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병력없이도 전투훈련을 할 수 있는 모의 전투 시스템 '컴퓨터 워게임'이 국내에서도 한창 개발중이다. 한국국방연구원의 컴퓨터 워게임실을 찾아 컴퓨터 워게임의 이모저모를 알아보았다.
컴퓨터 그래픽 화면에 아군의 모든 전황이 나타난다. 적의 공습이 시작되고 아군 탱크가 부서진다. 비상루트를 통해 침투하는 적군의 정보가 입수된다.
화면을 바라보는 지휘관은 병력과 군수를 지원하는 등 대책을 수립한다. 화면 속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전투가 진행되는 중에도 지휘관은 화면에 시현된 정보를 근거로 전세를 판단, 수시로 작전지시를 내린다. 지시내용이 주효하면 적군의 피해가 늘어나고 그렇지 않으면 아군의 피해가 막심해질 것이다.
전투가 끝나면 승패여부부터 양군의 손실 내용까지 결과가 문자자료로 화면에 상세히 드러난다. 지휘관들은 지금까지 수행한 컴퓨터 워게임을 재현하며 작전공부를 할 수 있다.
이는 흔히 접할 수 있는 듄(DUNE), 1943 등 컴퓨터를 이용한 게임의 한 종류가 아니다. 전쟁의 실제상황을 컴퓨터로 재현, 훈련을 수행하는 우리 국군의 '컴퓨터 워게임' 훈련 현장이다.
합참에서 JTLS, 육군은 CBS 등 국내 도입
총도 대포도 부대이동도 훈련공간도 포성도 없는 군사훈련이 국내에도 도입돼 있다. 이제 군사훈련에도 컴퓨터가 이용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지난 90년 경부터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훈련분야에 활용되기 시작한 컴퓨터 워게임 모형은 몇가지 종류가 있다.
먼저 합동참모본부와 한국국방연구원이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컴퓨터 워게임 모형. 지난 해 을지연습 기간 중 컴퓨터를 이용한 지휘소훈련(CPX)에서 소개된 전군 차원의 훈련 및 분석용 모형 JTLS와 대대급 훈련모형인 JANUS가 그것들이다.
또 육군에서는 이와는 별개로 미국 육군에서 사용하는 사단단위 훈련체계인 BCTP(전투지휘훈련 프로그램, battle command training program)를 들여와 일부 훈련에 활용중이다. 이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것은 CBS(군단전투모의, corps battle simulation) 모형으로 미국 국립모의센터에서 90년 부터 실용화시킨 것에 한국군 관련 자료들을 입력했다.
훈련용 프로그램이 아닌 워게임은 훨씬 일찍부터 국내에 도입돼 있었다. 70년대 중반부터 미국의 아틀라스(ATLS)가 육군에 들어온 이래, 작전계획평가와 군사력 대안 평가, 전력운용 방안 개발을 위한 분석용 워게임이 활용돼 왔다.
최근 개발된 컴퓨터 워게임 모형은 단순한 전쟁모의만 하는 것이 아니다. 초기 데이터베이스를 지원하는 SDS(scenario development system) 프로그램과 SDS의 일관성을 검증하는 SVP(scenario verification program), 사후 전쟁모의 결과를 분석하는 PP(post processor) 등의 지원 유틸리티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이밖에 해군 등에서 쓰이는 RESA모형 등을 합치면 국내 컴퓨터 워게임 모형은 약 20여개가 된다.
워게임의 기원은 장기판
본래 '워게임'은 가상의 군사전투상황을 모의, 주어진 게임의 규칙, 절차 및 자료를 이용하여 군사작전을 묘사하는 것. 꼭 컴퓨터를 쓰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령 장기나 체스판의 기원을 따져보면 이 또한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의 진지구축, 군사 배치, 치고 빠지고 하는 전략을 계획하는 것이 모의전쟁을 의미하는 '워게임'이다. 전쟁이 있던 곳이라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참모에 해당하는 장군이나 수장들은 군사배치나 전략을 구상하느라 머리를 짜냈을 것이다.
1970년대 컴퓨터 기술의 눈부신 발달과 함께 워게임은 미국을 중심으로 전산화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무기체계도 복잡해지는 등 전쟁의 변수가 늘어나면서 컴퓨터의 역할이 기하급수적으로 중요해지게된 것.
