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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1 또 하나의 '투모로우'

1만 5000년 뒤 빙하기 온다!

또 하나의 투모로우


꽁꽁 얼어붙을 것인가, 살아남을 것인가
지구를 집어삼킬 거대 재앙의 실체

prologue


“얼음으로 덮인 과거! 서리의 가혹한 포옹이 남쪽 땅을 덮쳤던 시절!”

지금으로부터 1만 5000년 뒤, 지구에는 다시 빙하기가 찾아왔다. 우연히 도서관 고문서 보관실을 뒤지던 오웰은 19세기 초 독일 과학자였던 칼 쉼퍼의 시를 발견했다. 시 속에 묘사된 소빙하기의 지구는 춥고 황폐했다. 한 뼘도 안 되는 햇살을 쏟아놓고 금세 저물어가던 여름은 야속할 정도로 짧았고 겨울에는 영하 40℃의 추위가 닥쳤다. 하마가 살던 영국의 템스 강은 곧 북극곰의서식지로 변했다. …그러나 추위는 일시적이었고 인간은 살아남았다.

20세기 다시 따뜻해진 기후 덕분에 인류는 첨단과학문명을 꽃피웠다. 그러나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지구가 서서히 냉각되면서 다시 빙하기로 접어든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식량쟁탈전이 벌어졌다.

‘얼음다리’로 연결된 아시아 대륙도 빙하기를 견디기 위한 공동연방을 결성했는데, 돈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계급이 형성되며 가난한 사람들은 식량배급을 받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인공동면에 드는 사람들도 늘었다. 체온을 30℃로 낮추면 심장이 멎고 18℃까지 떨어뜨리면 두뇌 활동이 정지한다. 겨울잠을 자는 곰이나 박쥐, 다람쥐처럼 체온이 3℃가 되면 체내 대사속도가 현저히 떨어지며 최소한의 에너지만으로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냉동캡슐에 달린 센서가 외부의 기온을 감지해 기후가 온화해진 시점에 정확히 해동해주므로 얼어 죽을 걱정은 없다. 하지만 비용이 어마어마해 보통 사람은 엄두도 낼 수 없다.

어젯밤 오웰의 아내가 인공동면에 들었다. 수세기 뒤 다시 눈을 떴을 때 황금빛 햇살을 받으며 함께 홍차를 마시자고 약속한 채 그는 무거운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겨우 한 사람만의 인공동면 비용을 마련한 오웰은 아내에게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아내가 살아갈 미래를 다진다는 각오로 그는 빙하기를 꿋꿋이 견뎌낼 것이다.

▒ 앞으로 1만 5000년 뒤 빙하기가 닥친다는 시나리오는 2004년 6월 ‘네이처’에 실린 유럽 남극빙하프로젝트(EPICA)의 논문을 바탕으로 한 설정이다. 도시가 꽁꽁 얼어붙고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장면은 지난 2004년 개봉한 영화 ‘투모로우’를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 ‘투모로우’는 지구의 열 수송을 담당하던 해류가 멈추며 빙하기가 찾아온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실제로 1만 2000년 전 유럽은 평균기온이 5℃나 뚝 떨어졌고 이 추위가 수백 년간 이어진 적이 있다. 북아메리카의 대륙빙하가 녹으면서 엄청난 양의 담수가 북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갔고, 그 결과 유럽에 열을 공급해주던 멕시코만류의 흐름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속 빙하기는 기후의 자연 주기에 따라 찾아온 빙하기와는 다르다. 그렇다면 다음 번 빙하기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들이닥칠까.
 

말란코비치 주기에 따라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가 커질수록 여름철 극지방이 받는 태양 복사열이 증가해 전지구적인 기후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기후를 주무르는 ‘보이지 않는 손’

지금까지 지구에는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됐다. 이 현상은 밀란코비치 주기로 설명할 수 있다. 1909년 세르비아에서 태어난 수학자 밀루틴 밀란코비치는 당시 최고의 논쟁거리였던 빙하기가 찾아오는 원인에 대해 고민했다.

