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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투석을 받아야 하는 사람의 절반이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 때문입니다. 제가 형질전환 복제돼지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죠.”
서울대의대 임상의학연구소 건물 7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기자는 ‘바이오이종장기연구센터’라는 푯말아래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게 잠겨 있는 유리문 앞에서 순간 당황했다. 다행히 바로 뒤에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안규리 교수 모습이 보인다. 막 회진을 마치고 약속 시간에 늦을까봐 서둘러오는 길이란다. 안 교수는 3년 전 ‘황우석 파동’으로 곤욕을 치렀다.
“정말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 일만 아니었어도 우리나라가 복제기술을 이용한 이종장기이식 분야를 이끌 수 있었을 텐데….”
돼지 췌도 이식 임상시험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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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세포 복제기술이 확립되기 전까지는 이런 유전자 조작을 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속도가 훨씬 빨라졌죠.” 예전에는 수정란에 조작을 하고 확인을 하지 못한 채 난관에 넣어 성공 확률도 낮고 세포 일부에서만 효과가 보이는 모자이크 개체가 나왔지만 이제는 체세포에 조작을 하고 배양을 해 형질전환을 확인한 뒤 핵이식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장기를 대신하는 동물로는 미니돼지가 꼽힌다. 사람과 유전적으로 더 가까운 영장류가 더 좋을 것 같지만 장기가 작을뿐더러 새끼도 적게 낳고 윤리성 논란도 부담스럽다. 반면 미니돼지는 장기 크기가 비슷하고 새끼를 많이 낳으며(한번에 10마리 안팎) 키우기도 쉽다. 그러나 돼지의 세포 표면에는 사람이나 영장류에는 없는 ‘알파갈’(α-1,3-galactose)이라는 당 분자가 분포해 있다. 만일 이 상태 그대로 장기를 이식했다가는 몇 분 지나지 않아 피가 굳어버리는데 이를 ‘초급성거부반응’이라고 부른다.
“알파갈을 못 만드는 돼지는 2003년 미국 연구진이 복제기술을 이용해 만들어냈습니다. 이종장기 분야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죠.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알파갈이 있는 상태로는 심장이나 신장 같은 장기를 이식할 수 없다. 그러나 췌장에서 인슐린을 만들어내는 췌도(膵島) 세포 표면에는 돼지가 한 살이 지나면 알파갈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안 교수팀이 돼지의 췌도 이식을 통해 당뇨병을 고치는 연구에 먼저 집중하는 이유다.
“지난해 10월 호주 생명공학회사인 리빙셀바이오테크놀리지스는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사람에게 돼지 췌도를 이식하는 임상시험을 허가받았습니다. 우리도 서둘러야겠지요.” 안 교수팀은 좀 더 안전한 이종장기를 만들기 위해 없애거나 집어넣어야할 또 다른 면역 관련 유전자를 찾고 있다.
복제기술을 이용해 형질전환돼지를 만들고 있는 바이오벤처 엠젠의 설재구 대표는 요즘 신경이 예민하다. 사람의 면역유전자 2개(HLA-G, DAF)가 함께 들어간 돼지 2마리가 지난해 8월에 태어났는데 연말에 사고로 죽었기 때문. 조만간 또 태어날 예정이라서 이천에 있는 돼지사육동을 자주 찾는다.
“돼지를 보기 전에 샤워를 해야 합니다. 머리도 잘 감으세요.”
설 대표와 이천 연구소를 찾은 기자는 옷을 갈아입기 전에 샤워를 해야한다는 말에 당혹스러웠다. 외부인으로부터 감염을 막기 위한 조치란다. 사육동에는 HLA-G가 들어 있는 복제돼지와 거기서 태어난 새끼들이 있다. 말이 미니돼지지 생김새는 오히려 일반 돼지가 더 귀엽다. 돼지를 안고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을 받은 설 대표는 어려울 거라면서도 돼지를 붙잡으러 간다.
