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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홈PC 가족 모두 함께 즐기려면··

PC가 명실상부한 가전제품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이 기계에 대한 공포감부터 물리쳐야 한다. 특히 가정에서 주부가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주부의 '컴퓨터 내 친구만들기'는 홈PC가 정착되기 위한 첫째 조건. 사례를 통해 PC가 가족을 위해 봉사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PC앞에 모인 온 가족. PC로 새로운 가족문화를 이룬 가정의 중심은 여전히 사람이다.


'컴맹'이란 말이 문맹에 버금가는 수치거리로 여겨지는 세상이라지만, 실제 우리 주변에서 '저는 컴퓨터를 하나도 모르는데요'를 연발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자신을 실토하는 이들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들이 내세우는 까막눈의 이유는 대개 이렇다. "내게 컴퓨터는 너무 어려워요."

사실 그렇다. 컴퓨터는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만만한 기계가 아니다. 자판을 익히는데 드는 노력을 별개로 한다 해도, 파일이니 디렉토리니 하는 야릇한 용어들의 개념을 깨우치고 기본적인 명령어를 외우고 익혀야 하는데 드는 정력과 시간도 적지 않다. 게다가 책을 열어봐도 CPU란 것이 어떠해서 XT와 AT가 어떻고, 386이니 486이니 하는 '암호'들이 난무하는 판이니 '컴퓨터는 어렵다'는 주장이 전혀 이유 없는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같은 푸념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작동 원리를 모르고도 텔레비전과 전기밥솥을 훌륭히 사용하고 있으며, 자동차의 부품을 낱낱이 알지 못해도 타고 다니는데 별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컴퓨터도 쉽게 사용할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주변에는 대개 나이를 불문하고 '컴퓨터 박사님'이 한 두명쯤은 있을 터이니 모르면 이들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다.

더구나 컴퓨터를 필요로 하는 일이 복잡한 계산과 작업을 해야만 하는 사무실이 아니라 가정이라면 이 일은 쉽고도 쉬운 일이다.
 

작년말 PC통신 동호회 '부부사랑'에서 만난 가족끼리 유성에서 모임을 가졌다.


명령어 모르고도 원하는 일 척척

대전에 사는 주부 최성숙씨(35)는 '컴퓨터에 대해 별다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평범한 세 아이의 엄마다. 하지만 그에게 '컴퓨터에 대한 별다른 지식' 같은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가 남편과 함께 컴퓨터를 집에 들여놓은 이후 이 '신기한 기계'에 폭 빠져 있다는 것이다.

컴맹이나 다름없던 그가 컴퓨터를 집에 들여놓은 이유는 지극히 단순했다. 전업주부인 그가 달리 컴퓨터를 익혀 일을 시작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가계부를 컴퓨터로 관리하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이 전부였던 것. 그러나 반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컴퓨터와 함께 보낸 그는 이제 가계부뿐만 아니라 컴퓨터 통신에도 능숙해져 새로운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지금도 여전히 초보자에 불과한 그가 다른 초보자와 다른 점은 컴퓨터를 좀체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PC 사용자라면 모르는 게 이상할 도스니 윈도스니 하는 용어의 개념조차 정확히 구분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것 몰라도 사용에는 아무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남편이 좋은 선생님이지요. 저도 남들처럼 명령어 익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의 말을 듣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집에서 필요로 하는 컴퓨터 활용 정도라면 복잡한 명령어를 일일이 외우는 것보다는 컴퓨터를 켜는 것부터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는 순서를 외우는 편이 훨씬 간단하고 실용적이라는 거지요."

최씨의 남편 장익관씨(38)는 주택공사에서 설계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직장에서 유닉스 계열의 워크스테이션을 사용하고 있는 그는 한동안 PC가 집에 있어야 할 필요를 별반 느끼지 못했다. 물론 회사에서도 이른바 '다운사이징' 바람이 불면서 전자결재 등 PC를 통한 업무처리가 늘어나면서 PC가 대단히 강력한 도구라는 것을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컴퓨터 모니터 앞이 지긋지긋하다'는 것은 아니어도 회사 업무를 집에서까지 하고 싶진 않았거니와 직장에서 진행중인 방대한 분량의 CAD 도면을 집으로 들고 들어올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

하지만 '정보고속도로'가 운위되는 세상에 살면서 아내와 아이들이 컴맹에 머물러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러던 차에 아내가 가계부를 컴퓨터로 쓰겠다는 말에 힘을 얻은 그는 작년 6월 2백만원이 넘는 거금을 주고 S사에서 나온 486 멀티미디어 PC를 구입했다.

