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생물을 손 놓고 바라볼 수는 없다. 과거보다 1000배 빠른 속도로 달리는 멸종의 시계를 멈출 긴급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행히 인간은 멸종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파수꾼이기도 하다. 멸종을 막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적색목록집’부터 생물 종 복원까지, 과학동아가 선정한 5가지 주요 대책을 살펴보자.
1. 생명 살리는 ‘빨간 리스트’
페루의 잉카 유적지에서 유독 자주 출토되는 유물이 있다. 라마와 낙타, 타조를 섞어 놓은 듯한 동물을 본뜬 황금 술잔이다. 이 동물의 이름은 비쿠냐. 알파카와 함께 라마과에 속하는 포유류로 지금도 페루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야생동물이다. 하지만 비쿠냐의 털이 옷감으로 쓰이면서 1970년대 중반에는 개체수가 6000마리까지 줄어들었다. 남아메리카 국가들은 보호구역을 지정하고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해 반출을 철저히 보호했다. 약 30년이 지난 2008년, IUCN은 비쿠냐의 개체수가 35만 마리로 늘었기 때문에 적색목록집에서 가장 낮은 등급을 받아도 충분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멸종위기종을 보호하려면 먼저 규모가 크고 신뢰성이 높은 자료가 필요하다. 연도별, 지역별 비교 연구를 정확하게 해야 가장 알맞은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런 조건에 맞는 조사 자료는 IUCN의 적색목록집이다. 조사 항목이 가장 상세한데다 매년 새로운 종을 추가해 보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1만6000여 종이었던 조사 종은 2010년 4월, 5만 5926종으로 늘었고, 2010년 말에는 6만 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52개 종이 멸종위기종으로 보고돼 있으며 국립생물자원관을 중심으로 고유종 목록을 등록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적색목록집을 활용한 대표적인 예가 지난 10월 26일 ‘사이언스’를 통해 공개된 논문이다. 목록에 오른 생물 가운데 2만 5780종을 뽑아 연도별로 위기 등급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추적한 연구다. 한 해에 평균 52종의 포유류와 조류, 양서류가 적색목록 등급이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적색목록 등급은 참여한 학자들이 서식지, 위협 요인, 대책의 세 가지 항목을 평가해 정된다. 등급이 올라갔다는 것은 그만큼 멸종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연도별 비교 연구는 생물 보전 정책이 얼마나 적절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판단할 때 쓰인다. 등급이 바뀐 928종 대부분이 위기 등급이 올라갔지만, 반대로 등급이 낮아진 생물도 68종이 발견됐다. 이 가운데에는 캘리포니아 콘도르처럼 사실상 멸종 단계이던 동물이 다시 야생 상태에서 번식하기 시작한(‘재도입’) 경우도 있었다. 비쿠냐 역시 보전 대책 덕분에 종이 복원된 경우로 꼽힌다.
2. 야생동물 보호구역부터 아기사자 돌보기까지
배 아래 컴컴한 바다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올라온다. 10m는 족히 넘는 크기다. 아른아른 보이는 지느러미와 꼬리를 보니 혹등고래다. 혹등고래를 만났다는 사실에 배 위의 사람들이 박수와 함께 환호를 보낸다.
세계적인 에코투어 여행지로 꼽히는 호주 탕갈루마 리조트의 앞바다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에게 고래는 상상력과 감수성을 자극하는 해양생태계의 인도자다. 그래서일까. 탕갈루마에서는 기름을 짜거나 먹기 위해 고래를 사냥하는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에코투어가 시작된 1992년 이전만 해도 이곳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호주 최대의 포경 기지로 무수히 많은 고래를 잡아 죽이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1952년부터 1962년까지 10년 동안만 6700마리 이상의 혹등고래가 죽었다. 1952년 1만 마리가 넘었던 혹등고래는 1962년에는 300마리도 남지 않았다. 다행히 포경이 금지되면서 혹등고래의 수가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때 멸종위기에 이르렀던 고래가 살아남게 된 것은 바로 1992년부터 시작된 에코투어 덕분이다.