“꽤에엑~.” 설 대표에게 잡힌 돼지가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돼지 목 따는 소리’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엠젠이 돼지에게 집어넣은 HLA-G는 면역계의 하나인 자연살해세포의 공격을 막는 역할을 하고 DAF는 보체 활성을 억제한다. 보체란 피 속에 있는 단백질로 면역계를 활성화시켜 이식된 장기를 공격하게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돼지세포에서 이 2가지를 동시에 발현시킬 경우 거부반응을 상당히 약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도 장기기증자가 턱없이 부족하지만 고령화가 심해질수록 장기 수요는 급증할 것입니다. 이종장기 연구가 시급한 이유죠.” 설 대표는 출산이 임박한 돼지를 보여주며 지난번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여러 조치를 취해놓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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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복제는 우리나라 단독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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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세계 최초 복제개 스너피를 탄생시킨 서울대 수의대 이병천 교수는 상당한 돈이 들어가는 애완견 복제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시야를 넓게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개는 발정기가 1년에 두 번밖에 없고 배란 패턴도 특이하기 때문에 핵이식에 성공하려면 많은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나라에서 복제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물론 이런 기술적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개 복제가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현재 사람의 질병과 유전자의 관계를 규명하는 연구가 한창입니다. 그런데 복제개의 존재는 이런 연구에 큰 도움이 될 전망입니다.” 개와 사람은 심장병, 당뇨병, 암 같은 질병에 걸릴 수 있다. 실제로 2005년 해독된 개 게놈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인간의 질병 유전자에 해당하는 유전자를 200가지 넘게 찾았다. 따라서 이런 유전자가 변형된 복제 개를 만들면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찾는 데 쓸모가 많을 것이다.
“마약탐지견 같은 서비스 분야에서도 복제개가 한 몫 할 것입니다. 이런 개 한 마리를 훈련시키는 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성공할 확률이 높은 개를 선별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신체적 특징뿐 아니라 성격이나 행동도 유전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 따라서 뛰어난 마약탐지견을 복제해 훈련시킬 경우 역시 유능한 마약 탐지견이 될 확률이 높다. 마약뿐 아니라 사람의 입김을 맡아 암을 진단하는(암세포에서만 나오는 휘발물질을 감지) 암 탐지견, 시각장애인을 인도하는 맹도견 등도 우수한 형질을 지닌 개를 복제할 경우 성공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관세청의 요청으로 서울대 수의대와 바이오벤처 알앤엘바이오가 만들어 지난해 4월 공개한 복제 마약탐지견 ‘투피’ 7마리는 체세포 핵을 준 뛰어난 탐지견인 ‘체이스’의 형질을 그대로 물려받아 1차 예비 탐지견 선발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마약탐지견 훈련 성공확률은 30% 정도인데 복제견의 경우는 90%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며 “탐지견 1마리를 키우는 데 4000만 원이 들어가므로 경제적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911테러 이후 전 세계적으로 탐지견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에서 복제 탐지견이 큰 역할을 할 전망이다. 그런데 과연 복제 동물은 건강에 문제가 없을까.
“4월 24일은 스너피가 만 4살이 되는 날입니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있고 지난해에는 역시 복제 개인 보나 사이에 새끼도 낳았죠. 스너피를 보러 가실까요?”
건물 옆 잔디밭으로 털이 시커먼 아프간하운드가 껑충껑충 걸어온다. 그 뒤로 털 빛깔이 짙은 베이지색인 강아지라고 하기엔 좀 큰 아프간하운드 2마리가 보인다. 생후 6개월째 되는 스너피 새끼들로 털 색깔은 어미인 보나 쪽을 닮았다.
“사진촬영을 한다고 해서 목욕까지 시켰습니다. 어어어…”
이병천 교수가 스너피를 쓰다듬으며 얘기하는 사이 잠깐 한눈을 팔던 연구원이 목줄을 놓쳐 스너피가 껑충껑충 달려 나간다. 그런데 하필이면 목줄 손잡이가 새끼 한 마리의 발목에 엉켜 사고가 생기기 직전이다. 마침 중간에 서 있던 기자는 얼른 목줄을 잡았다.
“줄을 놓으세요!”
이 교수의 외침에도 기자는 새끼가 다칠 것 같아 줄을 꼭 쥐었다. 스너피가 힘을 쓰자 순간 밧줄이 딸려 나가면서 손가락이 얼얼하다.
