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부분의 동물들은 암컷보다 수컷이 더 아름다운가. 그리고 암컷은 두드러진 특징을 지닌 수컷을 선택함으로써 번식상 어떤 이익이 있는 것일까?
멋진 장식깃을 곧추세우고 고운 목소리를 한껏 뽐내는 화려한 수컷. 그 그늘에 가려 눈에 띄지 않는 암컷. 동물들의 세계를 볼 때 우리들의 주의는 자연 수컷쪽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그러면 외모가 보잘것 없다고해서 암컷은 생식(生殖)때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암컷은 수컷처럼 화려하지는 못하지만 생식의 무대에서 수컷에 뒤지지않는 중요한 자기 배역을 연출해내고 있다. 암컷은 수컷과 똑같이 전략을 세워 자신의 번식성과를 향상시킨다.
암컷 번식행동의 특징은 우선 수컷을 선택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공작 암컷은 꼬리깃이 긴 수컷을, 휘파람새 암컷은 목소리의 레퍼터리가 다양한 수컷을 스스로 판단하여 선택한다. 공작의 꼬리깃 등 동물수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두드러진 특징은 이런 수컷을 선택하는 암컷의 요구에 따라 발달해은 것이다.
그러면 암컷은 두드러진 특징을 지닌 수컷을 선택함으로써 번식상 어떤 이익이 있는 것일까. 몇가지 실례를 들어 설명해보자.
북미에 사는 참새의 일종은 수컷의 깃털이 엷은 황색에서 빨간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색깔의 차이가 있다. 조사에 따르면 암컷은 그중에서 깃털 색깔이 가장 짙은 수컷을 선택한다고 한다. 그리고 깃털색깔이 짙은 수컷은 색깔이 옅은 수컷보다 생존력이 높다고 밝혀져 있다. 번식을 마친 수컷들은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번식지로 되돌아간다. 그 귀환율이 깃털색이 짙은 수컷쪽에 높은 것이다.
유럽 흑뇌조(雷鳥)의 경우에서도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흑뇌조는 번식기가 되면 수컷들이 특정장소에 집합, 각각 자기 주위에 새끼줄을 쳐서 경계를 정한다. 암컷은 수컷들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그중 한마리를 선택해 짝짓기를 한다. 소위 암컷에 의한 '미스터 흑뇌조 콘테스트'다.
암컷에 의한 '미스터 흑뇌조 콘테스트'
여기서 암컷이 고른 수컷은 전투능력이 높고, 라이벌과의 싸움에서 받은 장식깃의 상처도 적고 아름답다. 추적조사에 따르면, 이런 수컷의 그뒤 생존율은 그렇지 못한 수컷의 두배 이상이다.
암컷은 뛰어난 유전적 자질을 반영하고 있는 어느 형태적 특징을 지닌 수컷을 선택함으로써 자기 새끼에게 보다 좋은 유전적 자질을 취하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암컷은 수컷을 선택할 때 보다 좋은 유전자를 고름과 동시에 보다 나쁜 유전자를 회피한다.
암컷에 있어서 나쁜 유전자는 우선 근친자의 것이다. 금화조(金華鳥) 등 어떤 종류의 동물에게는 근친교배가 자손의 생존력과 번식력을 저하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고니의 일종과 메추라기 암컷은 수컷의 시각적 특징(깃털과 얼굴모양)에 의해서, 박새의 일종은 청각적 특징(지저귀는 소리)에 의해서 근친자 교배를 피한다고 한다. 참새과에 속하는 되새의 일종은 깃털색깔이 짙은 수컷이 먹이 사냥을 잘한다고 알려져 있다.
