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결합의 원리는 150억년 우주의 역사를 통해 지켜져 내려온 자연의 기본적인 원리다.화학결합을 통해 원자핵끼리 손을 잡음으로써 다양한 물질세계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여기 빨간색과 흰색의 당구공이 두 개 있다. 이 당구공들은 +1이라는 번호가 쓰여있다. 이 당구공은 보통 당구공과는 달리 좀 가까와지기만 하면 서로 눈을 흘기고 다시는 안 볼 듯이 홱 돌아서 버리는 별난 당구공이다. 이 당구공 두 개를 당구대 위에 올려놓자 어쩌다 한눈을 파는 사이에 좀 가까워지면 큰 일이라도 난 듯이 상대를 밀어붙인다. 어느 한 쪽만 그런 게 아니라 이리 저리 밀려다니다 보면 당구대 벽에 부딪쳐서 튀어나오고 그러다가 다시 가까워지면 또 밀려나는 일이 끝없이 반복된다. 당구대 위로 두 마리의 파리가 날아든다. 등에 -1 번호를 붙인 파리들은 처음에는 제각기 당구공을 하나씩 찾아서 그 주위를 맴도는 듯 보인다. 그런데 얼마 있다 보니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당구공 둘이 사이좋게 짝을 지어 다니는 게 아닌가. 이게 웬일인가 싶어서 들여다보니 두 마리의 파리가 당구공 사이에 끼어들어서 서로 눈을 흘기는 당구공 둘을 일정한 거리에 붙잡아 주고 있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소인국의 손가락 만한 사람이 자기 체중의 천 배도 넘는 걸리버를 손가락 끝으로 움직이는 격이다. 걸리버가 소인을 꼼짝 못하게 붙잡아둔다면 모를까 이건 말도 안 된다.
그런데 바로 옆의 당구대에서는 더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여기에는 두 개의 당구공 이외에 커다란 볼링공이 한 개 있는데 옆 당구대에서와 마찬가지로 당구공 둘은 서로 밀치고 벽에 부딪치면서 정신없이 돌아다닌다. 볼링공은 제 체중을 못 가누는지 동작이 느리다. 당구공은 아예 눈에 쌍심지를 켠 볼링공에는 접근할 엄두도 못내고 멀리 피해 다닌다. 그런데 어디서 파리들이 날아들자 상황이 급변한다. 파리들이 저보다 천배 만배나 무거운 당구공과 볼링공을 실에 구슬 꿰듯 묶어내는 것이 아닌가.
양성자와 전자의 타협
실제로 원자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보다 훨씬 더 상상을 초월한다.강남역과 광화문 거리 정도 떨어져 있는 두개의 당구공이 있다.그사이의 넓은 공간에서 윙윙거리며 날고 있는 두 마리의 파리가 당구공을 붙잡고 있는 상황이 수소 분자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뿐만 아니라 자연에는 색깔과 크기가 제각기 다른 1백가지 정도의 공들이 있는데 단 한종류의 파리가 이들을 어떤 규칙에 따라 붙잡아주고 있다.이런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나는 기본 원리가 바로 우리 주위의 물질 세계가 놀라운 규칙성을 가지고 지금과 같은 모습을 지켜나가는 배경이다.그 원리를 이야기하기 위해 지금부터 약1백50억년 전 빅뱅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폭발이 이뤄진 시기로 돌아가보자.
빅뱅의 순간에 -1의 전하를 가진 가벼운, 그리고 나중에 인간이 전자라고 이름 붙인 입자가 생겨난다. 여기서 파리로 묘사한 입자다. 빅뱅의 순간에는 또 나중에 쿼크라고 불리게 될 입자도 생겨난다. 그리고 +2/3의 전하를 가진 쿼크 두 개와 -1/3의 전하를 가진 쿼크 한 개가 모여서 +1의 전하를 가진 양성자가 생겨난다. 전자가 파리만큼 무겁다면 양성자는 당구공 정도의 무게를 가진다.
우주의 나이가 30만년쯤 돼 양성자와 전자가 만나 수소 원자를 만들 때 둘 사이에 이상한 쑥덕공론이 오간다. 양성자가 전자더러 “네가 내 밑에 있는 한은 내가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한다. 나는 내 부하가 혼자 다니는 것은 불안해서 못 본다. 반드시 네 짝을 찾아 둘이 붙어 다니도록 해라”하고 엄명을 내린 것이다. 그러자 전자가 양성자더러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형님께 딸린 것처럼 제 짝도 자기 보스가 있을 게 아닙니까? 그러니 제가 짝을 데려오다 보면 형님이 보기 싫은 녀석이 따라올지도 모릅니다. 그 점은 양해를 해주셔야 하겠습니다”라며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이야기한다. 그러자 양성자도 그것은 어쩔 수 없겠다 싶은지 “좋다. 단지 그 녀석과 적당한 거리만은 유지하도록 네가 신경을 써주어야겠다”고 타협안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처럼 전자가 제 짝을 찾아와서 양성자 보스에게 신고를 하고 있는 사이에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데려온 친구도 제 보스에게 똑같은 신고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 두 양성자는 제 부하가 데리고 온 친구가 자신이 경계하고 있는 상대의 부하인 줄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뭇 흡족한 표정이다.
