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간의 침팬지 연구를 통해 20세기 동물행동학의 거목으로 자리잡은 제인구돌박사가 지난 10월 23일부터 26일까지 한국을 방문했다.
그녀가 침팬지를 연구하면서 받았던 감동의 순간과 고뇌를 들어보고, 요즘의 근황을 과학동아 독자에게 알리고자 자리를 마련했다. 약속시간에 맞춰 도착한 제인 구돌박사는 환갑이 넘은 할머니였지만, 젊은 시절의 미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으며 온화하고 따뜻한 미소를 보여줬다.
구돌박사를 영화를 통해 안 뒤로 만남을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최재천교수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구돌박사와 인사를 했다. 아프리카에서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해 흰개미를 잡아먹는다는 것을 처음 관찰한 구돌박사와 중남아메리카에서 개미의 생태를 연구한 최박사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금방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 아프리카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느낌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아주 젊은 시절에 가셨는데 혹시 무섭지 않았나요.
제: 맨처음 아프리카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가 거기에 서있다는 것조차 믿을 수가 없었죠. 너무도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었거든요. 배를 타고 케이프타운을 돌아 더반을 거쳐 베이라에 도착한 후 내가 잠시 묶을 농장으로 가는 동안 생전 처음 기린을 봤습니다. 난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내가 기린을 보다니.
아프리카에서는 매우 일상적인 일이었지만, 나에겐 거의 마술과 같은 황홀한 순간이었습니다. 큰 키에 눈을 지긋이 내리 깔고 천천히 움직이는 기린은 마치 나를 맞이하려고 거기 서있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꿈을 꾸는 것 같더군요. 인간의 손이 닿지않은 완벽하게 보존된 아프리카에서 대장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최: 1984년 코스타리카로 처음 개미 탐사 여행을 갔을 때입니다. 오솔길을 따라 한 1시간 30분쯤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외침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무 위에 원숭이 가족이 있더군요. 그때 아주 막막했어요. 어찌해야 할지 몰라 겁을 먹은 채 가만히 쳐다봤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는데, 원숭이 역시 제게 겁먹은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처음에 내가 침팬지와 친해지는 것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녀석들은 가까이 오지 않았거든요. 도망가기 일쑤였죠. 그래서 멀리서 앉아 나뭇가지에 앉아 과일을 따먹거나 침팬지 새끼를 어르는 침팬지의 팔 정도를 볼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내가 처음 만난 동물은 침팬지가 아니라 비비예요.
최: 연구하기 어려운 침팬지를 고르셨군요.
제: 아닙니다. 난 개방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에요.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내가 침팬지에 의해 선택받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도구를 사용한 데이빗
최: 연구를 하면서 전환점이 됐던 것은 언제였습니까.
제: 곰비에 온지 18개월쯤 됐을까요. 침팬지무리를 우연히 만났을 때였습니다. 으르렁거렸지만, 도망가지 않고 내가 쳐다보는 것을 보더군요. 그때 나는 속으로 “어머, 도망가지 않잖아. 아 드디어 내가 받아들여졌구나”라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 다음 전환점은 데이빗 그레이비어드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을 관찰했을 때였죠.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최: 데이빗 그레이비어드가 누굽니까? 아마 독자들은 데이빗이 남자인지 동물인지 모르거든요(데이빗은 구돌의 텐트에 찾아온 첫번째 침팬지다). 특별히 침팬지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이유가 있습니까?
제: 이름을 붙이는 것에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단지 나는 이제까지 내가 만난 모든 동물에게 이름을 붙였죠. 아주 어릴적 정원에서 데리고 놀았던 달팽이도 이름이 있었으니까요. 사실 동물연구를 하는데 번호를 붙인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당연히 사람이면 누구나 이름이 있듯이 동물에게도 이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물에게도 각자의 성품이 있거든요.
인간과 유전자 99% 동일
최: 침팬지가 매우 위험할 수도 있는 동물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텐데요, 침팬지에게 위험을 느낀 적은 없었습니까.
제: 프로도라는 침팬지가 있는데, 그 녀석은 사람을 여럿 쳤어요. 곰비에는 매우 가파른 절벽이 많은데, 떨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죠. 내가 35년간 침팬지를 연구하는 동안에는 딱 한 마리의 나쁜 침팬지를 만났습니다. 그 이외에는 사람을 해치는 침팬지는 못 봤습니다.
