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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복제양 돌리가 탄생한 이래 지금까지 복제에 성공한 포유류는 20여 종에 이른다. 이제 동물복제는 생명과학분야의 핵심기술로 자리 잡으면서 바이오혁명을 이끌고 있다. 당뇨병을 비롯한 현대인의 질병을 극복하는 데 복제기술이 없어서는 안 되고 마약탐지견이나 우량 한우같이 우수한 형질을 보존하는 데도 복제기술이 필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DNA분석기술과 복제기술을 접목해 매머드처럼 오래전에 멸종한 동물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지난 11월 매머드 게놈의 70%가 해독됐고 16년 전에 죽은 생쥐가 부활하기도 했다. 과학이라는 최고의 마술로 매머드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날이 다가오고 있다.

호박(琥珀) 속에 갇혀 있는 흡혈곤충의 몸속에 들어 있는 공룡의 피에서 DNA 정보를 얻어 공룡을 부활시키는 영화 ‘쥬라기 공원’의 장면이 실제로 가능할까.


6500만 년 전 멸종한 공룡의 화석에는 DNA가 남아 있지 않아 불가능하지만 1만 년 전 사라진 매머드에서는 가능할지 모른다.


분자생물학과 복제기술의 만남은 멸종동물을 되살릴 수 있을까?



마이클 크라이튼(Michael Crichton)


미국 작가. 1942년 생. 하버드대 의대를 졸업하고 소크연구소에서 잠깐 연구원 생활을 했다. 그 뒤 의학지식을 바탕으로 SF소설을 집필해 주목을 받았다. 1990년 출간한 ‘쥬라기 공원’을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전 세계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그 뒤 속편인 ‘잃어버린 세계’를 발표했다. 지금까지 크라이튼의 소설들은 전 세계에서 1억50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지난해 11월 4일 지병인 암이 악화돼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6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쥬라기 공원’은 사람들이 생명과학의 현재와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마이클 크라이튼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 같은 초베스트셀러 작가께 편지를 드리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는 ‘과학동아’라는 월간 과학지의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1993년 여름 우연히 본 영화 한편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눈치 채셨죠? 네. 그렇습니다. 바로 ‘쥬라기 공원’입니다. 티라노사우루스가 포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포스터에 재미있겠다 싶어 극장을 찾은 저는 두 시간 뒤 완전히 ‘혼’이 빠져서 극장을 나섰습니다. 평소 공룡에 관심은 있었지만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공룡의 모습은 상상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진짜 감탄했던 것은 과학의 관점에서 너무도 그럴듯한 스토리 전개였습니다. 1억 년 전 나무줄기에 앉아있던 흡혈 곤충이 흘러내린 송진에 갇혀 호박(琥珀)으로 남았고, 그 벌레 몸속에 있는 공룡 피에서 추출한 DNA를 재구성해 핵을 제거한 파충류의 난자에 넣고 인공알 속에서 부화시킨다는 스토리는 생화학을 전공한 저에게 ‘황당한’ 허풍이 아니라 ‘그럴듯한’ 이야기였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시나리오를 썼을까?’ 당시 첨단 생명과학에 대한 지식을 갖지 않고는 이런 스토리를 쓸 수 없다고 생각한 저는 곧 이 영화가 1990년 나온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원작자는 물론 마이클 크라이튼, 바로 선생님이셨죠. 작가의 약력을 보고서야 모든 게 납득이 됐습니다. 명문 하버드대 의대 졸업생 출신의 소설가였으니까요.

그 뒤 원작을 읽어봤습니다. 영화의 영상이 오버랩돼서 그런지 제게는 영화보다도 훨씬 더 재미있었습니다. 공룡을 부활시키는 과정도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돼 있어 어떤 대목에서는 마치 생명공학 교과서를 보는 듯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선생님이 책에서 기술한 방식 대부분이 수년 뒤에 비슷한 형태로 구현됐다는 점입니다.

