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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인간을 구하다

미리 가본 마우스 병원

찍찍~, 찍찍~. 여기는 마우스 병원. 혈액, 소변검사는 기본이고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촬영까지 건강검진을 받는 쥐가 가득하다.
이상을 발견하면 즉시 치료한다. 왜 사람들은 쥐를 검사하고 치료하는 걸까.
쥐를 위해 병원을 지은 이유를 한번 알아보자.


오늘도 좋은 아침이에요. 다들 아침 식사 하셨나요? 저는 10분 뒤 의사 선생님이 왔다 가시면 먹으려고 기다리는 중이에요. 몸무게 재고 혈당이랑 혈압도 측정해야 되거든요. 눈치 채셨나요? 네, 저 지금 병원에 있어요. 여기는 ‘마우스 병원’이랍니다.

쥐를 알면 사람이 보인다

제가 쓰고 있는 병실은 꽤 넓어요.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해도 답답하지 않으니까요. 형제가 있는 경우엔 병실을 같이 쓰지만 보통은 저처럼 혼자 지낸답니다. 여기 오는 쥐들은 보통 다 한두 개씩 병이 있기 때문에 서로 옮길까봐 이렇게 한 마리씩 입원시키는 거래요. 심지어 우리는 병실끼리 공기가 통하지 않게 막혀 있어요.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공기로도 전염되니까요. 밥도 꼭 소독된 그릇에 각자 받아서 먹고요. 그래도 외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요. 병실이 투명해서 옆 방에 있는 친구가 다 보이거든요.

사람이 가는 종합병원도 내과, 안과, 피부과 같이 진료과목이 나눠져 있다면서요? 우리 마우스 병원도 그래요. 여기도 과마다 한 층씩 검사실과 치료실을 갖추고 있답니다. 물론 진료하시는 선생님도 따로 계시고요. 각각 눈에 이상은 없는지 썩은 이빨은 없는지 보시고, 내과 선생님만 해도 여럿 계셔서 장기마다 다른 선생님이 꼼꼼히 봐주세요. 문제가 있으면 그때그때 치료해 주시고요.

어제는 굉장히 슬픈 일이 있었어요. 옆 병실에 있던 동갑내기 흰쥐 친구가 뇌졸중으로 죽었답니다. 사실 저도 어제 같이 뇌졸중을 일으켰는데 이상하게도 저는 아직까지 멀쩡해요. 참 신기하죠? 선생님이 그러는데, 제 몸에 ‘녹스(Nox)4’ 유전자가 없기 때문이래요. 의사 선생님이 이 유전자가 만드는 효소는 엄청 무시무시한 거라고 하셨어요. 뇌혈관이 막히면 이 효소가 산소 라디칼을 만들어 뇌 속 신경 세포를 막 죽인다고 해요. 신경세포가 모두 망가지면 뇌 기능을 잃어버려서 얼굴이나 몸에 마비가 오기도 하고 너무 심하면 흰쥐 친구처럼 죽고 만대요.

사람도 뇌졸중으로 그렇게 많이 죽는다죠? 제가 듣기론 뇌졸중이 전 세계 사람의 사망원인 2위래요. 그래서 의사와 과학자들이 그동안 뇌졸중 연구를 많이 해왔는데 아직 마땅한 치료제는 없다고 하네요. 신경세포를 죽이는 산소 라디칼을 막으려고 항산화제랑 비타민을 써 봐도 결과는 영 시원찮았대요. 이제 제 덕에 녹스4 효소가 뇌 속에서 산소 라디칼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약으로 녹스4 효소를 막으면 뇌혈관이 터져도 신경세포를 보호할 수 있으니까요.

쥐에게 있는 녹스4 유전자가 사람한테 있을 리 없다고요? 저희를 너무 과소평가 하시는군요. 사람과 우리는 전체 유전자가 97%나 같답니다. 우리 유전자 중에 사람과 다른 것은 단지 300개밖에 되지 않아요. 다시 말해서 우리 유전자의 기능을 알면 사람 유전자 기능도 웬만큼 알 수 있는거예요.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제 아시겠죠? 제가 있는 마우스 병원은 단순히 제 병을 치료하기 위한 곳이 아니에요. 제 몸에 있는 유전자의 기능을 밝혀내서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곳이랍니다.