특히 지난 1991년 걸프전에서는 군사조치 대안검토 및 지휘관 훈련에 활용,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분석이 이루어졌다.
"워게임은 군사기획, 전략, 작전계획, 군수지원계획, 무기체계 선정 등의 대안수립에 과학적인 평가를 제공합니다. 참모와 지휘관 훈련을 워게임으로 대치하면 실 기동훈련보다 상대적으로 싼 비용으로 훈련효과를 달성하고 현대전의 관리능력을 배양할 수도 있습니다. 또 적의 행동양상과 이에 대한 대안의 도출, 실험이 쉽다는 점도 워게임의 필요성을 웅변하는 대목입니다."
20여년간 워게임 연구에 종사해온 국방연구원 박태훈 워게임실장의 말이다.
뿐만 아니라 실제 훈련에서 대두되는 훈련 공간 확보, 대민 피해요인, 주변국들의 실제 훈련으로의 오인 등 부정적 요소들을 막을 수 있으며, 훈련의 공백을 보완하고 실제 훈련시 조정할 수 없는 상황까지 설정, 대비책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작전수립과 실행을 주먹구구식이 아닌 과학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컴퓨터 워게임 통한 가상 시나리오의 허구
전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만큼이나 워게임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 변수가 얼마나 많은지는 종류를 나누는 '분류방법부터 분류'를 해야 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이 소개하는 바에 따르면 워게임은 먼저 운용목적에 따라 연구분석용과 훈련용으로 나눌 수 있다. 전쟁을 평가하는 논리에 따라 확률형(추계형)과 결정형으로 나눌 수 있으며 모의 수준에 따라서는 대대급 연대급 사단급 군단급 전국급으로 모의 내용에 따라 지상전 공중전 해상전 3군합동모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또 전산화정도에 따라서는 수동식, 반전산화, 전산화된 워게임으로 나누기도 한다. 전쟁형태 및 묘사정도에 따라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정치 외교적 문제들부터 다루는 워게임에서부터 전면전 제한전 및 게릴라전 워게임, 지상전 해상전 공중전 및 합동모의 워게임 등으로 나눌 수도 있다.
이렇게 많은 경우의 수가 있기 때문에 '모의 전쟁을 해보니 어디까지 밀렸다'는 식의 가상시나리오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박태훈 실장의 말이다.
최근 타임지나 몇몇 언론에서 워게임을 사용한 남북간 전쟁이 벌어졌을 경우의 가상시나리오들이 나온 바 있는데, 이같은 가정은 불합리하다는 것. 모의해나가는과정, 즉 입력된 정보를 이용한 지휘관의 작전지시 등 의사 결정과정을 무시한 상태에서 결과를 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컴퓨터 워게임에 사용하는 모형은 현재 워게임 카달로그에 등록된 것만도 약 1천여개 이른다는 게 박실장의 말이다. 모델의 숫자를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무기체계와 프로그램 자체가 끊임없이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델은 확률적으로 볼 때 주사위 던지기를 방불케 한다. 같은 모델이라도 때마다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워게임은 만능일 수 없다. 워게임이라는 설정 자체가 근본적으로 가지는 한계가 있는 것. 워게임은 그것이 훈련이냐 분석이냐 하는 목적에 따라 가정상황 및 의사결정 수준이 다르며 그 결과도 입력자료, 전력운용시나리오, 지휘관 의사결정 등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어느 특정 워게임 모형의 운용결과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경험많은 지휘관의 직관력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고 한다.
어차피 전쟁은 '비정상적인 상황의 모험'이라는 게 박태훈 워게임 실장의 말이다. 전쟁의 상황은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의 연속이며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청군과 홍군, 통제관으로 나누어 모의전투
이쯤해서 컴퓨터 워게임 현장으로 돌아가 보자. 여기서는 국방연구원이 합참과 공동개발하고 있는 컴퓨터 워게임을 중심으로 알아본다.
국방연구원에서 가상 데이터를 사용해 모의전쟁을 보여준 것은 제이너스(JANUS) 모형을 통한 대대급 훈련과정. JANUS모형은 미국 국립 로렌스 리브모어연구소에서 지난 86년 후반부터 개발한 모형으로 국내에 들어온 것은 2.3버전이다.
