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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숨겨진 성적 신호

잘록한 허리를 좋아하는 이유

동물이 짝을 유혹하기 위해 사용하는 신호는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새들의 수컷은 노래를 불러 암컷에게 번식기를 맞이한 자신의 상태를 알린다.

동물의 다양한 구애신호

새 다음으로 소리를 잘 흉내내는 동물은 고래이다. 돌고래는 휘파람 소리로 암수가 의사소통을 한다. 수염고래의 수컷은 암컷을 발견하면 여러개의 음조로 구성된 복잡한 노래를 부르면서 구애한다. 수염고래의 소리는 바다를 가로질러 반대편 대륙에서 메아리쳐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 주파수가 낮다. 초저주파를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육상 포유류는 코끼리이다. 발정한 코끼리 수컷은 수km 떨어져 있는 암컷과 초저주파 신호로 교신한 뒤에 교미를 하러 부리나케 달려간다.

소리신호는 곤충의 짝짓기에 사용된다. 모기는 암컷이 날갯짓으로 소리를 내면 수컷이 촉각으로 감지하여 암컷에게 날아간다. 귀뚜라미는 수컷들이 합창으로 암컷을 유인하면 가장 씩씩하게 노래하는 수컷을 골라 교미한다.

대부분의 곤충은 페로몬을 분비한다. 같은 종의 다른 개체의 독톡한 행동을 유발하는 화학물질을 통틀어 페로몬이라 한다. 페로몬은 곤충의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며 짝짓기에도 물론 사용된다. 성페로몬은 얼룩나비처럼 수컷이나 누에나방처럼 암컷이 분비한다. 누에나방의 페로몬은 몇km 밖의 수컷들을 끌어들일 정도로 강력하다. 곤충뿐 아니라 뱀이나 물고기도 대부분 페로몬을 사용하여 짝짓기를 한다.

이 밖에도 동물들은 불빛, 전기, 진동 따위를 이용하여 짝을 유혹한다. 반딧불은 암수가 불빛을 교환하여 짝짓기 상대를 만난다. 일부 물고기는 전기를 생산하여 짝짓기의 신호로 사용한다. 수컷 거미는 암컷이 쳐놓은 줄을 튀겨서 청혼가를 연주하는데, 이 진동을 감지한 암컷이 줄을 몇번 잡아당겨 수컷을 초대하면 교미가 시작된다.

동물들이 구애할 때 사용하는 신호 중에는 신체의 특이한 구조로 진화된 것들이 적지 않다. 성적 의미를 지닌 대표적인 신체의 신호는 공작의 꼬리와 사슴의 뿔이다. 성적 신호의 기능을 가진 신체구조가 진화된 이유는 세가지 이론으로 설명이 시도되었다. 폭주적 진화(runaway evolution)이론, 장애(handicap)이론, 진실광고(truth-in-adver-tising)이론이다.
 

코끼리는 초저주파 소리를 이용해 수km거리까지 성적 신호를 보낸다.


공작 꼬리와 사슴 뿔

영국의 로날드 피셔는 공작의 수컷이 지닌 장식용 꼬리를 폭주적 진화의 산물로 간주했다. 모든 동물의 암컷은 자손에게 훌륭한 유전자를 물려줄 수 있는 형질을 가진 수컷을 선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러한 수컷을 선택하는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가령 가장 몸집이 크거나, 가장 싸움을 잘 하거나, 가장 깔끔한 깃털을 뽐내는 수컷을 고를 수 있다.

