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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곳곳에 흐르는 다윈의 향기

공작이 꼬리를 크고 화려하게 만드는 전략을 선택하고, ‘오델로’가 아내 데스데모나의
정절을 의심하며, 중고차를 팔 때 ‘하자 있으면 100% 환불’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거는 이유는 모두 다윈 때문이다? 사회과학과 인문학에 숨겨진 다윈의 흔적을 찾아보자.

31997년 시작된 과학자들의 온라인 공동체인 ‘에지’(www.edge.org)에서는 매년 초 ‘올해의 문제’를 제시하고 세계 여러 과학자에게서 답을 듣는 기회를 갖는다.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 매년 100명을 훌쩍 넘는 과학자들이 진지하게 자신의 생각을 내놓는다.
2005년 질문은 “당신이 증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였다. 당시 이 질문에는 과학자 120명이 참여해 자신의 생각을 펼쳤다. 그 중 한 사람이었던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의 대답은 이랬다.

“나는 이 우주 어디에서든 모든 지성, 모든 창조물, 그리고 모든 설계가 (찰스) 다윈이 말한 자연선택의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산물임을 믿는다. 다윈적 진화의 시기가 지나면 설계는 그 후에 일어난다. 설계는 진화에 앞서 일어날 수 없으며, 따라서 우주의 배후 원리일 수 없다.”

여기서 도킨스가 언급한 ‘설계’는 당시 진화론을 비판하며 대두됐던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지만, 경제학자인 필자에게 이 말은 근대 사회에서 시장이 확장된 과정이 경제주체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모방이 얽혀 일어나는 문화적인 진화의 과정일 뿐 인간의 이성이나 계몽의 산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주장과 매우 유사하게 들린다.

실제로 하이에크가 다윈주의자였는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그는 사회의 변화가 문화적 진화의 결과임을 설명한다. 즉 시장이 도입되기 전 전통사회는 소규모 사회이며 이 사회는 전통적 규범에 의해 질서가 유지된다. 그런데 전통사회에서 기존 사회 규범을 창조적으로 이탈하는 사람들, 즉 시장논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생물학에서 말하는 돌연변이다), 이들이 달성한 물질적 성과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이들의 행동을 모방하기 시작한다(마치 환경에 적응한 돌연변이 개체가 늘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이로 인해 일종의 자생적 질서에 기초한 집단이 생겨나고 이들 집단이 여전히 전통적 규범을 고수하고 있는 집단에 비해 물질적으로 융성한 성과를 내면 집단 간 선택이 작용한다. 하이에크는 이런 식으로 사회 질서가 어떻게 형성되고 확산되는지, 즉 진화하는지 설명했다. 그의 논의는 ‘집단선택을 통한 문화적 진화’로 묘사되는데, 선택의 단위가 개체인지, 아니면 집단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긴 하지만 이를 접어 두면 사회질서의 형성과 확산을 진화론의 틀로 묘사한 성공적인 예로 간주할 수 있다.

공작의 마음을 니들이 알아?

사실 이런 다윈적 사고는 현재 사회과학과 인문학 곳곳에 숨어 있다. 기술 혁신이 일어나고 전파되거나 소멸되는 과정은 종이 진화하는 과정과 너무도 닮았기에 경제학에서는 기술의 도입을 둘러싼 기업의 의사결정과 이들 간의 경쟁을 진화론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1980년대 꽤 진지하게 진행됐다. 이런 시도를 가리켜 ‘진화경제학’이라고 부른다.

언어의 변천 과정을 봐도 단어, 어법, 문법, 발음의 변화 과정이 종의 진화 과정과 많이 닮았다. 그래서 일부 언어학자들은 근접 언어권의 단어나 발음 방식을 서로 비교연구해 언어 사이의 ‘근친정도’를 찾아내 마치 종의 계통수를 그리듯 계통분류를 하고, 하나의 언어권에서 새로운 단어나 발음이 출현한 빈도를 계산해 전체 언어계통도에서 각 언어가 분기돼 나온 시점을 역으로 계산하기도 한다.

