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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우주에 질량을 선물한 신의 입자 - 힉스

물리학자들은 대칭성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질서는 물질 세계의 근본에 숨어있는 대칭성이 드러난 결과다. 그러나 현실 세계를 보면 대칭성은 대부분 깨진 상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덕분에 우리는 대칭성만 존재할 때보다 더 풍부한 자연 현상을 본다.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철과 같은 금속이 온도가 낮아지면서 저절로 자석이 되는 현상(‘강자성’ 현상)을 설명하면서 ‘자발적 대칭
성 깨짐’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후 낮은 온도에서 유체의 점성이 사라지는 ‘초유동 현상’, 그리고 금속의 전기 저항이 낮은 온도에서 0이 되는 ‘초전도 현상’이 모두 이 자발성 대칭성 깨짐 때문에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강자성 현상에 대해서는 과학동아 2011년 1월호, 초전도 현상에 대해서는 2011년 4월호 참조-편집자 주).

그렇다면 ‘자발적 대칭성 깨짐’이란 무엇일까. 오른쪽 그림의 (➊)처럼 모든 방향에 대해 대칭적인 가상의 곡면을 생각해 보자. 이 곡면에서 가장 안정된 상태는 이 공간의 가운데 오목한 지점, 즉 원점이다(샐러드 볼에 방울토마토를 넣으면 맨 아래에 오목한 지점에서 멈추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 지점은 모든 방향에 대해 대칭적이다. 만일 무슨 이유에선가 곡면이 (➋)와 같이 바뀌었다고 하자. 여전히 곡면은 모든 방향에 대해서 대칭적이다. 그러나 입자는 원점에 남아있지 못하고 어느 한 방향으로 굴러 떨어질 것이다(떨어지는 방향은 완전히 무작위로 결정된다). 이렇게 굴러 떨어진 입자는 이제 공간의 어느 한 방향에 치우쳐 있게 된다. 입자의 입장에서 보면 더 이상 ‘모든 방향에 대해서 대칭적’이지 않은 셈이다. 이렇게 원래의 이론에는 대칭성이 있지만 우리가 보는 실제 세계는 정작 대칭성이 깨진 상태가 되는 것을 자발성 대칭성 깨짐이라 한다.


[거대강입자가속기(LHC)의 검출기 중 하나인 아틀라스(ATLAS). 이곳의 연구팀이 지난 4월 말 ‘신의 입자’ 힉스를 발견했다는 소문에 잠시 소동이 있었다.]

신의 입자가 나타나다
1964년 영국 에든버러대의 피터 힉스 교수와 벨기에 브뤼셀대의 프랑소아 엥글레와 로베르 브라우 교수, 미국의 물리학자인 제럴드 구랄링크, 리처드 하겐, 톰 키블은 각각 거의 동시에 ‘ 게이지 이론 에서의 자발적 대칭성 깨짐’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게이지 대칭성 이 존재하더라도, 스칼라 장(스핀 양자수가 0인 장)이 가지는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가 게이지 대칭성이 깨진 상태라면 게이지 대칭성이 깨진 것처럼 보이고 게이지 입자가 질량을 가진다는 내용이다. 이 말은 질량을 가진 스칼라 입자(스핀 양자수가 0인 입자)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위 그림에서 든 예처럼 ‘원래의 이론에는 대칭성이 있지만 실제로는 대칭성이 깨진’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 질량을 가진 스칼라 입자가 반드시 존재한다.

오늘날 이렇게 게이지 대칭성이 깨져서 게이지 입자가 질량을 갖는 과정을 ‘힉스 메커니즘’이라고 부른다. 또 이때 나타나는 입자를 ‘힉스 보손 (Higgs Boson) ’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 논문에 나오는 입자가 요즘 물리학자들이 찾고 있는 힉스 입자는 아니다. 지금 찾고 있는 힉스 입자는 자발적 대칭성 깨짐 과정이 약한 상호작용(자연계에 존재하는 4가지 힘 중 하나. 95쪽 그림 참조)에 적용될 때 나타나는 입자인데, 위에 나온 논문은 모두 또다른 힘인 강한 상호작용을 설명하려는 논문이었기 때문이다.





