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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동물 출현 잦아진 속사정

지구온난화로 따뜻해진 한국 바다 찾아온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올 법한 가상 장면 이지만, 올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국내에서만 5명을 넘는다. 다음 달, 아니 바로 내일이라도 해안가에서‘괴물’을 발견했다는 제보가 또 들어올지도 모를 일이다.

세계 곳곳에서 대왕오징어를 비롯해 거대메기, 대왕문어, 산갈치, 거대해파리 같은 거대동물이 나타났다는 뉴스가 부쩍 늘었다. 지난 1월 초에는 프랑스의 한 호수에서 42.6kg짜리 괴물잉어가 낚였고, 2월 초에는 미국의 한 호수에서 2.1m짜리 거대 철갑상어가 나타났다. 최근 유튜브는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지역에서 사는 괴물메기 동영상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2010년 들어 대왕오징어와 산갈치, 왕게 등 이 발견됐으며, 날이 따뜻해지면 지난해처럼 거대해파리 떼가 다시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갑자기 출현이 잦아진 탓에 거대동물은 새로운 공포의 대상으로 떠 올랐다.

전 세계는 지구온난화나 환경호르몬의 영향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으로 들썩들썩 하다. 국내에서도 거대동물이 발견됐다는 뉴스의 댓글마다 영화‘괴물’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영화 속 괴물은 새끼 물고기가 한강으로 흘려보낸 시체방부처리용 독극물(포름알데히드)을 먹고 커다란 돌연변이가 됐다. 거대동물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영화 속 이야기처럼 인간의 무지한 욕심 탓에 환경이 바뀌었고, 동물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거대해졌다고 나름대로 추측을 내놓는다.




그런데 거대동물이 나타났다는 뉴스를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오징어나 문어, 게, 해파리처럼 대개 해양 동물이라는 점이다. 육상보다 바다가 온난화의 영향을 많이 받거나 상대적으로 오염이 심각하다는 뜻일까. 언젠가는 대왕 쥐나 거대파리처럼 육상에도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동물이 나타나지 않을까. 거대동물이 나타나는 속사정을 알지 못하면 커다란 동물이 나타날 때마다 불안할 수밖에 없다. 영화‘죠스’에서처럼 거대동물이 언젠가 사람을 덮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해양 동물 거대한 이유는 중력 무시하기 때문

 

다행히 전문가들은 육상 동물이 해양 동물처럼 원래 한계치를 넘을 만큼 커질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말한다. 땅에서는 중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거대동물이 자기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성장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물속에서는 중력과 반대방향으로 가해져 물에 뜨는 힘, 즉 부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중력의 영향이 작아 몸이 상대적으로 거대해질 수 있다. 물론 해양 생태계가 거대동물이 생존할 수 있는 먹이를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환경이라는 점도 이유가 된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지역에서는 몸길이가 4m에 달하는 거대메기가 목격됐다. 처음 발견한 사람이 거대메기 2마리가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을 촬영해 유튜브에 퍼뜨리면서 널리 알려졌다. 영상에서는 메기와 함께 보통 크기의 잉어 떼가 헤엄치고 있는데, 거대메기의 어마어마한 크기에 소름이 끼친다. 일부 전문가들은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을 때 누출된 방사능이 강바닥에 남아 있어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메기 변종이 탄생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생물이 방사능 물질에 노출됐을 경우 생리적, 생태적인 변화와 기형을 낳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 나오는 방사능이 해양 동물의 생태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직접 조사했다. 2009년 국립수산과학원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속초, 주문진, 강릉, 동해에서 방사능 분석용 해수 시료를 채취해 인공 방사능 물질의 농도 변화를 측정했다. 측정 결과 다행히 해양에서 핵실험의 영향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체르노빌에 서식하는 거대메기도 돌연변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일반 메기와 닮았지만 크기가 보통 3m 이상인 웰스메기라는 것이다. 웰스메기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에서 사는 물고기로, 악어처럼 물속에 숨어 있다가 물가에 다가오는 물새나 들짐승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먹이 따라 올라온 대왕오징어와 산갈치


국내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나타나는 거대동물들 역시 방사능이나 환경호르몬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환경이 변해서 기형 개체나 변종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심해에서 살고 있던 거대동물들이 연안으로 올라오는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바다가 깊어질수록 심해등각류나 일본


거미게, 산갈치, 대왕문어처럼 동물들의 몸이 점점 커지는 경향이 있다(심해거대증). 특히 쥐며느리처럼 생긴 등각류는 얕은 바다에서는 최대 27cm까지밖에 못 자라는데, 심해에서는 죽은 물고기를 먹고 살면서 50cm 이상으로 자란다. 이것은 심해동물이 수압이 크고 빛이 들지 않아 먹이가 부족한 환경에서 적응하면서 성숙기가 점점 늦어지기 때문이다. 짝짓기 시기가 늦어지면서 성장기가 계속되는 셈이다. 심해에서는 체온 조절이 중요해 동물들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도 몸집이 비대해지는 하나의 요인이다.

