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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에 금이 가거나 폐에 이상이 생기면 병원에서 X선 촬영을 해 이상 부위를 찾는다. X선은 투과력이 높아 환자의 몸 안을 속속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병원에서 쓰는 X선 장치로는 1mm 이하의 크기는 보기 어렵다.

과학자들은 더 작은 세계를 속속들이 파악하기 위해 X선으로 사물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현미경을 개발하는 데 이르렀다. 가시광선을 이용하는 광학현미경은 가시광선 파장보다 큰 물체까지만 식별할 수 있고 원자까지 관찰할 수 있는 전자현미경도 극도로 얇은 물체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제정호 교수가 이끄는 X선영상연구단에서 개발하고 있는 현미경이 바로 X선현미경이다. X선현미경은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고 더 작은 세계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X선의 장점을 활용한 현미경이다. 물체 내부를 수십nm(나노미터, 1nm=10-9m) 크기까지 관찰할 수 있는 이 현미경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세계 최고 해상도의 비결은 동심원 회절판

X선은 자외선보다 파장이 짧은 전자기파(0.01nm~10nm)로 1895년 독일의 물리학자 뢴트겐이 처음 발견했다. 발견 당시 뢴트겐은 물질을 잘 투과하는 이 방사선에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의미로 X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현재 병원에서 쓰는 X선 장치는 물체가 X선을 흡수하는 정도에 따라 명암이 다르게 보이는 현상(흡수대비)을 이용한다. 예를 들어 뼈는 X선을 많이 흡수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검게 나오지만 근육이나 지방은 X선을 적게 흡수하고 투과를 많이 시켜 밝게 나온다. 하지만 X선을 흡수하는 정도에 크게 차이가 없을 경우 흡수대비로는 고해상도 영상을 얻을 수 없다. X선의 명암을 뚜렷이 나타내기 위해서는 조영제라는 물질을 혈관 속에 집어넣어 촬영한다. 하지만 조영제는 중금속 성분이 들어 있어 몸에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사용하더라도 미세혈관까지 선명히 보기는 힘들다.

그동안 많은 과학자들은 이런 단점을 보완한 고해상도 X선현미경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X선을 광학적으로 제어하는 장치인 X선 광학계를 만들기 어려웠다. 광학계란 빛을 반사시키거나 굴절시켜 특정부위에 물체의 상이 맺히도록 하려고 반사경, 렌즈, 프리즘 등으로 구성한 장치를 말한다. 일반 현미경에서 볼 수 있는 접안렌즈나 대물렌즈도 일종의 광학계다.

제 교수는 대만 중앙연구원의 후 유광 교수와 스위스 로잔공대의 조르지오 마가리톤도 교수와 국제컨소시엄을 구성해 약 15년 동안 공동 연구를 했다. 그 결과 세계 최고 해상도의 X선현미경을 만드는 데 핵심장비인 X선 동심원 회절판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동심원 회절판은 회절된 X선을 보강간섭시켜 X선을 집속하고, 그 결과 물체 내부를 확대해 보는 장치다. 보강간섭은 예를 들어 파장이 같은 파도가 겹칠 경우 파도의 마루와 마루가 만나면서 파도가 더 강해지는 현상이다. 동심원 회절판은 링이 동심원처럼 반복되는 구조인데, 링과 링 사이에는 일정한 간격의 틈이 있다. 이 틈과 틈 사이에서 X선은 회절을 일으킨다.

제 교수는 “동심원 회절판의 관건은 가장 바깥에 있는 원형 링의 폭과 높이”라며 “폭이 좁고 높이가 높을수록 해상도가 좋아지며 X선을 한 점에 모으는 집속효율이 향상된다”고 설명했다. 기존 제작 기술로는 바깥의 링을 얇게 만드는 데 한계가 있었다.



2008년 연구단은 동심원 회절판을 기존의 X선현미경에 적용해 당시 세계 최고 해상도인 해상도30nm 이하의 X선현미경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이 X선현미경의 해상도를 16nm까지 높였다.

조영제 없이 미세혈관 찍고 전기도금 과정도 찍고

제 교수는 “X선현미경은 기존의 X선 영상장치보다 약 3000배 세밀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뿐 아니라 1초에 200장의 연속사진을 촬영해 물체를 동영상으로 관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X선현미경은 조영제를 넣지 않고도 혈관을 선명히 촬영할 수 있다. 2004년 연구단은 세계 최초로 쥐의 미세혈관을 조영제 없이 촬영하는 데 성공해 ‘국제의학생물물리학회지’에 발표했다. 그해 이 논문은 가장 많이 내려 받은 논문과 하이라이트 논문으로 선정됐다.