사람하고 더 비슷한 원숭이를 이용하는 게 좋겠다고요? 에이, 큰일 날 말씀! 원숭이의 일생을 다 보지 못하고 연구가 끝날 거예요. 원숭이는 평균 27년이나 사니까요. 그리고 새끼도 얼마 낳지 않잖아요. 우리는 평균 수명이 2~3년 밖에 되지 않고 태어난 지 5~7주 만에 새끼를 낳을 수 있어요. 임신 기간도 20일 밖에 안 되고 한 번 새끼를 낳았다 하면 6~12마리나 낳을 수 있답니다.
 

[쥐와 사람의 유전자를 비교한 그림. 같은 유전자를 동일한 색으로 표시했다. 사람과 쥐의 유전자는 97%나 비슷하다.]
 

쥐는 어떻게 건강검진을 받을까

아, 선생님이 오셨네요. 이제 검사 받고 아침 먹으면 되겠어요. 우리가 받는 기본 검사도 사람과 똑같아요. 우선 몸무게랑 키를 재고 체지방을 분석해요. 소변검사로 음식이 몸속에서 바르게 대사되고 있는지, 당뇨는 없는지도 알 수 있어요. 또 혈액을 뽑아 면역세포는 모두 있는지, 항체는 잘 만들어지는지도 검사해요.

검사 끝~! 정말 간단하죠? 하지만 이건 아침에 잠깐 하는 기본 검사일 뿐이에요. 아침 먹고 본격적인 검사가 시작된답니다. 우리 마우스 병원은 사람 병원보다 더 철저해요. 사람은 눈이 아프면 안과 진료만 받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눈 하나만 아프다고 해도 전체를 검사한답니다. 엑스선 검사, 자기공명영상(MRI),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몸 전체에 이상이 없는지 알아보고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으로 뇌 기능도 살펴봐요.

마우스 병원이 없었을 때는 작은 실험실에서 이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부분만 진단했대요. 하지만 우리 병은 아시다시피 유전자가 변형돼서 나타나는 거잖아요. 유전자가 하나 변형됐다고 해서 딱 한 군데만 이상이 생기는 건 아니랍니다. 유전자끼리는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하나가 없어지면 대개 여러 개의 다른 형질이 동시에 나타나기도 해요. 그래서 마우스 병원에서 이렇게 종합검사를 하는 거랍니다. 유전자의 영향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죠.

10년 전엔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대요. 유방암 치료제로 유명한 ‘허셉틴(Herceptin)’이라는 약이 개발됐어요. 허셉틴은 이알비비투(ErbB2) 유전자를 억제하는 치료제예요. 많은 사람들이 이 약으로 유방암을 고쳤죠. 효능이 엄청 좋았었나 봐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약을 먹고 심장병으로 죽는 환자가 나타났대요. 환자 보호자들은 약의 부작용 때문이라고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어요. 그러나 개인이 거대한 회사에 소송을 거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죠. 억울하지만 별 수 있나요.

그때 마침 미국 유타대 연구팀이 이 유전자를 없앤 쥐를 만들었어요. 그 쥐는 놀랍게도 심장의 좌심실이 점점 커져 혈액을 내보내지 못하다가 결국 죽어버렸대요. 바로 유방암 환자들이 허셉틴을 먹고 일으킨 심장병이었답니다. 과학자들은 이 유전자가 유방암 뿐 아니라 심장과도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만일 이 쥐의 장기를 모두 검사하지 않았다면 약의 부작용을 알지 못했을 거예요. 그랬으면 모르고 치료 받던 환자들이 많이 죽었을 텐데. 이런 일을 미리 막기 위해서 마우스 병원에서는 하나의 유전자가 변형됐을 때 전체 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꼼꼼히 검사하는 거예요. 잊으면 안돼요. 우리 유전자는 긴밀히 엮여 있다는 사실!



[마우스 병원에서는 유전자변형쥐 한 마리에서 나타나는 모든 형질을 검사할 수 있다. 심지어 쥐 태아의 발바닥 모습(사진)까지도 관찰한다.]
 