1967년 미국의 스티븐 와인버그는 약한 상호작용의 게이지 대칭성이 자발적으로 깨지면서 게이지 입자인 W와 Z보손이 질량을 가지게 되는 모델을 발표한다. 이때 전자기력에 해당하는 게이지 대칭성은 남는다. W와 Z보손의 커다란 질량 때문에 약한 상호작용은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만 작용하고 전자기 상호작용에 비해 작은 크기로 작용한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전자기-약작용을 잘 설명하는 구조며, 이때 나타나는 전기적으로 중성인 스칼라 입자가 바로 지금 물리학자들이 찾고자 하는 힉스 입자다. 와인버그-살람 모형은 이후 전기적으로 중성인 약한 상호작용이 발견되고, 네 번째 쿼크가 발견되면서 모든 기본입자를 설명할 수 있게 돼 입자물리학의 ‘ 표준모형 ’이 됐다.

한편 대칭성이 깨질 때 힉스 입자와 결합된 쿼크와 렙톤도 힉스와의 결합의 세기에 비례하는 질량을 가지게 된다. 결국 표준모형의 모든 입자는 힉스 입자를 통해서 질량을 얻어 우리가 보는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셈이다. 아마도 이것이 노벨상 수상자이며 미국 페르미 국립가속기연구소 소장을 지낸 레이더먼이 힉스 입자를 자신의 책에서 ‘신의 입자(God Particle)’라고 부른 이유일 것이다(책을 읽어보면 진짜 이유는 더 길다).




신의 입자를 찾기 위한 항해
1970년대는 힉스 입자보다는 힉스 메커니즘에 의해서 질량을 얻는 약한 상호작용 입자(W와 Z보손)를 먼저 찾았다. 과학자들은 W와 Z보손이 다른 어떤 입자보다도 훨씬 무거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계산상 양성자의 50배가 넘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질량은 에너지와 같다. 따라서 이렇게 무거운 입자를 실제로 만들어서 관찰하려면 에너지 출력이 엄청나게 큰 가속기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에서는 거대한 전자-양전자 충돌장치인 엘이피(LEP)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당시 보유하고 있던 양성자 가속기인 에스피에스(SPS)를 양성자-반양성자 충돌장치로 개조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 끝에 결국 1983년 W와 Z보손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힉스 입자를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한 것은 1989년 LEP 가속기를 가동하고부터다. 둘레가 26.7km에 이르는 사상 최대 크기의 전자-양전자 충돌장치였던 LEP는 충돌 에너지를 Z보손의 질량인 약 91 GeV 에서 시작해서 최대 209GeV까지 올리면서 12년간 실험을 계속했다. 전자-양전자 충돌에서 힉스 입자가 주로 만들어지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Z보손에서 힉스 입자가 튀어나오는 과정이다. 이렇게 생성된 힉스 입자는 질량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붕괴한다. 힉스입자의 질량은 이론으로는 알 수 없고 측정해서 정해야만 하는데, LEP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힉스의 최대 질량은 약 114GeV/c2다. 이보다 가벼운 힉스 입자는 대부분 LEP에서 정확하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LEP 실험을 마치는 2000년 10월까지 힉스 입자가 만들어졌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물리학자들은 힉스 입자의 질량이 114.4GeV/c2보다 크다고 결론지었다(위 표).