에코투어는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제3의 방안을 찾는 방법이다.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은 잘 보존된 자연을 보호하는 일이다. 르완다의 마운틴 고릴라, 아르헨티나의 마코 앵무새, 코스타리카의 열대 우림과 같이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과 절멸 위기에 처한 자연을 구하기 위해 적극 개입한다. 다국적 자본의 독점이나 원주민 집단 이주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산업단지 건설 등으로 뿌리째 훼손될 수 있었던 아프리카의 자연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최근 에코투어는 동물보호단체나 환경단체와 함께하는 자원봉사관광(voluntourism)의 형태를 띠고 있다. 영국의 경우 매년 1만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75개국 324개 프로젝트에 참가한다. 이들은 아프리카에서 어미 잃은 사자를 돌보거나 태국에서 코끼리를 목욕시킨다. 코스타리카에서 거북을 보살피기도 한다.
짧게는 2주, 길게는 1년까지 가는 이 자원봉사관광이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에코투어가 개발로부터 자연을 보호하고, 관광객이 자연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도록 이끌어 준다는 점만은 부정할 수 없다.
3. 사라진 황새의 날갯짓을 다시 보기까지
1971년 4월, 충북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에서 한 쌍의 황새가 카메라에 잡혀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1900년대 초까지 하천이 범람하는 평야에 흔한 텃새였던 황새는 밀렵과 전쟁, 그리고 경지 정리를 거치며 1960년대 이후로는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사람들은 이 황새가 번식을 통해 후손을 널리 퍼뜨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희망도 잠시, 불과 3일 후 수컷 황새가 사냥꾼이 쏜 총에 맞아 죽고 말았다. 이후 홀로 남은 암컷 황새는 3년 동안 무정란을 낳으며 둥지를 지키다 1994년 서울대공원에서 쓸쓸하게 죽었다. 한반도에서 황새가 사실상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멸종된 황새를 다시 한반도에서 볼 수는 없는 걸까. 다행히 황새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 일본의 습지에 아직 남아 있었다. 2년 뒤인 1996년, 한국교원대 황새복원센터는 한반도에서 사라진 황새를 복원하기로 하고 러시아에서 야생황새를 들여와 인공번식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번식이 쉽지 않았다. 가까운 사육장에서 키우기도 하고 같은 우리에 넣어 보기도 했지만 번식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7년 만인 2002년, ‘자연이’와 ‘청출이’라고 이름 붙은 수컷과 암컷이 한 쌍을 이뤄 ‘칠만이’라는 암컷 새끼를 부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로도 다양한 방법으로 번식을 늘리기 위해 노력한 결과, 넓은 우리 안에 어린 황새를 넣어서 사회화 훈련을 하면 번식률이 크게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방법을 도입하자 2~3년 만에 5쌍의 황새가 번식에 성공했다. 그 뒤로는 황새 개체수가 순조롭게 늘어나 2010년 현재 모두 97마리의 황새가 황새복원센터에 살고 있다. 번식에 성공했다고 복원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야생에 방생했을 때 사람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먹이를 찾을 수 있어야 진정한 복원이다. 이를 위해 기존 우리보다 3배 이상 넓고 높은 사육장에서 비행훈련도 하고, 습지에 살아 있는 붕어나 송사리를 넣어 줘 먹이를 잡아먹는 훈련도 시켜야 한다.
황새복원사업의 최종 목표는 과거처럼 야생 서식지에 황새들이 스스로 생존과 번식을 하는 상태다. 이를 위해서는 서식지인 논과 습지를 함께 복원해야 한다. 농경지 내에 둠벙(웅덩이)과 물고기 길(어도)을 다시 만들고 겨울에도 논에 물을 담아 두어야 한다. 화학비료 사용도 자제해야 한다. 현재 충남 예산군 광시면을 재도입 예정지로 정하고 2013년까지 둠벙과 어도가 있는 친환경 농촌으로 만들 계획이다.
