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지상과 다른 점을 꼽으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무중력을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로 ISS에서 지구의 중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구의 중력은 지구에서 38만km 떨어진 달까지 미쳐 달이 지구를 한 달에 한번 씩 돌게 하는데, 고작 400km 상공에 떠 있는 ISS에 지구의 중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하면 이상하지 않은가.
지구 중력은 ISS가 지구 주위를 원운동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지구 중력은 ISS 안에 있는 우주인에게도 똑같이 작용하지만, 우주인은 ISS와 똑같은 속도로 원운동하기 때문에 ISS 안에서 중력이 사라진 것처럼 느낀다. 엘리베이터 줄이 끊어지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붕 뜬 상태로 엘리베이터와 함께 떨어지는 상황과 같다. 따라서 중력이 진짜 사라진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무중력이 아니라 ‘무중량’이 정확한 표현이다.
실제로 ISS는 희박한 대기와의 마찰 때문에 천천히 지구로 떨어지고 있어 ISS 안에는 중력이 매우 약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미소중력’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F=ma, 질량을 알아내는 공식
모든 물체가 둥둥 떠다니는 ISS에서 우주인의 몸무게는 모두 0이다. 그럼 ISS에서는 아무리 먹어도 몸무게가 0이니까 다이어트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까?
몸무게가 0이라도 몸은 그대로 있으니까 틀린 얘기다. 무게는 물체의 덩어리를 지구 중력이 끌어당기는 힘의 크기로 나타낸 양이지만, 물체가 갖는 고유 양인 질량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질량은 어떻게 잴까. 지상에서 물체의 무게는 간단히 저울 위에 올려 측정하면 되지만, ISS에서는 질량을 측정하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에는 의자처럼 생긴 체중계가 있다. 의자에 앉아 몸을 밀착하면 체중계 안에 있는 용수철이 작동해 몸을 추 삼아 진동한다. 용수철은 몸 질량의 크기에 따라 진동하는 주기가 달라지므로, 진동수를 계산해 질량을 알아내는 원리다.
ISS의 즈베즈다 모듈 바닥에는 미국과 러시아가 개발한 접이식 체중계가 있다. T자 모양의 판을 우주인이 몸을 바짝 붙여 안으면 용수철이 일정한 힘으로 우주인을 살짝 튕기는데, 이때 우주인이 튕겨나가는 가속도를 측정해 뉴턴의 운동 제2법칙 ‘F=ma’(F는 힘, m은 질량, a는 가속도)에 넣어 질량을 구한다.
ISS의 우주체중계는 가속도를 정확히 측정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측정오차가 100g에 이른다. 따라서 ISS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실험 결과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실험에 사용한 도구들의 질량을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지난 4월 ISS에서 수행한 18가지 과학실험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작은 질량을 측정하는 우주저울의 성능실험이었다. 소질량 측정 우주저울은 NASA가 2003년 우리나라에 의뢰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최기혁 박사팀이 2007년 개발에 성공했다.
우주저울은 쇠막대기 양쪽 끝에 부착한 로드셀(무게를 감지하는 센서) 위에 기준이 되는 물체와 질량을 재려는 물체를 각각 올려놓고 같은 힘으로 민다. 그러면 두 물체는 같은 가속도로 움직이는데, 이때 로드셀이 두 물체가 움직일 때 생기는 관성력을 측정해 이를 비교한 뒤 질량을 계산한다.
지구에서 무게를 정확히 측정해 가져 간 50g 추들로 우주저울의 성능을 실험했다. 50g, 100g, 150g으로 질량을 바꿔가며 5차례씩 실험한 결과 실험 오차가 1g도 안 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러시아와 미국 우주인이 탐낸 우리 실험장치
ISS에서 수행한 실험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실험은 교육실험이었다. 중력이 거의 없는 ISS는 뉴턴의 운동법칙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바닥과 마찰 없이 ‘제대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실험실이다.
부채를 휘저어 날아다니며 작용반작용의 원리를 설명했고, 쇠구슬을 넣은 투명 공을 흔들어 던져도 무게 중심은 직선 운동한다는 사실을 보였다. 이밖에 풍선 안에 든 공기의 압력으로 잉크를 밀어 쓰는 우주볼펜 실험이나, 추를 단 용수철을 돌려 힘과 질량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실험도 했다.
