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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치아와 쇄골은 ‘뼈의 신분증’

죽음, 그 후 ➐ 뼈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下)

가족의 시신을 법의인류학센터에 기증한 뒤에도 많은 유가족이 법의인류학센터를 찾는다. 사랑했던 사
람이 어떻게 지내는지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서다. 유가족 앞에서 뼈가 든 박스를 열 때마다 필자는 매번 긴장한다. 간혹 뼈를 보고 정신을 잃거나 감정이 격해지는 유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곧 감정을 추스르고 뼈를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곤 한다. 신기하게도 많은 유가족들은 뼈만 봐도, 특히 머리뼈와 치아를 보면 사랑하던 사람의 뼈라는 걸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의 눈엔 기증자 생전의 모습이 뼈와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유가족들과 달리 생전의 모습을 모르는 법의인류학자가 뼈만 보고 기증자의 모습을 사진처럼 떠올릴 수는 없다. 하지만 백골화된 시체의 신원을 정확히 알아내는 방법이 있다. 대표적으로 치아나 흉부 엑스선을 이용하는 방법, 그리고 DNA 검사를 꼽을 수 있다. 이 세 가지 방법은 공통점이 있다. 뼈에 남아 있는 특징을 피해자의 생전 자료와 비교해 일치 여부를 판단한다는 점이다. 이 중 하나라도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온다면 법의인류학자는 신원을 확인했다는 최종 결정을 내린다. 그래서 이 세 가지 방법을 확정적 신원확인(positive identification) 방법이라고 한다. 이번 화에서는 확정적 신원확인 방법 중 치아와 쇄골을 이용하는 방법을 살펴본다.


나와 똑같은 치아를 가진 사람은 없다

치아는 우리 몸에서 가장 단단한 조직이다. 특히 치아의 머리 부분인 치관을 둘러싼 에나멜질은 96% 이상이 무기질로 이뤄져 있어 쉽게 부패되지 않는다. 화재현장이나 오래된 무덤처럼 뼈가 보존되기 힘든 상황에서도 치아만큼은 온전히 수습되는 이유다. 오래 보존되고 현장에서 수습될 가능성이 높다는 건 그만큼 법의인류학적 감식 과정에서 치아가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치아를 통해 법의인류학적 감식을 하는 사람을 법치의학자라고 한다.
 


치아는 변사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피해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생전에 찍어놓은 엑스선 사진을 구할 수만 있으면 시체의 치아 엑스선과 비교해 동일인인지를 바로 판단할 수 있다. 요즘은 치과 치료가 일반화돼 치아 엑스선 사진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만약 치아가 일치하면 DNA 등 다른 증거 없이도 신원 확인 결정을 내린다.

신원 확인 과정에서 치아가 이처럼 강력한 증거로 인정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치아는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씹는 면이 닳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인 형태가 평생 달라지지 않는다. 때문에 치과에서 몇 년 전에 찍은 엑스선 사진을 오늘 찍은 사진과 비교해봐도 별 차이가 없다. 게다가 치아의 크기와 모양은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는 총 32개의 영구치를 갖고 있는데, 모든 치아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존재할 확률은 0에 가깝다. 특히 최근엔 보철 등 치과 치료를 많이 받는데, 이런 치료 흔적의 위치와 모양까지 우연히 같은 사람을 찾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엑스선 사진 없이 치과 진료 기록만 남아 있더라도 치아는 여전히 신원 확인을 위한 유용한 증거다. 치과에선 환자가 방문하면 어떤 치아가 남아 있고 어떤 치아에 어떤 치료를 했는지 상세한 기록을 남기는데, 이 정보를 시체의 치아와 비교하면 된다. 예를 들어 진료 기록에 사랑니가 없다고 쓰여 있는데 시체는 사랑니를 가지고 있다면, 둘은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식이다.

시체의 치아에 나타난 특징이 전혀 무관한 진료 기록과 우연히 일치할 확률이 얼마나 작은지를 통계적인 수치로 확인할 수도 있다. 미국에선 약 5만8000명의 치아 정보를 바탕으로 ‘치아검색(OdontoSearch)’이라는 소프트웨어가 개발됐다. 이걸 이용하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우연히 같은 위치에 동일한 치료 흔적을 가질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치아검색 프로그램에 따르면 100쪽 치아 사진처럼 32개의 치아가 모두 나있고 그 중 어금니 4개에 치료 흔적을 가진 사람을 찾을 수 있는 확률은 약 0.02% 밖에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의 개발에 힘입어 최근 필자가 근무하는 미국 국방성 합동 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전사자의 치아를 그 당시 치과 기록과 대조해 수십 명의 신원을 확인하기도 했다.


법의인류학자, 쇄골에 주목하다

시체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또 다른 뼈는 쇄골이다. 쇄골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게 생겼다. 길이, 두께는 물론 뼈가 휘어진 정도나 근육이 닿는 지점의 울퉁불퉁한 정도 등이 제각각이다.
 

이 사실은 우연한 기회에 법의인류학자들의 관심을 끌게 됐다. 10여 년 전 미군 부대의 한 창고에서 엑스선 필름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1940년대부터 미군들은 결핵 검사를 위해 의무적으로 흉부 엑스선을 찍어야 했는데, 이때 촬영한 필름 원본이었다. 이 필름은 60여 년이 지나도록 고스란히 창고에 보관돼 있다가, 필자가 근무하는 DPAA로 인계됐다. 법의인류 학자들은 하와이 국립묘지에 50년 넘게 이름 없이 묻혀 있던 한국전쟁 전사자의 쇄골과 척추 뼈를 생전의 형태로 배치한 뒤 엑스선을 찍어 생전의 엑스선과 비교했다. 그 결과 흉부 엑스선, 특히 쇄골의 형태를 비교하면 다른 검사 없이도 곧바로 신원 확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당시 이 뼈들은 1950년대에 약품 처리를 해서 DNA가 파괴돼 있었다. 신원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상황에서 쇄골의 가치는 더욱 빛났다.

필자가 아는 한 흉부 엑스선 검사와 DNA 검사를 모두 한 경우, 두 검사 결과가 불일치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현재 DPAA 감식소에서는 흉부 엑스선 검사의 정확성을 인정해 이를 DNA 검사, 치아 엑스선을 이용한 감식과 더불어 독립적인 신원 확인 방법으로 채택하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병원에서 흉부엑스선을 찍은 적이 있다면 불의의 사고에 연루됐을 때 내 신원 확인을 위한 보증 수표를 하나 마련해 놨다고 생각해도 좋다.

최근 신문 기사를 통해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정준원 이병의 신원을 확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렇게 전사한 가족의 뼈를 수십 년 만에 돌려받고 ‘이제 편히 죽을 수 있다’고 흐느끼는 노인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매일 하는 작업이지만 그때마다 얼마나 신중을 기해야 하는지도 새삼 깨닫는다. 법의인류학자가 신원 확인 결정을 할 땐 오류의 가능성이 없어야 하고, 또 실제로도 오류의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이처럼 신원 확인 과정에서의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는 건 이미 신원이 확실한 데이터가 마련돼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치아검색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 사용한 5만8000명의 자료, 흉부 엑스선 방법에 사용한 수만 장의 엑스선 필름들, 그리고 시체농장에 들어오는 수많은 기증자들이 바로 데이터다.

한국엔 한 해 평균 120건 이상 백골 시체가 발견된 다. 이들이 모두 유가족에게 성공적으로 돌아가려면 한국만의 법의인류학적 데이터가 필요하다.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에도 시체농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려오길 바라는 이유다.
 


2016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정양승 법의인류학자
  • 에디터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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