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1일 오후, 경주 대능원 입구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인다. 한국천문연구원 소속 천문학자들이 자리를 잡더니, 뒤따라 고천문의기 복원 전문가인 충북대 이용삼 교수가 도착한다. 여기에 아마추어천문가 김지현 씨가 합류하니 고요하던 첨성대 주변이 금세 분주해진다. 이들은 현존하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진 첨성대에서 신라시대 천문관측 과정을 재현하기 위해 꾸려진 관측팀이다.
잠시 후 해가 지자 본격적인 관측이 시작된다. 관측팀은 현대식 망원경과 고천문의기인 소간의를 써서 경주의 밤하늘을 누비며 관측한다. 밤새 계속된 관측은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진다. 신라시대 천문관원도 이렇게 신라의 밤하늘을 관측하지 않았을까.
절기를 찾는 열쇠, 태양 방위각
춘분은 매년 3월 21일쯤으로 조상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절기였다. 춘분 이후에는 해가 뜨는 위치가 매일 조금씩 북쪽으로 이동해 하지 때는 해가 거의 북동쪽에서 떠서 북서쪽으로 진다. 춘분날은 밤낮의 길이가 같지만, 실제로는 일몰 후에도 얼마간은 빛이 남아 있어 낮이 좀 더 길게 느껴진다.
관측팀은 첨성대 주변에서 해가 뜨고 지는 위치를 관측한다. 즉 절기를 찾는 열쇠, 태양 방위각춘분은 매년 3월 21일쯤으로 조상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절기였다. 춘분 이후에는 해가 뜨는 위치가 매일 조금씩 북쪽으로 이동해 하지 때는 해가 거의 북동쪽에서 떠서 북서쪽으로 진다. 춘분날은 밤낮의 길이가 같지만, 실제로는 일몰 후에도 얼마간은 빛이 남아 있어 낮이 좀 더 길게 느껴진다.
관측팀은 첨성대 주변에서 해가 뜨고 지는 위치를 관측한다. 즉 태양 방위각을 알면 각(角) 선의 방향이 첨성대 창문(출입구)의 방향과 관련이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또 그간 첨성대는 꼭대기 정자석과 하단부 기단석의 모서리가 가리키는 방위가 틀어져 있어 천문대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정자석 모서리 부분은 정동쪽에서 남쪽으로 32°만큼 틀어지고, 기단석은 26°만큼 틀어져 있다.
전 박사는 “창문의 방향이 절기에 따른 태양 방위각과 관계있을 수도 있다”며 “관측을 통해 확인해 보는 수준으로 측정해 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춘분날의 태양 방위각을 알면 역산해서 동짓날의 태양 방위각을 계산할 수 있다.
*첨성대의 비밀
첨성대 창문은 왜 높은 곳에 달려 있을까. 밑에서부터 4.16m 되는 곳의 몸통 허리 부분에 한 변이 1m인 정사각형 창문이 달려 있다. 일반 건물과 달리 창문의 위치가 높아 출입이 어렵다. 이런 이유로 첨성대가 관측소가 아니라 기원을 올리는 제단이라는 주장이 많다. 이에 일부 학자들은 천체관측이 신성한 임무로 여겨져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추측은 야간관측 시 동물의 침입을 막기 위한 의도적인 설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창문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한다. 실제로도 사다리 고리를 걸쳤던 흔적처럼 보이는 자국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다. 사다리를 이용해 내부로 들어가면, 12단까지 흙이 차 있다. 그 위로는 속이 빈 원통처럼 생겼고, 원통 내부로 뻗은 돌의 넓이가 각기 달라서 안에서 보면 들쭉날쭉하다. 실제 관측이 이뤄졌다고 알려진 꼭대기에는 정자석이 2단으로 짜여 있다. 이곳에서 혼천의 같은 소형 관측기기를 설치해 놓고 밤하늘을 관측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 밤하늘 머리 꼭대기에는 어떤 별이?
전통시대에는 밤하늘의 별을 관측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혼효중성을 관측하는 일 이다. 이는 천문학적인 기준시간을 정하기 위해 가장 널리 행해진 관측이었다. 해질 무렵(혼시), 별이 보이기 시작할 때 머리 꼭대기에 있는 별이 혼중성이다. 절기가 바뀌면 태양의 위치가 달라져 또 다른 별이 혼중성이 된다. 또 새벽 동틀 무렵(효시), 머리 위에 남중하는 별은 효중성이다.
하지만 세차운동으로 인해 혼효중성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세차운동은 지구의 자전축이 큰 원을 그리면서 움직이는 현상인데, 이로 인해 밤하늘 별의 위치는 1년에 약 50″(1″는 3600분의 1°)씩 서쪽으로 이동한다. 신라시대의 춘분날 저녁에 남중했던 별은 조선시대의 춘분날 저녁에는 이미 자오선을 지나서 서쪽으로 가 있고, 다른 별이 자오선 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2010년의 춘분날 저녁에 남중하는 별을 관측해, 세차운동의 수치를 적용시키면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인, 신라시대 첨성대가 세워진 7세기 중반의 춘분날 저녁에 남중했을 별을 계산으로 알아낼 수 있다.따라서 천 년 전 춘분 때 머리 위에 보이던 별은 오늘날 바라보는 별과 다를 것이다. 이번 관측을 통해서는 춘분날 어떤 별이 남중했는지 알아내 혼효중성(남중성)을 찾아본다. 이 남중성을 찾게 되면 신라시대 밤하늘을 재현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 박사는 “혼효중성을 정하는 일은 절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며 “당시 신라는 첨성대 외에도 해시계 같은 천문의기를 만들어 시간과 절기를 정하는 데 사용했다고 추정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주 박물관에는 신라시대 해시계 파편이 소장돼 있다. 신라에서 물시계를 운영했다는 기록도 삼국사기에 남아 있다.
별자리를 보며 나랏일 점치다
신라 사람들은 별과 행성의 위치, 유성(별똥별)이나 혜성의 출현을 관측해 나랏일을 점쳤다. 이는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과 관련이 깊다. 별자리 체계를 갖추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당시 신라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는 공통의 중국식 별자리 체계를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서양이 별자리마다 신화가 있는 것처럼 동양도 별자리마다 의미를 갖고 있다. 이를 토대로 점성술이 성립됐다. 이날 관측팀도 춘분날 천구상에 일어나는 모든 천체현상을 관측한다. 달과 행성, 그리고 혹시 나타날지 모르는 유성이나 혜성도 관측 대상이다.
전 박사는 “신라인들은 특이한 천문현상이 일어나면 이를 점성술로 해석해 국왕에게 보고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화성이 귀(鬼)라는 별자리에 접근하면 국내에 반란이 일어날 징조로 해석하는 식이다. 올해 춘분날 저녁에는 화성과 토성이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행성들이 어느 별자리 가까이에 위치하는지를 관측해 전통적인 점성술 체계에 따라 그 의미를 풀어 볼 예정이다.전통천문학에서 사용된 점성술의 원형은 사마천의 ‘사기 천관서’에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편집된 점성술서 중 대표적인 것은 세종 때 이순지가 편찬한 ‘천문류초’이다. 이번 관측에서는 이 천문류초의 점성술을 적용해 춘분날 밤에 관측된 천문현상을 해석해볼 계획이다.
한국천문연구원 박석재 원장은 “우리는 선조들이 만든 뛰어난 전통천문학을 갖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중적인 이해가 부족하다”며 “이번 관측과정의 재현은 첨성대의 의미를 새롭게 보고 전통천문학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천 년 전 춘분날 별자리를 보고 신라 사람은 어떤 해석을 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