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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에 ‘순간이동’ 이름 붙인 주인공 찰스 베넷

1993년 양자 원격전송에 관한 개념을 처음으로 발명했다.
그 순간을 기억하는가?

나 혼자 발명한 것이 아니다. 사실은 동료 6명의 합작품이다.
내 이름이 알파벳 순서에서 맨 앞에 있기 때문에 ‘득’을 많이 본다(웃음). 어쨌든 그 순간은 굉장히 재밌었다. 1992년 가을 윌리엄 우터스 박사(6명 중 한명이다)가 캐나다 몬트리올대에서 초청강연을 하면서, 1990년 애셔 페레스(역시 6명 중 한명이다)가 발표한 논문이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두 입자가 함께 있을 때보다 떨어져 있을 때 양자상태가 더 정확히 측정되는 현상이 발견된 것이었다. 이는 사실 그때까지 알려진 양자얽힘(두 입자의 상태가 서로 얽혀있어 멀리 떨어져서도 영향을 주는 현상)과는 모순이었다. 우리에겐 이 문제가 미스터리였다. 강연이 끝난 뒤 한두 시간 브레인스토밍을 했다. 결론이 나지 않아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다들 고민했다. e메일로 수없이 의견을 교환한 끝에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는‘떨어져 있는 두 입자가 사실은 한 입자의 양자상태가 순간이동한 것은 아닌가’하는 내용이었다.

‘순간이동’(teleportation)이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나?
순간이동이라는 단어는 내가 제안했다. 애셔 페리스 박사는 ‘teleportation’이라는 단어가 그리스어(tele)와 라틴어(portation)가 섞여 언어학적으로 ‘나쁜’ 단어라며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순간이동이라는 단어가 SF소설에 이미 쓰인다며 설득했고, 나머지도 찬성했다. 페레스 박사도 결국 고집을 버렸다.

‘스타트렉’은 봤나?
영화보다 TV 시리즈를 좋아한다. ‘스타트렉’에서는 순간이동 전송장치로 ‘transporter’라는 용어를 쓴다.
마틴 가드너(미국의 유명한 과학저술가)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스타트렉’에 관해 쓴 글을 흥미롭게 읽었다.
1993년 논문을 발표했을 때 순간이동이 황당한 생각이라는 비난을 받지는 않았나?
전혀 아니다. 연구에 참여한 우리 6명은 확신을 갖고 있었다.

노벨상 0순위로 꼽히는데?
(질문을 던지자 그는 쑥스러운 듯 크게 웃었다)

아직 양자정보과학 분야에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그 이유가 노벨상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벨상을 받은 연구는 대개 실용적인 기여도가 크다. 그런데 양자정보이론의 경우 물리학과 수학의 경계에 있는, 아직까지는 매우 이론적인 학문이다. 그나마 현재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양자암호 연구가 실용적인 면에서는 가장 가능성 있는 후보다.

어릴 때부터 물리학자가 꿈이었나?
세 살 때부터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네다섯 살 때는 전자 장난감을 좋아했고, 십대에는 생물과 화학을 좋아했다. 물론 수학을 포함해서 과학은 분야를 막론하고 대체로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학부 시절 화학을 공부했지만 대학원에서는 물리화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스무 살 즈음 어떤 사람이 괴델의 불완전성원리를 말해줬는데, 거기에 매료돼 박사과정에서는 수리논리학도 공부했다. 지금 연구하고 있는 양자정보이론에 관심을 갖게 만든 사람은 대학 동기인 스티븐 위스너였는데, 그는 내게 양자정보이론에 관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종종 던졌다.

사진 찍는 솜씨가 수준급이다. 연구와 관련이 있나?
(그의 홈페이지에는 멋진 흑백사진이 여러 장 올라 있다)
40년 동안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 연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물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한다. 늘 보는 현상을 뒤집어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미국의 유명한 카투니스트인 게리 랄슨을 매우 좋아한다.

Charles Bennett profile

1943년 미국 출생

1964년 미국 브랜다이스대 화학과 졸업

1970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분자동역학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1972년~현재 미국 IBM연구소 연구원

1984년 양자암호 발명

1989년 세계 최초로 양자암호 실험

1993년 세계 최초로 양자 원격전송 개념 정립

찰스 베넷 박사는 한글을 ‘열공’하고 있다. 그에게 ‘과학동아’를 건네자 서툴지만 한자씩 소리내 읽었다. 한글이 매우 과학적이어서 배우는 일이 재미있단다. 지금은 단어 10개 정도를 읽는 수준. 기자의 성이 ‘리’가 아니라 왜 ‘이’인지 물어 기자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잘나가는 양자암호 팝니다 니콜라스 지생

‘네이처’ 8월 14일자에 빛보다 1만 배 빨리 정보를 전달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어떤 내용인가?
축구 경기에 비유해보자. 경기 도중 심판이 호루라기를 부는 순간 모든 선수들은 동시에 뛰기를 멈춘다. 이런 일이 광자에도 똑같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것이 이번 논문의 결과다. 광자 2개를 분리한 뒤 광섬유로 18km 떨어진 마을에 각각 보냈다. 그런데 그 광자들이 목적지에 도착하자 즉시 서로의 (양자)상태를 인지했다. 광자 사이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전혀 없었다. 이 얘기는 각 광자의 양자상태가 빛보다 빨리 전달됐다는 뜻이다.