다윈의 ‘성(性)선택이론’도 경제주체의 행동을 설명할 때 종종 도입된다. 공작새 수컷은 꼬리를 크고 화려하게 만드는 전략을 선택해 자신이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음을 드러내 암컷을 끌어들인다. 이는 부유층이 소비를 통해 자신의 부를 남에게 과시하려는 행동과 동기 면에서 아주 유사하다.

마찬가지 논리로 북미대륙 북서부 지역의 인디언인 콰키우틀 부족의 추장이 상대 부족에게 도를 넘는 선물을 전달함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보여주고 상대 부족에게 복종을 얻어내는 ‘포틀라치’라는 특이한 풍속을 유지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또 현존하는 수렵 채취부족에서 남성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고된 사냥에 나서는 이유를 설명할 때 많은 인류학자들이 성선택이론에 기댄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역선택’ 현상도 다윈의 성선택이론과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예를 들어 중고차를 살 때 차를 파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불리한 정보는 숨기고 유리한 정보만 내놓기 쉽다. 그래서 중고차를 파는 사람은 알지만 사는 사람은 모르는 정보가 생겨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좋은 차를 가진 주인은 자신의 차가 저평가된다고 생각해 중고차시장에 차를 내놓지 않고 불량 차를 가진 사람만 차를 내놓으면서 불량 중고차가 넘쳐나고 우량 중고차는 시장에서 사라지는 역선택 현상이 나타난다.

역선택 문제는 좋은 차를 가진 주인이 자신의 차가 좋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힘들기 때문에 발생한다. 아무리 말로 “이 차는 정말 좋은 차입니다”라고 이야기한들 불량차를 가진 주인들도 쉽게 그 말을 할 수 있다면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좋은 차를 가진 주인은 차의 성능을 증명할 수 있도록 불량차를 가진 주인들이 따라하지 못하는 조건을 내세우곤 한다. 예를 들어 차를 산 뒤 일정기간 동안 하자가 생기면 무상으로 고쳐 준다든지, 100% 환불해 준다든지 하는 조건을 내세운다.

이런 조건은 자신의 차가 정말 좋은 차인 주인들만 내세울 수 있는 조건이다. 수컷 공작새가 “나는 훌륭한 유전자를 갖고 있어”라고 백번 이야기하는 것보다 멋진, 그리고 때로는 천적에게 발각될 위험이 높을 정도로 큰 꼬리를 갖는 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데 훨씬 효과적인 것처럼 말이다.

인간은 원래 ‘기부 천사’일까
진화심리학이야말로 다윈주의를 가장 열정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사회과학의 한 분야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감정과 심리, 그리고 행동 양식의 상당 부분이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배우자를 선택하기 위해(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직면한 문제를 풀어 나가는 과정에서 진화해온 산물이라고 본다.

상대방의 거짓된 행동을 간파하는 능력, 근친상간에 대한 본능적인 터부, 배우자 선택에서 나타나는 남녀 차이, 의붓자식에 대한 태도 등의 원인이 모두 진화적 기원을 갖는 것으로 본다.

진화심리학자들은 각 문화에 존재하는 전설과 설화, 소설을 분석하면서 그 속에서 전개되는 갈등과 협력, 사랑과 반목이라는 흥미진진한 스토리 속에서 수만 년 동안 우리에게 전수된 진화의 흔적을 찾으려고 한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오델로’에서 아내 데스데모나의 정절을 의심해 타오르는 질투에 사로잡힌 채 파국을 맞는 오델로라는 남성의 비극적 결말을 보며 암컷을 둘러싼 수컷 간의 피 말리는 경쟁을 읽어내려 하고,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에서는 엠마라는 한 여성의 남성편력 속에서 끊임없이 좋은 유전자를 지닌 수컷을 찾아내 교미하려는 암컷의 전략을 읽어낸다.