“쟤가 힘이 장사입니다. 피는 안 났는지….”
간신히 스너피를 붙잡아 소동을 잠재운 뒤 이 교수가 다가왔다. 엄지와 검지의 피부가 꽤 벗겨졌지만 다행히 피가 날 정도는 아니다. 덕분에 부상을 모면해서인지 새끼는 기자가 머리를 쓰다듬어도 얌전히 앉아있다.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베이지색 털이 무척 부드러웠다.
복제 쇠고기 식탁에 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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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 일본 식품안전위원회가 복제소, 복제돼지의 고기가 일반 고기와 식품 안전성 면에서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군요.”
경기도 수원에 있는 축산과학원 양병철 박사는 복제소를 취재하러 왔다는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올해는 축산과학원이 복제한우 ‘새빛’을 선보인 지 꼭 10년 되는 해다. 새빛은 한 달 만에 죽었지만 그 뒤 복제한우가 여럿 태어났고 복제한우의 2세와 3세도 생산됐다. 현재 축산과학원에는 복제소 14마리와 이들로부터 얻은 정자나 난자를 이용해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18마리가 있다.
“이들을 관찰한 결과 저희 역시 복제소가 일반소와 전혀 다른 점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복제소는 체세포를 준 소와 형질이 비슷하죠.”
복제기술을 확립한 뒤 축산과학원은 육질이나 육량이 뛰어난 소를 골라 복제를 했다. 그 결과 태어난 복제소들 역시 초음파 검사를 해본 결과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는 것. 우수한 소를 복제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키우고 있는 소를 복제해 달라는 전화가 종종 걸려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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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기 초롱이가 보이네요. 한눈에 보기에도 크죠?” 우사 한 쪽에 우뚝 서 있는 소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정말 주위의 다른 소들보다 키가 20~30cm는 더 크다. 현재 몸무게는 700kg 정도 나간다고. 일반 수소의 정액으로 초롱이에 인공수정해 나온 새끼들도 일반 한우보다 체중이 100kg 정도 더 나간다. 바로 앞에서 여물을 먹고 있는 소 왼쪽으로 소 한 마리가 머리를 내민다.
“마침 두 마리가 나란히 여물을 먹고 있군요. 왼쪽이 11살 먹은 한우 K9849(이름 대신 번호로 부른다)로 육질이 아주 우수해 복제소 10마리를 만들었죠. 오른쪽에 있는 녀석이 그 중 하나로 벌써 7살입니다.”
둘을 보니 외모로는 구별하기 어렵다. 흥미롭게도 이 녀석들은 뿔이 아래로 휘어 있는데 그 모양이나 휜 정도도 똑같았다. 워낙 뿔 모양이 특이해 다른 소들 사이에서 금방 눈에 띄었다.
“저쪽에 있는 소도 K9849의 복제소 아닌가요?”
우사를 둘러보며 똑 같은 뿔 모양을 한 소를 가리키자 양 박사가 그렇다고 대답한다. 소들은 귀에 매달린 표식에 숫자가 적혀있다.
“이 녀석은 인공수정으로 낳은 복제소의 새끼죠. 뿔 모양이 다르죠?”
한쪽에 우리가 흔히 보는 형태의 뿔을 지닌 소 한마리가 여유롭게 여물을 씹고 있다. 암컷과 수컷의 유전자가 반반씩 섞여 태어난 소와 복제소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사람으로 치면 중년이 된 복제소들이 어슬렁거리는 우사의 풍경은 복제동물이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있음을 상징하고 있었다.
“지난 2006년 일본 축산초지연구소에서 복제소 한 마리를 잡아 300g씩 포장해 축산관계자들에게 보내 맛을 보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머지않아 식용을 허용하는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요?”
한겨울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허연 콧김을 내뿜으며 느긋하게 여물을 먹고 있는 소들을 바라보며 양 박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복제동물 탄생의 역사
1952년 양서류인 개구리 복제 성공을 시작으로 어류, 포유류의 복제가 성공했다. 지난해에는 16년간 냉동고에 보관 중이던 생쥐의 뇌세포핵을 치환해 복제생쥐가 태어났다.
아직까지 알에서 발달해 태어나는 파충류와 조류는 복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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