4. 생물이 이삿짐을 싸는 이유
서울 남산 자락에는 현재 생물이 거의 없다. 산자락에 자리잡은 사람들 때문이다. 원래 생태학에서는 산의 경사가 시작되는 완만한 부분을 ‘산입구(mountain foot)’라고 해서 생물이 살기 좋은 지형으로 본다. 하지만 남산 아래에는 사람들이 일찍부터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흐르던 물줄기도 메워졌다. 물이 풍부한 산입구에 살던 저지대 생물은 어딘가 다른 지역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생물다양성은 크게 종 다양성, 유전적 다양성, 생태계 다양성으로 나뉜다. 가장 기본은 생태계 다양성이다. 다양한 생태계가 존재할 때 다양한 종이 살 수 있고, 그래야 유전자의 다양성도 높아져 생물다양성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생태계를 유지하려면 다양한 서식지를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생물의 서식지를 빼앗고 생태계를 교란시킨다. 도로나 건물을 지으며 생물이 사는 공간을 조각 내고 상품의 원료로 이용할 수 있다면 생물을 마구 채취하기도 한다. 오염물질을 배출하고 기후변화까지 일으켜 생태계에 일대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생태계의 교란은 결국 종 다양성과 유전적 다양성마저 해쳐 전체 생물다양성의 감소를 불러올 것이다. 이제 생물다양성을 위해 생태계 복원에 나서야 한다. 이때 복원은 도시 경관을 복원하거나 생물 개체를 복원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복원하고자 하는 생물의 생활사를 연구해 그에 관련된 환경 요소를 최대한 밝혀낸 뒤함께 복원해야 한다. 이렇게 생물과 환경이 맺은 유기적인 관계를 ‘생태적 복합체’라고 하며, 이를 복원해 내는 것을 ‘참 복원(true restoration)’이라고 한다.
참 복원을 실천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생물을 자신이 살던 원래 환경과 함께 그 자리에 복원하는 것이다. 이를 ‘서식지 내 보전’이라고 하며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모든 생물을 그 자리에 복원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다른 곳에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복원하는 ‘서식지 외 보전’이 중요한 대안이다. 식물원이나 동물원, 수목원이 대표적인 예다. 현재 국내에는 20개 기관이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돼 운영되고 있다. 환경부가 2012년 말 준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국립생태원 역시 그 중 하나로, 대중을 위해 생태 교육을 수행할 예정이다. 또 거대한 인공 생태계가 조성되므로 기후변화와 생태계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5. 멸종위기종 보호하는 유전자의 힘
야생동물은 1000만 종이 넘는 생물 중 일부에 불과하지만 실제 생태계에서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야생동물이 살 수 있도록 서식지를 보전하면 다른 많은 생물도 보전돼 생물다양성이 높아진다. 또 야생동물 중에는 인간과 친숙한 종이 많다. 그래서 지리산 반달가슴곰이나 한국호랑이처럼 그 지역의 문화적, 지리적 특성을 알리는 상징(깃대종)으로 뽑히기도 한다.
야생동물을 보전하기 위한 활동 중에 종 자체의 특성을 연구할 수 있도록 유전자를 수집해 보존하는 방법이 있다. 국내에서는 2002년 설립된 한국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이 유일하게 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유전자원은행은 전국의 야생동물구조센터로부터 야생동물의 혈액, 간, 심장 근육, 신장, 비장 등 5개 종류의 조직 시료를 신선한 형태로 제공받는다. 제공 받은 시료는 둘로 나뉘어 하나는 영하 70℃의 초저온에 얼려서, 다른 하나는 변질을 막는 용액에 담겨서 보존된다. 지금까지 1만 2000마리가 넘는 야생동물로부터 시료를 수집했으며, 외부기관에 제공한 시료도 5400건이 넘는다.
