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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품질 바이오석유 시대 열린다

설탕 먹고 석유내놓는 미생물

미국의 바이오벤처 아미리스는 대장균의 대사경로를 조작해 석유를 만들게 하는 데 성공했다. 짧은 막대 모양의 대장균이 배출한 석유는 물과 섞이지 않아 방울을 형성한다.


필자가 박사후 연구원생활을 했던 미국 버클리대 화학공학과의 제이 키슬링 교수의 실험실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개념의 화학공장을 연구하는 곳이다. 전통적으로 화학공학은 원료로부터 화학반응을 통해 생산물을 만드는 과정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게 공정을 최적화하는 연구를 한다. 반응기와 파이프라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화학공장은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그런데 키슬링 교수의 실험실에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박테리아인 대장균의 세포 안에 복잡한 생산라인을 설계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합성생물학 기술로 유전자 변형 박테리아, 즉 인공균주를 만든다. 합성생물학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유전자와 컴퓨터에서 설계된 인공 유전자를 조합해서 새로운 대사경로를 만들고, 원하는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인공생명체를 만드는 학문이다. 인공균주를 영양분이 풍부한 배양액에 뿌려 키우기만 하면 우리가 원하는 화합물이 만들어진다.

키슬링 교수의 실험실에서는 말라리아 특효약인 아르테미신을 생산하는데 성공했고 에이즈 치료 효과가 있는 생체분자인 프로스타틴도 만들었다. 필자 역시 키슬링 교수와 공동으로 항암 작용을 하는 붉은색 카로티노이드, 라이코펜을 많이 만드는 대장균을 개발했다.
 

또 다른 미국 바이오벤처인 LS9는 원유 형태의 기름(왼쪽)과 디젤과 비슷한 기름(오른쪽)을 만드는 인공균주를 개발했다.


고품질 석유 만들어

그런데 최근 키슬링 교수가 설립한 바이오벤처 ‘아미리스’(Amyris Bio technologies)가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장균에서 석유를 만드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석유는 탄소와 수소로 이뤄진 사슬 모양의 분자인 탄화수소 혼합물이다. 보통 실험실에서는 포도당이나 설탕으로 대장균을 배양하므로 결국 석유를 만드는 대장균은 당분을 탄화수소로 바꿔주는 화학공장인 셈이다. 그런데 원래 대장균은 탄화수소를 만드는 효소가 없다. 따라서 이런 효소를 만드는 정보를 담고 있는 다른 생명체의 유전자를 넣어줘야 한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생명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여러 생명체에서 수많은 효소가 밝혀졌다.

따라서 충분한 생명과학 지식과 정보가 있는 실험실이라면 탄화수소를 합성하는 인공균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문제는 과연 이렇게 만들어진 바이오연료가 경제성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김장독만한 배양액에서 며칠씩 키운 미생물이 고작 커피 한 잔 분량의 석유를 만들어낸다면 학술적으로는 흥미가 있을지 몰라도 산업적으로는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아미리스는 기존 화석연료의 특성을 분석해 그에 맞는 물성을 지니면서도 미생물이 세포 안에서 합성할 수 있는 물질을 선별했다. 그리고 합성생물학 기술로 이 물질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대장균의 대사회로를 설계했다. 개발담당 부사장인 네일 레닝거는 아미리스가 현재 탄화수소 연료를 생산할 수 있는 박테리아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미리스는 자동차 연료로 사용되는 가솔린과 디젤을 대체하는 탄화수소 연료뿐만 아니라 비행기에 사용되는 제트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연료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제트연료는 높은 고도에서도 연료가 얼지 않도록 어는점이 낮아야 하고 한 번의 급유로 대륙을 횡단할 수 있게 연비가 높아야 한다.

아미리스의 미생물 세포공장에서 만들어질 제트연료는 기존의 제트연로인 ‘jet-A’의 어는점인 영하 40℃ 보다 더 낮은 영하 57℃의 어는점과 훨씬 더 높은 에너지 밀도를 갖고 있다고 분석됐다. 미국 공군도 새로운 제트연료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2010년까지 최소한 현재 사용하는 연료인 jet-A의 50% 이상을 새로운 제트연료로 대체할 계획이다.

한편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카를로스에 위치한 LS9이라는 바이오벤처도 미생물을 이용해 석유를 만드는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은 대장균에 세포막의 주성분인 지방산을 탄화수소로 만드는 효소의 유전자를 도입했다. 지방산은 탄화수소의 말단에 카르복실기(-COOH) 하나가 붙은 구조이므로 이를 떼어내면 탄화수소가 되기 때문이다.