여러 가지 교육실험 가운데 가장 어려웠던 실험은 단연 물로 하는 실험이었다. 우주정거장 안은 수많은 기계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혹시 작은 물방울 하나라도 기계 속에 들어가면 생명을 위협하는 커다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각종 전자장비로 가득 찬 ISS의 주 거주 공간인 즈베즈다 모듈에서 물을 다룰 때는 특별히 더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ISS의 다른 모듈을 찾았다. 마침 ISS에 머무는 동안 유럽의 화물우주선 ‘줄베른’이 우주정거장에 도킹해 있었는데, 줄베른은 내부가 넓을 뿐만 아니라 복잡한 전자장치도 거의 없어서 물을 이용한 실험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실험은 ISS에 올 때 탔던 소유스 우주선의 선장이었던 러시아 우주인 세르게이 볼코브가 도와줬다. 볼코브는 자신이 수행해야 할 임무를 미루면서까지 실험 장면을 촬영해줬다. 내가 고맙다고 했더니 그는 “고맙다고 하기엔 좀 이르지 않냐”며 “이 테이프를 갖고 내려가서 학생들에게 보여줬을 때, 그들이 재미있어 하고 원리를 이해할 때 고맙다고 하라”고 했다.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함께 ISS에 온 러시아 우주인 올레그 코노넨코는 우리나라의 교육실험장치를 특히 맘에 들어 했다. 그는 “러시아는 왜 이렇게 좋은 장치를 못 만드는지 모르겠다”며 교육실험장치의 원리를 영어로 써 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당초 계획으로는 내가 수행한 실험장치는 지구로 돌아올 때 소유스의 생활모듈에 실어 대기권을 통과할 때 모두 태울 예정이었으나, 귀환 직전 코노넨코의 요청으로 교육실험장치만 유일하게 ISS에 남겨뒀다. 올레그는 우리 실험장치로 러시아 학생을 위해 우주실험을 할 생각인 셈이었다.
이런 요청은 러시아 우주인뿐만이 아니었다. 오는 10월 12일 소유스를 타고 ISS를 방문하는 미국 우주관광객인 리처드 게리엇도 ISS에서 우리의 교육실험장치를 이용하고 싶다고 했다. 게리엇과는 러시아 스타시티에서 함께 훈련을 받으며 친분을 쌓았기 때문에 선뜻 요청에 응했다.
게리엇은 지난달 인터넷을 이용한 온라인 컨퍼런스로 나에게 실험 방법과 원리에 대해 2번이나 교육을 받았다. 또 발사 직전 직접 만나 마지막 교육을 받기 위해 나를 발사현장에 초대했다. 우리의 교육용 우주실험장치가 러시아나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웠다.
이소연 선임연구원 >;
KAIST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3만6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국 최초 우주인으로 선발돼 2008년 4월 8일 러시아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을 방문했다.
ISS에 숨겨놓은 이야기
세계 6번째 우주관광객 단독 e메일 인터뷰
오는 10월 12일 미국인 리처드 게리엇이 러시아의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세계에서 6번째로 우주여행에 나선다. 게리엇은 1990년대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누린 컴퓨터 게임 ‘울티마’ 시리즈의 개발자로 세계 3대 게임 개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2001년부터 한국의 게임 개발 회사인 엔씨소프트 미국 법인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현재 러시아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막바지 훈련을 하고 있는 게리엇을 e메일 인터뷰했다.
1. 우주여행을 언제부터 꿈꿨나.
어렸을 때 나는 NASA 소속 우주인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이웃 대부분이 NASA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아무나 우주에 갈 수 있는 줄 알았다. 나이가 들어 우주여행이 특별한 사람들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30년 동안 우주여행을 꿈꾸며 준비해왔다.
2.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가장 힘들었던 훈련은?
짧은 시간 안에 러시아어를 익히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훈련은 우주 멀미에 대비한 회전의자 훈련이었다(이소연 박사도 이 점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훈련이 모험을 위해 꼭 필요했고 재미도 있었다.