1996년 영국 로슬린 연구소의 이언 월머트 박사팀이 체세포 복제로 탄생시킨 돌리는 포유류 같은 고등생물도 복제가 가능함을 보여준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선 체세포핵에 들어있는 DNA를 그대로 가져다 썼기 때문에 소설 속에 나오는 복잡한 DNA 재구성 과정은 필요하지 않았죠.

한편 인간게놈프로젝트로 촉발된 DNA염기서열분석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선생님이 ‘쥬라기 공원’에서 묘사한 ‘하마치-후드 자동 유전자 배열 분석기’와 맞먹는 성능의 기계를 최근 만들어내는 성과를 이뤘습니다. 2001년 인간게놈프로젝트로 30억개의 DNA염기서열을 밝히는데 14년이 걸렸고 30억 달러(약 4조원)의 연구비가 투입됐지만 최근 한국인의 첫 번째 게놈을 해독하는 데는 불과 7개월의 기간과 2억5000만 원의 비용이 들었다는군요.

그런데 미국의 한 연구팀은 이 기계를 엉뚱한(사실은 놀라운) 데 썼더군요. 이 얘기는 뒤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선생님 소설의 많은 부분이 그럴듯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부분, 즉 공룡의 DNA가 보존돼 있다는 설정만은 과학이 재현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보존이 잘 된 화석일지라도 수천만 년이 지나는 동안 DNA는 흔적도 없이 파괴됐기 때문이죠. 너무 섭섭해 하지는 마십시오. DNA는 아니지만 공룡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은 일부 밝혀졌잖습니까. 2007년 ‘사이언스’에 실린, 쥬라기 공원에서 관객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거대 육식 공룡 티라노사우루스의 단백질 구조 일부를 밝힌 연구논문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6700만 년 전 티라노사우루스의 대퇴골 화석에 보존된 섬유성 단백질 콜라겐을 분석한 결과 오늘날 조류와 조성이 비슷하게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사실 단백질이 이렇게 오랜 세월을 견디어 내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죠. 아무튼 새는 공룡의 후손 또는 한 부류였나 봅니다.

또 화석의 뼈세포 크기를 토대로 공룡의 게놈 크기를 추정한 연구결과도 있었죠. 세포가 작을수록 게놈도 작은데 세포화석을 분석한 결과 티라노사우루스의 게놈 크기는 19억 염기쌍으로 30억 염기쌍인 사람보다 작은 걸로 나왔습니다. 흥미롭게도 새의 게놈도 12억 염기쌍(까마귀)으로 작습니다. 역시 새가 살아있는 공룡임을 뒷받침하는 증거죠. 예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런 재미있는 연구결과들이 나왔음에도 영화에서처럼 공룡 게놈을 복원할 날은 아마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의견입니다.

 


1. 6800년 된 티라노사우루스 화석의 뼈에서 광물질을 없앤 뒤 찍은 원자힘현미경 사진(위). 호주에 사는 큰 새인 에뮤의 뼈를 찍은 사진(아래)과 비슷하다. 2. 티라노사우루스의 넓적다리뼈에 남아 있는 콜라겐 단백질 파편을 질량분석기로 분석해 찾은 아미노산 서열. 현생 조류인 닭과 58% 일치했다.


매머드 게놈 70% 해독


소설 속에서 공룡 부활 연구를 이끈 유전공학자 헨리 우가 “사실 우리가 추출하는 DNA의 많은 부분이 파편이거나 불완전합니다”라고 쥬라기 공원을 찾은 공룡학자 앨런 그랜트 박사(주인공) 일행에게 설명하고 있지만 그 정도도 아닌 셈이지요. 그런데 소설속의 DNA 주인공을 공룡에서 매머드로 바꾸면 매머드 게놈의 현재 상태를 제대로 설명하는 게 되더군요.