공작의 암컷은 꼬리의 길이를 선택기준으로 삼았을 따름이다. 대부분의 암컷들이 꼬리가 긴 수컷과 짝짓기를 함에 따라 수컷들은 더 긴 꼬리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요컨대 성적 매력이 있는 깃털을 키우려는 숫공작의 노력과 긴꼬리를 선호하는 암공작의 욕망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수컷의 깃털은 고삐풀린 말이 폭주하는 것처럼 급속도로 커지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아모츠 자하비는 숫공작의 꼬리가 진화된 이유를 피셔와 다르게 설명했다. 숫공작의 꼬리는 빛깔이 화려해서 포식자의 눈에 띄기 쉽고 길어서 도망갈 때 장애가 되므로 생존의 측면에서 보면 쓸모가 없다. 자하비는 깃털이 좋은 형질이라기 보다는 생존 가능성을 낮춘다는 점에 착안하여 장애이론을 제안했다. 장애이론에 따르면, 꼬리가 생존에 걸림돌이 됨에도 불구하고 숫공작이 살아 있다는 사실은 암컷에게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우수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셈이다. 바꾸어 말해서 좋은 유전자를 가진 수컷만이 사치스러운 깃털을 가질 수 있다. 요컨대 수컷의 깃털은 암컷에게 신체적 장애가 있음을 정직하게 털어놓으면서 동시에 유전적 자질이 우수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미국의 제임스 브라운은 사슴의 뿔을 예로 들어 장애이론과 맞서는 진실광고이론을 제안했다. 이 이론은 동물의 사치스러운 신체구조가 생존에 장애가 되기 보다는 도리어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전제한다. 사슴의 뿔은 칼슘 등 영양분을 많이 소모하면서 자라나지만 매년 버려진다. 따라서 가장 영양이 좋은 숫사슴이 아니고서는 뿔에 소요되는 투자를 감당하기 어렵다. 또한 뿔이 큰 사슴일수록 다른 숫사슴뿐만 아니라 포식자와 싸워 이길 수 있으므로 가장 좋은 목초지에 우선적으로 접근한다. 뿔이 숫사슴의 생존에 장애가 되지 않고 보탬이 되는 것이다. 요컨대 큰 뿔은 영양상태가 좋고 전투능력이 뛰어난 우수한 수컷임을 암컷에게 진실되게 광고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뉴기니 한 부족의 남자들이 착용한 펠로카프. 성기를 과장하기 위한 장식품이다.


페니스는 폭주적 진화의 산물

사람 역시 다른 동물처럼 진화하는 동안 해부학적으로나 생리적으로 정교한 성적 신호장치를 획득했다. 성적 의미를 가진 신체의 신호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강력해지기 시작한다. 2차 성징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남녀 모두 생식기와 겨드랑이에 털이 난다. 남성은 수염과 체모가 자라며 목소리가 굵어지고 어깨의 근육이 발달한다. 여성은 풍만한 피하지방이 발달하면서 골반이 벌어지고 유방이 팽대한다. 이러한 2차 성징 못지 않게 강력한 성적 신호를 내보내는 신체부위는 가랑이이다. 성기가 자리잡은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구애단계에서 이성의 성기를 직접 볼 수는 없다. 상대의 성기를 보거나 만지게 되는 것은 애무 또는 성교 단계에서 가능할 따름이다. 따라서 성적 신호로서 성기의 노출은 대개 간접적으로 이루어진다.

남성의 경우 의상으로 성기의 간접적 노출을 시도한다. 15-16세기에 대략 2백년간 유럽의 사내들은 코드피스(codpiece)를 착용했다. 코드피스는 아주 꽉조이는 바지의 가랑이 부분에 달린 불룩한 주머니이다. 처음에는 음낭 주머니로 사용되었으나 나중에는 남근 주머니로 바뀌어 페니스가 늘 발기해 있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이러한 의사(擬似)발기는 오늘날 젊은이들의 옷차림에서 볼 수 있다. 몸에 찰싹 달라붙는 청바지에서는 페니스가 배꼽을 향해 수직으로 올려져 있기 때문에 눈썰미가 좋은 처녀라면 금방 페니스임을 눈치챌 수 있을만큼 부풀어 있다.

페니스를 과장하기 위해 바지의 옷감과 색상에 차이를 두거나 상징적인 장식품을 사용하기도 했다. 극단적인 보기는 뉴기니의 고원지대의 사는 나체족이 페니스에 씌우는 팰로카프(phallocarp)이다. 길이가 60cm에 달하고 지름이 10cm를 웃도는 장식품인데, 크다막한 음경이 발기한 것처럼 보인다.