지난 1월 15일, 경북 포항시 장기면 신창 앞바다에서는 몸 전체 길이가 7.7m나 되는 대왕오징어(Architeuthis martensi )가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수심 300~600m의 심해에 살던 대왕오징어가 먹이를 따라 얕은 바다까지 올라왔다가 힘이 빠져 파도에 떠 밀려왔다고 설명했다.

대왕오징어의 먹이는 대구와 오징어, 게 등인데, 대구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알을 낳기 위해 연안으로 이동한다. 최근 기후 변화로 해수가 따뜻해지면서 난류성 플랑크톤이 증가하고 어류도 증가했다.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는 2009년 오징어 어획량이 2004년부터 2008년까지의 5년 동안에 비해 13%, 대구 어획량은 59% 늘었다고 발표했다. 목격한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대왕오징어는 ‘괴물’이 아니라 먹이를 정신없이 따라온‘식충이’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그런데 대왕오징어가 천적을 피해 도망친 것이란 주장도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연구기획과 김영혜 박사는 “대왕오징어가 천적인 향유고래의 공격을 피해 근해로 왔다가 깊은 바다에선 강하게 느끼지 못했던 부력 탓에 죽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대왕오징어가 출몰하는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전문가들은 대왕오징어가 나타난 바다는 자원이 풍부하다는 뜻이기 때문에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경북 포항에 있는 국립수산과학원 독도수산연구센터의 이해원 연구사는“대왕오징어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동해가 복잡한 생태계를 이루는‘살아있는 바다’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독도수산연구센터 전영열 센터장은“지구온난화로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서 아열대성, 온대성 기후에 살던 대왕오징어가 한국 연안을 자기가 사는 환경으로 착각하고 이동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월 3일 강원 강릉시 금진리 해안가 에서 발견된 3.7m짜리 산갈치(Regalecus russellii )도 마찬가지다. 산갈치는 생김새가 갈치(Trichiurus lepturus )와 매우 닮았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종이다. 길쭉한 은색 몸에 머리에서 등까지 빨갛고 화려한 지느러미가 달려 있는 산갈치는 산과 바다 사이를 날아다니며 15일씩 번갈아 산다는 전설이 있다. 일본에서도 기이한 모습 덕분에 '지진을 부르는 물고기’라는 별명이 붙었다.

국내에서도 2월 초 산갈치가 발견된 직후 수도권 지역에 작은 지진이 일어났다. 입소문 빠른 네티즌들은 산갈치가 지진의 징조를 느껴 뭍으로 올라온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해원 연구사는“산갈치가 지진을 미리 알린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아직까지 없다”며“오히려 산갈치가 나타난 바다는 대왕오징어의 경우처럼 자원이 풍부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산갈치같은 대형 어류는 성장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양의 먹이를 먹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이 생존하려면 그만큼 먹이가 풍부한 해역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이연구사는“특히 산갈치는 먹이를 적극적으로 사냥하기보다 주변에 널려 있는 먹이를 주둥이로 빨아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먹이가 풍부한 곳을 찾는다”며“산갈치가 발견된 해역은 플랑크톤과 이를 먹이로 하는 어류가 모여 다양한 생태계를 이룰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산갈치가 자주 나타난 동해남부해역은 시기에 따라 청어, 대구, 말쥐치, 오징어 등이 모여들어 어획생산성이 높은 어장이다. 이곳에 수산자원이 풍부한 이유는 미네랄이 풍부한 심층수가 표층으로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물고기 내쫓고 그물찢는‘괴물’해파리


하지만 거대동물의 출현이 항상 반가운 소식만은 아니다.‘무서운 괴물’을 넘어사람의 생활을 직접적으로 방해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최근 한국과 일본 연안 에서는 원래살지 않던 해파리의 개체수가 늘어나면서 골치를 썩고 있다. 바로 노무라입깃해파리(Nemopilema nomurai)와 유령해파리(Cyanea nozakii)다. 국립수산과학원에서 밝힌 노무라입깃해파리의 크기는 우산 지름만 70cm에 달한다. 
 