암컷은 깃털색깔이 짙은 수컷을 선택, 보다 좋은 유전자를 취함과 동시에 새끼기르기에 보다 유리한 쪽을 차지한다. 수컷이 한시간당 새끼에게 먹이를 날라다 주는 횟수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깃털색깔이 짙은 수컷은 깃털색깔이 옅은 수컷보다 두배나 빈번히 먹이를 날라다 주었다. 이것이 새끼의 생존과 성장에 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것은 되새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새끼의 성장에 수컷의 보호와 먹이운반을 필요로 하는 동물의 경우 암컷의 번식성과는 수컷의 양육능력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암컷은 수컷을 주의깊게 관찰, 새끼의 시중을 잘들고 먹이를 많이 물어다주는 수컷을 선택하는 편이 유리하다. 재미있는 것은 구애기간중에 수컷이 암컷에게 먹이를 선물한다는 것이다. 이 능력은 곧 새끼에게 먹이 공급을 해주는 능력과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에, 암컷은 먹이공급능력이 큰 수컷을 선택, 번식성과를 높일 수 있다.
갈매기과 물새의 한 종류는 암컷이 이 원칙에 따라 수컷을 선택하고 있는 듯하다. 수컷은 구애기간중 물고기와 새우 등 먹이를 부지런히 암컷에게 선물한다. 구애기간중에 보다 많은 먹이를 선물받은 암컷은 큰 알을 낳는다. 큰알에서는 크고 튼튼한 새끼가 태어난다.
또 구애먹이공급능력이 많은 수컷은 새끼에게 하는 먹이공급능력도 많기 때문에 새끼의 초기생존율이 높다. 반대로 먹이선물을 적게 하는 수컷은 암컷에게 좋은 수컷이 될 수 없다. 관찰 결과에 따르면, 수컷에게 충분한 먹이공급을 받지 못한 암컷은 1, 2일이 지나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수컷은 단념하고 다른 수컷을 찾아 장소를 옮긴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구애할 때 암컷에게 먹이 선물
메뚜기 등 직시목(目)곤충중에는 교미때 수컷이 암컷의 생식기에 단백질성의 정포(精包)를 남겨두는 것이 있다. 암컷은 교미가 끝난 후 그 정포를 먹고 체력을 유지하고 새로운 알을 만든다. 암컷은 수컷의 정포를 먹음으로써 번식성과를 높이고 있다. 정포는 실질적으로는 구애선물과 같은 의미다.
새끼기르기에 수컷을 최대한 이용하려고하는 암컷에 있어서, 일부다처의 경우, 다른 암컷은 라이벌이 된다. 일부다처 동물의 암컷은 어느 것이나 수컷을 자기 새끼 기르는데 독점하려고 안간힘쓴다. 자연 암컷들 사이에 수컷을 둘러싼 쟁탈전이 벌어진다. 우의(羽衣) 까마귀와 개개비 일종의 경우, 암컷이 다른 암컷을 마구 공격하여 쫓아내버린다. 어떤 종류의 딱다구리 경우는 암컷이 라이벌 암컷의 알까지 공격한다.
참새의 일부는 일부다처제다. 암컷의 큰 관심사는 수컷이 어느 암컷의 새끼를 시중드느냐는 것이다. 새끼를 기르는데 수컷의 협력은 새끼의 생존 성장에 큰 영향을 주기때문에, 암컷은 이 일에 무관심할 수가 없다. 연구에 따르면 수컷은 최초로 알을 부화시킨 암컷의 새끼에게만 먹이를 날라다 준다. 이 암컷을 가령 '제1부인'이라고하면 '제2부인'의 기분은 썩 좋지는 않을 것이다.
제2부인은 과격한 수단을 동원, 제1부인의 새끼를 쪼아 죽여버린다. 제1부인의 새끼가 일부 살아 있으면 수컷은 전처럼 남은 새끼들에게 먹이를 날라다 준다. 그러나 새끼가 모두 죽어버리면 수컷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난다. 수컷은 새끼 살해범인 제2부인 둥우리로 옮겨와서 새끼에게 먹이를 날라다주기 시작한다. 제2부인은 '본부인의 새끼 살해'라고 하는 가장 극단적인 수단으로 남편의 주의를 자신의 새끼에게 돌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런 비슷한 일은 수생곤충인 물장군에서도 볼 수 있다. 물장군은 암컷이 수면위에 뻗쳐나온 수초의 줄기 등에 알을 낳으면, 수컷이 수분을 공급하는 등 알을 지키고 부화시킨다. 알은 수컷의 이런 도움이 없이는 부화할 수 없기 때문에, 암컷에게 있어서 수컷을 확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환경조건에 따라서는 수컷의 숫자가 부족할 때도 있다. 어느 수컷이나 자신과 교미한 암컷의 알을 지키느라 쉴 틈없이 바쁘다.