매머드 역시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멸종동물입니다. 커다란 덩치에 엄청난 상아, 굵고 긴 털이 숭숭 난 매머드는 오늘날 코끼리와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르기 때문이죠. 공룡은 거대운석 충돌 같은 자연재앙으로 멸종했겠지만 매머드는 아마도 인류가 남획해 멸종시켰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매머드가 사라진 건 불과 1만 년 전으로 시베리아 동토에는 아직까지 썩지 않은 매머드 시체가 발견되곤 합니다.

사실 최근까지도 과학자들은 6500만 년은 커녕 1만 년만 지나도 세포 속 DNA가 대부분 파괴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설사 남아 있더라도 조각조각나서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지난해 11월 20일 과학저널 ‘네이처’에 매머드 게놈의 70%를 해독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습니다. 매머드 게놈 역시 1만 년 이상이나 지났기 때문에 DNA가 조각 조각나고 일부 손상도 입었지만 화학적 변화가 매우 느리게 일어나는 동토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게놈을 해독할 수 있었다는군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스테판 슐스터 교수팀은 매머드의 털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매머드 게놈은 현생 아프리카 코끼리와 0.6%만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사람과 침팬지 차이인 1.3%의 절반수준이죠. 연구를 이끈 슐스터 교수는 “매머드가 부활하는 일이 가능하겠지만 10~20년 뒤에나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슐스터 교수의 말은 조심스러운 전망 같지만 사실 굉장히 낙관적인 것 아닐까요? 게놈을 상당부분 해독했다지만 실제 복제까지 가는 길엔 수많은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지난해 미국 연구자들은 시베리아 동토에서 발견된 매머드의 털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해 매머드 게놈의 70%를 해독하는 성과를 거뒀다. 16년 동안 영하 20℃의 냉동고에 보관돼 있던 생쥐의 모습. 지난해 일본 연구자들은 이 쥐의 뇌세포에서 꺼낸 세포핵을 핵을 뺀 난자에 넣어 복제생쥐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16년 전 죽은 생쥐 복제 성공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일본 연구자들이 놀라운 연구결과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었습니다. 16년 전 죽어 냉동 보관돼 있던 쥐의 세포로부터 살아있는 쥐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세포조직은 얼렸다 녹이면 파괴됩니다. 물이 얼면서 부피가 늘어나고 결정의 날카로운 부분이 세포막과 세포내소기관에 손상을 입히기 때문이죠. 따라서 동결보호제를 첨가한 뒤 영하 196℃인 액체질소에 넣어 급냉시켜야 하지요.

일본 이화학연구소 테루히코 와카야마 박사팀이 시료로 쓴 죽은 쥐는 가정용 냉장고의 냉동실과 같은 온도인 영하 20℃에 보관돼 있었습니다. 연구자들이 생쥐를 녹이자 물론 세포는 파괴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난자에 세포핵을 넣는 체세포복제는 세포가 온전하지 않더라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는군요. 그래서 죽은 쥐의 각 조직 마다 세포를 떼어내 녹여 세포핵을 추출해 복제 실험을 했던 겁니다.

실망스럽게도 이렇게 얻은 세포핵과 융합된 난자는 자극을 주어도 수정란처럼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뇌세포에서 얻은 세포핵이 들어 간 난자만은 자극에 반응해 배아로 분열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여기서 멋진 트릭을 썼습니다. 이 배아를 직접 대리모 쥐의 자궁에 착상하는 대신 배아줄기세포를 확립한 뒤 여기서 세포핵을 얻어 다시 한 번 핵이식을 했습니다. 처음의 경우 배아까지는 진전돼도 정상적인 발생과정을 거쳐 새끼가 태어날 확률이 낮기 때문에 배아줄기세포에서 세포핵을 여럿 확보한 것이지요.