 

미래 한반도 바다의 왕은 누구?

한국 연안에서 자주 출몰하는 거대동물인 대왕오징어와 산갈치, 노무라입깃해파리가 서로 만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거친 몸싸움 끝에 포식자가 되는 주인공은 누굴까.

세 동물의 ‘스펙’을 비교해보면 평균 몸길이는 현존하는 무척추동물 중에 가장 큰 대왕오징어(10m 안팎)가 우세하다. 노무라입깃해파리는 우산의 지름 1m 정도에 몸길이 5m로, 최근 국내에서 발견된 산갈치(약 4m)와 비슷하다.

대왕오징어는 둥글고 큰 입 안에 있는 이빨로 대구나 오징어를 찢어 먹는다. 노무라입깃해파리는 동물 플랑크톤을 먹이로 한다. 아무리 노무라입깃해파리가 독이 있다고해도, 대왕오징어를 잡아먹을 일은 없다는 얘기다.

갈치는 위 속에서 사람의 이빨이나 뼈가 나왔다는 소문이 있을 만큼 무시무시한 포식자로 알려져 있다. 갈치의 입은 크고 위턱과 아래턱에 날카로운 이빨들이 줄지어 있다. 또 갈고리 모양의 이빨이 나 있어 작은 물고기나 오징어, 새우, 게 등을 먹는다. 대왕오징어의 식단과 비슷하단 얘기다. 반면 산갈치는 큰 덩치와 달리 이빨이 없고 주둥이가 작다. 수축성이 좋은 주둥이를 2배나 늘려 수중에 떠 있는 작은 새우나 오징어, 해파리 등을 통째로 삼킨다. 입 크기와 뱃속만 허락한다면 대왕오징어와 노무라입깃해파리도 집어삼키지 않을까.

 


최근 200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하면 해파리의 개체 수는 12년을 주기로 증가했다가 감소한다. 4~6년 동안은 증가하다가 나머지 기간은 감소하는 식이다. 그런데 한국해양연구원에 따르면 노무라입깃해파리의 개체 수는 2000년부터 지금까지 대번식이 멈추지 않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의 탓이다. 대왕오징어나 산갈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바닷물 온도가 따뜻해지면서 노무라입깃해파리도 먹이를 따라 한국 연안까지 왔다. 전영열 센터장은“환경오염으로 바닷물 속의 영양염류가 과다해지면서 해파리의 먹이인 플랑크톤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진 것도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국립수산과학원 해파리정보센터는 해파리의 출현과 이동을 감시하는‘해파리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해파리 모니터링 프로그램은 기상자료를 분석하고, 인공위성사진에서 물의 온도를 판독한다. 한국연근해 해류의 흐름과 해파리 출몰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노무라입깃해파리의 이동경로를 알아낸다. 또 전문 잠수부를 동원해 크기가 작고 투명한 독성 해파리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채집했다. 해파리정보센터에서 지난해 12월에 실시한 모니터링에 따르면 노무라입깃해파리는 전남, 경북 일부해역에, 유령해파리는 남해 일부해역에 자주 출현한다. 연한 갈색인 노무라입깃 해파리는 독성이 있어 사람에게 채찍 모양의 상처를 낸다. 연한 우유빛인 유령해파리는 피부에 닿으면 따끔거리는 통증과 간지럼을 유발한다.

해파리가 사람에게 주는 해로움은 이뿐이 아니다. 독성으로 물고기를 폐사시키거나 물고기와 함께 그물 속으로 들어가 어망을 파손한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내다 팔지 못할 만큼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또 한국 연안에 서식하는 어류를 쫓아내 어업을 방해한다. 수십만 마리의 해파리 떼가 원자력발전소의 취수구를 막아 가동을 중단시키는 일도 심각한 문제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이런 피해를 줄이기 위해 2005년 해파리를 선택적으로 배출하는 어망을 개발했다. 또 해파리를 채집해 그 자리에서 분쇄하는 제거 망을 개발하기도 했다. 앞으로 한국의 바다를 찾아올‘거대한 손님’은 누굴까. 지구의 기후가 변하면서 심해에 살던 거대동물들이 갈 길을 잃고 찾아온다지만, 사람들이 이들을‘괴물’로 취급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나타난 거대동물을 토대로 연구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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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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