사람은 조상이 같은 유인원보다 훨씬 기다란 페니스를 달고 있다. 발기했을 때 페니스의 평균길이는 사람보다 몸집이 큰 고릴라와 오랑우탄이 각각 3cm와 4cm밖에 되지 않지만 사람은 13cm이다. 사람이 유달리 큰 페니스를 갖게 된 까닭은 여러 각도에서 설명이 시도되었다. 일부 학자는 성교 체위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고 했다. 사람은 상상을 초월하는 기묘한 자세로 성교를 할 정도로 다양한 체위를 즐기기 때문에 큰 페니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랑우탄은 페니스가 4cm에 불과하지만 인간과 맞먹는 다양한 체위로 교미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체위를 나무에 매달려 있는 동안에도 지속할 수 있다. 한마디로 성교 체위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오랑우탄이 켤코 사람에게 뒤지지 않는다.

페니스의 진화를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한 것은 정자경쟁 이론이다. 난자를 남보다 먼저 차지하기 위해서는 정자를 가급적이면 질 깊숙이 밀어넣어야 되기 때문에 길다란 페니스가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어디까지나 페니스를 잘 설계된 생식기로 전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페니스의 성적 신호 기능을 배제한 설명이다. 그러나 페니스가 발기된 상태에서 5cm 이상이면 성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페니스가 오로지 생식기의 기능 밖에 갖고 있지 않다면 13cm의 길이에서 가령 8cm 정도는 쓸모없는 낭비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국의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사람의 페니스를 폭주적 진화에 의해 유별나게 커진 성적 신호 장치라고 주장했다. 여자들은 페니스보다 남자의 엉덩이나 목소리에 의해 성적으로 흥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커다란 페니스는 사내다움, 즉 생식능력을 다른 남자에게 과시하는 신호로서 진화되었다.

그러나 페니스의 크기는 질의 크기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따라서 현재보다 더 큰 페니스를 갈망하는 사내들은 팰로카프처럼 터무니없이 큰 장식품으로 발기를 과장함으로써 질의 크기로 말미암아 폭주적 진화에 제동이 걸린 욕구 불만을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음순과 궁둥이의 복사판

한편 여성의 경우 성기를 간접적으로 노출하는 방법이 남성보다 다양하다. 찰싹 달라붙는 수영복이나 바지를 입으면 천이 국부의 갈라진 틈에 끼어서 호기심 많은 남자의 눈에는 그 형태가 금새 드러난다. 거웃이 무성한 불두덩에 색상이 다른 헝겊 조각을 대거나 음부의 모양을 본뜬 천을 붙인 팬티나 수영복으로 성기의 존재를 과시할 수 있다. 그러나 성기의 시각적인 신호를 더욱 간접적으로 보내는 방법은 신체의 다른 부분을 의사성기로 이용하는 것이다. 질의 대용품으로 사용될 수 있는 구멍은 배꼽과 입이다.

배꼽은 질을 강력하게 연상시키는 의사성기이므로 무용수들이 춤을 출 때 배꼽을 움직여서 성적 흥분을 돋구게 마련이다. 배꼽을 노출하는 행위가 한때 외설로 간주된 이유이다.

입은 남녀가 짙은 입맞춤을 나눌 때 의사성기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여성의 입에 들어가는 남성의 혀는 질에 삽입되는 페니스를 연상시킨다. 영국의 데스먼드 모리스는 ‘털없는 원숭이’(1967)에서 입술이 여자 성기의 음순을 모방하여 진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음순과 입술은 생김새가 비슷할 뿐 아니라 성적 자극을 느낄 때 둘다 색깔이 짙어지고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뒤집혀진 빨간 입술은 영락없이 선홍빛 음순의 복사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모리스는 젖가슴이 진화된 이유를 제시했다. 인류의 조상이 직립자세로 걷기 전까지는 다른 영장류처럼 수컷이 뒤쪽에서 접근하여 암컷의 궁둥이에 올라타는 체위로 성행위를 했다. 암컷은 풍만한 반구형의 엉덩이를 들어올려 수컷에게 내밀고, 수컷은 암컷의 생식기 부위를 거꾸로 보면서 페니스를 삽입했기 때문에 암수가 신체를 정면으로 맞대는 접촉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이 점점 똑바로 걷게 되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어울리게 됨에 따라 성교는 마주보는 자세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얼굴을 맞대는 성교체위에서 여자가 남자의 관심을 몸의 앞부분으로 돌리기 위해 성적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었으므로 음순을 흉내낸 입술과 더불어 궁둥이를 본뜬 젖가슴이 진화되기에 이르렀다. 요컨대 불룩 솟아오른 젖가슴은 통통한 엉덩이의 복사판이라는 것이다.

