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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은하 잡아먹던 과거

은하 형성 이론에 한국 천문학자도 큰 기여


현대 천문학이 풀어야 할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은하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진화했는가이다. 천문학자들은 슈퍼컴퓨터로 대규모 시뮬레이션을 해 은하의 형성과 진화 과정을 모사하는 한편, 아주 멀리 떨어진 은하들을 관측해, 즉 아주 오래전에 그 은하들을 떠난 빛
을 관측해 은하들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문제는 머나먼 은하들의 관측자료를 정밀하게 얻기 힘들다는 점이다.

반면에 우리 은하 또는 우리 은하 주변의 외부은하들은 매우 정밀하게 관측해 형성 연대에 따른 화학적, 역학적 성질을 비교하고 분석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은하뿐 아니라 우리 은하와 비슷한 외부은하의 형성과 진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우주를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 분야를 ‘근거리 우주론(Near Field Cosmology)’이라 부른다. 이 방법으로 우리 은하의 형성 과정을 밝히려는 노력은 크게 2가지 방향으로 전개돼왔다. 하나의 은하운이 수축해서 탄생했다는 주장과 계층적으로 병합해 탄생했다는 주장
이 맞선 가운데 최근엔 계층적 병합 이론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단일 수축 vs 계층적 병합

근거리 우주론 방법을 이용해 체계적으로 우리 은하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1962년에 처음 있었다. 미국 카네기천문대의 올린 에겐(Olin Eggen), 도널드 린덴-벨(Donald Lynden-Bell), 그리고 앨런 샌디지(Allan Sandage)는 태양 주변의 221개 별이 은하 중심에 대해 어떻게 운동하는지를 알아내, 하나의 은하운이 수축해 우리 은하가 형성됐다는 모형을 확립했다. 이 모형은 세 천문학자 성(姓)의 알파벳 첫 글자만 따 ELS 모형이라 부른다.

세 사람은 중원소 함량 이 적은 별일수록 찌그러진 타원궤도를 돌며 은하 원반으로부터 먼 거리까지 운동하고 각운동량이 작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원시은하운(proto-galactic cloud)이 매우 빠르게(수억 년에 걸쳐) 수축하며 우리 은하가 생성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LS 모형에 따르면, 원시은하운이 초기에 수축하는 과정에서 중원소 함량이 적은 1세대 별들이 생성돼 은하 외곽(헤일로)에 자리를 잡았다. 1세대 별들은 작은 각운동량에 찌그러진 타원궤도 를 갖게 됐으며, 이들 가운데 무거운 별은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며 중원소를 성간운으로 내뿜었다. 이어 원시은하운이 계속 수축할 때 성간운끼리 충돌하면서 에너지를 잃어 원반 모양으로 정착되고 이렇게 생긴 원반에서 중원소 함량이 큰 2세대 별들이 탄생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 후 ELS 모형은 예측에 맞지 않는 새로운 관측결과가 나오면서 비판받았지만, 단 221개의 별을 사용해 우리 은하의 형성과정에 대해 논의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1978년에는 구상성단을 이용해 우리 은하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다. 역시 미국 카네기천문대에 근무하던 레너드 설(Leonard Searle)과 로버트 진(Robert Zinn)이 우리 은하에 존재하는 구상성단의 중원소 함량과 나이를 연구해 새로운 은하형
성 모형을 제시했다. 이들은 특히 바깥 헤일로 구상성단들(은하 중심으로부터 태양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구상성단들)이 은하 중심으로부터의 거리와 중원소 함량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수십억 년의 나이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만일 구상성단들이 ELS 모형에 따라 형성됐다면, 수억 년이라는 시간 내에 형성됐어야 한다. 두 사람은 바깥 헤일로 구상성단들이 우리 은하가 형성된 뒤 떠돌던 은하운 조각이 우리 은하에 병합된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을 역시 이들의 성을 따서 SZ 모형이라 부른다.

그 뒤 우리 은하에서 병합에 의해 형성된 천체들이 잇달아 관측되면서 SZ 모형이 탄력을 받고 있다. 현재 SZ 모형은 차가운 암흑물질 이 우세한 계층적 은하형성 모형에서 예측하고 있는 은하 간 충돌 또는 병합 과정과 잘 부합한다. 이 모형에 의하면 우주 초기에 왜소은하 규모의 질량을 갖는 천체가 먼저 만들어지고, 이들이 순차적으로 병합해 거대 은하로 성장하고 진화했다.

구상성단이 외부은하라고?

