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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9:화성 일 년 살기]상추로 우주의 평화를 수호하다

“거기 갈 거면 나랑 헤어지고 가.”

 

몇 분간 침묵하던 여자친구가 말했다. 2014년 극지연구소에서 남극대륙에 장보고 과학기지를 세우면서 한국은 세계에서 열 번째로 두 개 이상의 남극 상주기지를 운영하는 나라가 됐다. 그즈음 나는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월동대원을 모집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지원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여자친구는 사귄 지 일 년 남짓 된 남자친구가 남극으로 떠나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는 뜻을 강력하게 표현했다. 나는 일과 사랑을 저울질하다 사랑을 택했다.

 

그때의 여자친구는 이제 배우자가 됐다. 그리고 25년이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또다시 대원 모집 포스터를 마주했다. 포스터 속에서 나를 부른 건 남극보다도 거친 땅, 화성이었다. 고민에 빠져있는데 그녀가 이번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녀와. 우리 그동안 오래 같이 지냈잖아?”


화성에 평화를 가져다 줄 해결사로 나서다

2035년, 인류는 화성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세계 각국은 앞다투며 화성에 유인 우주기지를 세웠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화성연구소를 설립해 화성에서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지를 가늠했다. 기지에는 정조 과학기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정조 임금이 경기도 수원에 세운 수원화성에서 유래한 이름 아닐까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게 문제다. 심지어 한자도 다르다. 그런데도 투표를 거쳐 뽑혔다니이처럼 세상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내가 급히 화성에 파견된 전말도 그렇다.

 

나는 농업 전문가다. 화성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는 “네가? 왜?” 되묻는 사람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게, 천문학자와 지질학자, 기상학자, 생물학자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화성 탐사대원 중에서 지금까지 농업 전문가는 없었다. 그동안 화성에 농업 전문가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정조 과학기지에는 열 명의 대원이 파견돼 임무를 수행한다. 대원들은 5명씩 두 조로 나뉘어 화성 시간 기준 6개월 간격으로 교대로 화성에서 임무를 수행한다(화성의 공전 주기는 약 687일이기 때문에 6개월이 지구의 1년과 유사하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화성 탐사 대원들이 지구를 떠나 있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지구에서 화성까지 짧게는 128일부터 길게는 333일이 걸린다. 운이 나쁘면 왕복하는 우주선에서만 2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런 극한 환경에서는 사소한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아주 큰 사건으로 번지고는 한다. 화성 정조 과학기지에선 ‘밥’이 바로 그런 문제점이었다. 대원들이 고된 임무를 수행하는데 비해 먹을 것이 너무 형편없었다. 최초 화성 탐사 계획에서는 비용을 아끼고자 최소한의 식량만 우주선에 실어 보냈다. 딱 먹고 살 수만 있는 식량이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식량은 영양 성분만 고려해 튜브에 담긴 치약 같거나, 반건조 진공 포장 상태였다. 6개월 넘게 매일매일 삼시세끼 치약을 짜 먹는다고 생각해보라. 화성 탐사대원들은 괜찮은 먹을거리를 제공해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화성에서의 짧은 인류사에서 최초의 파업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결국 정부는 감정이 격해진 대원들을 달래기 위해 화성에서 식량을 생산하기 위한 농업 전문가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그게 나였다.

 

상추 수직농장을 세우다

 

2039년 7월, 화성에 도착했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큰 것 하나와 작은 것 하나다. 큰 임무는 절대로 실패하면 안 되는 것, 대원들이 먹을 충분한 양의 신선한 농작물을 생산하는 일이다. 작은 임무는 정조 과학기지 밖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5년 전에 달에 세운 기지는 모든 식량을 지구에서 공수했다. 달에서는 식량이 부족해지더라도 긴급한 경우라면 5일 이내에 직접천이방식(direct transfer・대량의 연료를 소모하면서 빠르게 목표 천체로 접근하는 방식)으로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다. 그래서 아직도 달 기지에는 농업 전문가가 없다. 달에서 식량을 얻을 지속 가능한 방식을 고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성은 멀다. 지구에서 식량을 가져오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차라리 화성 기지에서 직접 식량을 생산하는 것이 비용과 시간 측면에서 효과적이다.

