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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꿀벌 없는 세상

단막 부조리극

| 등장인물 |

뒤영벌(꿀벌이 사라진 세계의 일벌)
나비(뒤영벌의 라이벌)
동양 꿀벌 여왕(영혼)
서양 꿀벌 여왕(영혼)
미래인(꿀벌이 없는 시대의 사람)



뒤영벌 : (딸기 꽃 위에 앉아 부산스레 움직인다) 영차, 영차.

나비 : 오늘따라 유난히 힘들어 보이네.

뒤영벌: 딸기 꽃이 너무 작아서 꿀을 빨기가 힘들어. (혼잣말) 어떻게 알고 찾아왔지?

나비 : (혼잣말) 미련하게 저 덩치로 딸기 꽃에서 꿀을 빨려고? 웃겨.

뒤영벌 : 오랜만의 꽃이라 탐이 나는데 너무 작아. 나한텐 꼭 어린이 변기에 앉은 것처럼 불편해.

나비 : 불편해도 열심히 빨아 먹어 둬. 딸기도 이제 멸종하게 생겼으니까. 앞으로 구경도 못 할 거야.

뒤영벌 : 우리가 지금 딸기 맛에 신경 쓰게 생겼니? 꿀을 먹을 만한 식물이 다 사라져가는데.

나비 : 맞아. 꿀벌이 사라지고 나니까 식물들까지 금세 사라지더라. 꿀벌이 이렇게 일을 많이 하는지 미처 몰랐어.

뒤영벌 : 특히 딸기 꽃은 꿀벌이 전문이었지. 쬐그만 녀석이 꽃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꼼꼼하게 꿀도 다 빨고 꽃가루도 골고루 수집하고.

서양 꿀벌 여왕(영혼) : (당당한 걸음으로 등장하며) 어디 딸기뿐이겠는가. 어지간한 농작물치고 우리의 손과 입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지.

뒤영벌, 나비 : (깜짝 놀라며) 앗! 여왕님! (뒤로 물러서며 예의를 갖춘다)

서양 꿀벌 여왕(영혼) : 난 이미 죽은 몸. 나한테까지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다네.

뒤영벌 : 전 세계 9개 꿀벌 종 중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퍼졌던 꿀벌의 대표셨잖아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해요. 전 세계에 벌이 4000종이 넘게 있는데, 겨우 9종밖에 안 되는 꿀벌이 사라졌다고 해서 이렇게 식물들이 죽어버릴 수 있는 건가요?

나비 : 벌만 있냐? 나비도 있다구!

서양 꿀벌 여왕(영혼) : 이제 와서 이런 말 해도 소용 없겠지만,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식물에게 좋은 일 좀 많이 했지. 전 세계 속씨식물(꽃이 피며 밑씨가 씨방 안에 있는 식물) 가운데 20만 종 정도가 곤충 덕분에 꽃가루받이를 하고 있는데, 그 중 85%(17만 종)가 우리 꿀벌의 도움을 받는단다. 꿀벌이 없으면 아예 꽃가루받이를 못하는 종만도 4만 종이나 돼. (뒤영벌을 가리키며) 지금 네가 앉아 있는 딸기도 그 중 하나지. 근데 뒤영벌아. 딸기 꽃이 힘들어 하는 것 같은데 이제 내려오는 게 어떠니.

뒤영벌 : (머리를 긁으며) 네…. 저는 제 덩치에 맞는 토마토 꽃꿀이나 빨아야겠네요.

동양 꿀벌 여왕(영혼) : (종종 걸음으로 등장) 작물을 잊으면 안 되지. 사람이 키우는 세계 100대 작물 가운데 71%가 꿀벌 없이는 열매를 못 맺으니까. 오이, 수박 등 대부분의 과채가 포함돼.

서양 꿀벌 여왕(영혼) : 오, 자네 왔는가.

나비, 뒤영벌 : 어서오십시오. (꾸벅)

동양 꿀벌 여왕(영혼) : 우리가 없는 세상에서 잘 살고 있는지?

뒤영벌 : 보면 아시잖아요. 도무지 먹을 게 없어요. (혼잣말) 꿀벌 녀석들, 없어지려면 조용히나 없어질 것이지 꽃이란 꽃은 다 같이 사라지고….

