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방역에 구멍이 뚫리면서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정부는 결국 모든 가축에 구제역 백신을 맞히기로 결정했다. ‘그럴 거였으면 진작 접종하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충북대 수의대 강신영 교수는 “백신을 맞으면 상당 기간 ‘백신을 쓰지 않는 구제역 청정국’의 지위를 잃게 된다”며 “정부가 살처분 정책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구제역에 걸린 가축이 있는 농장과 인근 농장의 가축을 살처분해서 구제역이 진정된다면 구제역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가축이 더 이상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구제역에 살처분 정책을 고집했다가는 남아나는 가축이 없을 지경이다. 정책 전환이 불가피했던 셈이다. 그러나 백신을 쓰게 되면 당장은 위기를 넘길 수 있지만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는 길고 지난한 과정이 남는다. 왜 그럴까.
국제수역사무국(OIE)은 구제역과 관련해서 국가의 지위를 3단계로 나누고 있다. 백신을 쓰지 않는 청정국, 백신을 쓰는 청정국, 구제역이 있는 나라다. 백신 접종 여부에 따라 청정국을 나누는 이유는 백신을 맞힐 경우 구제역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수의검역과학원 박종현 연구관은 “백신 접종 전후에 구제역바이러스에 감염된 가축 가운데는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경우도 많은데 이 녀석들은 한동안 몸에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독동물(carrier)’이라고 부른
다”며 “이 동물들로부터 바이러스가 전파돼 주변 가축이 구제역에 감염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백신 정책을 쓰면 가축의 항체형성 여부를 검사해 보독동물을 가려낼 수가 없게 된다. 항체가 바이러스 때문에 생긴 건지, 백신을 맞아 생긴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라며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서만 생기는 비구조단백질(NP)에 대한 항체 여부를 검사하면 둘을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백신으로 구제역을 어느 정도 가라앉힌 뒤 항체검사로 구제역바이러스를 지니고 있는 가축을 선별해 살처분하는 과정을, 이런 개체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계속 진행해야 한다. 그 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강 교수는 “대만의 경우 1997년 구제역이 발생해 돼지 380만 마리를 살처분했고 결국 백신 정책을 썼다”며 “그 결과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백신을 쓰지 않는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번 구제역이 진정돼도 또 언제 어디서 구제역바이러스가 들어올지 알 수 없다”며 “선진국처럼 농장의 방역을 철저히 관리하는 시스템의 정착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국내 축산전염병 역사에서 최악의 사례인 이번 구제역 사태가 국내 가축방역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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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는 만능 백신?
한편 신종플루에 걸렸던 사람들은 고생한 보상을 얻었을지도 모른다는 연구 결과가 ‘실험의학저널’ 1월호에 실렸다. 미국 에모리대 백신센터와 시카고 의대 연구자들은 신종플루에 걸린 뒤 회복된 사람들의 혈액에서 항체를 얻어 다른 인플루엔자바이러스를 인식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최근 수년 동안 유행한 거의 모든 계절성플루바이러스와 심지어 AI바이러스까지 달라붙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실제로 실험동물에 치사량의 바이러스를 주사한 뒤 이 항체를 넣어주자 병에서 회복됐다. 연구자들은 “신종플루의 항체는 바이러스 단백질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나지 않는 영역을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가 오랫동안 찾고 있는 만능 백신이 실현될지도 모른다”고 희망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한반도 바이러스 대공습!
Part 1. 구제역 전파
Part 2. 숙주 특이성
Part 3. 백신 접종
구제역에 걸린 가축이 있는 농장과 인근 농장의 가축을 살처분해서 구제역이 진정된다면 구제역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가축이 더 이상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구제역에 살처분 정책을 고집했다가는 남아나는 가축이 없을 지경이다. 정책 전환이 불가피했던 셈이다. 그러나 백신을 쓰게 되면 당장은 위기를 넘길 수 있지만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는 길고 지난한 과정이 남는다. 왜 그럴까.