우리 은하의 형성과 진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구상성단은 대부분 우주 초기에 동시에 형성돼 나이가 같고 화학조성이 동일한 별들로 구성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몇몇 구상성단이 이와 다른 특성을 보인다는 관측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 은하에서 가장 큰 구상성단으로 알려진 ‘오메가 센타우리(NGC5139)’다. 오메가 센타우리를 관측한 천문학자들은 수십 년 동안 매우 이상한 구상성단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문제를 기존의 구상성단 형성 이론 내에서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이영욱 교수팀은 칠레 세로토롤로 미국립천문대의 구경 0.9m 망원경으로 오메가 센타우리를 매우 넓은 영역에 걸쳐 관측해 이전에 잘 볼 수 없었던 중원소 함량의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즉 오메가 센타우리는 화학조성이 서로 다른 네 종류의 별들로 구성되고 별들의 나이 차이가 최대 20억 년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팀은 오메가 센타우리가 다양한 화학적 진화과정을 거친 외부은하가 우리 은하에 합병된 뒤 남은 잔재라는 사실을 최초로 규명해 1999년 ‘네이처’에 발표했다.

개개의 별이 갖고 있는 중원소 함량은 별의 형성과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개별 원소는 특수한 물리적 상황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특정 원소의 함량을 측정하면 이전 세대 별의 물리적 상태를 유추해볼 수 있다. 특히 구성성단을 이루고 있는 가벼운 별에서 발견되는 중원소는 별 내부에서 생성되지 않으므로 이전 세대의 별이 그 별에 영향을 준 특성이다. 예를 들어 어떤 별이 칼슘과 같은 원소를 많이 갖고 있다면 그 별은 매우 무거운 별의 최후단계인 II형 초신성 폭발 때 방출된 물질을 많이 포함한 성간운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 또한 칠레 세로토롤로 미국립천문대의 구경 1.0m 망원경을 사용해 2006년부터 무려 120여 일 동안 40여 개의 구상성단과 은하중심 영역을 광범위하게 관측했다. 이 망원경에 칼슘 필터를 장착해 구상성단 내 별들에 포함된 칼슘 함량을 측정했다. 이온화된 칼슘은 파장 396.8nm(나노미터, 1nm=10-9m)와 393.4nm에서 매우 강한 흡수선을 만드는데, 이를 이온화된 칼슘의 H와 K 흡수선이라고 한다. 독일의 천문학자 요세프 프라운호퍼가 태양 스펙트럼을 관측해 이를 H와 K라고 불렀는데, 태양의 경우 이온화된 칼슘의 H와 K 흡수선이 가장 강하다. 필자도 이온화된 칼슘의 H와 K 흡수선에 집중해 구상성단의 별을 관측했다. 이 흡수선을 포함하는 좁은 영역의 파장을 관측하면 소규모 망원경을 사용하더라도 구상성단 내 거의 모든 구성별의 칼슘 함량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관측자료는 지금까지 칼슘 필터로 관측된 자료 중에서 가장 넓은 영역의 하늘을 포함하며 구상성단 내 밝은 구성별을 거의 대부분 관측해 구상성단의 특성을 도출하는 데 충분했다.

필자가 관측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체 구상성단의 50% 이상에서 그 구성별들의 칼슘 함량이 오메가 센타우리에서처럼 매우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 은하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구상성단에 칼슘 같은 중원소 함량이 균질하게 분포됐을 것이라는 기존의 이론을 뒤엎는 결과다. 이 결과는 지난해 11월 26일자 ‘네이처’에 발표됐다.

오메가 센타우리처럼, 한 구상성단에서 칼슘 함량이 뚜렷하게 다른 두 개 이상의 항성 종족으로 구성됐다는 사실을 구상성단 생성 당시에 물질혼합이 불완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이는 여러 세대에 걸친 화학적 진화 과정을 통해 다양한 중원소 함량을 가진 물질로부터 여러 세대의 별들이 구상성단에서 생성됐음을 의미한다. 칼슘을 포함한 특정 중원소는 II형 초신성 폭발의 잔해로 만들어지는데, 매우 강력한 초신성 폭발의 잔해를 자체 중력권에 가둬 두고 이 잔해로부터 새로운 별들이 생성되기 위해선 적어도 현재 관측되고 있는 구상성단보다 훨씬 더 무거운 왜소은하 정도의 질량 규모가 필요하다. 따라서 현재 우리 은하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구상성단은 우리 은하 내부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왜소은하 규모의 천체가 우리 은하에 붙잡혀 병합되는 과정에서 왜소은하의 중심핵만 남아 있는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이는 현재 학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우주론적 계층 합병에 의한 은하 형성 모형에 부합한다. 즉 우주가 진화하면서 왜소은하들이 계층적으로 합병해서 커다란 은하들이 탄생했다는 뜻이다.

