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름범벅 모래에서 이렇게 시커먼 기름이 얻어집니다.”
미국 유타주의 오일샌드 광구에서 가져온 오일샌드 시료를 보여주는 한국기술산업주식회사 사업기획실 윤호식 이사의 표정에는 봄날 처녀 같은 설렘이 느껴진다. 이 회사는 최근 5400만 배럴(1배럴은 158.9L) 규모의 오일샌드 광구와 오일샌드에서 원유를 추출하고 정제하는 플랜트를 보유한 현지 업체를 2000만 달러(약 200억 원)에 인수했다. 아울러 유타주 다른 지역의 오일샌드 광구도 추가로 확보했는데, 이를 합치면 추정 매장량이 총 4억 7000만 배럴에 이른다.
“수년 전만 해도 오일샌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유가가 급등하면서 오일샌드 붐이 일고 있지요.”
오일샌드(oil sand)란 모래와 석유가 뒤범벅돼 있는 토질이다. 지각변동으로 석유가 생성된 층이 지표면 가까이 올라오면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휘발성이 높은 작은 탄화수소 분자들이 대부분 날아갔기 때문에 유정에서 뽑아내는 원유보다 점도가 높고 더 시커먼 기름인 비투멘(bitumen)이 얻어진다. 오일샌드는 캐나다와 베네수엘라에 대량으로 묻혀있으며 미국, 마다가스카르에도 상당량 존재한다. 오일샌드는 지역에 따라 1~18% 정도 비투멘을 함유하고 있는데, 12%가 넘으면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캐나다의 경우 평균 15% 내외.
모래의 15%가 기름
원유의 가채매장량에 오일샌드를 포함하면 캐나다가 1792억 배럴로 석유의 상징인 사우디아라비아(2643억 배럴)에 이어 2위를 차지한다. 보유 원유의 95%인 1750억 배럴이 오일샌드 형태로 묻혀있는 캐나다에는 현재 오일샌드 개발이 한창이다.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정권의 석유 국유화 정책으로 외국 자본이 발붙이기 어려워 개발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한국기술산업주식회사는 캐나다에 비해 별로 주목받지 않는 미국의 오일샌드를 공략하기로 했다.
“최근에 인수한 업체의 원유추출설비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상업생산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세계 3위의 산유국인 미국에서는 지금까지 오일샌드 개발을 미루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체가 미국의 오일샌드를 처음으로 상용화하는 셈이다. 오일샌드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캐나다에 매장돼 있는 것은 물과 기름이 섞인 상태에서 모래에 붙어있는 반면 미국의 오일샌드는 기름이 물기 없는 모래에 붙어 있다. 따라서 기름을 추출하는 방법도 다르다. 노천에 있는 미국 오일샌드의 경우 석탄처럼 퍼내 유기용매로 원유를 추출한다. 유기용매로 옷의 기름때를 벗기는 드라이클리닝과 비슷한 원리다.
반면 캐나다의 오일샌드는 노천 채굴할 경우 물을 더한 뒤 원심분리기에서 기름과 물, 모래로 분리한다. 한편 캐나다 오일샌드는 대부분 지하 수백m에 분포하기 때문에 채굴 대신 그 자리에서 오일을 녹여내 회수하는 지하회수법을 쓰고 있다. 최근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은 SAGD(Steam Assisted Gravity Drainage)다. 땅 속에 관을 2개 꽂아 오일샌드가 있는 깊이에서 꺾어 수평으로 설치한 뒤, 위쪽 관 옆에 뚫린 구멍으로 뜨거운 수증기를 분사해 모래의 기름을 녹여낸 다음 아래쪽 관 옆에 뚫린 구멍으로 회수한다. 이렇게 하면 오일샌드 200톤당 최대 약 100배럴의 원유(비투멘)를 얻을 수 있다.
캐나다 시민이 받은 오일 머니
캐나다의 오일샌드는 중서부인 앨버타주에 주로 묻혀있다. 이미 1967년부터 생산이 시작됐는데 하루 126만 배럴의 석유(비투멘)를 생산하고 있다. 2010년에는 우리나라 소비량 수준인 하루 200만 배럴, 2015년에는 하루 300만 배럴을 생산할 예정이다. 이곳에는 미국의 메이저 석유회사를 비롯해 일본, 중국의 회사들이 이미 상당수의 광구를 확보한 상태다. 이들 회사는 오일샌드 개발에 향후 10년간 1000억 달러(약 100조 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그동안 기술진보로 사업채산성이 많이 개선돼 현재 배럴당 생산비는 24~30달러 수준이다.
생산비가 배럴당 3달러인 중동 석유에 비하면 엄청난 비용이라 유가가 10달러 후반대였던 10년 전만해도 채산성이 없었지만 유가 100달러 시대를 맞아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변신했다.