3. ISS에 가면 어떤 일을 할 계획인가.
ISS에서 크게 3가지 일을 할 계획이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단백질 결정 성장실험을 한다. 일본 시계 회사 세이코와 미국 특급배달서비스 회사 DHL이 의뢰한 실험도 몇 가지 준비돼 있다. 예술가인 어머니를 존경하는 뜻으로 몇 가지 예술 활동도 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영국국립우주센터의 의뢰로 교육 실험을 진행한다. 여기에 우주펜이나 뉴턴의 운동법칙을 알아보는 실험장치 같은 한국의 교육실험장치도 활용할 예정인데, 이를 허락해 준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이소연 박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4. 한국의 실험장치를 활용할 생각은 어떻게 했나?
한국의 교육실험장치를 사용하겠다는 의견은 이소연 박사가 ISS에서 실험하는 장면을 본 많은 이들의 생각이었다. 맨 처음 내가 이 박사에게 의견을 얘기했을 때 러시아 우주인 올레그 코노넨코가 이미 똑같은 요청을 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 교육실험장치를 ISS에서 오랫동안 여러 다른 나라 우주인들도 쓸 수 있길 기대한다.
5.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은?
내가 한국의 온라인 게임 회사에서 일하게 된 걸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대규모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게임을 구상했을 때, 한국은 이미 세계 게임 시장을 이끄는 리더였다. 나는 한국의 게임 시장과 개발자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
6. 과학동아 독자들에게 한 마디
꿈을 포기하지 말고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라고 얘기하고 싶다. 현실을 더 많이 이해할수록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더 행복하다. 꿈을 이루는 과정에 장애물을 만나 시간이 오래 걸릴지 모르지만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라. 나는 우주여행의 꿈을 이루는데 30년이 걸렸다. 앞으로 여러분은 한국에서 우주여행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생각한다.
정리 안형준 기자 butnow@donga.com
실험 동영상은 우주로 홈페이지 (www.woojuro.or.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마법 같은 제2의 양자혁명
양자에 ‘순간이동’ 이름 붙인 주인공 찰스 베넷
우주에서 몸무게 0, 다이어트 고민 끝?
지구 중력은 ISS가 지구 주위를 원운동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지구 중력은 ISS 안에 있는 우주인에게도 똑같이 작용하지만, 우주인은 ISS와 똑같은 속도로 원운동하기 때문에 ISS 안에서 중력이 사라진 것처럼 느낀다. 엘리베이터 줄이 끊어지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붕 뜬 상태로 엘리베이터와 함께 떨어지는 상황과 같다. 따라서 중력이 진짜 사라진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무중력이 아니라 ‘무중량’이 정확한 표현이다.
실제로 ISS는 희박한 대기와의 마찰 때문에 천천히 지구로 떨어지고 있어 ISS 안에는 중력이 매우 약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미소중력’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F=ma, 질량을 알아내는 공식
모든 물체가 둥둥 떠다니는 ISS에서 우주인의 몸무게는 모두 0이다. 그럼 ISS에서는 아무리 먹어도 몸무게가 0이니까 다이어트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까?
몸무게가 0이라도 몸은 그대로 있으니까 틀린 얘기다. 무게는 물체의 덩어리를 지구 중력이 끌어당기는 힘의 크기로 나타낸 양이지만, 물체가 갖는 고유 양인 질량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질량은 어떻게 잴까. 지상에서 물체의 무게는 간단히 저울 위에 올려 측정하면 되지만, ISS에서는 질량을 측정하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에는 의자처럼 생긴 체중계가 있다. 의자에 앉아 몸을 밀착하면 체중계 안에 있는 용수철이 작동해 몸을 추 삼아 진동한다. 용수철은 몸 질량의 크기에 따라 진동하는 주기가 달라지므로, 진동수를 계산해 질량을 알아내는 원리다.
