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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계는 지금 합성석유 삼매경

석유로 변신한 석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합성석유연구단 실험실에 설치된 하루 생산량 0.01배럴급 소형석탄석유화 장치. 한 번 가동하면 1주일간 중단하지 않으므로 연구원들은 교대로 밤을 새우며 반응을 모니터링해야 한다.


“여기서 석탄이 일산화탄소와 수소로 분해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스가 저 파이프를 통해 반응기로 들어와 촉매를 만나면 석유가 만들어지지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합성석유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정헌 박사는 4월말 가동 예정인 하루 생산량 0.1배럴 규모의 합성석유 생산설비를 설명하느라 목청을 높였다. 현장 주변에는 설비를 점검하는 손길이 분주하고 끊임없는 소음으로 귀가 멍멍하다. 1배럴이 158.9리터이므로 이 장치가 작동하면 하루 16리터 정도의 석유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석탄에서 석유를 만드는 설비를 짓는데 하루 생산량 기준 1만 배럴당 약 1조 원이 들어간다고 보면 됩니다. 따라서 실패의 위험성을 줄이려면 실험실 규모에서부터 점차 규모를 키워 검증하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 합성석유연구단은 올해 초 0.01배럴짜리 소규모 장치를 실험실에 만들어 석유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소규모 장치를 작동하면서 발견된 문제점을 해결해가면서 0.1배럴 설비의 설계에 반영하고 있다. “지금 대전 교외에 15배럴급 합성석유 설비가 들어설 터를 닦고 있습니다. 내년 말이나 후년 초에 작동을 할 예정입니다.” 설비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펴보는 정 박사에게 벚꽃이 만발한 주변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석유화 반응기 안은 250℃로 만들어진 석유 성분 가운데 작은 분자는 기체가 돼 위쪽 라인을 통해 흘러 식으면서 액화되고(오른쪽 병) 큰 분자는 액체 상태로 아래 라인을 따라 받으면 식으면서 굳는다(왼쪽 병).


오래됐지만 잃어버린 기술

사실 석탄에서 석유를 만드는 석탄액화기술(CTL, Coal To Liquid)은 거의 1세기 전에 독일 과학자들이 개발했다. 당시 독일은 석유를 확보하지 못할 상황을 대비해 자국에 풍부한 석탄으로 석유를 만드는 연구를 진행했던 것. 1920년대 카이저 빌헬름연구소의 프란츠 피셔와 한스 트롭이 개발한 이 방법은 ‘피셔-트롭 공정’으로 불린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미국이 참전하면서 석유 수입이 막힌 독일은 석탄석유화 공장 25곳에서 하루 12만 배럴이 넘는 석유를 만들어 버텨나갔다.

“전쟁이 끝나고 석유 유전이 많이 발견되면서 석탄액화기술은 잊혔습니다. 물론 교과서에 반응식은 실려 있지만 실제 공장에서 생산할 때 필요한 노하우는 대부분 사라졌죠.” 사무실로 돌아온 정 박사는 석탄석유화의 역사를 설명했다. 그 뒤 이 기술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명맥을 이어갔다. 악명 높은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남아공 정부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국에 풍부한 석탄을 활용했다.

남아공의 화학회사 ‘사솔’(Sasol)은 석탄액화기술을 개발하고 대형 플랜트를 건설해 1982년부터는 하루 15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 자국 석유 수요의 27%를 담당하기에 이르렀다. 현재는 석탄석유화 분야의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석탄이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석유의 용도는 내연기관의 연료라는 점입니다. 석유가 없다면 자동차 대부분은 고철 신세죠.”

원자력이 에너지의 큰 몫을 차지하고 있지만 원자력이 직접 대신하는 건 석유가 아니라 석탄이다. 우리나라 발전소의 에너지원을 보면 석탄이 37%, 원자력이 39%인 반면, 석유(벙커C유)는 4%에 불과하다. “안보 차원에서도 석유를 확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적어도 군사용과 대중교통수단을 위한 안정적인 석유공급은 유지돼야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습니다.”

원래 대체에너지로 수소를 연구하던 정 박사는 자신이 대체하려던 석유가 얼마나 이상적인 원료인가를 절감하고 연구방향을 틀었다. 수년 전 석탄석유화 연구의 필요성을 들고 나왔을 때만 해도 주위 반응이 차가왔지만 최근 유가가 급등하고 사실상 저유가 시대가 끝났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마침내 250억 원 규모의 석탄석유화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것.

“원래는 남아공 사솔의 기술을 이전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쪽에서 요구하는 조건이 터무니없어 자체 개발을 하기로 방향을 돌렸죠.”

현재 남아공 사솔 본사에는 기술협력을 원하는 사람들이 하루에 한 팀꼴로 각국에서 찾아온다고 한다. 수십 년 동안 메이저 석유회사들의 무시를 받으며 묵묵히 기술개발을 해온 이 회사는 유가 100달러 시대를 맞아 선망의 대상으로 탈바꿈했다. 따라서 자본 투자를 최소화하고 기술을 제공하는 대가로 지분 절반을 요구하며 웬만한 협상요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0.01배럴짜리 초소형 설비가 돌아가고 있는 실험실로 들어섰다. 한쪽 벽에 고정된 반응기에 일산화탄소와 수소 가스가 흐르는 금속라인이 연결돼 있다. 아래에는 기름이 담긴 플라스틱 통이 눈에 들어온다.