거금을 주고 들여놓은 기계가 가정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서는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내가 컴퓨터와 친숙해져야만 했다. 주부가 컴퓨터에 대한 '마인드'가 없다면 아이들의 적응과 활용도 뒤늦을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한 그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PC통신을 생각해냈다.

사무실이라면 워드프로세서나 표계산 프로그램을 먼저 익히는 것이 순서이겠지만 문서를 꾸밀 일이 많지 않은 주부이고 보면, 장씨의 생각은 옳았다. 구입 즉시 하이텔에 한마음(HANMAEM)이란 아이디로 하이텔에 가입한 그는 자신이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오디오 동호회와 불교인 모임 등에 들어가 통신 이용법을 시연(試演)해 보이면서 아내가 필요로 할만한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와 함께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를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을 간단히 실행시킬 수 있도록 배치파일(*.BAT)로 묶었다. 이를 테면 통신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키고 'abc'를 입력하고, 가계부를 쓰기 위해서는 'home'을 치면 곧 원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도록 한 것이다.

통신, 아이들 교육, 그리고 노래방

아내는 아내대로 열심이었다. 집안일을 돌보면서 컴퓨터를 익히기 위해 투자할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틈만 나면 컴퓨터를 붙들고 구입 당시 번들로 제공된 초보자 안내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면서 자신의 활용법을 익혀 나갔다. 결혼 전 학교에서 텔렉스를 배웠던 덕에 '생초보'들의 첫관문인 자판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타자 실력은 오히려 남편보다도 최씨가 더 좋은 편.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남편 이름으로 가입한 하이텔 아이디는 오히려 집에 더 많이 있는 그의 차지가 되고 말았다. 그가 PC를 틀면 습관적으로 들러보는 곳은 '부부사랑(GO BUBU)' 동호회. 하이텔 안에 방이 생긴 지 이제 막 1년이 지난 이 동호회는 기혼자에게만 가입자격이 주어지는 독특한 모임으로, 현재 1천여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그는 얼굴을 모르는 전국의 주부들과, 혹은 '유부남'들과 대화를 나누며 하이테크 시대가 열어준 새로운 사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혼자 알고 있기엔 아까운 생활정보나 육아 정보를 얻는 것도 즐거운 일이고, 특히나 남편이 미처 알려주지 않은 PC 활용법 등을 배우는 것은 딱히 컴퓨터 활용잡지 등을 구독하지 않는그가 컴퓨터 실력을 쌓는데 더 없이 좋은 선생님이 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좀더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고, 또 컴퓨터에 '정통'하게 되면 아파트 내에서 '컴퓨터가 무서운' 주부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될 계획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동호회 활동 외에 그가 이용하는 또 하나의 주요한 PC통신 기능은 홈 뱅킹. 8개나 되는 거래 은행 전부를 엮는 홈 뱅킹을 통해 그는 남편의 통장에서 매달 시댁에 보내드리는 부모님 용돈도 통신을 통해 처리하고 있다.

"전화요금 외에도 대략 4만원 정도 통신 요금이 더 나옵니다. 물론 많다면 많은 돈이겠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없어요. 아이들과 함께 집에만 있는 저같은 사람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이해하는데 컴퓨터 통신은 더 없이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에요."

애초 PC를 사게 했던 이유가 된 만큼 가계부도 꾸준히 쓰고 있다. 컴퓨터 살 때 들어있던 '아내사랑'이란 프로그램을 쓰다가 좀 답답하다는생각이 들어 남편이 사다준 '평생비서 OK'로 바꾸었다.