한편 심리학과 경제학에서 최근 인간의 선호에 대한 논의가 진화론 관점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할 때 왜 그런 행위를 했는지, 즉 그 행위의 동기가 무언인지 밝히는 문제다. 지금까지 경제학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물질적 이득을 높이는 방향으로만 행동한다고 가정하고 논의를 전개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희생하면서 타인에게 이로운 행동을 하기도 하며(헌혈, 자원봉사, 익명의 기부), 규범을 어기거나 불공정한 행동을 한 사람을 처벌하거나 징계하려고도 하며(소비자운동, 민주화운동), 나와 같은 부류나 집단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관용을 베풀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관심하거나 적대감을 보이는 경향을 갖기도 한다(집단이기주의).

이는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자신의 물질적 이득에 얼마나 보탬이 되는지를 따지는 것뿐 아니라 상대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상당히 고려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손해를 무릅쓰고 타인에게 득이 되는 행동을 한다든지, 돈을 분배할 때 자신에게 불공정한 몫이 돌아오면 자신에게 돌아올 몫을 포기하면서까지 불공정한 분배를 거부하는 성향은 많은 연구에서 드러났다. 이런 인간의 선호, 즉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다윈을 빗겨갈 수 없다. 우리가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는 순간 그 기원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기적인 본성을 갖는 존재라면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그런 본성을 갖게 됐는지 물어야 하고, 우리가 이타적인 본성을 갖는 존재라면 마찬가지 이유로 우리가 어쩌다가 그런 본성을 갖게 됐는지 물어야 한다. 다윈 역시 1871년 ‘인간의 유래’라는 책을 출판해 인간이 갖고 있는 사회적 본능은 자신의 자연선택으로도 풀기 힘든 난제임을 인정한 바 있다.

사실 지금까지는 인간의 이타성이나 호혜성이 인간의 아주 예외적인 현상으로 치부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개인의 행동이 낳는 사회적 결과를 예측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간주돼왔다. 하지만 최근 많은 연구에서 이 속성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혹독한 겨울을 이기기 위해 충분한 지방을 섭취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몸은 단맛에 길들여져야 했던 것처럼 우리의 본성도 조상이 오랜 시간 생존하기 위해 터득한 것일 수 있다. 물론 지금은 더 이상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보내지 않아도 되기에, 과거 조상에게서 물려받아 여전히 몸에 밴 채 남아 있는 ‘단맛에 대한 추구’가 이제는 우리를 골치 아프게 할 뿐이지만 말이다.

진화론과 사회과학, 절반의 동거
현재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학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차용돼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진화론이 사회생물학자들이 주장하듯 인간 행동의 생물학적이거나 유전학적 기초를 밝히는 것으로까지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진화적 방법론을 사용해 소비 행태, 제도 변천, 이타성의 진화를 이야기할 때는 흥미로워하던 사람들도 그런 행동 패턴의 생물학적 기초를 이야기하면 눈살을 찌푸리기 일쑤다.
한편에서는 사회과학에서 진화론이 은유(메타포)로만 남아 있는 일은 분명 극복해야 할 한계라고 이야기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이는 극복해야 할 한계가 아니라 넘어서는 안 될 경계라고 주장한다.

인간 행동을 규정짓는 생물학적 특징을 이해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냐며 회의적인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될 정도로 특수한 존재로 볼 근거가 뭐가 있냐고 질문하는 이들도 있다.

긴 진화의 역사에서 인간이 갖는 특수성에 주목하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진화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보편성을 강조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의 사람들은 남녀의 성차를 운운하는 일이 과학이라는 미명 아래 진행되는 낡은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불과하다고 치부하는 반면, 다른 한편의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적 편견이 과학의 발견을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현재로서는 다윈의 진화론이 사회과학을 비롯한 학문 전반에 한 발만 걸치고 있을 뿐이다. 진화론이 두 발을 모두 딛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인지, 혹은 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정답을 내기 힘들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더욱 나은 사회를 원하고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대전제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본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좀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만들어내는 각종 제도들이 우리의 본성과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넓혀 나가는 데 다윈의 진화론이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지적설계론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가 어떤 절대적인 지적 존재에 의해 창조됐다는 이론. 지적설계론에서는 진화마저 지적 설계자인 신이 계획한 것이며 세계는 정밀하게 짜여져 있어 자연선택과 같은 ‘우연’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WORLD INTERVIEW

루스 페이덜

1946년 출생. 영국의 고전학자이자 시인이며 저널리스트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현대시를 평론하면서 유명해졌다. 환경론자이며 런던동물학회 회원이다.