 

보이지 않는 형질까지 잡아라

마우스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하면 예상치 못한 병을 발견하는 것 외에도 좋은 점이 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증세까지도 다 찾아 낼 수 있답니다. 쥐 한 마리 한 마리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없이 검사하니까 놓칠 턱이 있나요. 그동안 유전자변형쥐 중에 62%만 이상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독일의 마우스 병원에서 다시 조사했더니 98%나 이상이 있다는 걸 알아냈어요.

이렇게 쥐의 상태를 알기 힘든 이유가 뭔지 아세요? 쥐는 웬만큼 아파선 내색하지 않기 때문이래요. 사람은 조금만 아파도 말을 하는데, 우리는 사람과 달리 야생성이 남아 있어서 아픈 걸 꼭꼭 숨겨요. 자연에서는 아프거나 약하다는 걸 들키는 순간 적의 먹잇감이 돼 버린답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 상태를 자세히 보려면 오랜 시간을 두고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해요. 이런 조건과 시설이 모두 갖춰진 곳이 바로 마우스 병원이지요.

게다가 유전자가 없어져도 형질이 아예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많답니다. 연세대 생화학과의 이한웅 교수님은 미국에 계실 때 텔로미어 연구를 했대요. 이 교수님이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쥐를 만들었는데 겉보기에는 멀쩡하더래요. 현미경으로 염색체를 봐야만 텔로미어가 짧아졌다는 걸 알 수가 있나봐요. 텔로미어가 짧아진 염색체끼리는 서로 붙어버린다고 하네요. 계속 쥐를 키우면 6세대가 지나야 비로소 정소 크기가 확 줄어든다는데 이걸 보는 데 4년 반이나 걸렸어요. 진짜 오래 걸리죠?

 
머리가 좋은 천재 쥐도 겉으로 봐서는 알 수가 없지요. 행동을 잘 보여주는 특별한 실험장치가 필요해요. 일명 ‘수중 미로’. 수조에 물을 채워 넣고 물 표면 바로 밑에 보이지 않지만 쉴 수 있는 섬을 하나 만들어 놓은 장치예요. 쥐도 학습할 수 있기 때문에 섬을 찾는 시간이 실험을 반복할수록 짧아져요. 그런데 천재 쥐는 섬을 찾는 시간이 보통 쥐의 절반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네요. 이 천재 쥐는 2004년 미국, 영국, 스위스, 프랑스 4개국 과학자들이 뇌 속 신호 단백질인 ‘칼시네우린(calcineurin)’의 작용을 억제 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해 만들었어요. 마우스 병원에서는 시간을 두고 모든 가능성을 다 알아보기 때문에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형질이라도 다 찾아낼 수 있지요.



 
세계는 지금 유전자 특허전쟁 중

제가 있는 마우스 병원은 독일에 있어요. 유럽연합(EU)을 비롯해 일본, 타이완에도 유명한 마우스 병원이 있어요. 심지어 중국도 2008년 마우스 병원을 만들었대요. 마우스 병원에서는 특정 유전자가 변형된 쥐를 만들기도 하고, 이 쥐에서 어떤 형질이 나타나는지도 연구하고 있어요. 이렇게 온 세계가 유전자변형쥐를 만들고 그 쥐의 형질을 찾으려고 혈안이 된 이유가 뭔지 아세요? 바로 특허 때문이에요. 유전자 기능을 밝혀내면 특허를 받을 수 있거든요.

특허 받은 유전자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에리스로포에틴(EPO, erythropoietin) 유전자에요. EPO는 적혈구 생성을 촉진하는 물질로서 빈혈 치료제로 쓰이고 있어요. 특히 신장병 환자가 혈액을 투석할 때 꼭 필요한 약이에요. 놀라운 것은 이 약의 가격인데 1g에 67만 달러(약 8억 원)나 해요. 금보다 수천 배나 비싸답니다. 엠젠(Amgen)이라는 회사는 이 약 하나로 미국 최고의 생명공학회사가 됐대요. 유전자변형쥐 자체로도 특허를 받을 수 있어요. 1998년 미국 워싱턴주립대의 로버트 팔미터 박사가 만든 쥐가 최초로 특허를 받았어요. 이 쥐는 성장호르몬을 많이 분비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해 정상보다 훨씬 몸집이 크고 몸무게가 무거워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쥐도 바로 저 같은 유전자변형쥐예요. 1994년 미국 록펠러대의 제프리 프리드먼 교수는 비만과 당뇨의 원인으로 알려진 ‘오비(Ob)’라는 유전자를 없애버린 쥐를 만들었어요. 이 쥐는 정상 쥐보다 뚱뚱해져 몸무게가 2배 이상 더 나가는데, 사람의 비만을 치료하기 위한 모델로 알맞대요. 이 쥐의 특허는 2000만 달러(당시 약 160억 원)에 팔렸어요.