LEP 이후 힉스 연구의 최전선은 미국 페르미연구소의 테바트론(Tevatron)이었다. 테바트론은 각각 0.98TeV(테라 전자볼트. 1Tev는1000GeV)의 양성자와 반양성자 빔을 정면 충돌시켜 1.96TeV의 충돌에너지를 얻는 충돌장치다. 테바트론과 같은 하드론 충돌장치에서는 양성자-반양성자의 충돌에너지가 2000GeV라고 해서 2000GeV/c2의 입자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양성자는 쿼크와 글루온으로 이루어진 복합입자이며, 양성자가 충돌할 때 실제로 충돌하는 것은 양성자를 이루는 쿼크나 글루온이다. 따라서 실제 충돌에너지는 기껏해야 양성자 충돌에너지의 약 10%에 불과하다. 또한 양성자 충돌 실험의 결과는 LEP처럼 단일 입자인 전자-양전자가 충돌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래서 힉스 입자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실험을 반복해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 그 속에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힉스 입자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표준 모형의 완결 또는 붕괴
현재까지 테바트론에서 힉스 입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힉스 입자의 질량이 150~170GeV/c2는 아니라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94쪽 표 참조). 테바트론은 올해 말에 가동을 마칠 예정이다. 힉스 입자를 발견하는 영광은 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가 가져갈 가능성이 커졌다.

질량에 따라 다르지만 힉스 입자는 대략 1조분의 1조분의 1초 만에 더 가벼운 입자로 붕괴한다. 힉스 입자를 찾는 전략은 질량에 따라 다르다. 질량이 약 140~400GeV/c2 정도인 경우 힉스 입자는 붕괴해서 대부분 W보손 쌍, 혹은 Z보손 쌍이 된다. 이 경우 W와 Z보손은 다시 붕괴하는데, 이 과정에서 나오는 전자나 뮤온은 찾기가 쉽기 때문에 힉스 입자를 발견하기가 가장 찾기 쉽다.

하지만 힉스 입자가 질량이 115~140GeV/c2 정도로 가벼우면 찾기 어렵다. 힉스 입자는 대부분 보텀 쿼크 쌍으로 붕괴한다. 그런데 LHC에서 보텀 쿼크는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중에서 힉스 입자에서 나온 것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때는 두 개의 광자로 붕괴한 흔적(신호)을 찾으면 되는데, 이런 붕괴 확률은 1000분의 1밖에 안 되기 때문에 충분한 양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만약 힉스 입자가 두 경우보다 무거우면 분석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래도 만약 힉스 입자의 질량이 1TeV/c2 이하면 LHC가 예정대로 가동되는 한 반드시 발견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이면 LHC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표준모형과도 맞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이론을 세워야 한다.

최근 LHC의 주 검출기 중 하나인 아틀라스(ATLAS) 연구 그룹에서 내부 문서가 새어 나와서 화제가 됐다. 115GeV/c2 근방에서 두 개의 광자로 붕괴하는 커다란 신호를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바로 힉스 입자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입자물리학자들의 반응은 전혀 없었다. 실험의 내부 문서는 공식적인것이 아니기 때문에 논할 의미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LHC에서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힉스 입자를 찾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일 뿐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힉스 입자는 표준모형에서 이야기하는 힉스 입자다. 만약 표준모형이 궁극적인 이론이 아니라면,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 여러 개의 힉스 입자가 있을 수도 있고 전기를 가진 힉스 입자가 있을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아예 힉스 입자가 없을 수도 있다! 힉스 입자를 발견하는 일은 20세기 내내 이뤄온 미시세계의 탐구가 완결되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더 심오한 이론을 향한 출발이다. 지금 실험실의 데이터의 산에서 힉스 입자의 흔적을 좇고 있는 실험가도, 책상 위에서 이론의 바다를 떠도는 이론가도 모두 힉스입자가 발견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 좀 더 심화된 내용을 보고 싶은 독자는 과학동아 홈페이지에서 원문(긴글)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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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신의 입자 vs. 어둠의 입자
Part 1. 우주에 질량을 선물한 신의 입자 - 힉스
Part 2. 우주를 지배하는 어둠의 입자 - 암흑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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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강영 건국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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