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입자들을 충돌시키는 가속기. 물질의 기본입자를 밝히는데 가속기는 절대적인 존재다.
우주를 이루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들은 어떤 원리에 의해 운동하는가? 이 의문은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인류가 끊임없이 품어온 질문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에 대한 해답은 우주의 저편 끝과 핵내의 아주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다.
현대의 입자 물리학자들은 미세한 세계의 탐구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 두개의 질문에 해답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주로 가속기를 만들어 전하를 띤 입자들을 고에너지로 가속시킨 후 서로 충돌시키는 실험을 한다. 이 과정에서 검출기를 이용하여 자료들을 얻어내고 컴퓨터를 이용하여 그 결과들을 분석 종합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본적인 입자와 상호작용에 관한 질문에 답하려 하는 것이다.
지금 현재 우리의 우주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입자 물리학과 천문학의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아주 오래 전 지금의 태양보다 수십억배나 더 뜨겁고 굉장히 밀도가 높은 하나의 불덩이로 부터 긴 변화의 과정을 겪어서 현재에 다다른 것이다. 이 변화의 과정을 사색하려 할 때 우리는 시인이건 물리학자이건 간에 우리의 상상력을 펼쳐 이 변화의 힘이 무엇이며, 이 힘들이 어떤 것에 미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오늘날에 와서 고에너지 물리학자들은 핵물리 천체물리학자들과 더불어 이러한 것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기 시작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시간, 공간, 엔트로피, 삶과 죽음, 밤하늘의 유성, 수려한 삼천리 금수강산 등에 관한 모든 사실들이 다 이 질문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연과학의 많은 원리들을 알게 된 데에는 결정적으로 과학 실험장비들의 개발에 힘입은 바가 크다. 천체 망원경과 현미경 등 수많은 예를 들 수 있다. 우리의 과학적 지식이 진보하기 위해서는 그 진보의 밑거름이 되는 과학 실험장비들의 정확도와 다양한 기능이 동시에 진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 고에너지 물리학자들은 실험 도구인 가속기를 보다 높은 에너지의 영역으로 끌어 올리고 좀더 개량된 형태의 새로운 검출기를 제작하려는 것이다. 그럼 이제 가속기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무엇을 충돌시키나
러더포드가 1917년에 α 입자(He의 핵)를 금박에 충돌시킨 실험은 산란 실험방법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최초의 일이었다. 이 실험을 통해서 원자의 내부 중심에 위치한 원자핵의 존재를 산란각 분포를 통해서 밝힐 수 있었다. 이 일로 인해 핵분열이라는 분야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실험실안에서 입자를 가속시키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위적으로 가속된 최초의 핵분열 실험이 1932년에 영국의 카벤디시 연구소에서 행해졌다. 그들은 전위차를 증가시키는 전기 회로를 만들어 내, 7백70㎸의 전위차로 양성자를 가속시켜 리튬을 두개의 α 입자로 쪼갤 수 있었다. 그로부터 몇달 뒤 미국의 버클리 대학에서 최초의 사이클로트론을 만들고 있던 로렌스와 리빙스턴은 카벤디시의 실험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이 당시 로렌스는 사이클로트론을 만들고 있던 중 독일 잡지를 들여다 보았는데 2개의 판으로 만들어진 선형가속기로 이온들을 가속시킨다는 사이클로트론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한다.
비교적 가속기는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다. 입자물리학의 입장에서 가속기를 바라보면 세가지 특성이 있다. 그 첫번째는 어떤 종류의 입자를 가속시키는가 하는 것인데 전하를 띤 수명이 긴 어떤 입자도 원칙적으로는 가속기로 가속시킬 수 있으나, 실제적으로는 전자(${e}^{-}$), 양전자(${e}^{+}$), 양성자(p), 반양성자(${p}^{-}$)들을 주로 가속시킨다. 다른 종류의 입자들 경우에는 양성자를 금속표면에 충돌시켜서 생겨나는 여러 종류의 입자들 중에서 필요한 입자를 고르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중성미자(neutrino) 파이온(pions) 케이온(kaons) 광자(photons)들을 이용한 실험이 가능하다.
두번째는 입자를 가속시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에너지가 얼마인가 하는 점이다. 수 eV에서 keV 정도로 낮은 에너지를 가지는 발생 초기의 전자나 양성자는 전기장 속을 지나면서 에너지를 얻게 된다. 자기장은 하전 입자의 운동 궤도를 결정한다. 전기장과 자기장의 공간적인 배치에 따른 가속기의 형태로 보면 선형가속기와 원형가속기가 있는데, 선형가속기는 일직선으로 가속된 입자를 정지된 표적에 충돌시키며 원형가속기는 서로 원형의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는 입자들을 충돌시킨다. 높은 에너지를 얻고자 원형가속기를 주로 만드는 데 문제점은 전기적 성질을 띤 입자들이 원형궤도를 움직일 때는 광자를 발생하여 에너지를 잃는다는 점이다. 전자의 경우는 한번 원운동할 때 잃어버리는 에너지의 비율이 양성자의 경우보다 약 ${10}^{13}$배 만큼이나 크므로 양성자를 가속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세번째의 특성은 루미노시티(luminocity)인데 이것은 전자건 양성자건 충돌시키는 입자들의 충돌이 얼마나 빈번히 일어나는가를 나타내는 척도이다. 발생확률이 아주 작은 현상들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높은 루미노시티의 가속기가 필요하다.