이들 시료를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다양하다. 먼저 쉽게 접할 수 없는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연구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된다. 최근 대구에 서식하는 수달과 경북 울진에 사는 산양의 개체수를 유전학 기법을 이용해 밝힌 연구도 유전자원은행의 연구 덕분이다. 또 우리나라의 고유종과 자생종의 유전적 다양성을 밝히는 연구에도 도움을 준다. 유전적 다양성은 생물다양성의 기본 요소이기 때문에 멸종위기종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파악해야 한다. 또 사람과 야생동물 사이에 공통으로 감염되는 사스(SARS)나 조류인플루엔자, 광견병 등의 질병을 연구할 수 있게 해 준다. 보통 근육 조직이 DNA를 추출하는 데 유리해 야생동물의 유전적 특징을 연구하는 데 쓰고, 나머지 시료는 질병을 연구하는 데 주로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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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SOS! 우리도 지구에서 살고 싶다
Part 1. 살아남은 50%의 슬픔
Part 2. 멸종의 시계를 멈춰라
1. 생명 살리는 ‘빨간 리스트’
페루의 잉카 유적지에서 유독 자주 출토되는 유물이 있다. 라마와 낙타, 타조를 섞어 놓은 듯한 동물을 본뜬 황금 술잔이다. 이 동물의 이름은 비쿠냐. 알파카와 함께 라마과에 속하는 포유류로 지금도 페루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야생동물이다. 하지만 비쿠냐의 털이 옷감으로 쓰이면서 1970년대 중반에는 개체수가 6000마리까지 줄어들었다. 남아메리카 국가들은 보호구역을 지정하고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해 반출을 철저히 보호했다. 약 30년이 지난 2008년, IUCN은 비쿠냐의 개체수가 35만 마리로 늘었기 때문에 적색목록집에서 가장 낮은 등급을 받아도 충분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멸종위기종을 보호하려면 먼저 규모가 크고 신뢰성이 높은 자료가 필요하다. 연도별, 지역별 비교 연구를 정확하게 해야 가장 알맞은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런 조건에 맞는 조사 자료는 IUCN의 적색목록집이다. 조사 항목이 가장 상세한데다 매년 새로운 종을 추가해 보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1만6000여 종이었던 조사 종은 2010년 4월, 5만 5926종으로 늘었고, 2010년 말에는 6만 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52개 종이 멸종위기종으로 보고돼 있으며 국립생물자원관을 중심으로 고유종 목록을 등록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적색목록집을 활용한 대표적인 예가 지난 10월 26일 ‘사이언스’를 통해 공개된 논문이다. 목록에 오른 생물 가운데 2만 5780종을 뽑아 연도별로 위기 등급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추적한 연구다. 한 해에 평균 52종의 포유류와 조류, 양서류가 적색목록 등급이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적색목록 등급은 참여한 학자들이 서식지, 위협 요인, 대책의 세 가지 항목을 평가해 정된다. 등급이 올라갔다는 것은 그만큼 멸종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연도별 비교 연구는 생물 보전 정책이 얼마나 적절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판단할 때 쓰인다. 등급이 바뀐 928종 대부분이 위기 등급이 올라갔지만, 반대로 등급이 낮아진 생물도 68종이 발견됐다. 이 가운데에는 캘리포니아 콘도르처럼 사실상 멸종 단계이던 동물이 다시 야생 상태에서 번식하기 시작한(‘재도입’) 경우도 있었다. 비쿠냐 역시 보전 대책 덕분에 종이 복원된 경우로 꼽힌다.
2. 야생동물 보호구역부터 아기사자 돌보기까지
배 아래 컴컴한 바다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올라온다. 10m는 족히 넘는 크기다. 아른아른 보이는 지느러미와 꼬리를 보니 혹등고래다. 혹등고래를 만났다는 사실에 배 위의 사람들이 박수와 함께 환호를 보낸다.
세계적인 에코투어 여행지로 꼽히는 호주 탕갈루마 리조트의 앞바다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에게 고래는 상상력과 감수성을 자극하는 해양생태계의 인도자다. 그래서일까. 탕갈루마에서는 기름을 짜거나 먹기 위해 고래를 사냥하는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에코투어가 시작된 1992년 이전만 해도 이곳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호주 최대의 포경 기지로 무수히 많은 고래를 잡아 죽이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1952년부터 1962년까지 10년 동안만 6700마리 이상의 혹등고래가 죽었다. 1952년 1만 마리가 넘었던 혹등고래는 1962년에는 300마리도 남지 않았다. 다행히 포경이 금지되면서 혹등고래의 수가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때 멸종위기에 이르렀던 고래가 살아남게 된 것은 바로 1992년부터 시작된 에코투어 덕분이다.