 

내가 화성에서 처음으로 재배한 작물은 상추다. 상추는 한 달 이내에 충분히 성장해 수확할 수 있는 작물이고, 이미 지구상에서 많은 연구가 이뤄진 국화과 식물이다. 게다가 한국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쌈용 채소이며, 간단하게 샐러드를 만들어 먹기에도 좋다.

 

상추를 재배하기 위해 정조 과학기지 내부에 재배실을 설치했다. 내부에서 수분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재배실 내부 밀폐도를 높이고, 그 안에 재배장치를 여러 층으로 쌓아 상추를 길렀다. 이렇게 작물을 다단식으로 재배하는 방식을 ‘수직농장’ 기술이라고 부른다. 수직농장은 지구에서도 많이 연구됐다. 좁은 면적에서 많은 양의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위로 쌓아 올리는 다단식 구조가 가장 적합하다.

 

그런데 이런 모양의 재배 장치에는 햇빛이 잘 들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때문에 수직농장에서 상추가 광합성 하는데 필요한 빛은 대부분 발광 다이오드(LED)로 공급해야 했다. 이처럼 빛이 부족한 환경에서 작물이 정상적으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조명을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기 에너지를 쓰게 되지만, 안정적으로 상추를 기를 수 있는 방식이다.

 

또한 여러 층으로 쌓인 수직농장에는 흙을 전혀 넣지 않고 양분을 섞은 물만 공급했다. 식물의 뿌리 끝부분만 살짝 물에 잠기도록 하는 박막수경 방식을 썼다. 요즘에도 초등학생들은 방학 숙제로 물컵에 양파를 담아서 키운다고 들었다. 이렇게 물이 담긴 통에 식물을 꽂아 키우는 방식을 담액수경 방식이라고 부르는데, 담액수경 방식으로 수직농장을 만들면 물의 무게 때문에 구조물에 더 많은 금속을 써야 한다. 튼튼한 재료가 부족한 화성에서 이런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반면 박막수경 방식은 물을 조금만 쓰고도 작물을 재배할 수 있게 해준다. 무중력 상태가 아니라면 잘 작동하기 때문에 화성 외에도 많은 우주기지에서 박막수경 방식의 재배법을 이용할 수 있다.

 

상추 위에 3D 프린팅 삼겹살 한 점

 

수직농장에서 재배한 상추를 수확하는 날, 정조 과학기지에서는 파티가 열렸다. 대원들은 3차원(3D) 프린터로 고기를 인쇄해 상추에 싸서 먹었다. 단백질과 지방으로 된 식품용 원료를 넣어주면 삼겹살과 아주 비슷하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 고기가 인쇄돼 나온다. 3D 프린터로 만든 고기는 익히지 않고 그냥 먹어도 되지만, 대원들은 구워야 한다며 용접용구를 가져다 소란을 떨었다. 선내 발화를 감지한 기지 시스템이 경고음을 요란하게 울려 대고 나서야 대원들의 흥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다음에는 결구 상추를 재배해서 샐러드를 만드는 쪽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직농장 장치를 이용해서 대원들이 먹을 식량을 생산하는 일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시작됐다. 앞으로 남은 임무 기간 동안 상추 외에도 다른 식량을 생산하는 임무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작은 임무에 대한 생각 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무겁다. 밀폐된 정조 과학기지 외부, 그러니까 화성의 표면에서 직접 작물을 재배해내야 한다. 기지 밖은 평균기온 영하 55℃, 물은 기체 또는 고체로만 존재하며, 대기 농도가 지구의 1%인 그야말로 극한 환경이다. 화성에서 인간이 살 수 있게 하려면 지구처럼 다양한 생물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우선 한 발짝씩 떼 보기로 했다. 상추는 재배하기 쉽지만 화성의 험한 환경에서 자라기엔 무리다. 좀 더 튼튼한 작물을 생각하다가 케일이 떠올랐다.

 

정대호. 연암대 스마트원예계열 교수로 서울대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식물 광합성 모델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jdhenv@yonam.ac.kr

2023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정대호 연암대 스마트원예계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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