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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기후 위협하는 비행기구름

지구를 어둡게, 그리고 뜨겁게


맑은 날 하늘을 보면 수많은 비행기구름이 여기저기 낙서처럼 그어져 있다. 가느다란 것도 있지만 굵게 그려진 것도 있고, 하늘을 길게 가르는 것도 있다. 그런데 이 비행기구름이 지구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울지도 모른다. 모든 생명의 원천인 햇빛 을 가 림으로써 말이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110층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에 항공기 4대가 약 20~30분 간격으로 내리꽂히는 자살테러가 발생했다. 3000여 명이 무고하게 목숨을 잃었고 세계 경제가 흔들렸다. 전세계가 모두 경악한 참사였다. 이 테러가 일어난 직후 미국에서는 3일 동안 모든 비행기의 운항을 금지했다. 그런데 당시 대기과학자들은 우연히 기이한 점을 발견했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평소보다 1~2℃ 가량 커진 것이다. 심지어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랗고 맑았다. 혹시 비행기구름이 날씨나 기후에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비행기구름, 햇빛 막고 온난화 부채질

비행기구름은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 꼬리 모양으로 길게 나타난다. 제트엔진에서 나온 뜨거운 수증기(약 600℃)가 9km 이상 높이에서 차가운 공기(영하 약 50℃)와 닿는 순간, 얼음결정으로 얼어붙으면서 구름이 된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수증기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산화탄소와 대기오염을 일으키는 여러 화학성분이 나온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기상역학연구실의 올리비에 부셰 박사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대기가 습할 때 비행기구름이 주변으로 옅게 퍼지면서 권운을 만드는 현상도 기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권운은 다른 구름(10km 미만)보다 훨씬 높은 상공(10~13km)에서 생긴다. 대형 여객기가 장거리를 비행하는 높이기도 하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랭글리연구센터의 패트릭 민니스 박사는 1971년부터 1995년까지 25년 동안 인공위성으로 찍은 데이터를 토대로 권운이 얼마나 많아졌는지 연구했다. 그 결과 이 기간 동안 비행기 운항 수는 약 5배 정도 증가했는데, 세계적으로 권운도 증가했음을 알아냈다. 민니스 박사는 “특히 북아메리카와 서유럽, 일본, 호주 북부 및 세계 주요 대도시에서 권운이 4% 안팎으로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비행기구름 때문에 권운이 많아지면 지구로 들어오는 햇빛을 막는 글로벌디밍 현상이 일어난다. 이 현상은 이스라엘 농업연구청(ARO)의 제럴드 스탠힐 박사가 처음 발견했다. 그는 1950년대 농업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햇빛의 세기를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그리고 약 30년 뒤 그 기술을 보완하기 위해 같은 실험을 했다. 그 결과 햇빛의 양이 22%나 감소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후 전문가들이 미국과 영국, 러시아, 남극에서 햇빛의 세기를 측정해 1950년대와 비교한 결과, 역시 10%, 16%, 30%, 9% 가량씩 줄었음을 발견했다.

비행기구름이 만드는 권운은 실제로 기후변화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칠까. 독일대기물리연구소의 울리케 부르크하르트 박사와 베른트 카르체르 박사팀은 비행기 배기가스와 비행기구름, 자연적으로 생겨난 권운, 비행기구름이 만든 권운의 복사강제력을 비교한 연구 결과를 2011년 12월 ‘네이처’에 발표했다(doi:10.1038/nclimate1068). 복사강제력이란 지구가 흡수하는 태양에너지와 우주로 방출시키는 에너지의 차이다. 만약 이 값이 0보다 크면 지구가 흡수하는 햇빛이 더 많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연구 결과, 자연적으로 생긴 권운은 약 -7mW/m2였다. 대부분 수증기로 이뤄져 있어서 오히려 지구를 식히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비행기가 내뿜은 배기가스의 복사강제력은 약 28mW/m2, 생긴지 5시간이 안 되는 비행기구름은 약 4mW/m2였다. 비행기구름 때문에 생긴 권운은 복사강제력이 약 38mW/m2나 됐다. 직접적으로 하늘에 내뿜는 배기가스보다도 훨씬 강력한 온실효과를 낸다는 뜻이다. 와일드 박사는 “비행기구름이 주변 대기에 있는 수증기를 최대한 끌어 모아 권운을 만드는 것도 문제”라면서 “지구를 식히는 역할을 하는 자연적인 권운이 생기는 일을 방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운
털이나 새털이 뒤덮인 듯이 생긴 구름으로, 다른 구름보다 높은 고도(10km 이상)에서 나타난다. 맑은
날씨에 이 구름이 나타나면 점차 흐려지다가 비가 올 확률이 높아진다.


글로벌디밍
구름과 에어로졸이 증가하면서 지구로 들어오는 햇빛의 양을 차단시키는 현상이다. 대기 중 오염물질이 많을수록, 구름이 두껍거나 넓을수록 햇빛이 들어오는 양이 감소한다. 우리말로는 지구냉각화라고도 부른다.