찰스 다윈의 고손녀
1. 다윈은 어떤 성격을 지녔다고 얘기 들었나?
그는 매우 정직하고, 성실하며, 친절하고 자상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자식에게는 다정한 아버지이자 아내에게는 둘도 없는 남편이었으며 친구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싹싹했다. 그러면서도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선 항상 오랫동안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2. 다윈처럼 항해할 생각을 해본 적 있나?
실제로 아시아 호랑이들의 생존이 얼마나 위협받고 있는지, 야생에서 왜 그들이 멸종하는지 관찰하기 위해 4년 동안 11개국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 여행을 마친 뒤 펴낸 책이 ‘위기의 호랑이’(Tigers in Red Weather)다. 라오스와 수마트라, 부탄 그리고 네팔을 거쳐 인도와 중국, 러시아에 이르는 긴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이 여행이 다윈의 비글호 항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다윈은 종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찾고 있었고, 180년 뒤 나는 종이 어떻게 멸종하는지 찾고 있었다. 매우 슬픈 일이다.

3. 다윈이 말한 진화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나?
진화는 모든 곳에 있다. 종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남는지, 이것이 생물학, 유전학, DNA, 그리고 기생충학의 기초다. 내 삶에서는 어떤 진화가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스물 두 살인 내 딸이 나처럼 카페에서 글쓰기를 좋아하고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을 볼 때면 이것도 진화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4. 오는 2월 출간하는 ‘다윈-시로 보는 일생’은 어떤 책인가?
그의 편지와 그의 부인의 편지, 그의 일기와 책에 나타나는 과학과, 종교적 신념을 잃어가는 그의 아내를 시로 나타냈다. 다윈의 손녀딸이자 내 외할머니인 노라 발로우는 다윈의 자서전을 비롯해 여러 권의 책을 편집했다. 그녀가 95세이던 어느 날 나는 케임브리지에서 그녀를 돌보고 있었고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내게 다윈의 진화론이 무엇인지 들려줬고, 그 이론이 다윈의 부인인 엠마의 종교적 신념을 어떻게 깨뜨렸는지도 알려줬다. 그 뒤 나는 오랫동안 그들에 대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시아를 여행하는 동안 틈만 나면 ‘종의 기원’을 탐독했고, 나는 시라는 나만의 방식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

대니얼 데닛

1942년 출생. 세계적인 과학철학자. 진화생물학과 인지과학을 주로 연구한다. 현재 미국 터프츠대 인지연구센터 교수다. 베스트셀러로 ‘다윈의 위험한 생각’(1995년)이 있다.

다윈의 대변인
1. ‘다윈의 위험한 생각’에서 ‘위험한 생각’은 무엇인가?
다윈의 생각은 인간이나 신처럼 크고 화려한 지적 생명체를 보잘것없는 것으로, 평등한 것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이전의 관점을 뒤엎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표현을 썼다. 다윈은 지적이지도 않으며 의도하지도 않은 자연선택이라는 일련의 과정이 생명체에 기능과 형태를 창조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어떤 이들은 이런 다윈적 사고가 멋지고 아름다운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 반면, 또 한쪽에선 자존감을 위협한다고 생각한다.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를 ‘천사보다 조금 낮은 존재’로 생각할 뿐 자신들이 말하고 생각하는 동물일 뿐이라고 간주하진 않는다. ‘인간성’이란 영역을 고수하려는 이런 시도는 진화론과의 충돌을 일으킨다. 이런 의미에서도 다윈의 생각은 위험하다.

2. ‘다윈주의 근본주의자’라는 호칭이 마음에 드나?
그 호칭은 스티븐 제이 굴드가 만들었다. 굴드는 내게 따라다니는 다윈주의라는 딱지가 가진 사회적·정치적 함의를 싫어했다. 그래서 굴드는 ‘다윈주의 근본주의자’라는 말을 만들어 ‘다윈주의’라는 말에 내포된 사회적·정치적 함의를 희석시키고 싶어 했다. 나는 지금도 철저히, 물론 신중하게 진화론적 사고를 주장하고 있고,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는 근본주의자인지도 모른다.