동양, 서양 꿀벌 여왕(영혼) : (동시에) 다 들린다.

뒤영벌 : 에이, 들렸어요? 사실이잖아요. 말씀하신 채소 말고도 상추나 양배추, 미국에서는 아몬드도 없어져서 난리예요.

나비 : 걔네만 없으면 괜찮게요? 2차 농산물이 더 큰 문제예요. 클로버 같은 목초가 안 자라니까 소를 못 키운대요. 뜯어 먹을 풀이 없는 거예요. 미국이나 호주처럼 소를 방목하는 곳에서는 소 먹일 풀 찾느라 난리라는군요. 우리나라도 여물 줄 풀을 못 구하고 있고요. 우유도 없고, 치즈도 없고, 고기는 당연히 값이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고 있어요.

서양 꿀벌 여왕 : 그래. 풀이 안 자라니까 산이 이렇게 민둥산이구나. 하다못해 사람들이 잡초라고 무시하던 꽃들도 상당수는 우리가 있어서 자랄 수 있었는데. 정말 우리가 일 안 한다고 이렇게 황량해져도 되는 거야?

동양 꿀벌 여왕 : 풀 뿐이야? 나무도 안 자라. 봐. 밤도 안 열리느니라. 아카시아도 이젠 없다지? 우리 동양 꿀벌들은 두 가지 꽃에서 주로 꿀과 꽃가루를 얻었는데 이제는 누가 하누.

나비 : 제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더라구요.

서양 꿀벌 여왕(영혼) : 아마 안 될 거야. 벌과 나비가 꿀을 빠는 방법이 다르거든. 그래서 찾아가는 꽃이 정해져 있지. 나비는 긴 대롱으로 깊숙한 곳에 있는 꿀을 빨아먹지만 우리 꿀벌은 직접 꽃에 달라붙어서 꿀도 빨고 온몸에 꽃가루도 묻혀가지. 사실 이런 방식은 1억 3000년 전 속씨식물이 처음 나왔을 때에는 정교하지 못했어. 하지만 여러 가지 곤충들과 지내면서 조금씩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며 진화했는데, 그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게 바로 3500만 년 전 등장한 우리 꿀벌이지. 속씨식물은 사실상 꿀벌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화해 온 측면이 크단다.

동양 꿀벌 여왕(영혼) : 그런데 사람들은 그 소중함을 모르고 흔한 곤충 중의 하나로만 생각하고 있다니 너무해. 우리가 없어지고 나서야 후회했겠지!

일동 : 아! 저기 사람이 온다! (모두 숨는다)

미래인 : 아아. 저건 먹을 수 있는 건가? (달려가서 딸기 꽃을 흔든다) 그냥 꽃이네. 얘는 열매를 맺을까. 또 아니겠지. 이 황량한 들판에서 꽃을 발견하다니 정말 신기하긴 한데, 어차피 내 배를 채울 수는 없구나. 아아. 예전엔 몰랐어. 벌이 사라지면 그냥 꿀만 못 먹는 줄 알았지. 당장 농작물이 열매를 못 맺고 꽃이 사라지고 들판의 잡초가 사라질 줄 상상이나 했겠어. 산이 민둥산이 되고 거기 살던 동물이 달아나고, 새가 사라지고 붕붕거리던 곤충마저 눈에 띄게 줄어들 줄은 몰랐지. 그래. 꿀벌은 수천만 년 동안 속씨식물과 함께 진화한 곤충이야. 꿀벌이 갑자기 사라지면 지구의 식물이 짝을 잃는다는 걸 꿀벌이 사라지고서야 알게 됐구나….

동양, 서양 꿀벌 여왕(영혼) : (부르르 날개를 떤다)

미래인 : …음? 방금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꼭 영화에서나 보던 꿀벌 소리와 닮았구나. 붕붕붕, 하는. 내가 잘못 들었겠지. 이제 꿀벌은 없으니까. 벌들이 살아 있다면 이렇게 변해버린 지구를 보고 뭐라고 생각할까….

(미래인 사라진다)

(부르르 떨던 소리가 붕붕붕 소리로 바뀐다. 소리가 잦아들며 막이 내린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벌의 죽음
Part 1. 꿀벌 여왕의 독백
Part 2. 꿀벌에게 무슨 일이?
Part 3. 꿀벌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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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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