에코투어는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제3의 방안을 찾는 방법이다.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은 잘 보존된 자연을 보호하는 일이다. 르완다의 마운틴 고릴라, 아르헨티나의 마코 앵무새, 코스타리카의 열대 우림과 같이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과 절멸 위기에 처한 자연을 구하기 위해 적극 개입한다. 다국적 자본의 독점이나 원주민 집단 이주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산업단지 건설 등으로 뿌리째 훼손될 수 있었던 아프리카의 자연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최근 에코투어는 동물보호단체나 환경단체와 함께하는 자원봉사관광(voluntourism)의 형태를 띠고 있다. 영국의 경우 매년 1만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75개국 324개 프로젝트에 참가한다. 이들은 아프리카에서 어미 잃은 사자를 돌보거나 태국에서 코끼리를 목욕시킨다. 코스타리카에서 거북을 보살피기도 한다.
짧게는 2주, 길게는 1년까지 가는 이 자원봉사관광이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에코투어가 개발로부터 자연을 보호하고, 관광객이 자연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도록 이끌어 준다는 점만은 부정할 수 없다.
3. 사라진 황새의 날갯짓을 다시 보기까지
1971년 4월, 충북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에서 한 쌍의 황새가 카메라에 잡혀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1900년대 초까지 하천이 범람하는 평야에 흔한 텃새였던 황새는 밀렵과 전쟁, 그리고 경지 정리를 거치며 1960년대 이후로는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사람들은 이 황새가 번식을 통해 후손을 널리 퍼뜨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희망도 잠시, 불과 3일 후 수컷 황새가 사냥꾼이 쏜 총에 맞아 죽고 말았다. 이후 홀로 남은 암컷 황새는 3년 동안 무정란을 낳으며 둥지를 지키다 1994년 서울대공원에서 쓸쓸하게 죽었다. 한반도에서 황새가 사실상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멸종된 황새를 다시 한반도에서 볼 수는 없는 걸까. 다행히 황새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 일본의 습지에 아직 남아 있었다. 2년 뒤인 1996년, 한국교원대 황새복원센터는 한반도에서 사라진 황새를 복원하기로 하고 러시아에서 야생황새를 들여와 인공번식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번식이 쉽지 않았다. 가까운 사육장에서 키우기도 하고 같은 우리에 넣어 보기도 했지만 번식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7년 만인 2002년, ‘자연이’와 ‘청출이’라고 이름 붙은 수컷과 암컷이 한 쌍을 이뤄 ‘칠만이’라는 암컷 새끼를 부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로도 다양한 방법으로 번식을 늘리기 위해 노력한 결과, 넓은 우리 안에 어린 황새를 넣어서 사회화 훈련을 하면 번식률이 크게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방법을 도입하자 2~3년 만에 5쌍의 황새가 번식에 성공했다. 그 뒤로는 황새 개체수가 순조롭게 늘어나 2010년 현재 모두 97마리의 황새가 황새복원센터에 살고 있다. 번식에 성공했다고 복원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야생에 방생했을 때 사람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먹이를 찾을 수 있어야 진정한 복원이다. 이를 위해 기존 우리보다 3배 이상 넓고 높은 사육장에서 비행훈련도 하고, 습지에 살아 있는 붕어나 송사리를 넣어 줘 먹이를 잡아먹는 훈련도 시켜야 한다.
황새복원사업의 최종 목표는 과거처럼 야생 서식지에 황새들이 스스로 생존과 번식을 하는 상태다. 이를 위해서는 서식지인 논과 습지를 함께 복원해야 한다. 농경지 내에 둠벙(웅덩이)과 물고기 길(어도)을 다시 만들고 겨울에도 논에 물을 담아 두어야 한다. 화학비료 사용도 자제해야 한다. 현재 충남 예산군 광시면을 재도입 예정지로 정하고 2013년까지 둠벙과 어도가 있는 친환경 농촌으로 만들 계획이다.