한번의 대대급 전투를 모의하기 위해 필요한 입력자료가 20만 라인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이 모형에 쓰이는 컴퓨터는 전투모의를 위한 대형컴퓨터와 전투상황표시를 위한 그래픽 컴퓨터인 텍트로닉스 4225 기종. 테트로닉스 그래픽 터미널은 주로 캐드나 캠에 사용되는 1대당 4-5천만원의 고가품이다.
대개 워게임 훈련은 서로 적군인 청군과 홍군, 그리고 이들을 중간에서 통제하는 통제관의 세 팀으로 나누어 실시된다. 지휘관들은 실제 전쟁처럼 적의 현황을 몰라야 하므로, 아예 다른 방에서 게임을 수행한다.
한 팀은 작전 군수 정보 인사의 역할을 맡은 지휘관들이 기본이 된다. 각 팀당 5-6명씩, 세 팀에 모두 15-20명 가량의 인원이 한번의 워게임 전투에 참여하게 된다. 대대급 훈련에 작전참모와 정보참모 등 많은 인원이 역할 분담해 가담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각 군의 컴퓨터 화면에는 아군의 정보만이 나타나지만, 제3의 방에 있는통제관의 화면은 청군과 홍군의 상황 모두를 종합한다. 사진은 청군과 홍군의 대치상황을 한꺼번에 파악할 수 있는 통제관의 화면을 촬영한 것이다.
일단 교전이 시작되면 양군이 교전을 통해 알아낸 적군 정보가 화면에 나타난다. 가령 청군이 어딘가를 폭격해 홍군 탱크를 부쉈을 경우 파손된 탱크는 청군의 정보가 된다. 그러므로 청군 화면에도 나타나게 된다.
여기서는 청군이 공격하고 홍군이 수비를 하는 상황을 설정했다. 가상의 지형이지만 등고선과 주변 건물에 대한 정보 즉 층수 입구 등이 입력돼 있다. 등고선은 1백m 간격이며 사방 60㎞의 크기로 잡았다.
호수 강 산악 등이 표시돼 있고, 빨간 곳은 전투병력이 갈 수 없는 지역을 의미한다. 도로 상황, 도로를 지날 수 있는 속력까지 모두 입력돼 있다. 화면 크기조절이 자유롭고 배경이나 각종 표지도 필요에 따라 띄우거나 지울 수 있다는 점도 컴퓨터가 가진 장기다.
전투가 시작된다. 먼저 지형자료를 준비해 띄우고 모의 부대를 정의한 뒤 작전지형에 배치하면 실전과 같은 전쟁에 돌입한다. 청군기갑부대가 출동, 먼저 진지를 판다. 화면에서 탱크처럼 생긴 것은 M901 장갑차, 빨간 십자가가 그려진 부분이 진지다.
간접화기의 사격계획을 짤 때는 가운데 원이 최소 사거리, 바깥의 큰 원이 최대 사거리를 의미한다. 탄종도 구분이 가능한데, 가령 연막탄은 발사됐을 경우 바람의 흐름에 따라 이동해 나가는 모습까지 나타난다. 사격횟수는 화면에 숫자로 표시된다.
시간이 흐르고 전투가 진행됨에 따라 홍군의 병력이 탐지되면 탐지된 병력이 화면에 나타난다. 화면상에 나타난 'S' 표시는 제압당한 것을 나타내며 'A'는 죽은 것을 의미한다. 1시간 10분의 가상전투 결과는 청군의 손실 60, 홍군의 손실 46으로 나타났다.
3군합동 워게임 모형 JTLS
JANUS가 대대급 지상전투부대가 군사훈련을 하는데 적합한 모형이라면 JTLS(joint theater level simulation)는 육해공 3군의 합동입체작전 모형이다.
JANUS가 사방 60㎞나 사방 1백㎞ 규모의 작전반경을 가지는데 비해 JTLS는 대개 전군 단위, 지역도 전국을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JANUS는 세세한 묘사가 가능하지만 JTLS는 개략적인 묘사에 그친다.
JANUS와 JTLS의 용도 차이는 근본적으로 지도를 그려내는 방식 차이 때문에 생긴다. JANUS는 디지털 지형 데이터로 좌표 XY축과 등고선으로 이루어진 화상그래픽을 사용, 섬세한 묘사가 가능하지만 속도가 느리고 대대급 이상의 전투모의에는 사용이 곤란하다.