노래방도 가족의 PC 활용에 빠질 수 없는 대목이다. 통신을 통해 다운로드받은 데이터를 이용, 가족 노래잔치를 벌이는 날이면 두 부부는 아이들의 재롱에 한껏 풍요로움을 느낀다.

한편 PC를 산지 4개월 후 회사 전체에서 가족용 PC를 공동 구매할 때 컬러 잉크젯 프린터를 장만했다. 이 프린터는 페인트브러시로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이나 공룡 그림을 뽑아주는데 주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전적으로 '아동용'만은 아니다.

작년 12월 전까지 서울에서 살던 이 가족은 남편의 임지를 따라 현재 살고 있는 대전으로 이사를 했다. 이때 아내 최씨는 집을 내놓는다는 예쁜 안내문을 손수 꾸며 프린터로 80여장을 뽑아 동네에 붙임으로써 쉽게 집을 팔 수 있었던 것.
 

사물의 변화에 놀랄만큼 잘 적응하는 아이들에게 PC는 이내 장난감이 되고 말았다. 딴청을 부리고 있는 막내도 조만간 모니터로 얼굴을 향할 것이다.


"괜찮은 소프트웨어 어디 없나요"

남편 장씨는 집의 PC 시스템을 다중 환경으로 구성했다. 그는 그대로, 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서로 다른 목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하니 만큼 처음 부팅될 때 자신이 원하는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환경을 위해 눌러야 할 번호가 다른 것이다.

3개의 환경으로 구성된 이 시스템의 1번은 교육 오락용 CD-롬을 즐기는 맏딸 정아(8)와 아들 민수(5) 차지. 막내인 현수(3)는 아직 어려 언니와 오빠가 모니터 앞에 모여 있으면 자기도 끼워달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때로는 얌전히 구경만 하기도 한다.

아빠와 엄마가 간단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 PC 앞에 모이면 이내 아이들도 PC를 만지겠다고 한바탕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엄마는 TV 시청의 경우처럼 아이들이 지나치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시간을 통제하고 있다.

PC가 본격적으로 가정용품의 대열에 끼기 위해서는 어른들만의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이 부부는 생각한다. 마치 텔레비전과 비디오의 경우처럼 아이들이라도 켜고 작동시키고 끄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으면 '홈 PC'란 허울 좋은 이름에 불과할 것이라는 것.

그러나 문제는 소프트웨어다. 홈 PC를 들여놓은 대부분의 가정이 그러하듯 아이들의 컴퓨터 활용은 이들 부모의 최대 관심사일 수 밖에 없다. 국내에서 제작한 '쓸만한' 교육용 소프트웨어가 그리 풍족하지 않은 현실에서 '가정의 정보화'를 책임진 남편은 '좋은 타이틀 찾아 삼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호기심에 컴퓨터를 사서 게임 좀 하다가 덮어두고 먼지 쌓이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컴퓨터에는 게임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알아야지요. 이 점에 있어서 도스 명령어를 알고 모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모르면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니까요."

아이들 보라고 사와서 도리어 어른인 자신이 더 재미있어 하는 외국산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타이틀을 보면서 그는 불만이 많다. 될 수 있으면 국산을 사다주고 싶지만 구성이 탄탄한 외국제품을 놔두고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혹 새로운 정보가 있을까 하고 신문의 컴퓨터란을 숙독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프트웨어 전시회는 놓치지 않고 챙겼다. 그럼에도 현재 아이들이 그 즐거움에 빠져 있는 프로그램중 국산제품은 '즐거운 놀이방' 정도.

"그나마 우리 아이들 정도의 연령층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사정이 나은 편이더군요. 국민학교 3학년 수준올 넘어가면 고작해야 아이들 참고서를 컴퓨터에서 볼 수 있게 만든 정도니 말예요."

장씨는 이와 함께 소비자들이 제품들을 평가해볼 수 있는 시연 장소조차 변변치 않은 판매업체들의 서비스 정신 부재에 대해서도 큰 불만을 토로했다.

화목하기 그지 없는 이 가정에서 PC는 어느새 식구들을 묶는 새로운 끈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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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전민조 기자
  • 이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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