LS9는 올해 안으로 캘리포니아에 그들이 생산한 탄화수소 연료의 정제과정을 테스트할 수 있는 소규모 시험 플랜트를 건설할 예정이다.
 

바이오석유와 바이오에탄올 비교^미생물이 사탕수수나 사탕무, 옥수수의 당분을 분해해 에너지를 내는 물질을 만드는 바이오연료산업의 축이 바뀔 전망이다. 기존 바이오에탄올보다 바이오석유가 정제하기 쉽고 에너지도 더 많이 내기 때문이다.


1. 당분 공급원인 농작물을 파쇄해 배양액을 만든다.
2. 배양기에 탄화수소를 만드는 외부 유전자를 집어넣은 인공균주(대장균)를 넣어주면 바이오석유가 만들어진다. 기름은 물에 섞이지 않고 비중도 작아 배양기 위에 뜨므로 이를 모으면 석유가 얻어진다.
3. 배양기에 효모를 넣어주면 에탄올 발효가 일어난다. 에탄올은 물과 섞이므로 발효가 끝난 뒤 2차로 증류장치를 통해 알코올을 따로 분리해야 한다.
 

바이오에탄올보다 한 수 위

LS9과 아미리스 두 회사는 더 나은 품질의 바이오연료를 더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미생물 공장을 개발하고 있다. 이들은 가까운 시일 안에 인공균주가 바이오에탄올 생산 공장의 전통적인 에탄올 발효균주를 대체할 것으로 전망한다. LS9사의 개발담당 부사장인 델 카데이레는 탄화수소 연료를 생산하는 것은 에탄올을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탄화수소는 같은 부피의 에탄올보다 에너지를 30% 더 낼 뿐만 아니라 생산비도 훨씬 낮기 때문이다. 효모가 생산하는 에탄올은 배양액의 물과 섞여있기 때문에 물을 제거하기 위한 증류정제 과정이 필요하다. 그 결과 에탄올을 생산하려면 탄화수소를 생산하는 것 보다 에너지가 65%나 더 든다.

게다가 에탄올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자동차엔진을 개조해야 할뿐만 아니라, 부식성 때문에 기존의 석유운송시설과 저장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 즉 바이오에탄올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미국에서만도 32만km에 이르는 석유수송관, 17만 곳의 주유소, 자동차 2억4300만 대의 엔진을 바꿔야하는 문제가 있다.

반면 미생물이 당분을 먹고 석유, 즉 탄화수소를 만들어내면 생산과정이 훨씬 단순해진다. 기름은 물과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공균주는 당분을 섭취해 탄화수소로 만든 뒤 세포 밖으로 배출한다. 물보다 비중이 가벼운 탄화수소는 배양액 위로 떠올라 기름층을 형성한다. 기름을 거둬들이기만 하면 연료로 바로 쓸 수 있다. 물론 석유와 거의 같은 분자로 이뤄졌기 때문에 기존의 엔진과 시설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바이오연료는 석유에서 발견되는 발암물질인 벤젠류의 화학물질과 유황이 없는 청정연료다.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서 유명해졌던 미국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CVI)의 대표인 크레이그 벤터 회장도 미국 매릴랜드주 락랜드에 ‘신세틱 게노믹스’(Synthetic Genomics) 사를 창업하고 바이오연료를 만드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이들 회사 외에도 10여개 이상의 첨단 생명공학 벤처회사들이 바이오연료를 생산하기 위해 창업했다. 금맥을 찾기 위해서 서부개척 시대에 수많은 미국인들이 서부로 이동했던 것처럼, 지금은 바이오연료라는 거대한 석유대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바이오연료 생산 기술은 정유산업에서 공급하는 석유화학제품의 원료를 대체하는 물질을 만드는 데도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생산기술을 바이오정유(biorefinery)라고 한다. 세계적인 석유화학 대기업인 BP(British Petroleum)사도 석유 매장량 한계와 환경오염문제를 고려해서 바이오연료 개발을 포함한 바이오정유 산업으로의 변신을 도모하고 있으며 석유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로 자사의 이름을 ‘석유를 넘어서’(Beyond Petroleum)의 BP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생명공학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우수한 바이오연료 생산 균주 개발이 더욱 중요하다. 커다란 배양기와 미생물, 당분만 있으면 모든 나라가 산유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조만간 미국 키슬링 교수팀을 방문해 1년간 머물면서 공동연구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국내 기술로 개발된 바이오연료 생산 슈퍼 균주가 전 세계의 바이오연료 생산 공장에서 이용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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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김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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