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 1
지난 4월 8일, 카바흐스탄 바이코누르 발사장.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씨가 동료 우주인 2명과 함께 발사를 기다리고 있는 소유스 우주선을 향해 힘차게 걸어갔다. 배웅을 나온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이 씨의 얼굴에는 긴장감 대신 환한 웃음이 가득했다.
우주인을 배웅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이 씨의 오른 편에 서서 팔을 꼭 붙잡고 이 씨에게 자신감을 북돋아 주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짙은 색안경을 낀 노년의 여성. 누굴까.
# 장면 2
지난 4월 19일, 카자흐스탄 북부의 오르스크 초원지대. 소유스 우주선의 귀환모듈이 낙하산에 매달린 채 착륙했다. 예상 착륙지점보다 420km나 멀리 떨어진 곳에 떨어져 관계자들을 긴장시켰지만, 우주인 3명은 시커멓게 그을린 귀환모듈에서 건강한 상태로 구조됐다.
이 가운데 한국 최초 우주인으로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이 씨만큼이나 언론의 관심을 모은 사람이 있었다. 남성을 압도하는 특유의 카리스마를 내뿜는 여성. 그는 누굴까.
이 씨가 한국 최초 우주인으로서 임무를 시작하고 마무리한 그 순간. 그의 곁에는 세계 여성 우주인을 대표하는 두 영웅이 있었다.
한 사람은 71세 할머니가 된 세계 최초 여성 우주인 발렌티나 테레슈코바, 또 다른 한 사람은 지난 6개월 동안 여성 최초로 국제우주정거장(ISS) 선장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고 돌아온 미국 우주인 페기 윗슨이다.
두 사람은 각각 최고(最古) 여성 우주인과, 현역 최고(最高) 여성 우주인이다. 이소연 씨는 두 영웅과 함께 여성의 우주도약 시대가 열렸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2006년 한국 최초 우주인에 지원한 사람은 3만 6206명. 이 가운데 여성은 6926명으로 전체의 약 20%를 차지했다. 수많은 테스트를 거친 뒤 좁혀진 6인 후보 가운데에서는 2명이 여성이었고, 최종 후보 2명 가운데 한 명으로 KAIST의 ‘여성과학도’ 이 씨가 선정됐다.
이 씨는 지난해 9월 예비우주인으로 선정됐지만 발사를 한 달 앞두고 탑승우주인으로 임무가 바뀌며, 한국 최초 우주인의 영예는 여성에게 돌아갔다. 이 씨는 발사 직전 이뤄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성으로서 두렵지 않냐”는 질문에 “여성이 아니라 우주인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목표를 향해 정열적으로 돌진하는 알파우먼의 파워가 우주까지 뻗치고 있다.
테레슈코바, 윗슨, 그리고 이소연
여성 우주 시대는 1963년 6월 16일 시작됐다. 미국과 우주경쟁을 한창 벌이던 구소련은 1962년 방직공장 직원이었던 26세 테레슈코바를 최초 여성 우주인으로 선발했다.
공산국가였던 구소련은 정치적 목적으로 여성 노동자를 우주인으로 뽑길 원했고 테레슈코바는 첫 여성우주인의 이미지에 딱 들어맞았다. 게다가 당시 우주선은 지구로 돌아올 때 6km 상공에서 낙하산으로 탈출해야 했는데, 마침 테레슈코바는 낙하산 타기가 취미였다.
1년간 훈련을 받은 테레슈코바는 보크토크 6호를 타고 70시간 50분 동안 지구를 48바퀴를 돈 뒤 무사히 귀환했다. 이 기록은 당시 미국 남성 우주인들의 우주비행기록을 모두 합친 시간보다 길었다. 이때 그가 세운 최연소 우주비행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이 씨는 2007년 4월 11일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열린 우주인의 날 기념행사장에서 테레슈코바를 처음 만났다. 러시아에서 국가적인 영웅으로 대접받는 테레슈코바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당시 테레슈코바는 “러시아에도 여자 우주인은 몇 명 없는데 고생이 많다”며 어깨를 두드리며 이 씨를 격려했다. 그 뒤로도 이 씨는 테레슈코바를 몇 번 더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테레슈코바는 이 씨를 항상 친딸처럼 여기며 용기를 줬다.