한 마리에 100만 원인 유전자변형쥐도 있어요. 일본 국립암센터 실험동물중앙연구소가 1980년대에 개발한 유전자변형쥐가 그 주인공이에요. 이 쥐는 암 관련 유전자인 ‘라스에이치투(RasH2)’를 없앤 건데 일반 실험용 쥐가 1만 원정도 하는 걸 생각하면 우리를 만드는 게 얼마나 큰 산업인지 아시겠죠?
 
[특정 유전자를 망가뜨려 일반 쥐보다 뚱뚱한 쥐(왼쪽)를 만들었다. 이 유전자변형쥐는 비만을 연구하기 위한 실험모델로 여러 실험실에서 쓰고 있다.]
 


마우스 병원이 생기면 이런 유전자변형쥐를 좀 더 쉽게 만들 수 있어요. 더 많은 과학자들과 시설이 한가지 목표를 위해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더 좋은 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쥐의 새로운 형질을 찾기가 쉽기 때문에 특허를 내기에 유리해진다는 거예요. 심지어 남이 만든 유전자변형쥐라고 하더라도 여기서 새로운 형질을 더 찾아내기만 하면 추가로 특허를 낼 수 있지요. 특히 질병과 관련된 형질이라면 더욱 중요하죠.

유전자변형쥐를 직접 만든 사람이 그 형질을 가장 잘 알지, 누가 아냐고요? 그렇지 않아요. 쥐의 형질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거든요. 다른 연구팀에서 만들었지만 이상 형질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쥐에서 새로운 형질을 찾아낸 경우를 소개해 드릴게요. 서울대 수의학과의 성제경 교수님이 바로 주인공이에요. 아낙(AHNAK)이라는 유전자가 망가진 쥐는 겉보기엔 멀쩡하대요. 하지만 이 쥐한테는 아무리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여도 살이 찌지 않는다고 하네요. 성 교수님은 이 쥐의 소변에서 히스티딘, 트레오닌 같은 아미노산들이 많이 빠져나왔다는 사실을 알아냈죠. 이 아미노산들은 지방 합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대요. 아낙이 망가진 쥐는 분명 지방대사에 문제가 생긴 거예요. 이 쥐를 조금만 더 연구하면 요즘 최고의 관심 대상인 비만을 치료하는 날이 올 수 있겠죠?

유전자변형쥐를 만들고 그 형질을 분석하는 일은 생명 현상을 이해하고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 매우 중요하답니다. 더구나 특허 때문에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어요. 미국,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는 아예 국제 컨소시엄(IKMC)을 구성해 유전자변형쥐를 개발하고 있죠. 국제 공동프로젝트를 진행해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최대한 빨리 유전자 기능을 해석해 더 많은 특허을 가지려고 하는 거예요. 이렇게 마우스 병원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어요.

한국이요? 한국은 아직 국제 컨소시엄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어요. 유전자변형쥐 연구를 할 수 있는 기반 시설인 마우스 병원도 아직 없는 걸요. 그나마 다행인 건 지난해 7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한국유전자변형마우스센터(KGEMC)가 설립됐어요. 여기서는 한국형 유전자변형쥐를 생산하고 이 쥐가 어떤 특성이 있는지 알아보는 일을 해요. 하지만 어엿한 마우스 병원이 생겨야 세계에 뒤쳐지지 않고 본격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겠죠. 어서 빨리 한국에도 마우스 병원이 들어설 날을 기대할게요.
 
[일본 도쿄대 생물물리학 및 생화학부의 사카노 히토시 교수는 냄새를 못 맡는 쥐를 만들었다. 이 생쥐는 천적을 만나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동물이 주로 후각으로 공포감을 느낀다는 학설을 증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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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신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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