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과거로 여행한다는 것은 기존 물리법칙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구의 과거조건과 비슷한 별로의 여행은 가능할 수도 있다.
얼마전 시중에서 상영된 영화에서 주인공이 친구 과학자가 발명한 타임머신을 타고 그의 부모들이 아직 어린 소년 소녀 시절이던 과거로 돌아가서 부모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현재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그려져 있었다. 이 영화의 후속편에서는 이 소년이 미래로 날아가서 그의 자녀들이 겪을 위험을 미리 방지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비단 이 영화뿐 아니라 수많은 공상과학 영화와 만화영화에서 타임머신은 가장 흥미있고 기발한 각종 소재를 제공해준다. 영화에서 뿐만아니라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한번쯤 과거와 미래로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요즘은 흔한 자동소총 하나를 구해서 삼국시대로 돌아 간다면 우리는 쉽게 우리나라를 통일할 수도 있을테고, 세상을 호령하는 왕이 될 수도 있을텐데하는 아쉬움을 가져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타임머신을 연구하는 과학자
사람들은 공상과학 소설이나 만화에서 등장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는 타임머신이 언젠가는 발명돼, 누구나 쉽게 이러한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그들은 공상과학이 과학의 발전을 선도했던 예를 그 증거로 들면서 공상 과학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언젠가는 현실화 될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어린이들 중에는 지금도 어떤 과학자가 열심히 타임머신을 연구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타임머신이 발명됐다는 소식은 커녕 그런 연구가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 또 언제쯤 그런 기계가 발명될지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다. 실제로 그런 기계를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런 기계의 연구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현재의 과학자중에 아무도 그런 기계의 발명을 위해 연구하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많은 사람들은, 왜 과학자들은 이런 엄청난 기계를 발명하는 일에 관심이 없을까하고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현재의 과학자들은,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고 신비한 기계인 타임머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살펴 보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문제를 좀 더 소상히 알아보기 위해서는 현대과학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시간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불완전하지만 하나의 역학체계를 형성하고 아주 오랫동안 유럽인의 사고를 지배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체계가,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케플러 그리고 뉴턴과 같은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무너지고 새로운 역학체계가 등장하게 된 것은 17세기의 일이다.
이 새로운 역학체계가 뉴턴의 세가지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에 근거하고 있음은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역학체계는 너무 완벽해 보여서 도저히 흠이라는 것이 발견될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따라서 많은 과학자들은 우주의 모든 현상은 뉴턴의 역학으로 완전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연의 모든 현상이 뉴턴 역학에 근거한 기계적 원인과 결과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는 기계론적인 우주관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초기조건만 주어지면 어떤 자연 현상도 이 초기조건에서 출발한 원인과 결과로 모두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가 이런 모양으로 살고 있는 것,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모두 과거의 어떤 물질적인 원인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
그들은 만약에 어떤 원인에 의해 어떤 방향으로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면 그 반대 방향으로의 사건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당구대 위에 당구공을 50개쯤 올려놓고 하나를 세게 치면 이 공이 다음 공을 움직이고, 다음 공은 또 다음 공을 움직여서 결국에는 모든 공이 움직이게 되는데, 만약에 마지막에 움직인 공을 거꾸로 움직이게 한다면 처음 공에서부터 일어났던 운동이 반대방향으로 재현될 것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었다. 