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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가장 맛있는 감자칩을 먹을 수 있을까

웃기려고 한 연구 아닙니다 2화

지난 이그노벨상 연재 첫 화는 잘 읽으셨는지? 연초부터 난데없는 똥오줌 이야기가 꺼림칙했을 독자들을 위해 이번에는 여러분의 입맛을 돌아오게 할 이그노벨 수상 연구를 모았다. 수많은 연구자가 더 맛있는 한 끼를 찾아 연구했고, 그중 몇몇은 이그노벨상 수상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자, 시리얼과 비스킷과 감자 칩을 가장 맛있게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비스킷을 어떤 각도로 찻잔에 ‘덩크’ 하면 좋을까?

‘덩크’를 들어보았는가? 농구의 멋진 2점 슛을 생각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원래 영어에서 덩크(dunk)는 ‘음식을 먹기 전에 액체에 담그다’라는 뜻의 동사였다. 대개 비스킷 같은 음식을 차나 커피에 일정 시간 담가 먹는 관습을 의미했다. 이렇게 하면 비스킷이 부드러워질 뿐만 아니라 비스킷에 함유된 설탕이 녹아서 음식의 풍미도 더 깊어진다나.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덩크는 16세기 영국 해군이 배에 식량으로 싣던 비스킷이 너무 단단한 나머지 선원들이 비스킷을 맥주에 담가 녹여 먹어야 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이 이야기의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19세기 영국에서는 비스킷을 차에 담가 마시는 풍습이 있었으며, 이후로 전 세계로 널리 퍼지며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에서는 차나 커피에 스트룹와플을,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커피에 생강 비스킷을, 미국에서는 우유에 오레오를 담근다. 그런데 이 모두가 공통으로 가지는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음식을 액체에 얼마나 오랫동안 담그고 있어야 하나?’였다. 너무 짧게 담그면 비스킷이 부드러워지지 않을 테고, 너무 오래 담그면 물러진 비스킷이 부서져 찻잔에 빠지거나 테이블을 더럽힐 테니까.

 

렌 피셔 영국 브리스톨대 물리학과 교수의 연구 주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영국 사람들이 차에 가장 많이 찍어 먹기로 유명한 비스킷 제조 회사인 맥비티즈의 의뢰를 받아 최적의 덩크 조합을 찾는 연구를 진행했다. 물리학적 관점에서 비스킷은 건조된 전분 알갱이와 설탕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스펀지로, 속에 구멍이 많이 난 다공성 구조를 이루고 있다. 비스킷을 차에 담그면 모세관 현상으로 차가 비스킷의 구석구석으로 흡수된다. 동시에 뜨거운 액체가 전분을 부드럽게 만들며 설탕을 녹여버리고, 축축한 비스킷의 구조는 허물어져 버린다.

 

피셔 교수는 다공성 물질의 모세관 현상을 설명하는 ‘워시번 방정식’을 활용해 비스킷과 차 사이의 관계를 수학 함수로 만들었다. 그리고 수많은 비스킷을 차에 담그면서 확인한 결과, 수면에 평행하게 담그는 게 이상적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면 비스킷의 아랫면이 젖어도 젖지 않은 윗면이 비스킷이 젖으면서 무거워진 무게를 지탱해서 부서지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에게 행복한 티타임을 선사한 대가로, 피셔 교수는 1999년 이그노벨상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와 함께 물리학상을 받은 사람은 찻물을 최대한 깔끔하게 부을 수 있는 찻주전자 주둥이를 연구한 영국 수학자였다. 누가 차에 미친 국가 아니랄까 봐!