이에 비해 JTLS는 전국 군사지도를 촬영, 레이저 디스크에 담아 화면에 띄움으로써 용량과 속도의 한계를 극복했다. 이를 아날로그 맵 데이터라 한다.여기에 부대와 이동상황에 대한 정보를 오버랩시킨다. JANUS가 훈련용에 적합하다면 JTLS는 쉽게 말해 '전자 상황판'인 셈.
JTLS는 지난 86년부터 미국 합참 주도로 시스콘 개발회사에서 만들었다. 국내에 들어온 모형은 1.8버전으로, 지난 90년부터 한미 연합사로부터 무상도입한 뒤 합동참모본부와 국방연구원이 90-93년 24억원을 투입해 15종 3백 50만건의 자료를수집, 입력했다.
지난 해 을지훈련 기간 중 일부가 선보였고 내년부터 본격 훈련에 도입할 예정이라는 게 국방연구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JTLS 모형에는 육해공 3군 각 단위부대의 병력 장비 무기 등 모든 전력정보가 들어 있다. 전국을 수천개의 육각형으로 구획한 뒤 각육각형에 지역 단위의 상세한 정보를 담았다.
무기체계 등 부대 하나하나의 정보가 데이터 속에 입력돼 있고, 군수와 정보의 상황을 통합묘사할 수 있다. 게임속도 조정, 전투상황 재현도 가능해 지휘관들이 평소에도 유리한 전술과 교리를 개발할 수 있다.
큰 화면은 상황을 알아보기 위한 모니터에 불과하며 전투수행은 전투모의 프로그램(CEP, combat event program)에서 관장한다. 중앙처리는 VAX 6430컴퓨터가 맡는다. 중앙처리장치가 3개, 메인 메모리가 1백 28메가 바이트, 보조메모리는 9기가 바이트의 용량이다.
입력은 다른 시스템을 통해 하게 된다. MIP(model interface program)가 그것으로, 지휘관의 의사결정, 즉 작전명령을 MIP 터미널 통해 입력하는 시스템이다. 여기서는 터미널 하나가 하나의 단위가 된다. JANUS와 마찬가지로 작전 군수 정보 등의 각 단위가 필요할 것이다.
반면 IMT(information management terminal)에는 각 부대들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담겨 있다. 가령 부대이름, 위치, 지상군 대대, 전투력, 아군이 획득한 홍군에 대한 정보 등이 한꺼번에 화면에 나타나며 메뉴별로도 찾아볼 수 있다.
전투 중간중간에도 지휘관들은 정보를 불러낼 수 있고 MIP터미널을 통해 새로운 명령이 가능하기 때문에 변수는 엄청나게 많은 셈이다.
공격루트, 공격목표부대(적), 일시, 공격 시작 시간, 전투력, 작전계획 등이 MIP 터미널을 통해 CEP로 보내진다. 이를 CEP에서 모의, 전투결과를 다시 메시지 형태로 MIP에 보내준다.
국방 체계의 브레인 역할 눈 앞에
한국판 컴퓨터 워게임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적지 않게 안고 있다. 우선 컴퓨터 워게임 프로그램이 실제 상황에서 의미를 가지려면 입력자료가 정확해야 한다. 이 점이 쉽지 않다는 점이 워게임의 완벽성을 보장할 수 없는 이유라고 개발관계자는 설명한다.
앞으로 전쟁연습수행절차가 더욱 개발되고 데이터 베이스 정확도 검증 등도 이루어져야 한다.
전문인력 양성 등 운영능력 개발도 눈 앞에 닥친 과제다. 전문인력이란 개발인력과 운용요원을 말하는데 개발인력은 현재 국방연구원의 7-8명이 고작. 목적에 맞게 워게임을 운용할 수 있는 요원도 육군의 60명을 빼면 각군마다 10명 안팎이라 태부족이라 한다.
컴퓨터 워게임은 군사학은 물론이고 통계학 전산학 수학 산업공학 전자공학 등의 여러 첨단학문이 만나 이루어지는 첨단과학이다.
워게임이 활발히 활용된다면 국방분야 과학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개발관계자의 의견이다. 전쟁 수행절차나 무기체계 등에 관한 첨단논리와 내용이 컴퓨터 워게임 프로그램 속에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