연구단은 X선현미경으로 금속을 전기도금하는 과정도 실시간으로 촬영하는 데 최초로 성공했다. 이 결과는 2002년 ‘네이처’에 발표됐다. 당시 연구단은 전기도금 중에 결함이 생기는 원인을 처음으로 밝혀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구리 기판을 아연으로 도금하는 과정에서 물에 있던 수소가 전자를 얻어 수소 기체로 환원되면서 구리 기판 표면에서 기포를 형성하는데, 수소 기포 위에 아연이 달라붙는 현상이 발생했어요. 이렇게 수소가 구리 기판과 아연 사이에 끼어들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구리 기판 위에 도금된 부분이 볼록하게 솟아 전기전도성이 떨어지는 결함을 일으켰던 것이죠.”

전기도금 기술은 현재 반도체 분야에서 중요하게 쓰인다. 반도체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집적화되면서 반도체의 금속 배선을 대부분 전기도금하기 때문이다. 미세한 부분이라도 도금이 잘못될 경우 전도성이 떨어지며 반도체 기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전기도금 과정 중에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관찰할 수 없었다. 전기도금이 불투명한 전해질 속에서 일어날 뿐 아니라 미세한 변화를 관찰할 장치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일종의 ‘블랙박스’로 여겨 왔던 전기도금 과정을 연구단이 밝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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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세포 현상 연구할 미세 물막 만들어

연구단은 물에 X선을 쬘 때 물의 표면장력이 감소하는 현상도 최초로 발견하고 그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해 물리학 분야의 권위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 5월 30일자에 게재됐다.

표면장력이란 액체 표면에서 분자들이 서로 끌어당겨 표면을 작게 하려는 힘이다. 물은 다른 물질보다 표면장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컵에 흘러넘칠 듯 가득 채우더라도 잘 넘치지 않는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세제와 같은 계면활성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물의 표면장력을 줄일 수 없다고 여겨 왔다.

하지만 연구단은 이런 고정관념을 깨트렸다. X선을 비추는 동안 물의 표면장력이 줄어드는 현상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물 표면에 X선을 쬐면 X선의 높은 에너지 때문에 원자핵과 결합이 끊어지며 튕겨져 나오는 전자(광전자)가 생기는데, 이 때문에 물 분자 표면이 상대적으로 양전하로 대전되기 시작했다. 양전하를 띤 물 분자가 늘어나면 물 분자 사이에 끌어당기는 힘(인력)이 아니라 밀어내는 힘(척력)이 작용해 표면장력이 줄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연구단은 이 원리를 이용해 지름이 약 200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인 모세관 내부에서 동전처럼 생긴 ‘자립성 물막’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이 물막을 오랜 시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의 연구자들이 만든 물막은 극히 짧은 순간(1000분의 1초) 동안 생겼다 사라졌지만, 연구단이 만든 물막은 1시간 이상을 버텼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해 3월 10일 ‘국제응용물리학회지’에 실렸다.

제 교수는 “물은 생명체의 주성분이기 때문에 물에 관한 연구는 매우 중요하다”며 “물막을 이용해 실제 세포 사이에서 이뤄지는 생화학적 현상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현재 연구 분야에 안주하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신소재, 물리, 화학, 생명과학, 생의학 등 최첨단 과학 분야에서 X선을 이용해 나노소재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규명하고 응용하는 연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노소재에서 생의학까지 융합한다

제정호 단장 인터뷰

X선영상연구단은 X선의 강한 투과력을 이용해 물체를 고해상도로 관찰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현재 제 단장과 연구단은 더 큰 도전에 나선다. X선으로 사물의 내부뿐 아니라 기능까지도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것. 바로 ‘X선기능영상’프로젝트다.

제 단장은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살아 있는 암세포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촬영해 암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또한 연구단은 암세포뿐 아니라 여러 생체물질에 대한 기초 연구를 마치고 X선 영상기술을 나노소재 및 생의학 영상에 융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 단장은 “이 프로젝트는 이론 연구와 X선 영상 기술, 나노소재 및 생의학 영상 분야를 포괄한다”며 “물리, 화학, 생명공학 등 다양한 분야를 결합하려는 노력이 무엇
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단의 성과 뒤에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 여건이 있었다. 연구단은 방사광가속기라는 거대시설을 이용하기 때문에 국내뿐 아니라 미국, 대만, 싱가포르, 일본, 스위스 등의 방사광가속기 전문가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해 공동으로 연구한다.

현재 연구단은 세계 연구 그룹과 협력과 경쟁을 함께하며 주목할 만한 연구 과제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방사광 가속기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스위스 로잔공대 마가리톤도 교수, 대만 중앙연구원 후 교수와 국제컨소시엄을 구성해 연구하고 있다.

이 같은 협력으로 포항방사광가속기, 대만중앙방사광가속기, 스위스방사광가속기, 미국방사광가속기에 X선 영상 전용 빔라인을 갖췄다. 연구단이 좋은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단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연구해 온 덕분인 셈이다.

제 단장은 “X선 영상기술은 나노과학과 생명과학의 발전을 이끌 뿐 아니라 과학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한다”며 “그 중심에우리 연구단이 있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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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포항 = 이준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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