이런 때 암컷은 어떻게 하는가. 물장군은 대개 암컷이 수컷보다 몸집이 크고 힘이 세다. 암컷은 다른 암컷의 알을 지키고 있는 수컷을 공격, 알을 파괴해버린다. 어떤 때는 알의 일부를 먹어버리기도 한다. 알을 강탈 당한 수컷은 별도리없이 그 암컷과 교미, 거기서 얻은 알을 지킨다.
참새의 일부와 물장군 암컷은 여히튼 다른 암컷의 새끼를 죽여 수컷이 자신의 새끼를 돌보도록 유도한다.
암·수 마음대로 구분해서 낳는다
기생(寄生)벌 가운데는 상황에 따라 '아들'과 '딸'을 마음대로 구별해서 낳는 것이 있다. 기생벌을 포함한 막시목곤충의 암컷은 교미로 얻은 정자를 주머니에 저장했다가 이것을 꺼내서 수정한다. 정자를 꺼내느냐 꺼내지 않느냐, 즉 알을 수정하느냐 안하느냐는 암컷 마음대로다. 수정란에서 태어난 유충은 암컷이 되고, 미수정란에서 태어난 유충은 수컷이 된다. 즉 암컷은 아들 딸을 뜻대로 구분해서 낳을 수 있는 것이다.
기생벌의 일종은 파리번데기에 알을 낳는다. 번데기 안에서 부화한 유충은 그 번데기를 먹고 자라 벌이 된다. 이 벌은 형제자매간에 짝짓기를 한다. 전형적인 근친교배이지만 수컷이 반수체(半數體, 감수분열때 체세포의 염색체 수의 반이 된 염색체 흔히 n으로 나타낸다)이기때문에 생물학적 불이익은 없다. 반수체의 경우 유전적 결함이 있는 수컷이 생식에 참가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암컷은 머리를 써서 이 상황에 잘 대처하지 않으면 안된다. 수컷은 우선, 아들과 딸을 구분해서 낳는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 그래서 아들은 많은 암컷과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또 한가지 파리 번데기가 먹이로서의 용량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조건 아래서 번식성과를 최대로 하려면 아들과 딸을 어떤 비율로 낳으면 좋을까. 예를 들어 알을 10개 낳는다고 하면, 아들 딸 몇마리씩 낳는 것이 가장 좋을까. 이것이 암컷의 지혜다.
가장 알맞은 비례는 아들 하나에 딸 아홉이다. 왜냐하면 아들 하나로 딸 아홉 모두를 수정시킬 수 있기때문이다. 딸 하나가 낳는 알의 수를 1백개라고 하면, 암컷(母)은 1백×9=9백마리의 손(孫)을 기대할 수 있다. 만약 아들이 둘이라고 하면 손의 수는 8백, 셋이라 하면 7백…으로 줄어든다. 따라서 암컷은 번식성과를 최대로 하기위해 아들을 하나로 줄이고 나머지는 모두 딸로 만들어야만 한다.
아들과 딸을 뜻대로 구분해서 낳는 것은 포유류에서도 볼 수 있다. 어떤 종류의 포유류에서는, 암컷은 아들을 낳는 편이 번식성과가 높다고 기대될 때는 아들을, 딸을 낳는 편이 유리하다고 여겨질때는 딸을 많이 낳는다. 어떤 종류의 원숭이는 암컷이 자기의 사회적 지위에 맞춰, 보다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쪽을 구분해서 낳는다. 암컷도 무서운 고등전술을 쓰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보다 좋은 유전자를 선택하고, 수컷에게 물질적 도움을 강요하고, 수컷의 새끼기르는 능력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아들과 딸을 뜻대로 구분해서 낳는다고 하는 암컷의 번식전략에 관해서 이야기했지만, 전략전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산란수의 조절, 산란간격의 조절, 교미횟수의 조절 등 번식성과를 높이기 위한 암컷의 전략은 그밖에도 많다. 암컷은 대단한 전략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