4. 생물이 이삿짐을 싸는 이유
서울 남산 자락에는 현재 생물이 거의 없다. 산자락에 자리잡은 사람들 때문이다. 원래 생태학에서는 산의 경사가 시작되는 완만한 부분을 ‘산입구(mountain foot)’라고 해서 생물이 살기 좋은 지형으로 본다. 하지만 남산 아래에는 사람들이 일찍부터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흐르던 물줄기도 메워졌다. 물이 풍부한 산입구에 살던 저지대 생물은 어딘가 다른 지역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생물다양성은 크게 종 다양성, 유전적 다양성, 생태계 다양성으로 나뉜다. 가장 기본은 생태계 다양성이다. 다양한 생태계가 존재할 때 다양한 종이 살 수 있고, 그래야 유전자의 다양성도 높아져 생물다양성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생태계를 유지하려면 다양한 서식지를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생물의 서식지를 빼앗고 생태계를 교란시킨다. 도로나 건물을 지으며 생물이 사는 공간을 조각 내고 상품의 원료로 이용할 수 있다면 생물을 마구 채취하기도 한다. 오염물질을 배출하고 기후변화까지 일으켜 생태계에 일대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생태계의 교란은 결국 종 다양성과 유전적 다양성마저 해쳐 전체 생물다양성의 감소를 불러올 것이다. 이제 생물다양성을 위해 생태계 복원에 나서야 한다. 이때 복원은 도시 경관을 복원하거나 생물 개체를 복원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복원하고자 하는 생물의 생활사를 연구해 그에 관련된 환경 요소를 최대한 밝혀낸 뒤함께 복원해야 한다. 이렇게 생물과 환경이 맺은 유기적인 관계를 ‘생태적 복합체’라고 하며, 이를 복원해 내는 것을 ‘참 복원(true restoration)’이라고 한다.
참 복원을 실천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생물을 자신이 살던 원래 환경과 함께 그 자리에 복원하는 것이다. 이를 ‘서식지 내 보전’이라고 하며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모든 생물을 그 자리에 복원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다른 곳에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복원하는 ‘서식지 외 보전’이 중요한 대안이다. 식물원이나 동물원, 수목원이 대표적인 예다. 현재 국내에는 20개 기관이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돼 운영되고 있다. 환경부가 2012년 말 준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국립생태원 역시 그 중 하나로, 대중을 위해 생태 교육을 수행할 예정이다. 또 거대한 인공 생태계가 조성되므로 기후변화와 생태계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5. 멸종위기종 보호하는 유전자의 힘
야생동물은 1000만 종이 넘는 생물 중 일부에 불과하지만 실제 생태계에서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야생동물이 살 수 있도록 서식지를 보전하면 다른 많은 생물도 보전돼 생물다양성이 높아진다. 또 야생동물 중에는 인간과 친숙한 종이 많다. 그래서 지리산 반달가슴곰이나 한국호랑이처럼 그 지역의 문화적, 지리적 특성을 알리는 상징(깃대종)으로 뽑히기도 한다.
야생동물을 보전하기 위한 활동 중에 종 자체의 특성을 연구할 수 있도록 유전자를 수집해 보존하는 방법이 있다. 국내에서는 2002년 설립된 한국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이 유일하게 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유전자원은행은 전국의 야생동물구조센터로부터 야생동물의 혈액, 간, 심장 근육, 신장, 비장 등 5개 종류의 조직 시료를 신선한 형태로 제공받는다. 제공 받은 시료는 둘로 나뉘어 하나는 영하 70℃의 초저온에 얼려서, 다른 하나는 변질을 막는 용액에 담겨서 보존된다. 지금까지 1만 2000마리가 넘는 야생동물로부터 시료를 수집했으며, 외부기관에 제공한 시료도 5400건이 넘는다.
이들 시료를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다양하다. 먼저 쉽게 접할 수 없는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연구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된다. 최근 대구에 서식하는 수달과 경북 울진에 사는 산양의 개체수를 유전학 기법을 이용해 밝힌 연구도 유전자원은행의 연구 덕분이다. 또 우리나라의 고유종과 자생종의 유전적 다양성을 밝히는 연구에도 도움을 준다. 유전적 다양성은 생물다양성의 기본 요소이기 때문에 멸종위기종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파악해야 한다. 또 사람과 야생동물 사이에 공통으로 감염되는 사스(SARS)나 조류인플루엔자, 광견병 등의 질병을 연구할 수 있게 해 준다. 보통 근육 조직이 DNA를 추출하는 데 유리해 야생동물의 유전적 특징을 연구하는 데 쓰고, 나머지 시료는 질병을 연구하는 데 주로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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