대기질 개선했지만… ‘쨍한’ 햇빛에 온난화는 진행 중
비행기 운항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독일대기물리 연구소의 수잔 마르크바르트 박사팀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비행기가 늘어나는 추세를 반영해 비행기구름이 얼마나 많아질지 시뮬레이션으로 예측했다. 그 결과 한 해에 지구를 덮는 비행기구름의 면적이 1992년에는 약 0.06%지만, 2050년에는 약 0.22%까지 증가할 것으로 봤다. 또 1990년대만 하더라도 비행기가 주로 미국 동부와 서유럽 사이 노선에 몰려 있었지만, 점점 세계 곳곳의 노선에서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050년에는 비행기구름이 전 세계에 걸쳐 많아질 뿐만 아니라 권운도 훨씬 두껍고 빈번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권운에 의한 글로벌디밍은 대기오염과 만나 더 커질 수 있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대기및기후연구소의 마르틴 와일드 교수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오염물질이 햇빛 가림막 역할과, 지구의 열기를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는 담요 역할을 동시에 하기 때문에 대기오염이 심할수록 글로벌디밍 현상과 지구온난화가 둘 다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햇빛은 생존에 꼭 필요한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글로벌디밍 현상이 장기화되면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행히 2000년대 들어서는 오히려 햇빛의 양이 조금씩 늘어나는 ‘브라이트닝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세계가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 등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1980년대 이전 수준으로 햇빛의 양이 많아지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기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햇빛의 양이 늘어나면서 기온이 올라가 오히려 지구온난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비행기구름’ 켐트레일의 정체는?
몇 년 전 인터넷에서는 ‘알 수 없는 세력’이 세계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비행기에 독극물을 실어 하늘에 구름 모양으로 퍼뜨린다는 음모론이 떠돌아다녔다. 화학물질로 이뤄진 비행기구름(콘트레일)이라는 뜻의 ‘켐트레일’이다.

음모론에 따르면 이 살인구름은 시골보다는 대개 미국 뉴욕이나 워싱턴, 영국 런던 같은 대도시 하늘 위에 자주 뜬다.

그리고 일반 비행기구름이 짧은 시간 뒤에 사라지는 것과 달리, 켐트레일은 옆으로 천천히 넓어지면서 독극물을 퍼뜨린다고 설명했다. 과연 사실일까. 우선 켐트레일에 살인적인 성분이 들어있다는 증거를 과학적으로 밝혀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비행기 구름과 켐트레일로 추정되는 비행기구름이 전혀 다르게생긴 결정적인 원인은, 대기의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비행기구름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주위의 차갑고 건조한 공기와 섞여 사라진다. 하지만 대기가 무척 습할 때에는 비행기구름이 두껍게 생기고, 시간이 지나도 잘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으로 옅게 퍼지면서 권운으로 발달한다. 켐트레일의 정체는 바로 ‘습한 대기에 생겨난 비행기구름’인 것이다.

같은 이유로 비행기구름 중에서 자주 나타나는 모양이 계절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여름에는 기온이 높아 대기 중 수증기가 포화상태에 이르기 어렵기 때문에 가느다랗게 생겼다가 곧 사라진다. 하지만 겨울에는 상대습도가 높아서 굵고 오래가는 비행기구름이 나타난다.



 
중국발 초미세먼지가 우리나라 하늘 가릴 것
ETH의 마르틴 와일드 교수는 지역에 따라 1m2당 들어오는 태양복사량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시대에 따라 비교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 중국, 일본, 인도를 비교했는데 우리나라는 일본과 수치가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 결과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1950~1980년대 글로벌디밍 현상이 나타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브라이트닝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과 인도는 여전히 글로벌디밍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는 1m2당 태양복사량이 각각 8W, 3W씩 증가했고 일본은 1980년~2000년대 사이에 8W 증가한 상태를 유지했다. 하지만 중국과 인도는 각각 4W, 10W 떨어졌다. 와일드 교수는 “중국과 인도에서 산업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대기오염도 심각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와일드 교수는 “중국에서 생겨난 초미세먼지가 높은 고도의 기류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와 글로벌디밍 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다”면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대기오염을 줄이려고 노력해도 중국발 미세먼지로 인해 공기가 나빠지는 것은 물론, 햇빛의 양이 점점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는 물론, 해외를 오가는 항공기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글로벌디밍 현상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연구하는 전문가가 없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는 이에 대해 어떠한 대비를 하고 있을까. 해외 전문가들은 비행기 수가 많아지면서 비행기구름도 많아질 뿐만 아니라, 한 번 생기면 잘 사라지지 않고 권운으로 발달할 가능성도 더욱 높아질 거라고 봤다. 미래 대기는 기후변화로 지금보다 온도가 높고 습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CNRS의 올리비에 부셰 박사는 “비행기구름이 안 생기게 하거나 이미 생긴 비행기구름을 지우는 방법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연료를 사용하거나, 기존 9~10km보다 낮은 6km 정도의 고도에서도 대형 비행기가 다닐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와일드 교수는 “지금은 전문가들이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수많은 원인 중 하나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비행기구름 등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예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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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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