국제수역사무국(OIE)은 구제역과 관련해서 국가의 지위를 3단계로 나누고 있다. 백신을 쓰지 않는 청정국, 백신을 쓰는 청정국, 구제역이 있는 나라다. 백신 접종 여부에 따라 청정국을 나누는 이유는 백신을 맞힐 경우 구제역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수의검역과학원 박종현 연구관은 “백신 접종 전후에 구제역바이러스에 감염된 가축 가운데는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경우도 많은데 이 녀석들은 한동안 몸에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독동물(carrier)’이라고 부른
다”며 “이 동물들로부터 바이러스가 전파돼 주변 가축이 구제역에 감염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백신 정책을 쓰면 가축의 항체형성 여부를 검사해 보독동물을 가려낼 수가 없게 된다. 항체가 바이러스 때문에 생긴 건지, 백신을 맞아 생긴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라며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서만 생기는 비구조단백질(NP)에 대한 항체 여부를 검사하면 둘을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백신으로 구제역을 어느 정도 가라앉힌 뒤 항체검사로 구제역바이러스를 지니고 있는 가축을 선별해 살처분하는 과정을, 이런 개체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계속 진행해야 한다. 그 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강 교수는 “대만의 경우 1997년 구제역이 발생해 돼지 380만 마리를 살처분했고 결국 백신 정책을 썼다”며 “그 결과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백신을 쓰지 않는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번 구제역이 진정돼도 또 언제 어디서 구제역바이러스가 들어올지 알 수 없다”며 “선진국처럼 농장의 방역을 철저히 관리하는 시스템의 정착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국내 축산전염병 역사에서 최악의 사례인 이번 구제역 사태가 국내 가축방역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Contents/201101/백신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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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은 가장 먼저 발견된 동물 바이러스임에도 여전히 골치 아픈 존재다. 워낙 감염성이 커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도 한 요인이다. 미국은 육지에서 2.4km 떨어진 플럼 섬에 동물질병센터(아래)를 지어 구제역을 연구하고 있다.]
신종플루
사망 가능성 낮지만 안심할 순 없어
“촉망받던 뮤지컬 배우 ‘올리비아 바네트’가 지난 일요일(1월 2일) 숨을 거뒀다.”
올해 17세인 영국의 뮤지컬 유망주의 사망소식을 다룬 기사다. 영국은 이번 겨울 들어 신종플루가 다시 유행하면서 이미 2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나라도 상황은 비슷하다. 병원마다 신종플루 환자가 넘치고 있고 10여 명이 사망했다. 특이한 사실은 사망자 다수가 감염되기 직전까지 건강했던 청장년이나 청소년이란 점. 주로 면역력이 약한 노인들이 희생되는 기존 계절성플루(독감)와 다른 패턴이다. 왜 그럴까.
미국 밴더빌트대 퍼난도 폴랙 교수팀은 신종플루로 사망한 청장년 환자 23명의 폐조직을 검사한 결과 이들의 면역계가 ‘광란에 빠져’ 결국 스스로를 파괴했다는 사실을 발견해 지난해 12월 의학저널 ‘네이처 메디슨’에 보고했다.
연구팀이 환자들의 폐조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자 ‘C4d’라는 단백질이 잔뜩 쌓여 있었다. C4d는 항체와 결합해 바이러스를 무찌르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들의 몸에 아직 신종플루바이러스를 표적으로 삼는 항체가 형성돼 있지 않았던 것. C4d는 그 대신 전에 환자가 몇 차례 앓았을 계절성플루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활성화시켰다.
그러나 계절성플루바이러스의 항체는 신종플루바이러스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지 못했고,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인체의 면역계는 C4d를 계속 만들어 냈다. 폴랙 교수는 “결국 C4d-항체 복합체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환자의 혈관에 구멍을 낸 것으로 보인다”며 “그 결과 폐에 물과 혈액이 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1918년 스페인플루나 2003년 사스도 그랬지만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하면 청장년층이나 어린이에 더 치명적인 경향이 있다”며 “병원을 찾은 신종플루로 사망할 확률은 매우 낮지만 감염 이전의 건상상태로 예측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에는 환자의 유전적 요인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나 아직 밝혀진 사실은 없다.
우리나라는 지난 시즌 1400만 명, 이번 시즌 1600만 명이 신종플루백신을 접종했기 때문에 크게 번질 가능성은 낮다. 다만 김 교수는 “병원을 찾는 신종플루 환자 대다수는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이라며 “다만 백신의 항체 생성률이 80% 수준이기 때문에 백신을 맞았어도 신종플루에 걸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신종플루바이러스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진 이유도 밝혀졌다. 미국 스크립연구소 이언 윌슨 박사팀은 전염성을 좌우하는 신종플루바이러스의 표면단백질 구조가 1918년 스페인플루바이러스와 거의 똑같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해 4월 16일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바이러스 껍질만 보면 스페인플루바이러스가 91년 만에 컴백한 셈이다. 스페인플루는 단시간에 전 세계를 휩쓸며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 최악의 팬더믹으로 기록됐다. 다행히 병원성을 결정하는 부분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치사율은 신종플루가 훨씬 낮다.