한국석유공사는 지난 2006년 캐나다 앨버타주의 오일샌드 광구를 하나 사들였다. 총매장량 2억 2000만 배럴 규모로 2010년부터 25년간 하루 최대 3만 배럴씩 생산할 예정이다. 한국석유공사 개발설계팀 정대연 팀장은 “일본은 이미 1970년대부터 오일샌드에 눈을 돌려 현재 10여 곳의 지분을 갖고 있다”며 “이번 오일샌드 광구 개발을 통해 중질유(重質油) 생산 기술과 경험을 쌓아 추후 광구 확보에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에너지 블랙홀’로 불리는 중국, 인도 같은 나라들이 에너지 확보에 열을 올리면서 최근 오일샌드 광구의 가격도 치솟고 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노남선 박사팀은 오일샌드에서 추출하는 비투멘을 좀 더 쓸모 있는 기름으로 바꾸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비투멘은 일반 원유에 비해 덩치가 큰 분자가 많고 탄소의 비율도 높아 조청보다도 점도가 높다. 따라서 파이프로 수송하기도 어렵고 용도도 제한돼 있다. 노 박사팀은 비투멘 같은 중질유를 부가가치가 높은 경질유(輕質油)로 바꾸기 위해 분자를 적당히 잘라주는 크래킹(cracking) 과정과 수소를 첨가해 포화탄화수소를 만드는 과정을 실험하고 있다. 노 박사는 “비투멘을 경질유로 업그레이드하는 설비를 캐나다에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며 “이렇게 품질을 개선한 오일은 일반 원유 가격의 80%까지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오일샌드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캐나다 앨버타주 정부는 시민들에게 1인당 400만원 가량을 나눠주기도 했다. 그러나 오일샌드로 인한 환경오염도 만만치 않다. 모래 속에 묻혀있는 기름을 녹여내는 수증기 일부가 유출되면서 주변 토양과 강을 오염시켰기 때문.
캐나다 정부는 오일샌드를 개발하는 업체에 환경세를 부과해 그 돈으로 환경오염을 정화하는 해결책을 찾고 있다. 불과 수십년 전만 해도 기름 냄새나는 시커먼 모래덩어리가 묻혀 있는 불모지가 검은 황금을 뽑아내는 노다지로 변신한 셈이다.
텍사스 중질유는 품질이 중간인 석유?
석유와 관련된 산업은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역사도 깊지만 일반인은 석유산업의 기초에 대해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LPG, LNG는 서로 어떤 관계일까? 왜 텍사스 중질유는 두바이유보다 항상 조금 더 비쌀까?
원유는 수억년 전 지각변동으로 유기물이 매몰되면서 땅속의 높은 압력과 온도로 변성을 일으켜 형성된 탄화수소 혼합물이다. 땅 속에서 원유는 사암 같은 다공성 암석의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그런데 탄소 하나짜리인 메탄(CH₄)이나 두 개짜리 에탄(C₂H${}_{6}$) 같은 작은 분자는 기화돼 사암 위쪽에 모인다. 이런 유정에서 얻은 기체가 바로 천연가스다. 영하 160℃ 밑에서 액화시키면 부피가 약 620분의 1로 줄어드는데 이것이 액화천연가스, 즉 LNG(Liquefied Natural Gas)다.
한편 원유는 탄소가 서너 개로 비교적 작은 탄화수소부터 40~50개로 이뤄진 큰 분자까지 한데 섞여있는 혼합물이다. 따라서 유정에서 뽑아 올린 원유는 정유공장에서 분별증류과정을 통해 분류된다. 즉 고압에서 원유를 400℃로 가열한 후 상압증류탑이라고 부르는 분별증류장치로 보낸다. 기화된 원유 대부분은 증류탑 중간에서 액화돼 경유나 휘발유가 되고 맨 꼭대기 층까지 도달한 기체는 상온에서도 기체로 남는데 주로 프로판(${C}_{3}{H}_{8}$)이나 부탄(${C}_{4}{H}_{10}$)이다. 이것을 영하 42℃에서 액화하면 액화석유가스, 즉 LPG(Liquefied Petroleum Gas)가 얻어진다.
한편 국제 유가 시세를 알릴 때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Dubai), 북해산 브렌트유(Brent),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는 어떻게 다를까. WTI는 텍사스 서부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로 비중이 중간(intermediate) 정도라는 뜻이다. WTI는 유황성분이 적고 탄소수가 적은 성분이 많아 정제하기 쉬운 고품질 원유다. 북해에서 나오는 브렌트유 역시 유황함량이 비교적 낮고 정제가 쉽다. 반면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생산하는 두바이유는 유황성분이 많고(1~3%) 탄소수가 많은 무거운 성분 위주라 정제비용이 높고 생산되는 경질유 양도 적다. 따라서 현물시세를 보면 WTI와 브렌트유가 비슷하고 두바이유는 낮은 순서가 유지된 채 가격이 변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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