빛보다 빠르다는 얘기는 상대성이론에 위배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정보는 빛보다 빠르게 갈 수 없다는 말은 맞다. 중요한 점은 빛보다 빨리 전달된 대상이 양자‘상태’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정보 자체가 전달됐다는 말은 아니다. 정보를 빛보다 빨리 전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쯤 물체를 순간이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지금 눈 깜짝할 사이에 당신 옆자리로 갈 수도 있다(웃음). 하지만 아직 그건 불가능하다. ‘상태’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광자는 얼마나 멀리 떨어뜨릴 수 있나?
거리의 한계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적으로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2003년 약 6.5km에서 시작해 현재는 이론적으로 200km까지 가능하다. 실제로는 100km 수준까지 성공했다.

양자암호를 처음으로 상용화시켰다고 들었다. 양자암호가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가?
이미 스위스 제네바 주정부는 전자투표 시스템에 양자암호를 사용하고 있다. 투표결과가 조작되는 일을 막기 위해 선거 결과를 전송하는 시스템에 양자암호를 채택했다. 물론 광섬유 길이가 길수록 광자가 사라지는 문제가 아직 있긴 하다.
교수이자 CEO라고 들었다(그는 2001년 ‘이드 퀀티크’라는 양자암호 시스템 개발 기업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드 퀀티크’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하지만 지금은 CEO에서 물러나 운영위원으로 있다.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이드 퀀티크’에서는 데스크톱 크기의 하드웨어와 관련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하드웨어는 난수(random number)를 생산하는 장치와 광자를 방출하고 검출하는 소자로 구성된다. 아직 규모는 작지만 은행이나 정부가 주 고객이다. 대학 연구소나 실험실에서 사가기도 한다.

물리학자가 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물리학을 생각하며 일어나고, 잠자리에 든다. 다른 일은 상상할 수 없다. 물리학이 직업이자 취미다. 어릴 때부터 과학이 좋았고 지금 이 순간도 추상적인 수학 모델로 자연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느낀다. 가끔 연구로 심신이 지칠 때면 (필드)하키를 즐긴다. 하키는 프로 수준이다. 물론 지금은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들과 경기를 할 수밖에 없다(웃음). ‘웨스트사이드 오브 스위스 하키’ 회장도 맡고 있다. 매주 월요일마다 하려고 하지만 지금처럼 학회나 다른 일정으로 스위스를 비울 땐 못한다. 한국도 이번 베이징올림픽에 남녀 하키팀을 출전시키지 않았는가. 매우 잘한다고 들었다.

장기적인 연구 목표가 있는가?
양자역학은 재밌어야 한다. 지금까지 양자역학은 너무 개념적이고 추상적이기만 할 뿐 실용성이 전혀 없는 학문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 유명한 양자물리학자인 존 벨은 이런 말을 남겼다. 양자역학은 모든 실용적인 목적에 적합하다(QM is fine FAPP, 여기서 FAPP는 ‘For All Practical Purpose’의 줄임말이다)! 내 목표도 그렇다. 물리학의 기초 연구와 응용 연구 사이의 ‘신나는 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Nicolas Gisin profile

1952년 스위스 제네바 출생

1981년 스위스 제네바대에서 양자통계물리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1988년~현재 스위스 제네바대 물리학과 교수

2001년 양자암호기업 ‘이드 퀀티크’(Id Quantique) 설립

2002년 세계 최초로 양자암호 상용화

지생 교수는 한국 방문이 처음이었다. 그에게 한국에 대한 첫인상을 물었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국 음식이 인상적”이라며 “나물이 정말 맛있다”고 말했다. 그는 채식주의자다. 김치도 조금 맵지만 입맛에 아주 잘 맞는다고. 스위스로 돌아가기 전 경기도 이천에 들러 도자기와 논을 구경한 뒤 한정식 식당에서 찐 호박잎에 맛있게 쌈을 싸 먹었다고 한다. 빠듯한 일정 탓에 서울 구석구석을 돌아보지 못했지만 서울 인구가 스위스 전체 인구의 3배라는 사실이 너무 놀랍다는 얘기도 전했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광자 쏘겠다_안톤 자일링거

