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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아비사랑

황제펭귄의 죽음 무릅쓴 '부화 작전'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식에 대한 어미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진다.그런데 모정에 못지 않은 처절한 아비 사랑을 보여주는 동물이 있다.펭귄은 종족 보존을 위해 수컷이 죽음도 불사하고 '몸을 던져'끔찍이 새끼를 돌본다.
 

목숨 걸고 알을 품는 처절한 부성애를 보여주는 황제펭귄 수컷.알을 낳느라 진이 빠진 암컷을 배려한 행동이다.


어느 생물이나 종족을 남기고 더 많은 후손을 퍼뜨리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종내(種內), 종간(種間)의 다툼은 모두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해 남보다 풍부하게 먹이를 얻어서 새끼를 더 많이 치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하늘, 바다, 땅 속 등 지구의 어느 한구석도 조용하고 평화롭지 못하다. 풀과 나무, 물고기, 새는 물론 사람도 그 범주를 벗어날 수가 없어서 나라 사이에도 땅덩어리 하나를 놓고 서로 내것이라고 으르렁거린다. 에너지가 없이는 자식을 키울 수가 없으니 모두가 공간을 넓히고 먹거리를 훨씬 많이 차지하려고 싸움에 열중한다.

하지만 더 가까이 가서 그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절대로 싸움만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돕는 상부상조의 정신도 눈에 띈다. 그래서 생물계를 볼 때는 ‘경쟁’과 ‘협동’이라는 두 잣대를 놓고 봐야 한다. 한 가정을 들여다봐도 여러 자식들이 먹는 것, 입는 것을 가지고 박이 터지라고 다툼질을 하지만 이들은 서로 없으면 한시도 못사는 피를 나눈 형제요 남매가 아니든가.

그런데 ‘종족 보존’의 관점에서 보면 경쟁도 협동도 아닌 오직 자기희생만이 존재한다. 어미와 아비의 사랑이 그것이다.
 

동물의 아비사랑


모성애 근원은 호르몬?

잘 알다시피 아비와 어미의 자식에 대한 희생 농도는 크게 차이가 난다. 사람에서도 아버지의 사랑은 자식을 이렇게 저렇게 키운다는 끄나풀이 달려있는 ‘조건의 사랑’이라면 어머니의 사랑은 개가 새끼를 아끼는 것과 조금도 다름없는 ‘무조건의 사랑’이다. 어디에서 이런 차이가 나오는 것일까. 지고지순한 모정의 뿌리는 무엇이며 그 샘은 어디인가.

한가지 가능한 설명으로 모정과 부정의 차이가 내분비물질인 호르몬 때문에 발생한다는 가설이 있다. 예를 들어 병아리 암컷에 수컷호르몬을 주사하면 머리의 볏이 커지고 싸움 발톱이 자라나면서 거친 행동을 한다. 물론 반대로 처리한 경우 수탉은 그만 암탉처럼 변해버린다. 사람의 경우도 어려서 어떤 원인으로 남성호르몬을 만드는 고환을 잃은 남자아이는 커서도 어린이 소리를 내고 행동도 여자아이를 닮는다. 그렇다면 자식사랑의 원류 역시 호르몬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의 경우 묘하게 남녀 모두 양쪽의 호르몬을 다 만들어내지만 남자의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과 여성의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이 간에서 분해된다. 갑자기 홀아비가 된 사람의 피 속에 여성호르몬이 늘어나고, 남편을 잃은 여인은 남성호르몬이 증가해 남성화된다. 또 여성은 늙어가면서 간 기능이 떨어져서 남성호르몬을 죄다 분해하지 못해 턱에 억센 털이 나고, 간이 지극히 나쁜 남성은 여성호르몬을 분해하지 못해 유방이 커진다. 남성이 늙으면 얼굴이나 행동이 여성화되는 것도 모두 호르몬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그런데 어느 동물이나 새끼를 키우는 것은 대부분 어미의 몫이다. 어미의 본능은 엄청나다는 것을 집에서 개가 새끼를 낳을 적에 쉽게 경험할 수 있다. 하물며 제 아비인 수컷이 제 새끼를 해코지 할 것을 두려워해 수캐의 접근을 막기까지 한다.

