34%의 벌이 없어졌어요. 이후 캐나다와 유럽 전역, 대만 등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어요.
이 현상이 특이한 것은 뚜렷한 원인이 없다는 점이에요. 바이러스나 ‘꿀벌응애’라는 기생충, 기후변화, 농약, 심지어 휴대전화 전파까지 다양한 원인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어요. 최근에는 연구자들도 원인을 밝히기보다는, 미지의 복합적인 원인이 낳은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진단하고 피해를 줄이는 데 더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랍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벌의 죽음
Part 1. 꿀벌 여왕의 독백
Part 2. 꿀벌에게 무슨 일이?
Part 3. 꿀벌 없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