ISS의 즈베즈다 모듈 바닥에는 미국과 러시아가 개발한 접이식 체중계가 있다. T자 모양의 판을 우주인이 몸을 바짝 붙여 안으면 용수철이 일정한 힘으로 우주인을 살짝 튕기는데, 이때 우주인이 튕겨나가는 가속도를 측정해 뉴턴의 운동 제2법칙 ‘F=ma’(F는 힘, m은 질량, a는 가속도)에 넣어 질량을 구한다.
ISS의 우주체중계는 가속도를 정확히 측정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측정오차가 100g에 이른다. 따라서 ISS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실험 결과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실험에 사용한 도구들의 질량을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지난 4월 ISS에서 수행한 18가지 과학실험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작은 질량을 측정하는 우주저울의 성능실험이었다. 소질량 측정 우주저울은 NASA가 2003년 우리나라에 의뢰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최기혁 박사팀이 2007년 개발에 성공했다.
우주저울은 쇠막대기 양쪽 끝에 부착한 로드셀(무게를 감지하는 센서) 위에 기준이 되는 물체와 질량을 재려는 물체를 각각 올려놓고 같은 힘으로 민다. 그러면 두 물체는 같은 가속도로 움직이는데, 이때 로드셀이 두 물체가 움직일 때 생기는 관성력을 측정해 이를 비교한 뒤 질량을 계산한다.
지구에서 무게를 정확히 측정해 가져 간 50g 추들로 우주저울의 성능을 실험했다. 50g, 100g, 150g으로 질량을 바꿔가며 5차례씩 실험한 결과 실험 오차가 1g도 안 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러시아와 미국 우주인이 탐낸 우리 실험장치
ISS에서 수행한 실험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실험은 교육실험이었다. 중력이 거의 없는 ISS는 뉴턴의 운동법칙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바닥과 마찰 없이 ‘제대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실험실이다.
부채를 휘저어 날아다니며 작용반작용의 원리를 설명했고, 쇠구슬을 넣은 투명 공을 흔들어 던져도 무게 중심은 직선 운동한다는 사실을 보였다. 이밖에 풍선 안에 든 공기의 압력으로 잉크를 밀어 쓰는 우주볼펜 실험이나, 추를 단 용수철을 돌려 힘과 질량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실험도 했다.
여러 가지 교육실험 가운데 가장 어려웠던 실험은 단연 물로 하는 실험이었다. 우주정거장 안은 수많은 기계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혹시 작은 물방울 하나라도 기계 속에 들어가면 생명을 위협하는 커다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각종 전자장비로 가득 찬 ISS의 주 거주 공간인 즈베즈다 모듈에서 물을 다룰 때는 특별히 더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ISS의 다른 모듈을 찾았다. 마침 ISS에 머무는 동안 유럽의 화물우주선 ‘줄베른’이 우주정거장에 도킹해 있었는데, 줄베른은 내부가 넓을 뿐만 아니라 복잡한 전자장치도 거의 없어서 물을 이용한 실험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실험은 ISS에 올 때 탔던 소유스 우주선의 선장이었던 러시아 우주인 세르게이 볼코브가 도와줬다. 볼코브는 자신이 수행해야 할 임무를 미루면서까지 실험 장면을 촬영해줬다. 내가 고맙다고 했더니 그는 “고맙다고 하기엔 좀 이르지 않냐”며 “이 테이프를 갖고 내려가서 학생들에게 보여줬을 때, 그들이 재미있어 하고 원리를 이해할 때 고맙다고 하라”고 했다.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함께 ISS에 온 러시아 우주인 올레그 코노넨코는 우리나라의 교육실험장치를 특히 맘에 들어 했다. 그는 “러시아는 왜 이렇게 좋은 장치를 못 만드는지 모르겠다”며 교육실험장치의 원리를 영어로 써 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당초 계획으로는 내가 수행한 실험장치는 지구로 돌아올 때 소유스의 생활모듈에 실어 대기권을 통과할 때 모두 태울 예정이었으나, 귀환 직전 코노넨코의 요청으로 교육실험장치만 유일하게 ISS에 남겨뒀다. 올레그는 우리 실험장치로 러시아 학생을 위해 우주실험을 할 생각인 셈이었다.