모성애란 호르몬이 일으키는 행동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직접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먹이 한번 제대로 먹지 않고 알 안기만을 시작하려는 어미 닭에다 수컷호르몬을 주사했다. 그러자 어느새 본능이 사라져 둥지를 박차고 내려오고 말았다. 호르몬은 이처럼 무서운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는 놈이다. 이런 실험의 예는 여기에 다 열거하지 못할 정도로 많다.

그런데 얄궂게도 고등동물에서 몇 녀석들은 전적으로 아비가 자식 양육을 책임지고 있다. 가장 흔히 알려진 것은 가시고기 무리다. 아비는 좋은 집을 지어놓고 암놈을 데려다 알을 놓도록 하고서는 새끼들이 다 커서 집을 나갈 때까지 보호한다. 또 남태평양 일부 지역에 살고 있는 극락조 무리도 집을 전적으로 수컷이 짓는다. 일부 열대 지방 개구리의 경우 수컷이 올챙이를 등에 업고 다닌다.

물론 이런 일은 동물계에서 아주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새끼는 모두가 어미가 키운다. 이 가운데 부성애의 극치를 느끼게 해주는 세 무리의 새끼 사랑 얘기가 있다. 그 주인공은 해룡(sea dragon)이라는 물고기와 키위(kiwi), 그리고 펭귄이다.


이빨이 없어 파이프 모양의 주둥이로 음식을 빨아먹는다.


해룡은 수컷이 임신

우연히도 이 세 무리는 모두 우리의 반대쪽 남반부인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남극에 서식한다. 그런데 남반부는 여성성을 상징하는 음기(陰氣)가 거세어서 동물은 물론 사람의 경우에도 수컷이 밥하고 설거지하며 새끼를 키운다는 농담이 있다(필자가 보기에 사람의 경우 여성이 드센 것이 아니고 이 지역의 조상이 여자를 끔찍이 아끼는 영국인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해룡은 해마(sea horse)와 사촌뻘이 되는 사이인데, 둘다 수컷이 새끼주머니(보육낭)를 가지고 있다. 아비가 도맡아 새끼를 이 주머니에 넣어서 보호하고, 다 키워서 내보내는 것이다.

해룡은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해안에만 사는 특산종인 실고기과(科) 물고기다. 우리나라에도 이 과에 속하는 생태가 꽤 유사한 해마와 실고기가 살고 있다.

해룡의 몸은 온통 고리 모양의 딱딱한 비늘로 덮여 있으며, 주둥이가 관(pipe) 모양이라 영어로 ‘pipe fish’라고 불린다. 이빨이 없어서 씹지 못하고 작은 새우 무리를 이 ‘빨대’로 빨아먹는다. 행동이 아주 느리고 공격·방어 무기도 제대로 없이 단지 물풀에 몸을 기대 얹어 지낸다. 다만 꼴이 수초를 닮아서 보호색으로만 다른 물고기에 잡혀 먹히지 않고 겨우 살아나간다.

산란기가 되면 암수는 서로 레슬링 하듯이 엉켜 붙어서 얼마 동안 애무를 한다. 그러다 갑자기 암컷이 수컷 가슴팍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주머니에 2백여개의 알을 산란한다. 농밀한 에너지를 지닌 알을 쏟아버린 암컷은 기진맥진해 죽은 듯이 옴짝달싹도 못하다가 하루가 지난 다음날에야 생기를 찾고 먹이 먹기를 시작한다. 자식 낳기란 이렇게 힘이 드나보다.

산란 순간에 수컷의 정자를 받은 수정란은 발생을 시작하며 주머니 입구는 닫힌다. 그 속에서 새끼는 4-5주를 머물며 2cm 크기로 자란 후 주머니를 열고 밖으로 나온다. 자식을 품에 안고 보호하는 아비의 의무가 마쳐지는 순간이다.

해룡 수컷은 왜 이다지도 자식 돌보기에 바쁠까. 아마도 해답은 해룡의 ‘무력함’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워낙 약하디 약한 개체이다 보니 종족 보존을 위해서는 부부간에 적절한 역할분담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암컷이 알을 낳을 뿐 아니라 새끼까지 기르면 진을 다 뺏겨 어디 또다시 새끼를 낳을 수 있겠는가. 특히 알을 낳은 후 기진맥진한 틈에 적이 나타나면 피할 기력이라도 있겠는가.

이런 사정은 키위에게도 마찬가지다. 키위는 괴이하게도 이 세상에서 오직 뉴질랜드에만 살고 있는 원시조(原始鳥)로서 날갯죽지가 발달하지 못해서 날지를 못한다.