최: 침팬지가 육식을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적은 편입니다. 언제 그런 사실을 알았습니까.
제: 다들 놀랐죠. 침팬지가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안 것은 내가 연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입니다. 침팬지가 분홍빛의 무언가를 잡고 있었는데,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니어서 그것이 무엇인지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근데 자세히 보니 새끼돼지더군요. 그리고나서 침팬지가 야생돼지나 조그만 원숭이, 영양같은 것을 잡아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 최근 침팬지가 약초식물을 구별할 수 있다고 보고하셨는데, 어떻게 해서 침팬지가 그런 상식들을 배우는지 연구된 것이 있나요.
제: 그것에 관해서 연구가 많이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침팬지는 성장하면서 어미가 하는 것을 보면서 살아가는 여러 가지를 배웁니다. 어미가 어떤 가지의 잎을 먹으면 그것을 따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침팬지들은 어미와의 교류가 매우 중요합니다.
최: 침팬지와 사람의 유전자는 99% 이상이 같다고 해서 사람들이 놀란 적이 있지요. 혹시 어떤 것이 같고 어떤 것이 다른지 아십니까.
제: 나도 그 점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죠(웃음). 그렇다고 하더군요.
최: 그렇게 유전자가 비슷하다는 것은 우리와 침팬지가 매우 유사한 생물이라는 것을 시사하는데요.
제: 그렇죠. 아마 계통학적으로도 사람과 침팬지가 가장 가까이 있을 겁니다.
껴안고 뽀뽀하고 악수도 한다
최: 사람과 침팬지가 무엇이 가장 유사하고, 또 어떤 점에서 다른지요.
제: 가장 유사한 것은 뇌나 중추신경계 같은 생물학적 구조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지적인 활동과 감정의 표현 면에서도 매우 유사하죠. 또 가족관계에 있어서도 사람과 같이 오랫동안 같이 지내고 살아가는 방법을 가족을 통해 배웁니다.
어미에게서 배우는 유아기가 매우 길죠. 엄마에게 많이 의지해요. 어린아이가 엄마의 사랑이 필요한 만큼 어린 침팬지도 어미 침팬지의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또 몸짓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고 크게 놀랐습니다. 껴안거나 뽀뽀를 하거나, 악수를 하고, 등을 토닥거리는 것은 사람이나 침팬지나 모두 같습니다.
아마 다른 점이 있다면, 침팬지는 말로 표현할 만한 언어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죠(간단한 소리는 있지만 진보된 언어가 없다는 말). 또 침팬지는 소리내 울긴 하지만 눈물이 없어요.
최: 인간이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기에 지금의 문명을 만들 수 있다고들 합니다.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을 설득하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나요.
제: 없었어요.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과 영화가 있었거든요. 침팬지는 아주 정밀한 도구는 만들지 못하지만 간단한 도구를 만듭니다. 나뭇잎을 입으로 씹어 스폰지처럼 만들어 물을 적셔먹는다든가, 개미를 잡을 때 긴 나뭇가지를 부드럽게 만들어 사용하죠. 개미굴에 나뭇가지를 집어넣고 거기에 개미가 붙기를 기다렸다가 훑어먹죠. 아마 나뭇가지를 부드럽게 만들지 않으면 개미를 훑어먹지 못할 겁니다. 나무가지 표면은 거칠거든요.
최: 현재 얼마나 되는 침팬지가 있나요.
제: 21개 나라에 25만마리 정도 남아있습니다. 이 수는 매우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마구 잡기 때문이죠. 또 무분별한 벌목 때문에 침팬지의 서식지가 자꾸 줄어들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사람들은 지금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벌목을 막는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그래서 벌목을 하되 그 자리에 다시 나무를 심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나의 연구소가 있는 탕가니카 호수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침팬지를 돌보며 생계를 유지하게 하고 있죠.