이런 요청은 러시아 우주인뿐만이 아니었다. 오는 10월 12일 소유스를 타고 ISS를 방문하는 미국 우주관광객인 리처드 게리엇도 ISS에서 우리의 교육실험장치를 이용하고 싶다고 했다. 게리엇과는 러시아 스타시티에서 함께 훈련을 받으며 친분을 쌓았기 때문에 선뜻 요청에 응했다.
게리엇은 지난달 인터넷을 이용한 온라인 컨퍼런스로 나에게 실험 방법과 원리에 대해 2번이나 교육을 받았다. 또 발사 직전 직접 만나 마지막 교육을 받기 위해 나를 발사현장에 초대했다. 우리의 교육용 우주실험장치가 러시아나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웠다.
이소연 선임연구원 >;
KAIST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3만6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국 최초 우주인으로 선발돼 2008년 4월 8일 러시아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을 방문했다.
ISS에 숨겨놓은 이야기
세계 6번째 우주관광객 단독 e메일 인터뷰
오는 10월 12일 미국인 리처드 게리엇이 러시아의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세계에서 6번째로 우주여행에 나선다. 게리엇은 1990년대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누린 컴퓨터 게임 ‘울티마’ 시리즈의 개발자로 세계 3대 게임 개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2001년부터 한국의 게임 개발 회사인 엔씨소프트 미국 법인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현재 러시아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막바지 훈련을 하고 있는 게리엇을 e메일 인터뷰했다.
1. 우주여행을 언제부터 꿈꿨나.
어렸을 때 나는 NASA 소속 우주인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이웃 대부분이 NASA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아무나 우주에 갈 수 있는 줄 알았다. 나이가 들어 우주여행이 특별한 사람들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30년 동안 우주여행을 꿈꾸며 준비해왔다.
2.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가장 힘들었던 훈련은?
짧은 시간 안에 러시아어를 익히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훈련은 우주 멀미에 대비한 회전의자 훈련이었다(이소연 박사도 이 점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훈련이 모험을 위해 꼭 필요했고 재미도 있었다.
3. ISS에 가면 어떤 일을 할 계획인가.
ISS에서 크게 3가지 일을 할 계획이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단백질 결정 성장실험을 한다. 일본 시계 회사 세이코와 미국 특급배달서비스 회사 DHL이 의뢰한 실험도 몇 가지 준비돼 있다. 예술가인 어머니를 존경하는 뜻으로 몇 가지 예술 활동도 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영국국립우주센터의 의뢰로 교육 실험을 진행한다. 여기에 우주펜이나 뉴턴의 운동법칙을 알아보는 실험장치 같은 한국의 교육실험장치도 활용할 예정인데, 이를 허락해 준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이소연 박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4. 한국의 실험장치를 활용할 생각은 어떻게 했나?
한국의 교육실험장치를 사용하겠다는 의견은 이소연 박사가 ISS에서 실험하는 장면을 본 많은 이들의 생각이었다. 맨 처음 내가 이 박사에게 의견을 얘기했을 때 러시아 우주인 올레그 코노넨코가 이미 똑같은 요청을 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 교육실험장치를 ISS에서 오랫동안 여러 다른 나라 우주인들도 쓸 수 있길 기대한다.
5.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은?
내가 한국의 온라인 게임 회사에서 일하게 된 걸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대규모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게임을 구상했을 때, 한국은 이미 세계 게임 시장을 이끄는 리더였다. 나는 한국의 게임 시장과 개발자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
6. 과학동아 독자들에게 한 마디
꿈을 포기하지 말고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라고 얘기하고 싶다. 현실을 더 많이 이해할수록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더 행복하다. 꿈을 이루는 과정에 장애물을 만나 시간이 오래 걸릴지 모르지만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라. 나는 우주여행의 꿈을 이루는데 30년이 걸렸다. 앞으로 여러분은 한국에서 우주여행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생각한다.
정리 안형준 기자 butnow@donga.com
실험 동영상은 우주로 홈페이지 (www.woojuro.or.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마법 같은 제2의 양자혁명
양자에 ‘순간이동’ 이름 붙인 주인공 찰스 베넷
우주에서 몸무게 0, 다이어트 고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