이 새는 야행성이라서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암컷은 음치라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단지 수컷이 날카롭게 ‘키위, 키위’ 소리를 내니 여기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방어 무기는 발가락 끝에 생긴 커다랗고 예리한 발톱이 전부다. 이곳에 육식하는 동물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있었으면 키위는 벌써 씨가 말랐을 뻔했다.

몸 길이 50cm에 지나지 않는 이 작은 새는 한 배에서 2개의 알을 낳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알의 무게는 4백50g이나 된다. 달걀 무게(60g)의 7배를 넘는 수치다. 알이 크면 그만큼 발육이 진행돼 덩치가 큰 새끼가 태어나기 때문에 어린 시절 자연생존율이 훨씬 높아진다.

문제는 아비가 죽을 맛이라는 점이다. 암컷은 알만 놓고는 알이 식기도 전에 매정하게도 들판에 달려나가 먹이를 주어먹고 있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암놈의 알이 너무나 크다는데 생각을 멈춰보자. 만일 이 큰 알을 낳아서 품기까지 암컷이 행한다면 키위의 개체수는 엄청나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큰 알을 낳는데 뺏겨버린 기력을 회복하기도 전에 알을 품기까지 하면 힘에 겨운 나머지 나중에 제대로 또다른 알을 낳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성애는 본능, 부성애는 후천성


뉴질랜드의 날지 못하는 새 키위.어미가 낳은 알을 품는 것은 전적으로 아비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펭귄 아비의 사랑이 얼마나 처절한가를 보자. 세계적으로 펭귄은 17종이 있는데, 이 중에서 가장 큰놈인 ‘황제펭귄’의 일면이 흥미롭다. 이들은 키가 90cm나 되고 멀리서 보면 사람 모습과 흡사해 ‘인조’(人鳥)라는 별명을 가졌다.

물에서 고기를 잡아야 하기에 날개가 지느러미를 닮았고 다리에는 물갈퀴가 있는 ‘괴물 새’다. 어쩌겠는가. 태어난 곳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니 그보다 더한 탈바꿈도 해야 한다.

흥미롭게도 펭귄은 발정기에 다다르면 암컷이 수컷 쟁탈전을 벌인다. 수컷들이 암컷을 차지하려고 싸움을 한다는 소리는 들어도 암컷이 수컷을 서로 차지하겠다니 웃기는 일이다. 그것도 다 이유가 있다.

황제펭귄은 크기가 야구공 두배 만한 큰 알 한개를 낳는다. 알이 부화하기까지 무려 두달이 넘는 65일이 걸리는데, 그동안 쉬지 않고 알을 품는 놈은 어미가 아닌 아비다. 추운 곳일수록 부정이 강해지는 것일까. 펭귄 암컷은 알을 낳아놓고는 바다로 내빼버리고, 수컷은 이 알을 두발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살며시 쪼그리고 앉아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추위와 긴 겨울의 어둠을 견딘다. 말이 그렇지, 얼마나 허기에 시달리겠는가.

새끼가 깨는 날이 되면 아비의 몸에서는 기름기가 다 빠져버리고 체중은 1/3로 줄어 죽음 직전에 놓이게 된다. 무서운 부정(父情)이다.

새끼가 깨어날 즈음 살이 오를대로 오른 어미는 뱃속에 먹이를 가득 채워와 새끼를 먹이면서 다음 알 낳을 준비를 한다. 키위와 마찬가지로 이 큰 알을 낳은 어미가 긴 시간 알을 품는다고 가정하면, 더이상의 새끼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어미는 추위와 허기에 지쳐 죽고 말았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강한 수컷을 서로 차지하려고 암컷 사이에서 수컷 빼앗기 다툼이 있는 것이다.

사람도 질병에 자식을 잃기 쉬웠던 옛날에는 다산을 했다. 또 어려운 살림에 부부가 직장을 나가는 집안에는 아버지가 아이들 키우는데 큰 몫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다른 동물도 종족 보존을 위해서 자연적으로 그렇게 진화한 것이다.

이렇듯 모성애가 본능이라면 부성애는 후천성을 가지는 모양이다. 모성애 못지 않게 부성애 역시 너무나 숭고하다. 가족의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 그리고 묵묵한 애정 표현이 바로 아비의 사랑인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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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진행

    임혜경
  • 권오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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