 

우리는 감자 칩을 귀로도 먹는다

 

중성미자, 힉스 입자 같은 주제에 비하면 차와 비스킷에 관한 연구는 사소해 보이지만 인류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우선 인간의 미각을 만족시킨다는 점에서 삶의 질 향상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다음으로 소비자의 미각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식음료 연구는 거대 식품회사가 엄청나게 공을 들이는 분야다. 음식의 풍미를 높이기 위해서 많은 회사가 식품과학자와 일류 셰프는 물론, 심리학자도 동원한다. 심리학자가 식당에서 무슨 연구를 하냐고? 그래서 이그노벨상 수상자인 찰스 스펜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에게 e메일로 물어보았다.

 

“저는 다양한 감각에 관심 있는 실험물리학자입니다. 최근에는 주로 식사의 과학인 ‘가스트로피직스(gastrophysics)’를 연구해요.”

 

가스트로피직스는 ‘요리학(gastrophy)’과 ‘물리학(physics)’을 합친 신조어로, 음식을 맛볼 때 우리의 여러 감각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대개 식사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감각으로 후각과 미각이 꼽히지만, 스펜스 교수는 청각이 음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당시 학생이었던 막스 잠피니와 함께 2008년 이그노벨상 영양학상을 받았다.

 

그가 관심을 기울인 소리는 ‘바삭’이다. 바삭함은 대표적인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질감’으로, 이전의 식품과학자들은 바삭함이 음식의 신선도와 관련되어 있다고 이해했다. 그렇다면 바삭함은 음식의 질감하고만 관련되어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스펜스 교수는 20명의 실험 참가자에게 프링글스 180통을 먹이며 감자 칩의 ‘바삭’ 소리를 분석했다.

 

실험은 이렇다. 일단 참가자의 손에 프링글스 감자 칩을 들려주고 헤드폰을 씌운 다음 조용한 곳에 가둔다. 참가자가 프링글스를 씹으면 설치된 마이크가 참가자가 칩을 먹을 때 나는 ‘바삭’ 소리를 받아 헤드폰에 되돌려준다.  연구자들은 헤드폰에서 나는 바삭 소리를 더 키우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면서 참가자들이 소리에 따라 감자 칩의 맛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아보았다. 그 결과, 감자 칩 씹는 소리를 더 크게 들은 참가자들이 감자 칩이 평균 15% 정도 바삭거리고 신선하다고 답했다. 같은 감자 칩인데!

 

이 연구는 인간이 ‘맛’이라고 믿는 느낌이 미각과 후각은 물론, 청각을 포함한 다양한 감각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것임을 보여준다. 스펜스 교수는 이를 ‘통합 감각’의 한 예라고 설명한다. 한 감각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청각 : 바삭!) 다른 영역의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미각 : 오호, 더 맛있잖아?).

 

엉뚱한 연구가 만든 식품계의 변화

 

스펜스 교수의 감자 칩 연구는 식품 산업계 여러 곳에 영향을 미쳤다. 음식 회사들은 TV 광고에서 음식의 신선한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 소리를 만들기 위한 연구팀을 가동 중이다. 일본의 한 연구팀은 소화가 잘되지만 지루한 음식인 죽만 나오는 식단을 견뎌야 하는 요양원 노인들을 위한 바삭한 소리를 개발하기도 했다.

 

물론 감자 칩 연구는 연구자 본인들의 삶도 바꾸었다. 현재 스펜스 교수가 운영하는 통합감각 연구소는 전 세계의 유명 레스토랑과 음식 회사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공동 저자이자 당시 제 학생이었던 막스 잠피니는 이그노벨상을 받게 되면 아무도 자신의 연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봐 무서워했어요.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은 수상을 기쁘게 생각하지요.”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두 번째 이그노벨상을 받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운이 따르질 않네요.”

 

그러면 이제 식탁으로 돌아와 마지막 질문을 던지자. 그래서, 어떻게 하면 감자 칩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요? 그러자 스펜스 교수는 연구에 기반한, 그러나 식사 매너와는 동떨어진 답을 해줬다.

 

“입을 벌리고 씹어보세요. 공기로 전달되는 바삭한 소리를 더 크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202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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