수십 년 동안 이 문제를 연구한 그는 지구의 기후에 극적인 변화를 몰고 오는 세 가지 천문학적 주기를 발견해 1941년 논문으로 펴냈다. 첫 번째 주기는 태양 주변을 도는 지구의 공전궤도가 10만 년마다 한 번씩 원에서 타원으로 모양을 바꾸며 생긴다. 만약 공전궤도가 심하게 찌그러진 타원 모양이 되면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열이 여름과 겨울에 최대 30%까지 차이가 난다. 겨울이 평소보다 한 달 이상 길어지고 수천 년 동안 한랭한 시기가 지속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지구의 자전축이 4만 2000년을 주기로 공전면에 수직인 축에 대해 22~24.5°까지 다양한 각도로 기우는 경우다. 자전축의 기울기가 커질수록 여름철 극지방이 받는 햇빛의 양이 늘면서 빙하가 녹고 결과적으로 엄청난 기후 변화를 초래한다. 현재 자전축의 기울기는 23.5°로 달의 인력과 균형을 이루며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서기 1만 년쯤 다시 22°로 줄어들 전망이다.

세번째는 2만2000년을 주기로 지구의 자전축이 팽이처럼 원을 그리며 도는 경우다. 현재 지구의 자전축은 북극성을 가리키고 있지만 1만 1000년 뒤 직녀성을 가리키면 계절이 뒤바뀐다.

1960년대 해양퇴적물로 과거의 기후를 복원하기 시작한 과학자들은 실제 기후 기록과 밀란코비치 주기가 놀라울 정도로 맞아 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구의 기후를 주무르는 ‘보이지 않는 손’을 발견한 셈이다.
 

밀란코비치의 세 가지 주기^세르비아의 수학자 밀루틴 밀란코비치는 빙하기와 간빙기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원인 세 가지를 밝혔다.


최고(最古)의 빙하 속에 기후 역사 숨쉰다

빙하나 해양퇴적물을 시추해 동위원소의 비율을 분석하면 빙하나 해양퇴적물이 만들어진 당시의 기온을 알 수 있다. 동위원소 사이의 질량비가 기온에 따라 미묘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속에 포함된 이산화탄소나 메탄 같은 온실기체의 양을 추정해 기온과의 인과관계도 분석할 수 있다.

2002년 EPICA는 남위76°06′, 동경123°21′에 위치한 남극 돔(Dome) C지역에서 길이 3km의 빙하 코어를 분석했다. 무려 74만 년 전부터 만들어져 현재까지 최고(最古)의 기록을 자랑하는 이 빙하코어 속에는 대략 10만 년마다 반복된 빙하기의 기록이 담겨있었다. 밀란코비치의 10만 년 주기와 일치하는 대목이다.

주목할 사실은 약 43만 년 전에 있었던 간빙기의 기온과 이산화탄소 농도, 지구의공전궤도가 지금과 매우 유사했다는 점이다. 이 시기는 무려 2만 8000년이나 지속됐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간빙기의 지속기간은 대체로 1만 2000년이었다. EPICA는 “현재의 간빙기가 1만 2000여 년째 지속되고 있고, 만약 43만 년 전의 패턴대로 움직인다면 앞으로 1만 5000년 뒤쯤 빙하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물론 사람에 의한 인위적인 간섭을 배제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과학자들은 나무의 나이테도 놓치지 않았다. 따뜻한 햇살과 비가 풍부할 때는 나무가 잘 자라므로 나이테의 간격이 넓고, 혹독한 추위나 가뭄을 견뎌야 할 때는 나이테의 간격이 좁다. 실제로 명품 바이올린으로 손꼽히는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유럽이 꽁꽁 얼어붙었던 12~19세기의 소빙하기 때 자란 나무로 만들어졌다. 추위와 싸우며 생긴 치밀하고 단단한 나무 조직 덕분에 울림 좋은 악기로 태어난 셈이다.