“반응기 안은 250℃의 고온이라 만들어진 석유 성분 가운데 크기가 작은 분자는 기체가 돼 위쪽 라인을 따라 흐르다 식으면서 액화됩니다. 크기가 큰 분자는 액체 상태로 아래 라인을 통해 받으면 상온에서는 고체가 되죠.”

합성석유연구단 이호태 박사가 유리병에 들어 있는 견본을 내민다. 연한 갈색 액체가 담긴 유리병의 뚜껑을 열자 쌉쌀한 석유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 액체를 분별 증류하면 LPG, 가솔린, 경유가 얻어진다.

한편 회갈색 고체가 담긴 유리병에서는 ‘바셀린 크림’이 연상되는 냄새가 석유 냄새와 섞여 있다. “사실 석유를 증류할 때 아래에 남는 부분을 정제한 게 바로 우리가 손발에 바르는 바셀린입니다. 석유화 장치에서 얻은 고체는 크래킹(cracking), 즉 분자를 쪼개는 과정을 거쳐 경유로 만듭니다.”

석탄으로 만든 경유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유황성분이 거의 없다는 것. 석탄을 가스화해 반응기에 보내기 전에 황성분을 대부분 제거하기 때문이다. 반면 원유를 분별증류해서 얻은 경유에는 황을 포함한 화합물이 들어 있다. 그 결과 경유를 쓰는 디젤 엔진은 가솔린 엔진에 비해 황화합물이 많이 나와 대기오염을 가중시킬 뿐 아니라 인체에도 유해하다. 최근 황성분 함량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탈황과정을 거쳐도 황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석탄 발전소와 연계해 효율 극대화

“15배럴급 설비가 제대로 작동하면 다음 단계로 하루 생산량 300배럴급 설비를 지을 예정입니다. 이게 성공하면 최종적으로 하루 5만 배럴을 생산하는 공장을 건설할 예정입니다.”

정 박사는 지난 수십 년간 운영해 노후화된 석탄화력발전소를 다시 지을 때 석유화 시설을 같이 만들면 이상적이라고 설명한다. 기존 석탄발전소는 에너지 효율이 30% 내외여서 최근에는 석탄을 가스화하는 장치를 첨가해 효율을 끌어올린 ‘석탄가스화복합화력발전소’(IGCC)로 교체되고 있다.

즉 석탄을 가스화시켜 만든 고압 기체를 보내 가스터빈을 돌리고 기체를 태워 증기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IGCC에 설비된 가스화 장치에 석유화 반응기만 연결하면 합성석유를 만들 수 있다. 현재 미국은 7개 주에서 8개의 CTL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대부분 합성석유와 전기를 생산하는 복합공장 방식이다.

“현재 세계 각국은 석탄석유화 기술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수년 내 석탄석유화 공장을 완공할 것입니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중국은 2020년까지 총 1조 위안(약 120조 원)을 투자해 우리나라 석유 소비량의 30%에 가까운 하루 60만 배럴 규모의 합성석유를 생산할 수 있는 CTL 설비를 갖춘다는 야심찬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중국은 자국 내 석탄 수출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중국으로부터 수입량이 급감한 우리나라는 주로 호주, 인도네시아에서 석탄을 들여오는데, 최근 고유가에 편승해 톤당 가격이 100달러에서 150달러로 급등했다. 석탄석유화를 거치면 석탄 1톤에서 석유 2배럴이 나오고 이 과정에서 비용은 배럴당 25~30달러이므로 현재 석탄석유화로 얻는 석유 가격은 배럴당 100달러 수준이다.

“현재 남한에는 15억 톤, 북한에는 150억 톤가량의 석탄이 매장돼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약 200년 동안 쓸 수 있는 양이죠.”

정 박사는 앞으로 벌어질 수도 있는 석유대란을 대비해 우리나라가 유지될 수 있는 최소한의 석유를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석탄석유화라고 강조했다. 2차 세계대전의 독일이나 과거 남아공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석탄에서 석유 만드는 과정


석탄액화기술(CTL)을 이용하면 석탄 1톤에서 약 2배럴의 석유를 얻을 수 있다.

1. 가스화기에 석탄, 산소, 물을 넣고 온도를 800~1500℃로 높여주면 일산화탄소와 수소가 생긴다.
2. 가스를 정제 장치로 보내 황화합물과 분진을 제거한다.
3. 일산화탄소와 수소 가스는 250℃의 석유화 반응기에서 촉매(철 또는 코발트)의 도움으로 탄화수소(석유)로 바뀐다.
4. 이때 작은 분자는 기체 상태로 위쪽 파이프를 따라 모여 액화된 뒤 분별증류장치에서 LPG, 휘발유, 경유로 나뉜다.
5. 큰 분자는 액체 상태로 아래쪽 파이프를 따라 모여 크래킹 장치에서 작은 분자로 쪼개진 뒤 분별증류장치로 가 분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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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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