1936년 멸종한, 개처럼 생긴 유대류 태즈메이니아 호랑이()와 100년 동안 에탄올에 보관돼 있던 새끼(). 여기서 얻은 DNA를 분석해 조절유전자를 꺼내 염색 단백질에 붙여 생쥐에 넣자 연골세포에서 발현됐다(). 앞발가락의 단면(아래)을 보면 가운데 뼈 조직에서만 염색 단백질이 발현함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전략은 성공을 거둬 마침내 새끼들이 태어났죠. 그런데 어떻게 뇌세포에서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연구자들은 포도당이 풍부한 뇌의 환경이 동결로 인한 조직 파괴를 억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동결보호제 없이 사체가 얼어붙는 조건은 바로 시베리아 영구동토에서 발견되는 매머드가 겪은 과정입니다. “어쩌면 땅속 깊숙히 어딘가에 매머드의 뇌세포가 이처럼 온전히 남아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사실 전 개인적으로 매머드 보다는 태즈메이니아 호랑이의 부활여부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태즈메이니아 호랑이는 캥거루와 마찬가지로 육아낭이 있는 유대류죠. 그런데 먹이사슬의 최정상에 자리하면서 늑대와 비슷한 형태로 진화한 것이죠. 등에 있는 줄무늬 때문에 호랑이로 불리지만 사실 해부학적으로는 개과 동물과 매우 비슷합니다.

호주대륙에 번성하던 이 녀석들은 유럽인들이 도착한 뒤 몰락의 길을 걷다가 1936년 마지막 남은 수컷 한 마리가 동물원에서 죽은 뒤 멸종한 듯합니다. 지난해 미국과 호주의 공동연구자들은 100년 동안 에탄올 속에 보관돼 있던 태즈메이니아 호랑이 태아 견본에서 DNA를 추출해 연골세포에서만 발현하는 쥐의 Col2a1 유전자의 앞에 있는 조절부분에 해당하는 서열을 찾았습니다. 그 뒤 이 부분에 시약에 염색이 되는 단백질 유전자를 붙여 쥐의 수정란에 넣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쥐에서도 이 부분이 작동해 태아의 연골조직에서 단백질이 발현했습니다.

아쉽게도 태즈메이니아 호랑이의 세포핵은 상태가 안 좋다는군요. 에탄올 때문에 핵속의 단백질이 변형됐기 때문이랍니다. 혹시 어딘가에 냉동보관된 시료가 있지 않을까요?


올해로 소설 ‘쥬라기 공원’이 나온 지 19년이 됩니다. 앞으로 이 시간만큼 더 흐른 2028년 어느 날 코끼리의 배를 빌어 털북숭이 매머드 새끼가 태어나는 장면이 생중계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또 수년이 흐른 뒤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매머드 공원’을 찾는 상상을 해봅니다. 물론 이런 상상은 이제 더 이상 허황된 꿈이 아니겠죠?


선생님, 편지가 꽤 길어졌네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강석기 올림



4000만~6000만 년 전 수액에 사로잡혀 호박 속에 갇힌 모기. 크라이튼은 여기서 힌트를 얻어 걸작 ‘쥬라기 공원’을 집필했다.

PS. 영국의 주간과학지 ‘뉴사이언티스트’ 1월 10일자에 복제로 부활이 가능한 멸종동물 후보 10종을 발표했더군요. 태즈메이니아 호랑이를 비롯해 조류로는 모아와 도도가 있고 나머지는 포유류입니다. 여기엔 2만5000년 전에 사라진 네안데르탈인도 있고 (대리모는 현생인류가 맡아야 한다는군요!)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한 고릴라도 일찌감치 포함시켰습니다.


사실 지금 기술로는 설사 게놈 전체의 DNA 염기 서열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로부터 그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DNA 이중나선이 생물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게 불과 56년 전인 1953년입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30억 쌍이나 되는 사람의 게놈을 몇 달 만에 밝힐 수 있게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죠. 매머드 게놈 서열을 발표한 스테판 슐스터 교수의 말마따나 ‘누군가 언젠가는’ 그 방법을 찾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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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부활하는 매머드
복제기술이 꽃피우는 바이오혁명

2009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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