피하지방을 자랑하는 신호

여성의 유방은 궁둥이에 붙은 지방질 덩어리와 비슷하지만, 성적 자극에 극도로 민감한 성감대이다. 말초신경이 분포되어 있는 젖꼭지는 페니스에 버금갈만큼 예민하여 유두만을 자극해도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여성이 있을 정도이다. 성적으로 흥분하면 먼저 유두가 뾰족하게 곧추서면서 발기반응을 나타내고, 유방의 정맥이 충혈되어 젖가슴 전체가 단단해진다.

유방은 여자가 어린 아이일 때 평평한 가슴에 달린 젖꼭지의 상태로 출발하지만 사춘기에 팽팽하게 솟아오른다. 유방이 부풀어 오르는 것은 지방질이 축적되기 때문이다. 여성의 유방은 몸집이 훨씬 큰 고릴라나 오랑우탄의 젖가슴보다 훨씬 크다.

다이아몬드는 젖가슴과 궁둥이의 융기가 지방질 덩어리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여자의 큰 유방이 진화된 이유를 진실광고이론으로 설명했다. 우유가 없던 시절에는 여자의 모유가 갓난 아기의 생사를 좌우했다. 영양이 좋지 않은 여자가 젖을 제대로 분비하지 못하여 아기를 굶겨 죽이기 일쑤였다. 따라서 사내들은 적절한 양의 피하지방층을 가진 여자를 짝으로 선호했다. 지방질이 너무 없어 야윈 여자는 아기에게 젖을 먹이지 못했고 지방질이 너무 많아 살찐 여자는 움직임이 둔해서 당뇨병으로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에게 남은 문제는 적정 규모의 지방질을 소유한 사실을 남자에게 알리는 지름길을 찾는 것이었다. 지방질을 몸 전체에 골고루 분산시켜 놓으면 사내들이 손쉽게 식별하지 못했다. 눈에 잘 띄는 신체 부위에 집중적으로 지방질을 축적시키는 방법이 상책이었다. 지방질을 안전하게 저장할 만한 신체부위는 여러 군데가 있다. 팔다리, 허리통, 흉부, 둔부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지와 허리에 두터운 지방층이 형성되면 행동을 둔화시킨다. 결국 흉부와 둔부가 지방질의 저장소로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에 유방과 엉덩이가 진화되기에 이르렀다.

진실광고이론에 따르면, 큰 유방과 넓은 엉덩이는 여자가 좋은 영양상태에 있을 뿐만 아니라 아기를 안전하게 출산하여 양육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남자들에게 정직하게 알리는 신호이다. 다시말해서 남자들은 유방이 크면 젖을 많이 분비하므로 아기를 굶겨 죽이지 않고 잘 기를 수 있고 엉덩이가 넓으면 산도(産道)가 협소하지 않으므로 분만 도중에 산모와 태아가 죽을 염려없이 아기를 잘 낳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궁둥이가 넓적하고 젖가슴이 불룩하면 허리는 당연히 가늘어 보인다. 남자들이 허리가 잘록한 여자를 선호하는 이유가 어느 정도 해명된다. 오늘도 수많은 여자들이 코르셋으로 허리를 졸라매는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는 까닭은 허리의 가늘기를 속이지 않고서는 흉부와 둔부에 분포된 피하지방층을 배우자 선정기준으로 중시하는 사내들의 시선을 붙들어맬 수 없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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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인식 과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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