뿌리와 잔가지
최: 침팬지의 미래가 매우 비관적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앞으로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 정말 침팬지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아프리카에는 많은 전쟁으로 침팬지가 살만한 숲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좀더 침팬지에게 안전한 곳을 마련하는 쪽으로 침팬지 보호 계획이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콩고나 곰비 지역의 숲도 줄어들고 있고, 브룬디나 르완다는 내전으로 인해 숲이 망가지고 있어요.
최: ‘루츠 앤 슈츠’에 많은 신경을 쓰고 계신걸로 압니다. 그 운동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제: 그 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어린 학생들에게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바꾸는데 있습니다. 서양과학은 항상 인간과 인간을 제외한 동물을 나누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 동물을 갖고 실험을 하면서도 아무런 느낌도 받지 않고 있더군요.‘루츠 앤 슈츠’는 탄자니아에서 시작해, 미국, 캐나다에서는 활발한 활동이 이뤄지고 있으며 30개 나라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주로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현장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일 먼저 우리 주변의 자연환경을 돌아보고, 그 다음은 동물들을 잘 보살피는, 마지막으로 서로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죠.
최: 곰비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이라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제: 누구나 다 하는 질문이죠.(웃음) 사실 어떤 것이라고 딱 집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매 순간이 너무 기쁜 일의 연속이었거든요. 플로가 아기를 낳고 그 아기를 내가 만지도록 허락했을 때, 그녀가 나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던 순간이었죠. 또 데이빗이 스스로 나를 찾아왔을 때입니다.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을 관찰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처음 발견했을 때는 내가 어떤 일을 발견했는지 몰랐어요. 두번째서야 내가 굉장한 일을 관찰했다는 것을 알고 너무 기뻤습니다. 침팬지의 세계를 알아가는 매순간이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최: 슬픈 때는 없었나요.
제: 플로가 죽었을 때죠. 그녀가 죽어가는 것을 알았는데도 내가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더군요.(플로는 제인 구돌이 가장 좋아하는 침팬지 암컷이다. 플로가 죽었을 때 그녀의 부고가 ‘런던 타임스’에 났다. 야생동물로서는 전무 후무한 일이다.)
매순간이 기쁨의 연속
최: 여자 세명(제인 구돌, 다이안 포시, 비루테 갈디카스)이 유인원을 연구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 수많은 남자연구원들이 유인원을 연구합니다. 연구를 시작할 당시 리키박사는 여자 세명을 고른 것 뿐입니다. 좀더 인내심이 있으면서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을 원했던 겁니다. 또 리키박사는 내가 과학교육을 제대로받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선택했어요. 어느 한쪽에 기울어지지 않은 마음을 갖고 있었거든요.
최: 연구를 시작한 뒤 초기에는 박사님의 연구 방식이 비과학적이라는 비난도 없지 않았는데, 그런 것에 관해 신경이 쓰이지 않으셨습니까.
제: 아뇨. 난 대학교육을 받지 않았고, 박사학위를 바로 받았습니다. 영국에서는 박사를 하기 위해 코스를 밟지 않아도 돼요. 그때까지 내가 연구한 것은 그 이전에 어느 누구도 한 적이 없었던 생생한 현장경험이었기 때문에 내게 박사학위를 줄만한 사람이 없었어요.
최: 아주 젊은시절, 어떻게 말하면 어릴 적부터 여자로서 힘든 연구를 시작하셨는데, 특별히 여학생들에게 해줄 말씀이 없습니까.
제: 젊은 사람이면 누구나 꿈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이죠. 내가 꿈을 키울 당시 꿈을 이루는 것이 어려워 보였어요.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였고, 나는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할 만큼 부자도 아니였죠. 더군다나 아프리카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이 말씀해주시더군요 “네가 진정으로 원하고 노력한다면, 기회는 주어질 것이므로 포기하지 말라”고요. “만약 곧장 꿈을 실현할 수 없다면 준비하면서 기다리라”고 하셨죠. 바로 자기자신을 믿으면 됩니다.
최: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제: 이미 우리는 우리가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그런 상황에 대해 너무 늦지 않게 조치를 취할 만한 기술도 갖고 있죠. 우리에게는 의지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기를 놓쳐 사람들이 절망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희망을 잃게 됩니다. 바로 내가 루츄 앤 슈츠 사업에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 운동은 어린이들만을 위한 운동이 아닙니다. 선생님과 부모님들도 함께 참여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