따라서 이런 생각을 믿는 과학자들은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는 것을 쉽게 가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삼국시대로 돌아간다는 의미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우리가 받아들여서, 우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뒤로 돌리는 것이 가능하다고해도 우리의 기발한 기계인 타임머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타임머신이란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난 특별한 존재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기계론적 우주론에 의해 모든 자연 현상이 거꾸로 진행돼 과거로 돌아간다해도 이 거꾸로 가는 현상속에는 타임머신을 타고 있어야 할 자신마저도 거꾸로 돌려져야 하기 때문에 과거로 가는 의미를 상실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삼국시대로 여행하고 싶어하는 것은 현재의 지식과 생각을 갖고 있는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활약을 하고, 과거의 일들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것이지 현재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고 완벽하게 과거로 돌아가서 철저히 삼국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과정에서 꼭 옛날의 인간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의 유기적인 관계가 나의 실체라고 한다면(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많겠지만) 나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은 과거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어떤 상태로 돌아갈 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과거로 여행한다고 해도 우리가 과거에 와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이고, 애써 과거로의 여행을 준비한 모든 의의를 상실해 버릴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이런 '시간 되돌리기' 과정에서 탈출해 외부에 있으면서 세상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구경하고 과거로 돌아간 세상에 들어가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 과거는 이미 우리가 생각하는 과거는 아닐 것이다. 내가 빠짐으로써 과거로 돌아가는 사건은 과거에서 현재로 올 때의 사건을 그대로 반복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예를 든 당구대의 실험에서 어떤 당구공이 자기 위치에서 벗어나 당구공들의 운동이 반대로 진행되는 것을 보고 싶어 자기 자리를 이탈한다면, 당구공이 뒤로 돌아가는 과정은 이 당구공이 빠짐으로써 앞으로 진행할 때의 사건을 똑같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완벽하게 앞뒤가 원인과 결과로 연결돼 있는 기계론적 우주에서는 우리가 꿈꾸는 타임머신은 그 자체가 과거를 재현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가 될 것이다.
「물병우주」의 본질
그러나 독자들은 앞에 든 당구대 위의 당구공의 예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당구공이 일렬로 서서 뒷공이 앞의 공을 때리고 자신은 그 자리에 멈춰서고 하는 식으로 반응이 진행됐다면 이 과정을 뒤로 돌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구공들이 충돌하면서 흘어졌다면 이 모든 과정을 뒤로 돌린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누구나 병속에 들어있는 맑은 물에 잉크를 떨어뜨려서 이 잉크가 물에 섞이는 과정을 살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한 구석에서 번지기 시작한 잉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물 전체에 골고루 번지게 될 것이다. 중간 과정에서는 더 진하고 엷은 부분들이 있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든 부분에 잉크가 고루 퍼져서 균일한 용액이 될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잉크가 골고루 번지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잉크와 물이 들어 있는 물병을 하나의 우주라고 가정하면 이 우주에서의 시간은 잉크와 물이 섞이는 사건에 의해 그 흐름이 판단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잉크가 물에 골고루 섞이는 방향으로의 진행을 시간이 미래로 흐르는 방향이라고 하자. 그러면 어떤 이유로 흩어졌던 잉크가 다시 모여가는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이 우주에서 시간이 거꾸로 흘러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 물병우주에서 '시간이 과거로 흘러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골고루 분산됐던 잉크가 다시 저절로 모이는 일이 일어날수 있느냐'하는 문제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만약에 물리법칙이 이런 과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면 과거로의 여행 같은 것은 생각할 수 없을 것아다.
확률이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열역학에서는 엔트로피(entropy)라는 양을 정의하고 있다. 고전 열역학에서 엔트로피는 열량을 온도로 나눈 값으로 정의하고 이 양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항상 증가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열역학 제2법칙이다. 열역학 제2법칙은 열이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만 흘러야 하는 것을 설명해 준다. 같은 열량이라도 높은 온도에 있을 때보다는 낮은 온도에 있을 때 엔트로피가 크기 때문에 열이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흐르면 엔트로피를 증가시켜서 열역학 제2법칙을 만족시킨다. 그러나 반대로 열이 낮은 온도에서 높은 온도로 흐르면 엔트로피를 오히려 감소시키게 되는데 이것은 열역학 제2법칙에 어긋나므로 가능하지 않다.
엔트로피는 통계 역학적으로 새롭게 정의돼 좀 더 넓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자연에 있는 모든 물질이 어떤 특정한 배열을 하고 있을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 물론 확률 계산이 매우 복잡해서 쉽게 숫자로 계산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계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으며, 어떤 상태가 다른 상태보다 확률이 높은 상태인지 짐작할 수 있다. 통계 역학에서 엔트로피는 이 확률과 관계된 양의 로그(log)값과 비례하는 양으로 정의한다.