세계의 유명 가속기들
현재의 입자물리연구를 위해 가동중인 전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대표적인 가속기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핵물리연구센터(CERN)에 있는 가속기는 1981년부터 양성자와 반양성자를 가속 충돌시켜 W와 Z˚를 발견한 SPPS가 있고 현재는 1989년부터 전자와 양전자를 원형으로 가속시켜 Z˚의 공명에너지에서 많은 Z˚를 만들어 내고 있는 LEP이 있다.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독일연방 싱크로트론 연구소(DESY)에는 전자와 양전자의 원형가속기로 PETRA와 DORIS가 있었고 현재는 새로운 종류의 가속기인 전자와 양성자를 충돌시키는 HERA가 있다. 이것의 특징은 기존의 가속기와는 달리 충돌입자의 에너지가 비대칭적이라는 것이다. 즉 30GeV의 전자와 8백20 GeV의 양성자를 충돌시키고 있다.
일본의 국립 고에너지 물리연구소에는 전자 양전자 가속기인 TRISTAN이 있다. 이것의 질량중심에너지는 60GeV이고 1987년 부터 가동 중이다. 중국의 북경에는 질량중심에너지를 5.6GeV까지 낼 수 있는 전자 양전자 가속기가 1989년부터 가동중이다(BEPS). 지금은 독립국가연합의 세르푸크호프에 위치한 UNK에서는 3TeV(${10}^{12}$eV)의 양성자 가속기를 건설중이다.
미국의 롱아일랜드에 위치한 BNL에는 32GeV의 AGS가 있고 또한 상대론적 중이온 가속기(RICH)를 준비중이다. 미국 뉴욕주의 이타카에 위치한 코넬 대학의 전자 양전자 가속기(CESR)는 1979년부터 가동 중이고 질량중심에너지는 13GeV이다. 미국 일리노이주의 시카고 근교의 국립가속기 연구소에는 고정 표적 산란 실험용의 1TeV양성자 가속기가 있고 또한 양성자와 반양성자를 질량중심 2TeV에서 충돌시키는 테바트론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팔로알토에 위치한 스탠퍼드 선형가속기센터에는 CERN의 LEP과 같이 전자 양전자 충돌을 통해 Z˚를 만들어 내는 SLC가 있고 질량중심 30GeV로 가동되었던 PEP과 SPEAR가 있다.
무엇을 발견했나
인공 입자가속기가 공헌한 결과가 바로 오늘날의 표준모형이론이라 할 수 있다. 입자가속기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우주선(cosmicray)에 의한 실험을 통해서 많은 입자들을 발견하였다. 핵내에 여러개의 양성자와 중성자가 있을 경우 전자기적 상호작용으로 생각하면, 같은 전하끼리 서로 밀치므로 핵의 자연 붕괴를 생각할 수 밖에 없으나 실제로는 전자기적 붕괴현상은 발견할 수 없다.
이 이유는 강한 상호작용에 의해 핵자들이 서로 강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를 맨처음 주장한 이는 일본의 유카와다. 그는 이 강한 상호작용의 매개입자로서 핵자의10분에 1 정도의 무게를 가진 중간자를 1935년에 예언했다. 1940년대 초반에 파이온이 발견되었고 이 파이온이 뮤온으로 붕괴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파이온의 발견은 유카와 이론을 뒷받침 해주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전혀 예측치 못했던 뮤온을 발견한 것이다. 파이온이나 양성자나 중성자들은 강한 상호작용의 지배를 받는 강입자로 분류되고 전자나 뮤온은 경입자(렙톤)로 분류된다. 이들 경입자들은 약한 상호작용과 전자기적 상호작용의 지배를 받는다. 1947년 파이온과는 다른 강입자들이 발견되는데 이는 항상 한쌍으로 생성되었기 때문에 '이상한'(strange) 입자로 여겨졌다.
1950년대 버클리의 베바트론 가속기가 가동되자 무수히 많은 ρ, ω, η, φ, Δ, Ξ, Ω 등의 강입자들이 발견되었다. 이렇듯 많은 종류의 새로운 입자들을 깊이있게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칼텍의 겔만은 모든 강입자들은 '쿼크'로 이루어졌다는 당시로서는 놀랄만한 주장을 하였다. 그후 SLAC의 가속기 실험을 통해 프리드만 등은 핵자인 양성자도 작은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1974년 11월에 SLAC과 BNL에서 동시에 발표된 실험결과는 또다른 쿼크인 c(charm) 쿼크의 발견이 잇따랐다. 이로부터 쿼크의 실재성이 확실해졌다.