맏형 수소에게서 배운 결합원리
가벼운 전자는 무겁고 서로 반발하는 양성자 둘을 붙잡아서 자연에서 가장 간단한 분자인 수소 분자(H2)를 만든다. 우주 전체를 놓고 보면 자연에 존재하는 약 1백가지의 원소 중에서 수소와 헬륨이 99% 이상을 차지한다. 질량비로 수소는 전체의 약 4분의 3을, 헬륨은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그 다음으로 많은 산소, 탄소, 질소 등은 다 합해도 1%가 안된다. 결국 수소가 우주 공간에서 제일 풍부한 분자가 된다. 후일 사람들은 어떻게 가벼운 전자가 자기보다 거의 2천배나 무거운 양성자들을 붙잡아 줄 수 있을까 신기하게 여기면서 이를 공유결합이라 부른다. 이와 같은 공유결합은 대부분의 화합물에서 발견되는 가장 보편적인 화학결합의 원리다.
우주의 나이가 10억년 정도 되면 은하계가 생겨나고, 수십억 년에 걸쳐 별들의 내부에서 핵융합 반응에 의해 생명에 필수적인 탄소, 질소, 산소, 인 등의 원자핵이 생겨난다. 그런데 이들은 각각 원자번호대로 6, 7, 8, 15의 양전하를 가지고 있다(원자번호는 양성자 수다). 따라서 이들이 훗날 별의 내부를 벗어나 지구상에서 다시 만나 생명의 화합물을 만들려고 한다면 심각한 문제에 부닥칠 것이 뻔하다. 양전하들 사이의 반발력 때문에 도무지 접근이 어려울 테니 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연은 우선 원자핵들로 하여금 양성자 수와 같은 수의 전자를 만나 중성 원자를 만들도록 했다.
일단 반발을 무마시킨 중성 원자들이 만나면 우주 초기부터 수소가 터득했던 전자 공유의 원리에 의해 다양한 화합물들이 생겨난다. 공유결합은 두개의 수소 원자를 한 개의 산소 원자에 엮어서 자연에서 가장 귀중한 화합물이라고 볼 수 있는 물을 만든다. 수소, 산소의 거리와 두 결합 사이의 각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서 물로 하여금 생명을 태동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성질을 지니도록 하면서 말이다. 수소나 물분자 뿐 아니라 우리 몸 속의 복잡한 화합물도, 또한 태양계의 끝에서 지구로 찾아드는 혜성의 꼬리에서 발견되는 화합물도 마찬가지로 화학결합의 원리를 따른다.
몸이 원자로 흩어지지 않는 이유
다시 제일 간단한 수소 분자로 돌아가 보자.이기적인 인간들의 세계에서라면 하나의 수소 원자는 다른 수소 원자에게 전자를 하나 빼앗아서 전자가 두개 있어야 안정하다고 하는 양자역학적 원리를 만족시키고자 할 것같다.그렇다면 다른 수소는 발가벗은 양성자가 되고 말 것이다.자연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인 수소의 절반이 불만인 상태라면 온전한 세상이 될수 없다.그런데 자연에는 내주되 가지고 있고,가지고 있되 내주는 절묘한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의 원리가 지배하고 있다.옛날 우애 좋은 형제가 살았는데 추수를 끝낸 날 밤중에 동생은 형 집으로 볏짐을 지어 나르고 형은 동생 집으로 볏짐을 지어 나른 것과 다름이 없다.결국 소출 전체는 늘어난 것이 없는데도 형제는 모두 뿌듯한 가슴을 안고 잠이 들었던것과 같다.
이런 공생의 원리는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거의 모든 물질에 적용된다. 공유결합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면 체중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물은 물론이고, 근육과 효소를 만드는 단백질, 에너지를 저장하는 탄수화물과 지방질, 유전 정보를 저장하는 핵산은 모두 하나 하나의 원자로 흩어지고 말 것이다.
우리 몸에는 ${10}^{28}$개 정도의 원자가 들어있다. 이만한 개수의 원자를 풀어놓는다면 향수 냄새가 퍼져나가듯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우리 몸에 들어있는 원자의 개수는 우주 전체 별 수의 백만 배나 된다. 이렇게 많은 원자들이 전자를 공유하면서 우리 몸을 유지한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신기한 노릇이다. 우주의 초기에 똑같은 원리에 의해 수소 분자가 생겨났던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의 존재 이유인 화학결합의 원리는 1백50억 년 우주의 역사를 통해 지켜져 내려온 자연의 기본적인 원리다. 이 화학결합의 원리는 우주의 초기에 양성자와 전자가 막 생겨났을 때, 그러니까 아직 제일 간단한 수소 원자가 생기기 이전에 이미 물질 세계의 기본 원리로 깊이 각인돼 있었던 것이다. 종이와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이니까 자연의 마음에 새겼다고 해야 할까. 마음이 물질이라는 바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