신종플루
사망 가능성 낮지만 안심할 순 없어
“촉망받던 뮤지컬 배우 ‘올리비아 바네트’가 지난 일요일(1월 2일) 숨을 거뒀다.”
올해 17세인 영국의 뮤지컬 유망주의 사망소식을 다룬 기사다. 영국은 이번 겨울 들어 신종플루가 다시 유행하면서 이미 2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나라도 상황은 비슷하다. 병원마다 신종플루 환자가 넘치고 있고 10여 명이 사망했다. 특이한 사실은 사망자 다수가 감염되기 직전까지 건강했던 청장년이나 청소년이란 점. 주로 면역력이 약한 노인들이 희생되는 기존 계절성플루(독감)와 다른 패턴이다. 왜 그럴까.
미국 밴더빌트대 퍼난도 폴랙 교수팀은 신종플루로 사망한 청장년 환자 23명의 폐조직을 검사한 결과 이들의 면역계가 ‘광란에 빠져’ 결국 스스로를 파괴했다는 사실을 발견해 지난해 12월 의학저널 ‘네이처 메디슨’에 보고했다.
연구팀이 환자들의 폐조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자 ‘C4d’라는 단백질이 잔뜩 쌓여 있었다. C4d는 항체와 결합해 바이러스를 무찌르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들의 몸에 아직 신종플루바이러스를 표적으로 삼는 항체가 형성돼 있지 않았던 것. C4d는 그 대신 전에 환자가 몇 차례 앓았을 계절성플루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활성화시켰다.
그러나 계절성플루바이러스의 항체는 신종플루바이러스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지 못했고,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인체의 면역계는 C4d를 계속 만들어 냈다. 폴랙 교수는 “결국 C4d-항체 복합체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환자의 혈관에 구멍을 낸 것으로 보인다”며 “그 결과 폐에 물과 혈액이 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1918년 스페인플루나 2003년 사스도 그랬지만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하면 청장년층이나 어린이에 더 치명적인 경향이 있다”며 “병원을 찾은 신종플루로 사망할 확률은 매우 낮지만 감염 이전의 건상상태로 예측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에는 환자의 유전적 요인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나 아직 밝혀진 사실은 없다.
우리나라는 지난 시즌 1400만 명, 이번 시즌 1600만 명이 신종플루백신을 접종했기 때문에 크게 번질 가능성은 낮다. 다만 김 교수는 “병원을 찾는 신종플루 환자 대다수는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이라며 “다만 백신의 항체 생성률이 80% 수준이기 때문에 백신을 맞았어도 신종플루에 걸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신종플루바이러스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진 이유도 밝혀졌다. 미국 스크립연구소 이언 윌슨 박사팀은 전염성을 좌우하는 신종플루바이러스의 표면단백질 구조가 1918년 스페인플루바이러스와 거의 똑같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해 4월 16일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바이러스 껍질만 보면 스페인플루바이러스가 91년 만에 컴백한 셈이다. 스페인플루는 단시간에 전 세계를 휩쓸며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 최악의 팬더믹으로 기록됐다. 다행히 병원성을 결정하는 부분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치사율은 신종플루가 훨씬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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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는 만능 백신?
한편 신종플루에 걸렸던 사람들은 고생한 보상을 얻었을지도 모른다는 연구 결과가 ‘실험의학저널’ 1월호에 실렸다. 미국 에모리대 백신센터와 시카고 의대 연구자들은 신종플루에 걸린 뒤 회복된 사람들의 혈액에서 항체를 얻어 다른 인플루엔자바이러스를 인식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최근 수년 동안 유행한 거의 모든 계절성플루바이러스와 심지어 AI바이러스까지 달라붙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실제로 실험동물에 치사량의 바이러스를 주사한 뒤 이 항체를 넣어주자 병에서 회복됐다. 연구자들은 “신종플루의 항체는 바이러스 단백질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나지 않는 영역을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가 오랫동안 찾고 있는 만능 백신이 실현될지도 모른다”고 희망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한반도 바이러스 대공습!
Part 1. 구제역 전파
Part 2. 숙주 특이성
Part 3. 백신 접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