우리 은하가 다른 은하를 포식하고 있는 증거는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궁수자리 왜소은하라던가 큰개자리 왜소은하는 비교적 최근에 우리 은하에 포획된 외부은하의 잔재이다. 천문학자들은 이런 왜소은하들의 병합과정에서 우리 은하의 원반이 두꺼워지거나 원반의 뒤틀림이 발생했다고 추정한다. 현재 우리 은하의 헤일로에서 발견되고 있는 많은 수의 별 흐름도 왜소은하가 우리 은하에 먹히는 과정에서 우리 은하의 헤일로에 흩뿌려진 잔재일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예가 외뿔소자리 고리인데, 이는 큰개자리 왜소은하가 우리 은하와 병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대규모의 별 흐름이라고 생각된다.

행방불명된 왜소은하를 찾아라

현재 정설로 인정받고 있는 차가운 암흑물질의 계층적 은하형성 모형에 의하면, 우리 은하의 질량 규모를 갖는 은하는 주위에 수백여 개의 왜소은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우리 은하 주위를 돌고 있는 왜소은하는 10여 개만 알려져 있다. 우리 은하 주변에서처럼 이론에서 예측하는 왜소은하와 관측되는 왜소은하의 개수 사이에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현상을 ‘행방불명된 왜소은하 문제’라 부른다. 이는 차가운 암흑물질의 계층적 은하형성 모형에서 설명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이다.

그런데 왜소은하의 잔재인 구상성단을 고려하면 그 심각성을 상당히 완화시킬 수 있다. 또는 이론에서 예측하듯 수많은 왜소은하들이 우리 은하 주위를 맴돌지만, 거의 대부분의 질량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로 구성돼 있어 단지 우리가 보지 못할 수도 있다.그렇다면 별을 이루는 보통 물질을 거의 포함하지 않아 거의 보이지 않거나 완전히 암흑물질로 구성돼 있어 보이지 않는 왜소은하를 우리 은하 주위에서 찾아야 한다. 최근엔 ‘슬론 디지털 스카이 서베이(SDSS)’에서 기존 왜소은하보다 극히 어둡지만 대부분이 암흑물질로 구성돼 매우 무거운 왜소은하들이 발견돼 주목받고 있다.

우리 은하의 중심부에 존재하는 팽대부(bulge) 또한 계층적 은하형성 모형이 설명하기 어려운 실체다. 비교적 최근까지 우리 은하의 팽대부는 중원소 함량이 많은 늙은 별들이 구형으로 모여 있는 집단이라고 생각됐지만, 적외선 관측을 통해 들여다보자 팽대부는 구형
이 아니라 상자 또는 땅콩 모양으로 밝혀졌다.

은하의 팽대부는 크게 두 가지 과정에 의해 생성될 것이라고 여겨진다. 첫째로, 은하운의 수축이나 은하들의 병합 과정을 통해 팽대부가 생길 수 있는데, 이는 ‘고전적인 팽대부’라 부르며 안드로메다은하에서 볼 수 있다. 이 과정은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끝나기 때문에 팽대부에 존재하는 별들은 매우 나이가 많으며 칼슘 같은 중원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둘째로, 은하 중심에 막대가 형성되면 오랜 시간에 걸쳐 원반의 별들을 수직 방향으로 내뿜을 수 있는데, 이 과정을 통해 우리 은하에서 볼 수 있는 상자 또는 땅콩 모양의 팽대부가 형성된다. 이를 ‘유사 팽대부(pseudo-bulge)’라고 부른다.

현재까지 우리 은하의 팽대부는 어떤 측면을 보느냐에 따라 서로 모순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별들의 화학조성은 고전적 팽대부에서 예측되는 것인 반면, 팽대부가 상자나 땅콩 모양이며 팽대부에서의 위치에 상관없이 별들의 회전 각속도가 같은 점은 유사 팽대부에서 예측되는 것이다. 이 또한 앞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우리 은하는 대규모 병합을 통해 만들어졌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병합 과정에서는 유사 팽대부가 아니라 고전적 팽대부가 생겨야 한다. 우리 은하처럼 유사 팽대부를 가진 나선은하 또는 팽대부가 없는 나선은하가 어떻게 생성됐는지는 아직까지 설명할 길이 없다.

과연 우리은하는 어떻게 형성됐으며 진화했을까. 더 나아가 외부은하들은 어떻게 형성됐으며 진화했을까. 아마도 우리 은하의 형성과 진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우주를 이해하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2012년 발사될 예정인 가이아(GAIA)위성이 우리 은하 외곽까지 관측해 10억 개 별들의 화학조성이나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고 2014년 완공 목표인 광시야망원경 LSST가 우리 은하의 지도를 만든다면, 우리 은하의 탄생과 진화에 대한 의문이 상당수 풀릴 것이다. 또2018년 이후 칠레 안데스산맥에 구경 25m의 대형망원경(KGMT)을 보유하게 될 한국 천문학자들의 활약도 기대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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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재우 세종대 천문우주학과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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