새로운 정의에 따르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확률이 큰 상태로의 변화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서 자연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확률이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진행한다는 것을 뜻한다. 물질이 질서있게 배열돼 있는 것보다는 무질서한 것이 확률이 높다. 따라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자연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욱 무질서한 쪽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잉크가 물 속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골고루 퍼지는 것은 그것이 확률이 높은 상태로의 변화이기 때문에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만족시킨다. 그러나 잉크가 다시 한 점에 모이는 일은 엔트로피를 감소시키게 되므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어긋난다. 그러므로 열역학 제2법칙이 받아들여지는 한, 잉크병 속에서 시간이 과거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역학적인 일을 마찰을 통해 열로 변환시킨 후에는 이 열을 다시 100% 일로 변환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열이 불규칙하게 운동하고 있는 분자들의 운동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분자들의 운동을 한 방향의 운동으로 변환시키는 것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찰로 흩어진 에너지는 반대로 흘러가게 할 수 없다.
열역학 제2법칙이 열쇠
열역학 제2법칙은 시간 흐름의 방향에 물리적 의미를 주고 있다. 따라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우리가 과거로 여행하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될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은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별개의 공간이 아니다. 시간은 사건의 연속 속에서만 파악 될 수 있다. 우리가 과거로 가기 위해서 현재를 그대로 둔채 과거라는 공간으로 갈 수 없다. 그러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로 간다는 것은 사건의 진행을 반대로 진행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건의 진행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우주에서의 시간은 엔트로피가 최대로 될까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갈 것이다. 전 우주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된 뒤에는 시간의 흐름이 정지할지도 모른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우주의 총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데 공헌하고 있다. 그러나 우주의 총엔트로피가 최대가 된 후에 사건이 일어나면 오히려 엔트로피를 감소시킬지도 모른다. 따라서 사건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될 것이다.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시간의 흐름이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기계적인 우주관과 열역학 제2법칙이 우리의 시간 여행을 어떻게 제한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 보았다. 양자역학과 상대론을 이용한 이론에서도 물리법칙은 시간에 대해 대칭성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것은 시간 흐름의 방향을 달리하면 물리법칙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간이 거꾸로 흘러간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가 지나온 과거로 돌아 갈 수 없다.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
우주는 엄청난 에너지에 의해 일정한 방향으로 변해가도록 초기조건이 주어졌다. 이제 우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모두 뒤로 돌려 놓으려면 우주의 진행을 한 방향으로 결정해 놓은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에너지가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에서 나올 것 같지는 않다. 백보를 양보해서 그런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낼 수 있는 기계가 있어 우주 전체의 사건을 뒤로 돌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주여행하는 사람을 제외한 부분만을 과거로 미래로 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주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은 자기 뜻과는 관계없이 과거로 돌아가는 곤욕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과거와 미래라는 공간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한 과거로나 미래로의 여행은 가능하지도 않고 또 가능하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자연의 변화가 우연한 사건에 의해 지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은 과거 원인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만약에 초기조건이 같다면 우리가 지나온 과거를 정확히 되풀이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지구의 역사는 처음부터 새로 출발한다해도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 할 것이란 것을 의미한다. 공룡의 역사가 그대로 재현되고 인간의 역사가 그대로 재현되면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 개인의 역사가 그대로 재현될 것이란 것을 의미한다.
우주는 현재 인간의 감각과 이해로 볼 때 무한히 넓다. 우주의 어디엔가는 우리 지구의 처음 상황과 매우 비슷한 별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별에서 일어나는 일은 비슷한, 그러나 나아가 우리 지구와 다른 천체를 찾아내 그 곳을 여행함으로써 우리의 시간 여행에 대한 욕구를 어느 정도 만족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런 여행도 가까운 장래에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이런 별로의 여행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은 과거나 미래로의 시간여행이 아니라 다른 공간으로의 공간 여행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도 시간 여행은 계속 영화속에서나 즐겨야 할 것 같다.