테레슈코바가 여성우주인의 ‘역사속 전설’이라면 윗슨은 ‘살아있는 전설’이다. 생화학박사인 윗슨은 2002년 우주왕복선을 타고 우주에 첫발을 내디딘 뒤 지금까지 5번 우주비행을 하며 많은 기록을 세웠다. ISS 최초 여성 선장을 비롯해 우주에서 가장 오래 머문 여성우주인 기록(376일)과 가장 오래 우주유영을 한 여성우주인 기록(40시간)도 갖고 있다. 이 씨는 윗슨이 ‘익스퍼디션’ 16의 선장으로 2007년 10월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ISS에 가기 전까지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그와 함께 생활했다. 다른 나라 우주인과 친분이 두터웠던 이 씨는 미국 우주인 숙소에 자주 놀러 갔는데, 그곳에서 윗슨을 처음 만나 남성 우주인들을 휘어잡는 강렬한 카리스마에 흠뻑 빠졌다고 한다.
이 씨가 윗슨을 가장 존경하는 우주인으로 꼽으며 따랐고, 윗슨은 초보 우주인인 이 씨를 많이 챙겨주며 이끌었다. 특히 이 씨가 예비우주인에서 탑승우주인으로 임무가 바뀌었을 때는 당시 국제우주정거장에 머물고 있던 윗슨이 직접 지상으로 전화를 걸어 축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테레슈코바와 윗슨은 여성 우주인 역사에서 과거와 현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들의 경력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이 씨도 두 사람을 ‘역할모델’로 삼으며 그들의 용기와 능력을 배우려 노력해왔다.
중국, 2010년 최초 여성 우주선장 배출한다
이 씨는 이번 비행을 통해 세계 475번째 우주인이자 49번째 여성우주인, 그리고 국제우주정거장 체류 최연소 여성 우주인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여성 우주인은 아직 전체 우주인의 약 10%를 차지할 정도로 적지만 그들의 활약은 남성 우주인 못지않다.
우리나라처럼 여성 우주인이 한 나라의 최초 우주인이 된 경우도 적지 않다. 영국 제과회사의 연구원이었던 헬런 샤먼은 1987년 1만 3000 대 1의 경쟁을 뚫고 영국 최초 우주인이 됐다. 샤먼은 우주에 다녀와서 왕실로부터 명예 작위를 받았고 과학기술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또 프랑스 우주인 1호인 신경과학자 클로디 에뉴레는 과학기술부 장관까지 올랐다.
최근 NASA는 우주비행에서 여성을 부조종사나 제3조종사로 발탁하는 것은 물론 선장까지 맡기는 추세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체력이 약해 극한 환경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통념이 서서히 깨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우주에서 여성의 원만한 대인관계와 꼼꼼한 일 처리 능력이 남성보다 월등하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특히 2007년은 여성 우주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해였다. 4월에 미국의 여성 사업가 아누셰 안사리가 여성 최초 우주관광객으로 10일간 ISS를 방문했고, 같은 달 미국 우주인 수니타 윌리엄스가 ISS에서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해 42.195km를 완주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 10월에는 미국 우주왕복선 사상 두 번째 여성 선장인 파멜라 멜로와 당시 ISS의 선장이었던 윗슨이 우주왕복선과 ISS의 도킹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올해는 이 씨가 우리나라 최초 우주인으로서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윗슨과 러시아 우주인 유리 말렌첸코와 지구로 돌아오면서 처음으로 소유스 우주선의 3자리 중 2자리를 여성이 차지하는 기록을 남겼다. 러시아 현지 언론은 말렌첸코를 ‘지금껏 가장 행복한 남성 우주인’이라고 표현했지만, 여성 우주인의 파워가 점차 커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여성우주인의 활약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2003년 자력으로 개발한 선저우 우주선에 우주인을 태워 보낸 중국이 자국의 여성 최초 우주인을 배출할 계획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2005년부터 17~20세의 여성 20만 명 가운데 35명의 훈련생을 뽑아 2009년까지 조종훈련을 시킬 예정이다. 중국 여성 최초 우주인은 2010년 선저우 10호에 선장으로 탑승할 계획이다.
예비우주인이었던 이 씨가 탑승우주인으로 교체된 뒤 가가린우주센터에서 탑승팀과 함께 처음 훈련을 시작한 다음 날인 3월 8일은 공교롭게도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ISS에서 무사히 우주실험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이 씨가 앞으로 우리나라 우주개발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 여성 우주인 역사에도 큰 역할을 하기를 더욱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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