연세대 대기과학과 안순일 교수는“나무의 나이테로는 수천 년 전의 계절 변화를 짐작할 수 있고, 호수와 습지에서 발견한 꽃가루화석, 빙하코어로는 수십만 년 전의 기후까지 복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저퇴적물의 경우 수백만 년 전의 기록을 담고 있을 만큼 ‘기억력’이 좋다.안교수는“과거의 기후 정보를 얻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지만 각각의 방법으로 얻은 결과가 공통적인 패턴을 가질 때에만 그 자료를 신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해양퇴적물을 시추해 동위원소의 비율을 분석하면 퇴적물이 쌓였던 당시의 기온과 온실기체의 양을 알 수 있다.


인간이 만든 ‘초간빙기’

그렇다면 ‘ 투모로우’처럼 지구에도 갑작스럽게 빙하기가 찾아올 수 있을까. 연세대 대기과학과 노의근 교수는“영화의 설정처럼 멕시코만류가 갑자기 멈추면 국지적으로 유럽이 추워질 수 있지만 전지구의 평균기온이 낮아지는 빙하기를 불러올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간빙기에서 빙하기로의 전환이 매우 천천히 일어났으며 빙하가 녹는 것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2004년 9월 ‘네이처’에 실렸다. 북 그린란드 빙하프로젝트(NGRIP)팀은 지난 2000년부터 3년간 약 11만 5000년 전의 기록을 1년 단위로 생생히 간직하고 있는 빙하코어를 그린란드 북부대륙에서 시추하는 데 성공했다. 이 시기의 지구는 간빙기에서 벗어나 마지막 빙하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빙하코어 분석 결과 당시 북대서양의 기온은 오늘날보다 5℃높았지만 기후는 비교적 안정적 상태를 유지했다. 연구팀은“현재 온실 기체가 증가하며 지구가 점차 더워지고 있지만 빙하기로 갑작스럽게 접어들 가능성은 낮다”며“간빙기에서 빙하기로 기후가 전환되려면 일단 눈이 많이 내려 쌓이길 기다려야하므로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극지방의 눈과 얼음 면적이 증가한다. 눈과 얼음은 육지보다 햇빛을 더 많이 반사하므로 지구의 기온을 떨어뜨리고 얼음면적이 더 확장되며 서서히 빙하기를 불러온다.

반면 빙하기에서 간빙기로의 전환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급상승하는 것처럼 매우 빠르게 일어났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극지방의 얼음 면적이 줄며 바다가 열을 많이 흡수한다. 바다는 육지보다 넓고 열용량이 커 지구의 기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데, 바다가 데워지면서 겨울에도 얼음이 잘 얼지 않는다. 또 여름이면 얼음이 급격히 녹으며 바다가 더 많은 열을 흡수하고 지구의 기온을 빠르게 높인다. 지구가 얼음으로 덮이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얼음이 녹는 일은 순식간이라는 얘기다. 이런 현상은 태양과 대기, 바다처럼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인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돼있기 때문에 벌어진다.

“밀란코비치 주기 대로라면 지구는 빙하기로 접어들었어야 하지만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며 아직도 간빙기에 머물고 있다. 인간이 만든 이러한 ‘초간빙기’(super interglacial)가 앞으로 지구의 기후 변화주기를 어떻게 바꿔놓을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김성중 박사의 말이다. 이산화탄소 같은 기체는 대기 중에 수백 년간 머물며 지속적으로 온실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에 미래의 기후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변수다. 지난해 IPCC(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는 금세기 말 기온이 최대 6.4℃ 올라갈 거란 비극적인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안순일 교수는“대기 중 온실기체의 농도가 계속 높아지면 지구의 기후가 밀란코비치주기의 영향을 아예 받지 않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지구의 기후를 조절해온 자연 주기가 힘을 잃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음 빙하기가 찾아올 시점이 앞으로 수천 년 뒤일지, 수만 년 뒤일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기후가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 지구온난화라는 변수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지금 이 순간 지구가 쓰고 있는 기후 시나리오의 감독은 바로 당신이다.
 

극지방의 얼음은 기후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얼음 면적이 증가할수록 햇빛을 많이 반사해 지구의 평균 기온을 떨어뜨리고 반대로 얼음 면적이 줄면 바다가 흡수하는 열이 늘어 기온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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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신방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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