처음으로 양자 원격전송 실험에 성공했다. 기억나는 순간은?
황당하고 재밌는 일이 있었다. 원격전송 실험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BBC TV에서 실험실을 찾아왔다. 그리고는 스크류 드라이버를 놓더니 이것을 순간이동 시켜달라며 나를 불렀다. 물리학자가 아니라 마술사가 된 기분이었다. 가끔 사람을 순간이동 시켜달라는 얘기도 듣는다(웃음). 아마도 사람들은 원격전송이 가능한 대상이 정보의 상태라는 점을 잊고 물체도 순간이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분야에서 새로운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기술적으로는 그렇다. 나는 언젠가는 모든 정보기술이 양자화 될 것이라고 믿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실제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이때 학회장 로비를 가로지르던 다른 학자가 그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편지를 받지 못했다”고 하자 그는 “양자 편지라 그렇다”며 재치 있게 대답했다^^). 전자기기를 보라. 갈수록 크기가 작아지고 있다.

인식의 변화도 있나?
개념적으로는 더 큰 변화가 예상된다. 양자가 순간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철학적으로 너무나 많은 질문을 낳는다. 도대체 실재(reality)한다는 말은 물리적으로 무슨 뜻인가, 양자 정보는 누구 것인가 같은 문제들이 벌써 논의되고 있다.
나 역시 철학적 문제에 관심이 많다. 우리 연구실에는 철학자들이 물리학자들과 함께 연구를 하고 있다(통역을 맡은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김재완 교수는 2005년 그의 60세 기념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인식론(epistemology)이라는 철학적인 용어가 자주 거론됐다며 보충 설명했다). 양자역학을 연구할수록 ‘실재’라는 개념과 ‘관찰’이라는 개념이 서로 독립적이라는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된다.

지금 가장 주력하고 있는 연구는 뭔가?
좋은 질문이다. 몇 달 전부터 굉장히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하고 있다. 인공위성에서 광자 하나를 지구의 한 지점에 보내는 것이다. 광섬유를 사용하는 유선 실험이 아니라 무선 실험이다. 현재 대기 중에 무선으로 광자를 보낸 최대 거리는 144km다. 무선으로 광자를 전송하는 일이 어려운 이유는 대기가 광자의 양자 상태를 흔들어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대기가 점점 사라지기 때문에 우주 공간에서 수천km를 통과하는 일은 지상에서 8km를 이동하는 정도밖에 안된다. 지난 3월 이탈리아 마테라 천문대에서 레이저 빔을 쏴 고도 1485km에서 돌고 있는 일본의 인공위성 ‘아지사이’(Ajisai)에 보냈고, 이 인공위성이 싣고 있는 반사경은 레이저 빔을 정확히 천문대로 되돌려 보냈다.

이런 실험을 하는 이유가 뭔가?
만약 이 실험이 성공하면 우리는 앞으로 지구의 어느 두 지점에서든 양자암호를 사용할 수 있다. 이를 좀 더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 지금 유럽우주국(ESA)과 함께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지구의 두 지점에 광자를 보내는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이 프로젝트 이름이 ‘우주-QUEST(Quantum Entanglement for Space Experiment)’다). 이를 위해서는 ISS에 있는 과학실험실인 콜럼버스 모듈에 광자 송수신기를 제작해서 달아야 한다. 현재 유럽을 비롯해 호주, 캐나다, 일본 등 15개국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도 관심이 있다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좋겠다.

요즘 가장 재밌는 일은 뭔가?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다. 다만 젊은 사람들과 연구하는 일이 너무 즐겁다. 젊은 연구자들은 매우 경쟁적이어서 나도 그 속에 있다 보면 나이를 잊고 연구하게 된다. 물리학 중에서도 최근 양자정보 분야가 가장 활발히 연구돼서 더욱 힘이 난다. 아직 한국인 제자는 없지만 중국, 호주, 캐나다에서 온 제자들이 연구실 분위기를 역동적으로 만들고 있다.

Anton Zeilinger profile

1945년 오스트리아 출생

1971년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수학과, 물리학과 졸업

1972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원자연구소 연구원

1981년 미국 MIT 물리학과 교수

1983년 오스트리아 비엔나공대 교수

1990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 물리학과 교수

1997년 세계 최초로 양자 원격전송 실험 성공

1999년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물리학과 교수

2008년 영국물리학회가 수여하는 아이작 뉴턴
메달 최초 수상

자일링거 교수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양자역학에 관한 대중서를 2권이나 썼다.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김재완 교수에 따르면 자일링거 교수가 살고 있는 비엔나에서는 시민들에게 ‘양자역학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이구동성으로 ‘예스, 자일링거!’라고 외친다고. 아직 영문판은 나오지 않았다. 책 제목을 한글로 옮기면 ‘양자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유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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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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