3. 당신의 로봇 강아지 ‘타티’(Tati)가 연구와 관련이 있는가?
타티는 인간 공학기술의 결정체이자 리버스엔지니어링(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을 역으로 추적해 기술을 알아내는 일)으로 다룰 만한 대상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도 타티의 어떤 부분이 타티를 움직이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로봇이지만 일종의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사실만으로도 정교하고 복잡한 존재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장 단순한 생명체인 박테리아보다 더 간단한 질서에 의해 움직인다. 나는 인공지능이 진화생물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어쩌면 무수히 많은 로봇으로 만들어진 존재일지도 모른다.

4. 찰스 다윈과 저녁을 먹을 수 있다면 무슨 얘기를 하고 싶나?
DNA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그가 얘기한 진화의 과정이 분자와 유전체 그리고 지식과 언어, 기술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말해주고 싶다. 그는 우리가 밝혀낸 성과들에 매우 흥분할 것이다.

피터 맥그로스

HMS 비글호 재단의 공동 창립자.
영국 리버풀대에서 동물학을 전공했다. 자유기고가이자 전문 항해사다.

21세기 비글호 항해사
1. 비글호를 건조하게 된 동기는 뭔가?
우리는 1831~1836년 찰스 다윈을 태우고 항해했던 비글호의 현대판을 건조할 계획이다. 다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에는 그의 자연선택 이론이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비글호 항해를 재연하는 일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이 계획은 3년 전 시작됐다. 내 동료인 데이비드 롤트-필립스는 존 롤트 스토크스의 후손인데, 그는 영국해군이 비글호를 취역시킨 날부터 임무를 다한 날까지 비글호에서 근무했다. 비글호의 호주 항해에서는 선장이 되기도 했다. 데이비드는 다윈의 업적에 관심이 많을 뿐 아니라 비글호가 호주 발견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길 원한다. 나 역시 전문 항해사이고 비글호를 재조명해 영국의 항해사(史)를 부각시키고 싶다. 특히 피츠로이 선장은 훌륭한 항해사이자 뛰어난 과학자였지만 역사는 그에게 너무 야박한 평가를 내렸기에 이 부분도 바로잡고 싶다.

2. 다윈이 승선했던 비글호와 뭐가 다른가?
다윈의 비글호와 쌍둥이처럼 똑같진 않다. 전 세계를 누비기 위해선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 현대판 비글호는 디젤 보조 기관과 발전기, 내비게이션 등을 갖출 것이다.

3. 비글호는 얼마나 건조됐나?
이제 막 시작 단계다. 지금은 비글호를 건조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모으고 있다. 앞으로 400만 파운드(약 78억 원) 정도 더 기부 받을 예정이다. 봄에는 비글호를 건조하기 시작해 올해 안에 완성하고 싶다. 비글호가 완성되면 다윈의 비글호 항해를 재연할 것이다. 해양생물들의 유전자 샘플을 채취하고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공동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오는 3월 국제우주정거장에 가는 우주비행사인 마이크 바라트가 비글호로 해양 현상을 연구하는 일을 NASA에 제안했다. 혹시 좋은 연구 아이디어가 있는 과학자는 우리에게 알려 달라. 공동연구를 할 수도 있다.

특히 젊은 친구들이 지구온난화나 기후변화 같은 최근의 환경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4. 비글호에 한 명만 태울 수 있다면 누구를 택하겠는가?
영국 케임브리지대 생리학과 석좌교수인 리처드 케인스다. 그는 다윈의 증손자이자 비글호 항해기를 포함해 다윈의 많은 저작을 편집하고 출판했다.

최정규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며 진화적 게임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카오스이론과 진화이론을 중심으로 학제간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던 뉴멕시코 소재 산타페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낸 뒤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진화적 게임이론을 바탕으로 경제학, 정치학, 진화생물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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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최정규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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