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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취재_진화론이 살아 숨 쉬는 다윈센터를 가다

영국 자연사박물관 한쪽에 자리 잡은 ‘다윈센터’. 170년 전 다윈이 직접 수집한 동물과 식물 표본을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7000만 점의 표본이 있다. 350여 명의 과학자들은 이 표본들을 토대로 지금도 진화론을 연구하고 있다. 진화론이 살아 숨 쉬는 다윈센터를 만나보자.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혹시 깜빡 잊고 라이터를 갖고 오신 분 있나요?”
육중한 철문이 양쪽으로 굳게 닫힌 이중 문 안에서 재차 확인하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바지 주머니를 더듬는다.
“이 안에 들어가면 라이터에 손도 대지 마세요. 운이 나쁘면 라이터를 켜는 순간 이곳이 폭발하고 우린 다 죽을 수도 있어요.”
문이 열리자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처럼 수많은 흰색 진열대가 차례로 조명을 받으며 끝도 없이 죽 늘어섰다. 포르말린 냄새가 코를 찌르는 이곳은 영국 런던에 있는 ‘다윈센터’ 5층 수장고다.

다윈센터는 다윈 유물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표본 2200만점을 보유하고 있다. 다윈센터에 보관하지 못해 외부에 대여해 전시하는 표본도 4800만점에 이른다. 과학자 350명이 이 방대한 표본을 관리하고 연구한다. 그들은 이 표본에서 무엇을 찾는 것일까.

170여년 전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돌아다니며 생물 표본을 수집한 것처럼 다윈센터는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발견된 생 물종을 모으고 있다. 세계 곳곳의 과학자들은 낯선 생물종을 발견하면 찾은 날짜와 장소, 발견자를 적어 다윈센터로 보낸다.

이렇게 모인 수많은 표본을 연구하는 일은 다윈센터 과학자들의 몫이다. 이들은 새로 들어온 표본을 과거의 표본과 비교해 비슷한 종을 찾기도 하고, 분화되기 전의 종과 대조해 진화 여부를 밝히기도 한다. 다윈의 계통수에 새로운 가지를 더하며 지금도 진행 중인 진화의 증거를 찾는 셈이다.

다윈이 수집한 100여 개 동물 표본
다윈센터의 동물학자 존 애브렛 박사는 “다윈센터의 표본은 총 7000만점에 이르기 때문에 운이 좋아야 새로 발견된 종에 학명을 붙여줄 수 있다”며 “아직 이름을 갖지 못한 표본도 많다”고 설명했다.

다윈센터에서 생물 표본은 사람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 대부분 포르말린이나 알코올이 가득 담긴 갈색 병에 보관하는데, 표본이 썩는 현상을 방지하고 표면을 훼손하는 빛에 덜 노출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병을 아무리 밀봉해도 증발이 잘 되고 불이 잘 붙는 포르말린은 마개 사이를 빠져나와 공기 중에 짙게 퍼진다. 5층 수장고에 포르말린 냄새가 진동한 이유도, 라이터를 갖고 들어오지 못하게 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거기다 수장고는 한여름에도 외투를 입어야 할 정도로 춥게 유지된다.

수장고 옆으로 대형 수조가 있는 ‘탱크룸’에는 다윈센터의 ‘보물’이 놓여 있다. 다윈이 직접 수집한 물고기와 새로 채워진 표본병 100여개가 그것이다. 탱크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몸길이 8.62m의 거대한 대왕오징어(architeuthis dux)도 작은 표본병 100개 앞에서는 초라해보였다.

라벨을 읽어보니 발견 연도가 전부 1831년부터 1836년 사이다. 발견자도 ‘C. Darwin’이라고 적혀 있다. 다윈이 수집한 식물과 곤충 표본은 다른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다윈센터는 최근 생물의 진화를 활용해 인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응용 연구에도 매진하고 있다. 다윈센터 생물학자들은 말라리아를 퇴치하기 위해 3500종이 넘는 모기의 DNA를 분석했다.

이들은 말라리아를 옮기는 일부 모기가 가진 특정한 DNA를 조작하거나 다른 모기와 교배해 말라리아에 감염되지 않는 모기를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또 곤충학자들은 수많은 곤충의 특성을 분류해 범죄 해결의 단서가 되는 ‘증거 곤충’을 늘리는데 여념이 없다. 증거 곤충은 시신의 사망시각을 밝힐 수 있어 살인 사건 수사에 도움을 준다. 식물학자들은 영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꽃으로 꼽히는 스패니시 블루벨의 원종을 보존하고 다른 종과 교배하는 연구를 진행한다.

애브렛 박사는 “응용연구도 중요하지만 세계 대부분의 종이 이곳에 모인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처 존재를 예상하지 못한 대왕오징어나 살아있는 화석 ‘실러캔스’처럼 진화의 역사에서 중요한 생물을 살아있거나 완벽하게 보존된 상태에서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다윈센터이기 때문이다. 영국이 자랑하는 과학자 다윈의 이름을 내건 다윈센터에서 그의 진화론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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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런던=전동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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