그후 SLAC에서 또하나의 경입자인 타우(τ)경입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쿼크인 b쿼크를 FNAL에서 찾았다. 또한 전자기적 상호작용과 약한 상호작용을 통합한 전자기 약력 상호작용의 매개체인 W와 Z˚입자들을 CERN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듯 많은 실험들이 가속기를 바탕으로 진행되어 왔고 이 실험결과들을 집대성한 이론이 오늘날의 표준모형이론(standard model)이다.
표준모형이론에 따르면 쿼크는 모두 여섯종류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실험적으로 나머지 한개의 쿼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표준 모형이론이 현재까지 고에너지 물리 실험결과들을 잘 설명해 주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왜 이런 입자들의 질량이 큰 편차를 두고 서로 달라야 하며 입자의 질량생성에 직접 영향을 주는 힉스입자는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들 중의 하나는 보다 높은 에너지의 실험이다.
보다 높은 에너지를 갖는 새로운 초대형가속기를 이용하여 표준모형이론이 답해주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탐구하려는 시도가 고에너지 물리분야의 국제공동연구로 진행중이다. 그중 하나는 미국 텍사스주에 건립될 초대형 초전도가속기(SSC)이고 또다른 하나는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CERN연구소의 큰 강입자 가속기(LHC)다.
미래의 가속기들
우선 SSC를 살펴보면 양성자들을 원형가속기 안에서 빛에 가까운 속도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리게 한 후 충돌시킨다. 두곳의 충돌지점에 대형 검출기를 설치하여 각각 새로운 에너지 영역의 입자물리 실험을 준비중이다.
이 원형가속기의 둘레는 자그만치 87㎞에 달하는데 이는 서울에서 천안까지의 거리다. 각각의 양성자들은 다발로 묶여져 아주 좁은 약 3.6㎝의 지름을 갖는 관속을 통해서 가속기를 1초에 3천4백번 회전하게 된다. 이때 한개의 다발에 들어있는 양성자의 수는 약 1조개나 된다. 양성자의 원궤도운동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바로 자기장이 하는 일인데 15m 길이의 8천6백여개의 초전도 이중극 자석과 1천6백여개의 사중극 자석이 필요하다. 이중극 자석은 가속기 내를 제궤도로 인도해 주고 원궤도를 움직이도록 굽혀준다. 사중극 자석(두개의 남극과 두개의 북극)은 가속되는 입자를 집속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각 방향의 양성자의 에너지가 20TeV이므로 서로 충돌했을시 질량중심계의 에너지는40TeV을 만든다. 총경비는 약80억달러로 예상되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의 공동 투자와 연구로 1999년 가을 완공을 목표로 현재 건설 중이다.
이와 같은 새 가속기 건설에 맞추어 스위스의 제네바에 있는 CERN에서 새로운 가속기를 준비 중이다. 이름하여 큰 강입자 가속기(LHC)이다.
LHC는 양성자와 양성자를 충돌시켜 질량중심계 에너지를 16TeV까지 얻을 수 있는 원형가속기이다. 기존의 둘레 27㎞의 전자 양전자 가속기인 LEP의 지하 터널을 이용할 계획이므로 SSC보다는 빠른 시간 내에 완공될 가능성이 크다. 이 LHC 역시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참여 중이다.
입자물리 가속기가 우리 실생활에 무슨 유용성을 가져오길래 많은 재정적 인적 투자를 하느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새로운 가속기를 통해 얻을 지식은 기초 과학에 대한 것들이고 이런 것들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편리하거나 윤택하게 해 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역사의 교훈을 살펴보면 자연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인류 발전에 큰 공헌을 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리학을 포함한 기초 과학의 발달이 2백년 전에 산업혁명을 가져 왔다. 전 세계를 작은 지구촌으로 만들어버린 정보의 혁명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이루어진 기초 과학의 응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는 미세한 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양자역학이 1920년 경에 소개되었는데, 이 양자역학은 오늘날의 전자기술 분야의 핵심 이론이 되었다.
또 다른 예는 우리 가정의 TV도 지난날 원자와 원자핵 구조를 연구하기 위하며 개발되었던 원리들을 이용한 일종의 입자가속기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의학 연구와 치료에도 입자가속기에서 나온 방법들이 이용되고 있다. 이렇듯 기초과학의 발전은 인류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제 기초과학 분야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전환기를 만들기 위해 전 세계의 고에너지물리학자들이 총력을 기울여 국제 공동연구에 참가하고 있다. 이 때 한국의 고에너지 물리학자들 또한 이 시대적 소명에 동참할 수 있도록 각계 각층의 아낌없는 지원과 격려가 적극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